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일
- 박소란
불행을 응원한다 불행의 편에서
더 더 더 불행해져라 입술을 잘끈 깨물면서,
하마터면 진짜로 그럴 뻔한다
무너진 빌딩 뒤집힌 자동차 우연처럼 불탄 사람들
우연처럼
타다 만 사람들, 아침이면
불행은 어쩔 줄 몰라하며 구형 TV 앞에 엉거주춤 서서
폴리스라인이 함부로 뒤엉킨 뉴스를 보는데
그 침울하고 핏기 없는 얼굴은 도무지 남 같지가 않고
간밤 나는 병들어 뒤척이는 한 사람 곁에 누워
가늘고 불규칙한 숨소리를 오래 들었다
소리가 거의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그만, 이제 그만,
기도하는 불행의 뒷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집 안에는 언제나 냉기가 감돌고
불행은 불행답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웃고 싶지 않아
읽다 만 책이 수북한 책상에 엎드려 대체로 혼자 지내지만
때가 되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한다
불행의 일을
어제는 정류소 벤치에 갓난쟁이처럼 잠든 사람을 깨워
그리던 엄마 품으로 돌려보냈다며
그곳은 너무 멀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며
체념과 안도와 피로를 골고루 머금은 표정으로
불행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앞에 엉거주춤 서서
병과 싸우는 한 사람과 엉터리 심판 같은 불행을 번갈아 흘깃거린다
막연한 어떤 날짜를 헤아린다
두려움과 약간의 설렘에 휩싸여
불행, 하고 부르면
그는 그게 자기 이름인 줄도 모르고
불행, 힘내,
나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웅얼거린다 거기 누군가 무심코 응, 답할 때까지
ㅡ시집 『수옥』(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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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붙어 있다고 합니다
누구의 행복은 다른 누구의 불행일 수도 있고
어떤 불행은 모두에게 행복일 수 있는 세상살이일 때가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새옹지마'라면서 스스로를 위로했고
현대인들은 '휘게'나 '아모르파티'를 흔들어 댑니다
어제 아침 텃밭에 나가서 파를 심고 시금치 씨앗을 파종했는데
장마철 작물들은 저마다 보람을 맺느라 기세등등한 잡초들을 거느리고 있더라구요
이랑 사잇골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쥐어뜯으면서 몇몇 불행한 뉴스를 떠올렸습니다
복달임 나눠먹고 농약에 중독되어 쓰러진 경로당 회원들,
한밤중에 밭일하다가 멧돼지로 오인받아 총을 맞은 안노인의 불행을 남의 일로 듣습니다
밤세 쏟아진 폭우로 또 어떤 불행한 뉴스가 쌓였을지 엉거주춤해지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