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한민국 정체성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02년이다.
민주화 정부 한 가운데 시절에 출간된 책이다.
남북이 대립이 아닌, 협력의 시기로 평가되는 시기이다.
전쟁의 위협은 없고,
서로 도우며 미래를 만들어가자 노력하는 시기였다.
북한이 더이상 적성국도 아니었다.
불과 10년도 안된 2002년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 관계가 요즘처럼 냉랭한 시기가 있었던가?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남북 관계가 이렇게 개판이 되어 버렸나?
민주화가 후퇴한 것을 생각하면,
남북 관계가 후퇴한 것도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
대한민국이란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남한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북한을 포함한 것일까?
다이어리 뒤에 나와있는 세계 지도를 보았다.
북한이라는 명칭은 없이, 한반도 하나가 대한민국으로 표기되어 있다.
수도도 서울만 빨간색으로 표기되어있다.
나도 모른 사이에 지도에는 벌써 통일이 되어 있었다.
....
남북이 갈라진 지 벌써 65년이 되었다.
그 65년 동안, 다른 사상, 다른 가치관, 다른 이념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은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지고 말았다.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만들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통일은 더 먼 미래를 위한 우리 민족의 의무이다.
지금 당장 어렵다고 회피하면 안된다.
독일처럼 하루 아침에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서서히 개방시키고,
남북한의 교류를 서서히 넓혀 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한다.
그런 노력을 해도 얼마나 걸릴 지 모를 통일이건만...
그런 가능성마저 막아버린 현 정부...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
1. 북한 현대사의 진실
남한의 가치관, 남한의 역사관으로 북한의 역사를 논하다 보니,
그들의 역사는 왜곡되어 평가되고 있다.
북한 역시,
남한의 역사를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역사관으로 평가하여
왜곡되어 평가되고 있다.
해방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남한의 역사는 반쪽짜리 역사를 배우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2002년 남부 화해의 물결을 타고,
북한의 역사를 재조명해보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도 그 중에 하나이다.
북한의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과,
북한에서 대사관으로 일했던 러시아 사람들의 기록과 증언 등으로
북한 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핵심은 해방 후 집단 지도 체제였던 북한의 권력 구조를
김일성 유일 지도 체제로 변화시켜 수령제를 확고히 만드는 과정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후계자 작업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난 많은 일련의 사건들의 숨어 있는 진실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의 진실 여부도 여러 증언을 통해 알아보긴 하지만,
어떤 것이 진실인지 끝내 밝히지 못한 사실도 있다.
분명한 것은 김일성이 실제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가짜' 김일성이라는 것이 가짜였다는 것이다.
이미 한홍구의 책이나, 이원규 선생의 책을 통해
예전에 내가 학교에서 거짓을 배웠다는 깨닫고, 놀랜 것이 불과 수년 전이었다.
아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대로
북한의 김일성과 항일 투쟁을 했던 김일성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2. 조만식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만식이라는 분은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는데,
왜 이 사람이 책에 나와 있을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조만식은 건국준비위원이었으며, 평양에서 줄곧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민주당을 이끌고 있었고,
몇 번이나 남한으로 올 수 있었지만, 그는 자진하여 평양에 남았다.
하지만, 소련이 진군 후 그는 더이상 활동을 할 수 없었고,
평양의 고려 호텔에 감금되었다가,
1950년 북한이 평양에서 후퇴할 때 죽었다.
지금까지 그의 죽음에는 여러 설이 있었다.
북한이 평양에서 후퇴하면서, 납북한 민족주의자들을 반동분자라 하여 처형하였는데,
그떄 조만식 선생도 죽었다는 설이 있었고,
평양 후퇴 시 조만식 선생도 데리고 갔지만, 미군의 폭격에 죽었다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증언에 의하면 그의 죽음은 너무 허무했다.
그의 인솔을 담당했던 경비병이 노인이었던 조만식 선생이
도망가는데 짐이 된다고 죽인 것이다.
그가 나중에 미군의 폭격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 드러나,
그 경비병은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단면이다.
3. 유일지도체제로...
김일성은 한국전쟁의 패배의 책임을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 출신에게 돌리고,
그들을 숙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북한에서는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그들은 왜 숙청되었는가?
관련 증언에 따르면,
이승엽 주도 하에 실제로 김일성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 전쟁 이전부터 암암리에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세력 중에 일부는 미국과도 접선했다는 증거가 있었다.
박헌영은 주도하던 세력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행하고 있는 모의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하였다.
이런 일로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 주요 인사가 숙청당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박헌영, 이승엽은 순순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남로당 출신 수천명을 죽인 것은 아니고,
핵심 인사 10여명만 처형시켰다고 한다.
..
남로당 세력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소련파가 권력에서 숙청당한 과정을 여러 진술과 기록으로 추적하고 있다.
북한에는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라는 것이 있다.
1956년 8월 30일 조선 노동당 전원대회가 있었다.
