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in D major, III-Rondo all Ungherese-Allegro assai
(피아노 협주곡 D장조 3악장)
Franz Joseph Haydn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
18세기 후반, 빈 고전파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며
고전주의 기악 형식의 완성에 크게 공헌을 했고
100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1732년 오스트리아(Austria)와 헝가리(Hungary)의 국경에 위치한
로라우라(Rohrau)는 마을에서 가난한 대장간집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러 여덟 살 때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슈테판 소년합창단에 들어갔으며
여기서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는데,
얼마나 목소리가 아름다웠는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여왕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의 목소리를 아낀 성가대장은
하이든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카스트라토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수술을 받기로 한 날 배탈이 나서 수술이 연기되었고,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변해 카스트라토가 되는 불운을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하이든은 변성기를 맞아 합창단에서 나와
10년 동안 프리랜서 음악가로 살았다.
난로도 없는 다락방에 기거하며
저녁때가 되면 남의 집 창 밑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했다.
귀족에게 하프시코드를 가르치거나 궁정 실내악단 연주자,
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나 독창자로 활동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작곡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포르포라(Nicola Porpora, 1686-1768)
밑에 들어가 작곡을 공부했다.
27살이던 1759년, 하이든은 보헤미아의 모르친(Morzin) 백작의
궁정 악장(Kapellmeister)에 취임했으나
백작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악단이 해산하면서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1761년, 하이든은 헝가리의 호족 에스테르하지(Esterhazy) 후작의
전속 음악가로 고용되었다.
에스테르하지 가는 당시 유럽 최고의 부자였고,
에스테르하지 궁은 베르사유 궁에 필적할 만큼 호화로웠다.
후작은 하이든이 대저택에 단원들과 함께 기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매일 음악회가 열렸고,
주말에는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하이든은 수시로 후작의 궁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언제라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곡을 쓰는 것 외에 연주자를 채용하고,
이들을 교육하고, 악기를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하이든은 이 모든 일들을
불평 한마디 없이 언제나 성실하게 수행했다.
1779년경부터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하이든은 자기 자신의 오페라는 물론,
피치니, 그레트리, 파이지엘로, 치마로사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영국에서 빈으로 돌아왔을 때,
하이든은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어 있었다.
이때 니콜라우스 2세가 제4대 에스테르하지 후작으로 등극했다.
거처를 에스테르하지에서 아이젠슈타트로 옮긴 후
작은 할아버지가 조직했던 궁정 악단을 다시 조직하고
하이든을 궁정 악장에 앉혔다.
그에게는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여름에 2, 3개월 동안만 아이젠슈타트에서 일하면
나머지 시간은 빈에서 보낼 수 있었다.
후작은 자기 아내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의 명명축일을 위해
매해 미사곡 한 편을 작곡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하이든은 자유롭게 자기가 쓰고 싶은 곡을 쓸 수 있었다.
후기 현악 4중주 작품들,
오스트리아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오라토리오 〈천지창조(Die Schopfung)〉와 〈사계(Die Jahreszeiten)〉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1803년 말, 하이든은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그가 대중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08년 3월 27일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을 때였다.
이때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이든은 그로부터 2개월 후인 5월 31일,
굼펜도르프 가의 자택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