소제를 죽이고 난 뒤부터 동탁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밤이 되면 퇴궐하기는 커녕 후궁들의 거처로 들어가 맘에 드는 궁녀를 잡아 용상으로 끌고 가 잠을 잤다. 동탁은 조회석상에서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어사 우용종이 말하고자 앞으로 나왔을 때 느닷없이 칼을 뽑아 목을 쳐버렸다.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나오고 대신들 중 심약한 사람들은 혼절하기까지 했다.
동탁의 만행은 산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대장군 하진을 죽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사지를 절단하고 길에 내다버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묘의 어머니 무양군을 죽이고 시체를 정원에 널어놓게 했다.
동탁은 아주 사소한 원한도 모두 기억하여 보복을 했다. 자연히 모든 대신들이 공포와 불안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다.
낙양과 외곽을 경비하는 자리인 월기교위로 있는 오부(伍孚)는 평소 동탁의 만행에 이를 갈고 있었다. 더구나 폐제를 잔혹하게 죽인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조복(朝服) 속에 단도를 숨겨놓고 항상 동탁을 암살할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노리던 기회를 잡았다. 동탁이 등청을 할 때 오부는 단도를 뽑아들고 동탁에게 달려들었다. 주변에 호위들이 없으므로 안심한 것이다. 그러나 동탁을 너무 얕잡아 본 행위였다. 전장에서 뼈가 굵은 무장 출신인 동탁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고 오부의 손목을 낚아채 비틀었다. 즉시 여포가 달려와 오부를 때려눕혔다.
“누구의 지시로 모반을 꾀한 것이냐?”
동탁이 여포의 발밑에 깔린 오부를 노려보았다.
“네 놈이 주상이라도 된단 말이냐? 모반은 무슨 모반이냐? 네 놈의 죄는 이미 하늘을 덮었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네가 죽기를 빌고 있다. 네 놈은 당장 거열형에 처해도 모자랄 놈이다!”
거열형이란 사지를 각각 수레에 묶어 몸을 찢는 잔인한 형벌이다. 동탁은 크게 화가 나 오부를 여덟 토막을 내 죽여버렸다. 동탁은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앞에도 호위 병력을 배치했다.
발해태수로 있던 원소는 동탁의 만행이 예상대로 일어나자 사도 왕윤에게 밀서를 보내 동탁 제거를 논의했다.
역적 동탁이 하늘을 기만하고 황제를 폐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은 뒷탈이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께서는 이를 잘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시니 충신이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원소는 황실을 위하여 군사를 모아 조련하고 있습니다. 공께서 나라를 구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제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군사를 거느리고 공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왕윤 역시 동탁을 제거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다. 그러나 외부의 병력, 그것도 일개 태수의 힘만 믿고 호응하기는 어려웠다. 왕윤은 첫번째로 뜻이 맞는 동지들을 모아야했다.
왕윤은 굳게 마음을 먹고 조회를 마친 다음 대신들에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이 몸의 생일입니다. 바쁘신 걸음이나마 잠시 제 집에 들러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날 저녁 왕윤의 집에는 때아닌 잔치가 열렸다. 손님들이 자리를 잡자 복된 주인으로 상석에 앉은 왕윤은 별안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좋은 날, 어인 눈물입니까?”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닙니다. 동탁의 눈을 피해 여러분과 한 자리에 모여보고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한나라가 세워진지 수백년인데 오늘날과 같은 꼴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대로가면 나라의 사직이 동탁에 의해 쓰러질 것이 분명합니다. 눈물만 앞을 가립니다.”
왕윤의 말에 다른 대신들도 비감한 심정에 젖어 울음을 터뜨렸다. 쿨적거리는 소리 속에서 갑자기 박수가 한줄기 터져나오더니 이어서 높은 웃음소리마저 들렸다.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노엽기도 하여 쳐다보니 효기교위 조조가 그 장본인이었다.
“그대는 동탁 밑에서 출세를 하니 우리들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군! 어디 한번 동탁에게 가서 고자질 해보시지!”
“하하하! 제가 웃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신 나리들이 운다고 동탁이 죽어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조조의 말에 대신들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최근에 동탁과 가까이 지낸 것은 신임을 얻어내서 접근하는데 걸림이 없게 한 것입니다. 이제 동탁은 저를 완전히 신임하고 있습니다. 왕 사도께는 쇠도 자르는 보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대신해서 저 역적 놈을 없애버리겠습니다.”
