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 2024.1.14.) 말씀/ 빌립보서 3:: 8-11 바울의 향상심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
오늘이 2024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한 해를 더욱 뜻 깊고 은혜가 넘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글이 있습니다. ‘목표가 당신의 성공을 결정한다. 성공이란 단어를 감사로 바꾸면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감사제목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좋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둘째는 목표를 향해 끊임 없이 고분분투한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정처 없니 떠도는 배와 같이 바람 부는대로 움직일 뿐 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끈기 있게 전진한다면 세상은 길을 내어줄 것 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명확하고 장기적이고,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기초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이미 반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왜내냐하면 분명한 목표점은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 높은 곳 하늘이라는 푯대가 있습니다. 거기 주님이 계시고, 부르심의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다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맹점 인다. 구원이란 목표를 이룬 후에 삶의 과정을 소흘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며 안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제 목표점에 이르기까지 과정입니다. 어떤 자세로 과정을 살아가는가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정도 목표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회으 창립자 산 이그나시오 데 로욜라라는 사람은 이러게 말했습니다. 신이 없는 듯 열심히 살고, 신밖에 없는 듯 열심히 믿으라.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면서 여행은 목적지만이 아니라 출발 선상부터 아니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여행이란 것을 누누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니체의 글과 바울의 삶을 통해서 향상심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 <사랑을 얻는 지혜>7부에 보면 아름다운 인생의 여정 세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여정은 죽은 자들과 대화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여정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보내는 것이고, 세 번째 여정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보내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과 보내라는 것은 지나갔지만 위대한 인물들의 책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책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재 살아 있으면서 좋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만나서 세상 모든 좋은 것을 배우라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내라는 것은 자신에게 투자하며서 자기 존재 성숙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고의 행복은 철학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가지 여정이 다 책을 읽든 현재 사람을 만나든 배우며 성장하는 여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행과 책 읽는 것은 같다고 합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새 해가 오면 마음에 걸단을 합니다. 새 희망을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해 돗이 구경도 갑니다. 달력이나 수첩에 목표를 적고 기도하거나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다짐만 하고 목표만 정하고 가만이 있다면 이런 것은 여행 계획표를 짜놓고는 이 일 저 일로 인해서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행은 구체적 실행입니다. 책도 단 한 페이지라도 읽는 것을 실행하는 것 입니다. 실행 해야만 달라지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동안 2년 3년 독서모임을 하면서 책을 읽어왔는데 무엇을 읽었는가 책마다 내용이 잘 생각납니까? 생각해보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일으면서 인내로 어기까지 온 시간들이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리 자신을 숙성 시키고 성장시켜 온 것입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 내용 중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기회 중심에 도달하려면 시간을 하나 하나 통과해야 한다. 지혜로운 기다림은 성공을 무르익게 하고, 비밀들을 성숙하게 한다. 신은 몽둥이가 아니라 시간으로 시간을 길들인다. 한꺼번에 엄청난 일을 이루는 것보다도 조금씩 천천히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어쩌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시간이란 이스트가 들어간 빵 이야기, 말씀을 듣고 책을 읽은 사람들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스트 들어가지 않은 빵은 부풀지 않고 그대로 있고, 한 페이지라도 읽거나 배우는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니체는 향상심 없는 사람, 계속 성장 발전이 없는 사람은 그냥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향상심이리는 단어를 놓치면 안 됩니다. 향상심이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고자 열정과 꿈꾸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흐지부지하는 인생을 제일 싫어했는데 자기. 인생에 온 힘을 쏟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 했고, 그런 향상심이 없이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 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만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사고의 신진 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율법이나 형식에 틀에 갇혀 새로운 배움과 변화의 신진대사가 없으면 낡은 가죽부대가 죽은 신앙이 됩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한다고....끊임없이 성장히고 확장되어가는 생명의 말씀을 담으려면 부대가 역시 신축성.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이 이 말씀대로 어떤 삶의 자세로 믿음의 길을 갔는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빌 3:8-11을 보겠습니다.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다음 빌립보서 3:13-14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분명한 목표입니다. 바울의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천국이란 목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더 구체화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잘 아는 것이다’. 왜 그는 이런 목표점을 잡았을까요? 그는 막연한 이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천국이란 높은 목표점이 있으면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하늘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또 무지한 열심히 얼마나 어리석으며 또 사람을 잡는가를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도 그는 율법에 열심 이었고, 하나님께도 열심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는 일마다 그리스도와 부딪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를 핍박하러 다니는 일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으로는 그가 예수님을 뒷 발질 했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스데반이 순교할 때 가편 투표를 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무지한 열심히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만 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몰랐습니다. 