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로 절인 일과(日課)
/이 내 들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회원)
성한 것들만 제하고는
그 날로 흙으로 돌아갔다
쉰을 갓 넘긴 만년 공무원 형이
옆구리가 결린다고 병원 다녀오고서
췌장암으로 시종 감아쥔 긴장
두 손에 풀어놓고 가시듯
뿌리 흙도 채 털리지 못한 배추들이
산지(産地)에서 상자째 실려 와선
얼마간 겉을 싸고 시들었거나
병색 깊은 속들은 죄 뜯겨 나갔다
카르르 까르르릉! 째르 따르리릿!!
주어진 사정안에 더 많은 난도질 위해
날마다 녹 쓴 몸 벼려대는 불꽃들
조선칼 날 끝에 실린 비명이나
젖가락질 서툰 떡잎 이세들의
노오랗게 배앓이 한 꿈도 예삿일
땀 되어 흐르지 못한 소금은
눈물로도 비치지 말자 간 쳤지만
고추 마늘 생강에 젖국 따위가
매운 소스 되어 달겨붙은 맨얼굴에서
땀보다 눈물 먼저 후드득 듣는 아침
빨간 고무장갑 속에 면장갑 낄 땐
다칠세라 임자 반지도 빼놓고
숫기 없어 무르거나 짠 눈설미듯
두 겹 비닐 앞치마 허리 두른 남사당 나도
부딪쳐 금 간적 없는 엄한 독처럼
홀로되신 형수님 매운 맛 좀 닮았을까
탁탁탁! 따다닥 탁!!
일곱마디 속잎 썰린 부뚜막 온기
쌉쓰름한 열무 한입 베어 문 뒤끝인지
너털지기 웃음 터널 안부 다녀간 저녁은
도마소리 마음 건반이 사뭇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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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로 절인 일과/이내들
유림幼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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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
12.09.29 22:3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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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이군요.
더러는 즐겁고 더러는 아픈 사연들...
이 날엔 이처럼 시로 승화되었듯이
아픈 사연마저 강강수월래로 서로 보듬어
웃음만 있는 복된 한가위가 되었음 좋겠군요.
체험을 통해 얻은 삶의 깊이가 담긴 시, 잘 읽었습니다. 빈수레님 오랫만이에요,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오고 있어요. 매일 매일 행복하세요.
'내 넋두리가 남의 넋두리도 될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앞만 보며 달려가려고 합니다. 격려에 감사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