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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 금요일
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의 주인 되시며!" 역대상 2장
나의 카톡의 프로필 사진 아래에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나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심이라!" 이런 말이 적혀있다.
누가했는 말을 옮겨 놓은 듯 하지만 ㅎㅎㅎ 내가 한 나의 말이다.
나는 이런 말 하면 나 스스로 감동하는 편이다.
이렇게 써 놓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스스로 이렇게 써 놓은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는 이렇게 내가 글을 써 놓고도 그 상황에 얼릉 이 말을 생각하고 적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일도 있으나 가능한 이 말을 빨리 기억하려고 한다.
어제는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내 마음이 사실 쉽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재정적으로 도와 주고 도와 주었어도 계속 나 하나밖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다고 그렇게 부탁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 위기 상담
자식이 귀신 들린 사람의 간절한 심정 등 등
나에게는 각종 어려운 상담 케이스들이 들어오지만 그런 것이 나를 이제는 그렇게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듣는 내가 이렇게 힘들면 이 일을 겪는 사람은 얼마나 더 힘이 들까!!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도 부탁 들어오는 모든 기도들은 길게는 못해도 얼릉 얼릉 그 자리에서 한다. 더 길게 꼼꼼하게 해야 할 기도들은 우리 SAM에 기도 팀장님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기도 팀장님에게 기도 제목을 얼릉 공유한다.
그러면 그 팀장님은 아주 꼼꼼히 전해 받는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 준다.
내가 한 달에 약 1억 가량 사역 후원금을 후원금으로 받는다고 하는데 한 달에 5,000원 계좌인 "오병이어" 계좌로 들어오는 헌금 내역 중 요즘은 많은 부분이 "감사헌금"이 아닌가 한다.
기도 응답 받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감사헌금"으로 헌금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내가 감사하다고 내 마음 자유하게 쓰라고 헌금 보내시는데 내가 그런 헌금을 내 자유(?)하게 쓸리가 있는가? 모두 다 선교헌금 계좌로 입금한다.
때로는 내가 설교하는 집회 장소까지 따라오셔서 기도를 받고 가는 분들이 있다. 기도 받은 것이 감사해서 헌금들을 주고 가신다. 그런 헌금은 집에 오면 막바로 다 "오병이어 선교헌금" 계좌로 입금한다.
얼마 전 어느 분이 100만 원 주시기에 막바로 선교헌금으로 입금하고 입금된 것을 동그라미까지 그려서 인증 샷 찍어서 보내 드렸더니 "개인 품위 유지비" 쓰라고 드린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 감사하다고 괜찮다고 .. 어차피 내가 개인 헌금으로 쓰던 선교헌금으로 입력하던 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잘 사용 될 것이니 괜찮다고...
배려를 감사한다고 그렇게 말씀 드렸다.
나 기도 받고 감사하다고 주는 헌금 내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다 선교헌금으로 입금한다.
매달 나의 선교헌금 입금내역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출금 내역은 매달 나의 기도 편지 아래편에 나의 웹사잍 주소가 링크로 나와서 누구라도 볼 수 있다.
네이버 들어가서 "임은미 선교사" 치면 나의 사역과 나의 재정보고가 제일 처음 페이지에 나온다.
내 묵상이 투명하듯 내가 받는 헌금과 지출하는 헌금 역시 네이버가 다 공개해 줄 정도로 "투명"하다.
한때는 나의 투명성과 정직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 주시는 자격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나이 들어 좀 더 성숙해 지고 난 다음에는 그것조차 "나의 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인 것이다.
내가 넘치게 정직해도
적당히 정직해도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원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성령 충만할 때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이 되었어도
"왜 이것이 나의 경건과 나 개인의 능력인 것처럼 나를 주목하느냐?" 라는 말을 한 그 성경 구절에 크게 은혜를 받아서 요즘은
나의 "경건의 훈련"에 대한 것도 그다지 자랑(?)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자랑 안할 리가 있는 감유! ㅎㅎ
좀 더 성숙해지면 이런 부분도 주님 보시기에 가장 기쁘신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을 믿는다.
하여튼 내가 처음 묵상 일기 앞 부분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와 조금 핀트가 어긋나긴 했는데 나에게 힘든 일이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 듣는 것이라든가
선교헌금이 모자란다 더거나.. 그런 일이 요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제는 어떤 일로 내가 마음이 힘들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아주 어렵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묵상에 올리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이 맞다.
물론 나로서는 그 사람이 그렇게 상처 받을 줄 모르고 한 일이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서 죽는다!" 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한 일이 고의가 아니었다 하고 무심코 한 일이라 해도 그 일로 인하여 누군가가 상처를 받은 일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제 내게 당신의 어려웠던 마음을 나눠 주신 분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성숙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마음 힘든 이야기를 엊그제까지 내가 3일 부흥 집회한다고 나에게 그 말을 하면 내가 집회 설교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당신의 마음은 그렇게 상처로 무너져 내렸지만 내가 집회 모든 스케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어제 연락을 한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일단 너무나 고마왔다.