이 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일성파를 비판하였다.
경제 문제 등 여러 현안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그 핵심은 북한 지도 체제가 김일성 개인 우상 숭배로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에 권력을 잡고 있던 김일성과 김일성파는
소련파와 연안파들을 출당 조치를 취했다.
이 사건으로 일부 소련파들은 소련으로 망명을 갔고,
이 사건을 알게 된 중국과 소련은 직접 개입하기에 이른다.
결국 한달만에 다시 출당되었던 이들이 복권되었지만, 다음해에 다시 축출된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은 중국과 등을 돌려 한동한 불편한 관계가 된다.
암튼, 8월 종파 사건으로 연안파와 소련파와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지면서,
북한은 점점 더 유일지도체제를 확고히 하면서, 수령제를 도입하게 된다.
4. 후계자 작업
1994년 어찌 보면 갑작스러운 김일성의 죽음이었다.
남부 정상 회담 날짜까지 정해놓았던 시기였다.
김일성의 죽음 이후, 북한 체제에 대한 붕괴를 이야기하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은 지, 4년 뒤 완벽하게 장악을 하였다.
그 전보다 더 안정된 유일 지도 체제라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미 오랫동안 김정일 후계 작업에 대한 결과이다.
김정일의 출생설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항일 투쟁을 하던 김일성은 같은 빨치산 동지인 김정숙과 결혼하여
김정일을 낳는다.
김정일의 출생지가 소련 연해주라는 이야기도 있고, 백두산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소련 연해주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백두산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후계 체제를 위한 조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최고 권력의 아들로써, 어린 시절부터 특별대우를 받고, 여러가지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잃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비서였던 김성애가 새엄마가 되는데,
이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김정일은 김성애와 좋지 않은 사이로 지내게 된다.
김정일은 대학을 갈 때 유학을 갈 기회가 있었지만,
김일성 대학에서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유학을 가지 않고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이미 김정일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찍 후계자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소련과 중국이 후계자를 잘못 선정하여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후계자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둘째,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의 치맛바람을 타고, 외척들이 득세하였는데
김성애는 김정일의 친모인 김정숙 지우기에 앞장섰다고 한다.
이에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이 김성애 일가를 숙청하여 몰락시켰다.
김성애는 연금 조치당했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에 대한 후계 구조가 더욱 강화되었다.
세째, 김일성의 병이 악화되어 목의 혹이 점점 커지고 있었던 것도
이른 후계자 결정의 이유라고 한다.
네째, 김정일이 부각되기 전에 김일성의 뒤를 이어 2인자였던 김영주의 역량 부족도
김정일 후계 구도를 확고히 하는데 한몫을 하였다.
다섯째, 갑산파 사건 등 반역 음모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또한 일찍 후계자를 결정하여 권력을 견고히 하는 원인이 되었다.
...
김정일인 문화선전부에서 활동하면서 급부상하게 되었고,
1974년에 당비서로 선출되면서 2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80년대를 거치면서 이미 실질적인 1인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일성이 죽은 시점에는,
이미 모든 권력이 김정일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붕괴의 위험은 없었던 것이며,
안정적인 정권 이양이 이루어진 것이다.
김정일은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이 최고 권력자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럼, 포스트 김정일은 무엇일까?
요즘 들어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뉴스가 가끔 나오면서,
더욱 김정일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도 많다.
과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진 것처럼,
김정일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또다른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
우리 정부는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붕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도 대비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준비는 커녕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갑갑하기만 한다.
툭하면 전쟁이라는 정부에서 튀어나오고,
이를 보수 우익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좋아하고... 참 보기 드럽다..
전쟁이 나도 제일 먼저 도망갈 것들이 말이다.
도리어 중국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는 양상이다.
남북 문제에도 시급한 문제점이 많은데,
정부는 오직 4대강에만 올인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유가 뭘까?
5. 월드컵 시즌
월드컵 시즌이다.
나도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월드컵에 참 관심이 많다.
이 때문에 요즘 책읽는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번 월드컵은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본선에 진출한 첫번째 월드컵으로 의미있는 월드컵이다.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기도 열심히 보고 응원하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 살고 있는 북한 국가대표 선수 정대세의 눈물.
그 눈물을 보고 가슴찡하지 않은 사람 있으랴.
정대세는 골 세레모니로 '조국통일'이라고 써있는 티셔츠를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젊은 축구 선수가 냉랭해진 남북 관계를 녹여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정대세 뿐만 아니라,
남한의 선수들도 이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으면 좋겠다.
남한과 북한 축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두 팀 모두 16강에 올라 우리 민족의 매서운 맛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책제목 : 인물로 본 북한현대사
지은이 : 정창현
펴낸곳 : 민연
페이지 : 376 page
펴낸날 : 2002년 07월 31일
정가 : 13,000원
읽은날 : 2010.06.10 - 2010.06.16
글쓴날 : 2010.06.1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