중세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의 횡포와 타락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음을 역사는 증거합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2-3백년 사이 마녀사냥으로 죽은 수가 10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종교가 그럴진데 공산주의 사상으로 빨갱이 좌빨로 몰아 죽인 사람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공사주의를 정말 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하나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위로부터 상을 받는 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6 : 6절 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생각의 함정’이라는 책을 쓴 저자 사오유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기 때문에 삶이 윤택해진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사람은 '언젠가는 하늘에서 기회가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느끼지도 못한 채 무기력해지고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명확한 목표는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야 우리의 삶도 더욱 아름다워진다』 하버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표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를 했습니다. 3% 목표가 명확하고 장기 목표를 가졌고, 10% 명확하고 단기적인 목표르 가지고 있었고, 60% 목표가 불분명했습니다. 27% 목표가 아에 없었습니다. 25년 후 이들을 다시 조사했습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3%는 25년간 한 방향으로 노력해서 대부분 엘리트로 성공을 했습니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단가기적인 사람은 10%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고, 사회의 중산층이 되었습니다. 60% 특별한 성과 없이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중 하위 층 이었습니다. 목표가 아에 없었던 27%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남과 사회를 원망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목표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역경에 부딪혀도 극복할 수 있고 끊임없이 달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는 삶의 실천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끝없이 성장하는 향상심 사도 바울이 신앙인을 떠나 철학적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그의 향상심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찌 보면 이미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을 이룬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 아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천국을 소유했고 그동안 사도로서 위대한 복음의 사명을 누구보다도 더 멋지게 이룬 사람입니다. 죽음을 경험하며 부활도 체험하였습니다. 율법적으로도 복음에 있어서도 그의 서신서들을 보면 완벽하다 할정도록 뛰어난 사람입니다. 신앙의 금자탑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을 보면 어떻습니까? 나는 얻었다 함도 아니요. 아직 얻은 것이 없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 이룬 것도 없다. 예수님게 잡힌 바 된 것을 좇아가는 진행 중이다. 아직 잡은 것이 없다. 뒤엣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로 향하여 위;에서의 부름의 상을 위해 아직도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늙는 것도 없고, 은퇴도 없습니다.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배우고 더 알려과 노력하는 향상심만 있습니다. 그점이 우리가 배울 점입니다. 저 높은 목표를 정하고도 끊임없이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 그리고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바울의 향상심! 위 모두 배웁시다. 저도 그렇고 우리가 2024년도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우선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의 신년 목표 , 더나아가 평생의 나의 목표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자세로 목표를 이룰 것인가? 여러분, 예수님dl 누구신지 잘 아십니까? 이 사람이 예수를 잘 아는가 모르는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쉽지 않지요. 그런데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안다면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살 겠습니까? 저도 더 배우고 알려고 노력하지만 초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정치의 현실을 보면서 정치인들의 수준에 대해서 얼떤 생각이 듭니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까?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까? 모릅니다. 모르니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 아는 것이 아니야 머르고 있어 아는체 한 것이야. 더 배워야겠어. 죽음이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더 알아야 겠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부터 시작해야겠구나 > 그렇게 되면 방법도 나오게 됩니다. 잔에는 한번 책을 읽으면 안다는 생각 때문에 두 번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아냐 아는 것이 아니야” 하니까 계속 읽고 또 읽고 읽을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배워갑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고 성장해 가는 느낌이 듭니다. 새벽마다 하는 큐티도 달라질 것입니다. 꾸준히 성실하게 형식으로 하지 않고 진정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함으로 받고, 자신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이 책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바분 생활속에서도 독서모임 참석과 스스로도 책을 일기를 사랑하며 독서에 더 매진햐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조금씩식이라도 시간을 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까요? 최광휴 선교사님 이 중에 베스트셀로 작가도 나올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 주영정공 매월 월요예배에 갔는데 김재중 집사님의 책으로 가득 찬 집무실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주정미 집사님 작가의 서재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보니 김재중 집사님 베스트 셀러 작가처럼 보였습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내 한 사람의 삶의 변화 되어 아내가 달라지고, 남편이 달라지고, 이웃의 한 형혼이라도 변화되는 역사가 있다면 이는 천지창조보다 더 큰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머슨의 말과 같이 우리는 모두 성공 자가 되는 것입니다. 2024년 바울의 향상심을 갖고 한 손에 성경 말씀을, 한 손에 인문고전 들고 배우고 성장하는 멋진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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