나에 대한 배려였으니까 말이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엇보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이 나의 첫 번째 잘못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잘못 했을때 지적을 받으면 변명 아닌 변명 중 큰 변명이 무엇이냐하면 내가 "재미교포" 라는 것이다.
나 한국 떠난지 42년인가의.. 세월이다.
나 "한국 정서"를 잘 모를 때가 있다.
이번 일도 변명 중 한 부분은 내가 한국 정서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의 한 조각인 것이고
큰 잘못은 상대편에 대한 배려가 짧은 것이었다.
내가 그냥 나 좋은 것만 열심히 이야기 했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인하여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의 어려움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던 상황이 이번 상황이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어려웠으면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신뢰했으면 앞으로는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 상처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 나에게 연락을 일부러 해 왔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성경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6) 라는 말씀이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심" 이라는 것은 성경 말씀이 나를 이렇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항상 얼러주고 달래주고 위로하고 칭찬만 해 주시는 분은 아니신 것이다.
내가 올바로 성숙하기 위해서 책망도 교훈도 바르게 함도 모두 나를 자라게 해 주시는 "도구" 들로 사용 받는 것이다.
어제는 참 오랜만에 성장통(?)을 겪은 날이라고 하겠다.
주님께 아무런 책망 받는 것 없이 칭찬만으로 쑥쑥 잘 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제는 나의 민낯을 주님께서 보여 주신 날이라고 하겠다.
어제는 그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그리고 대언 기도도 해 드렸다.
하나님은 그분을 칭찬하여 주셨다.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어제 그 분은 위로를 받으셨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이해 해 주셨다.
하나님이 그분 마음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 드린다.
나 때문에 마음 고통을 아주 크게 겪으셨던 것 같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
이분은 나에게 왜 당신이 상처를 입었는가 기도하고 난 다음 마음을 많이 추스리고 이야기를 한 분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 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는
나 때문에 받은 상처가 있어도 나에게 말을 못한 분들이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은 굳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 없이 내가 섭섭하고 야속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 마음에 다 꼭 드는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완전한 사람" 이었던 예수님도 100% 칭찬 듣지 못하셨는데
내가 누구라고 100%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절대로 아무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겠는가 말이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만
어제 같은 경우는
"아!! 내가 왜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짧았지?"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정말 더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깊게 가져다 준 날이 어제였다.
한 사람의 상처에 대한 깊은 위로와 사과가 어떻게 나의 짧은 "제가 잘못했네요!!" 이 한마디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배웠다!" 이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심을 깨달음" 이라고 말은 멋있게 하지만
정작 이러한 나의 깨달음과 성숙이 그 사람의 상처를 얼마만큼 치유 할 수 있을 것인지..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지만
이 일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사고는 자식이 쳐도
사고 친 배상은 부모가 해 주는 경우가 허다하듯..
그 사람에게 잘못은 내가 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니 하나님이 그분 마음을 잘 만져주시고 그분은 다른 좋은 일로 이번의 상처가 잘 위로 되어지기를
주님께 간구 드린다.
다음에는 하나님이 내가 친 사고를 감당해 주는 케이스보다는
자식인 나로 인하여 하나님이 "덕"을 보실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얼릉 오기를 역시 기도 드린다.
아이들은 한번 아플 때마다 확 크고
어른들은 한번 아플 때마다 확 늙는다는 말이 있던데
이럴 때는 아이이고 싶다.
어제 일로 확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불어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받은 상처가 있지만 나에게 말 한마디 안한 모든 분들도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아시오니 마땅히 받아야 할 위로와 하나님 주시는 회복이 있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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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역대상 2장
3.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나 악한 일을 하였기에 하나님이 직접 이 사람을 죽이신 것 처럼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일까?
사람에게 있어 "죽음"은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요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우리는 이해를 하고 있다.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한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고난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은
"세상에 어느 것 하나 당연시 여겨야 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숨을 쉬는 것도 걷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라고 하는 이 고백!!
벌을 받을 일을 하고도 벌이 담박에 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벌이 나중까지 안 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다 다를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금방 내 잘못한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벌을 안 내리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은 심는 것을 거두기 때문에 벌이라는 것을 받을 때가 오면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하여 벌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신 하나님이 그 사람이 받을 벌을 없애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죄의 사유하심이 여호와께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함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제사는 상한 영혼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상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지은 죄의 벌을 받기 앞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 130:4)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3. 1.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요즘은 계속 제 묵상이 길어요. 그죠?
그래서 출석만 짧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나의 딸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대와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대가 시시때때로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은
미쁘시사 미쁘시사.
그대의 모든 불의한 죄에서
그대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죄를 짓고자 하는
licence
자유함이 아니라
"죄를 더 짓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너무 감사하구나.
이렇게 감사한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순종의 제사를
올려 드려야 되겠구나."
그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