조조의 말에 모두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탁을 처치하겠다는 그 말에도 놀랐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조조라는 사실에 더 놀란 것이다. 조조는 항상 냉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확신이 없으면 말을 꺼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가 동탁을 처치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말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동탁만 제거한다면 동탁의 무리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동탁의 부하 중에는 뚜렷한 이인자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형국이어서 구심점인 동탁만 없어진다면 지리멸렬하고 말 것이었다.
조조는 자신있게 말했지만 사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동탁의 무리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단지 동탁의 죽음만으로는 흔들 수 없는 조직이 결성될 수도 있었다. 원소가 외부에서 군사를 일으킬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소의 성격으로 볼 때 결국 칼을 뽑을 것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조조는 그 전에 자신의 손에서 동탁을 해결하고 주역으로 나서보고 싶었다. 조조의 나이 서른 다섯. 아직도 세상을 내려다볼 위치에 서지 못했다. 언제나 냉정한 조조였지만 그 깊은 마음 속에는 부질없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조공이 천하를 위해 몸을 던질 각오를 갖고 있으니 이처럼 경사스런 일이 있을 수 없소.”
왕윤은 조조를 치하하며 술을 내렸다. 그리고는 바로 실내로 들어가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칠성검을 가지고 나와 조조에게 주었다.
조조는 칠성검을 허리에 차고 연회장을 물러나왔다. 대신들은 조조의 성공을 기원하며 축배를 들었다.
다음날 조조는 동탁을 찾아갔다. 동탁은 별채에 여포와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동탁은 거드름을 부리며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여포는 무장을 한 채 신장(神將)처럼 곁을 지키고 있었다. 여포가 있다면 동탁을 암살할 방법이 없다. 조조는 여포를 떼놓을 궁리를 했다.
“오늘 좀 늦었습니다.”
“그래, 왜 이렇게 늦었나?”
“제가 타고 다니는 말이 시원찮아서 시간을 잘 지킬 수가 없군요.”
“허? 그래? 봉선아 말이라 하면 역시 서량의 말이 최고 아니냐? 내 말 중에 하나 골라서 맹덕에게 내주어라.”
동탁의 명에 여포는 즉각 대답을 하고 마굿간으로 떠났다. 주변에 호위무사가 한 명도 없지만 같이 있는 사람은 심복 조조가 아닌가. 여포에게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하늘이 이 역적을 해치우라고 도와주시는구나.’
조조는 속으로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동탁이 직접 지시를 하지 않더래도 말을 한 마리 달라고 조를 판이었다. 조조는 일대일의 자리를 만들긴 했지만 아직 칼을 뽑아들지는 못했다.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동탁과 정면대결을 펼칠 경우 성공한다는 자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조조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렸다. 기회가 한번은 올 것이다. 조조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오늘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모였던 연회의 정보는 머지 않아 동탁의 귀에 들어간다. 그때는 더 이상 시도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조조는 기다렸다.
과연 그 기회가 왔다. 동탁이 조조에게 등을 보이며 뒤로 돌아누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조조가 아니었다. 조조는 재빠르게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칠성검을 뽑아들었다. 그대로 견갑골 사이로 날카로운 칼날을 밀어넣기만 하면 된다. 조조는 침착하게 동탁의 넓은 어깨 사이를 겨눴다.
“맹덕! 무슨 짓이야!”
조조가 칼날을 밀어넣으려는 그 순간 동탁이 몸을 뒤집고는 조조를 노려보았다. 동탁이 등을 돌린 벽에는 거울이 있었다. 조조는 아무런 기척 없이 칼을 뽑았지만 거울에 조조의 모습이 비치고 만 것이다. 조조의 등으로 한줄기 식은 땀이 흘러내렸지만 조조는 칼을 뽑아든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점 떨림도 없었다. 조조는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왼손으로 칼끝을 받치고 있는 자세여서 어찌보면 칼을 바치려는 자세같기도 했다.
“저에게 진귀한 칼이 하나 있어 상국께 바치고자 가져왔습니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조조가 그 순간에 그대로 칼을 들이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등 뒤에서 푸르르하는 말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여포가 돌아온 것이다. 만일 한번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갱이라도 벌어진다면 개죽음을 할 것이다. 조조는 오늘 일은 틀어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목숨을 건져야했다. 조조는 정관이나 오부처럼 죽고 싶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탁은 별로 이상한 생각없이 칼을 받아들였다. 살펴보니 과연 명검이라고 할만 했다. 동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말 한마리에 명검 하나라... 맹덕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때도 있군 그래. 봉선아, 말은 가져왔느냐?”
“뜰에 매어 두었습니다.”
그때 방으로 들어온 여포가 대답했다. 동탁은 조조와 여포를 이끌고 말을 보러 뜰로 나왔다. 조조는 말을 보자 극찬을 늘어놓았다.
“정말 좋은 말입니다. 당장 한번 타보고 싶습니다.”
“그러지...”
동탁이 별 말이 없자 조조는 냉큼 말 위에 올라타 동탁의 거처를 탈출했다. 너무 서두르는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일 리가 없었다.
“상국, 맹덕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글쎄, 하지만 칼은 진품이던데?”
“혹시 암살을 기도한 건 아닐까요? 보도를 가지고 온 것은 이럴 경우에 발뺌하려고 한 건지도 모릅니다.”
둘이 의견을 나누는데 이유가 왔다. 전후사정을 들은 이유도 고개를 갸웃했다.
“맹덕이 그렇게 무모한 자는 아닙니다. 그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불러보도록 하지요. 오지 않는다면 모반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탁은 이유의 말에 따라 전령을 조조의 집으로 보냈다. 전령은 머지 않아 돌아와 말했다.
“효기교위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성문지기에 물어보니 상국 나리의 긴한 명령을 받드는 중이라고 말하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고 합니다.”
“맹덕이 거짓말을 하고 성밖으로 나간 것을 보니 사악한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내가 저를 얼마나 아껴주었는데! 감히 내게 이렇게 보답을 한단 말이냐!”
동탁은 즉시 영을 내려 조조의 용모를 그린 수배전단을 전국에 뿌리도록 했다. 조조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과 만호의 후(侯)에 봉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조조를 숨겨주는 자는 조조와 같은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 명했다.
이때 원소의 사촌동생인 원술도 도성에 아직 남아있었다. 원가의 힘을 무시하지 않은 동탁은 원술을 후장군의 지위에 두고 있었다. 원술은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한 것을 알았다. 원술은 본래 경솔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동탁 암살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조가 처형되었다고 생각했다. 원술은 그 길로 달려 조조의 거처로 갔다.
조조는 첩들을 낙양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하자 첩들에게 소식을 전할 새도 없이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이미 오전에 상국부에서 사람이 다녀간 바 있는데, 이번에 원술까지 찾아오자 모두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절부절이었다.
원술은 조조가 이미 처형되었다고 조조의 첩들에게 잘못된 소식을 전했다. 놀란 첩들은 모두 재산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들었다. 이때 가장 나이가 많은 변씨가 그들을 만류했다.
“후장군께서는 비록 주공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했지만 상국이 오전에 주공을 찾은 것으로 보아서는 이미 달아나셨을지도 모른다. 너희들이 오늘 이곳을 떠났다가 내일 주공이 돌아온다면 그후는 무슨 낯으로 주공을 뵐 수 있겠는가? 설령 화가 닥친다해도 주공과 함께 환난을 같이 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변씨는 이제 3살이 된 조비를 곁에 세우고 젖먹이 조창을 안고 호통을 쳤다. 변씨의 말에 다른 첩들은 짐을 싸던 것을 멈추고 조조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본래 기녀 출신이었던 그녀는 이렇게 당찬 면이 있었다. 그녀는 어려운 시절을 겪은 것을 잊지 않고 늘 검약한 생활을 했다. 후일 황태후의 자리에 올라서서도 항상 삼갈 줄 알았다.
원술은 이 소식을 전한 다음 연회의 일이 밝혀지면 한차례 피바람이 불거라 생각하고 자신도 도성을 버리고 남양으로 내려갔다. 사촌형인 원소가 발해태수였지만 본래 이 두 형제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원소를 찾아가지 않았다.
원소와 원술은 형식적으로는 사촌형제지만 사실은 이복형제였다. 원가의 종손인 원성은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때문에 동생인 원봉은 자기 첩의 아들인 원소를 원성에게 양자로 보냈다. 그 뒤에 원봉의 본처가 낳은 아이가 원술이다. 원소는 첩의 아이였지만 본가의 장손이 된 것이고, 원술은 적자이지만 원소의 밑에 서게 된 것이다. 자연히 원술이 원소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원술은 사촌 형과 원가의 힘이 결집된 하북을 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