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보고 자배봉과 영천오름을 처음으로 오르다

[햇살아빠]

▲ 부끄러운 우리의 공중목욕탕 문화

오름을 갔다 온 후 목욕을 하는 즐거움을 일전에 한 번 쓴 일이 있다. 집에서 샤워로 끝내는 일도 간혹 있으나 공중목욕탕에 가서 따끈한 물에 몸을 담구는 것에는 비길 바가 못 된다. 몸을 담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오름에서의 즐거운 일을 회상하노라면 행복감이 저절로 나를 감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위가 갑자기 떠들썩해지며 행복감도 저만치 사라진다. 한 떼의 관광객이 목욕탕으로 들어오며 큰소리로 목욕탕이 좋다는 둥 서로 동료를 부르며 깔깔대니 삽시간에 탕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샤워도 안 한 채 탕 안으로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의 공중목욕탕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많다. 우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건이나 비누, 일회용칫솔, 면도기 등이다. 바로 옆에 휴지통이나 다 쓴 수건을 담는 그릇이 있건만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사람들이 열이면 아홉이다. 나도 이런 습관이 몸에 배어 수건을 함부로 두었다가 일본에 사는 손지에게 혼이 난 일이 있다.

2003년 겨울에 일본에 갔을 때이다. 오사카에 사는 딸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월드 스파’라는 규모가 상당히 큰 목욕탕에 간 일이 있다. 한꺼번에 수 백 명이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곳으로 세계의 유명한 목욕탕들을 재연해 놓은 곳이었다. 한국계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외손지가 할아버지를 안내해야 한다고 학교까지 조퇴하며 나와 같이 갔다.

한국에도 규모가 큰 목욕탕이 더러 있기에 그 규모보다 조용한 분위기에 놀랐다. 탕마다 그 나라의 특색을 살린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목욕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수건은 입장할 때 달랑 한 개를 지급 받았는데 걸을 때는 모두 앞을 가리고 탕 안에서는 머리에 쓰고 있었다. 천여 평이 넘는 목욕탕을 여기저기 들려 보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수건 하나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스위스식 온천인가 하는 곳에서 바위에 수건을 깔고 누웠다가 한국에서의 버릇대로 그냥 두고 나왔다. 마지막 나오기 직전 샤워하는 곳에서 나를 본 외손지가 “할아버지, 수건 어쨌어요?” 하고 의아한 눈으로 묻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응, 수건, 그게 왜.......?” 외손지가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 여기 그대로 계세요.” 하고 우리가 왔던 길을 되짚어 바삐 간다. 한참 만에 외손지가 내가 아무렇게나 놔둔 수건을 찾아 헐떡거리며 왔다. 나는 나갈 때 수건반납을 확인하나 살펴보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나가는 곳에 다 쓴 수건을 넣는 큰 통이 있을 뿐이다.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는 곳에서 나는 또 한번 놀랐다. 헤어드라이어가 50여개가 가지런히 걸린 실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다 쓴 기구는 꼭 제자리에 걸어두고 사용한 빗은 소독장에 넣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그동안 일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많이 순화되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공중목욕탕 문화에서 부끄러운 것은 이 뿐 만이 아니다. 침을 아무데서나 뱉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심지어는 가래까지 소리를 내며 뱉어 주위 사람들을 소름 돋게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전직 교육자로서의 우리들의 책임도 크다.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문화수준도 올라간다는 이론이 있기는 하나 언제쯤 우리의 공중목욕탕 문화도 일본을 따라가려나.

▲ 거대한 원형 굼부리를 가진 자배봉

2~3일 동안 비 날씨가 계속되더니 어제 오후부터 개었다. 꼴찌의 말처럼 눈치 있는 장마다. 장마철 들어서 목요일마다 갠 날씨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더욱 반가운 것은 꼴찌가 한 달반 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아직까지 형편이 개운하게 풀린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호전된 것으로 보여 조금 안심이 된다. 오늘의 산행을 위해 어제 밤에 서울에서 급거 귀가한 남산과 같이 녹음이 점점 짙어 가는 들길을 달려 모이는 장소인 경주마육성목장 입구에 닿았다. 관수네가 진시기네와 먼저 와 있었다. 조금 후 완산네와 산하네가 도착하여 자배봉에서 기다리는 앞장을 포함하여 모두 14명이 되었다.

이 지역을 잘 아는 관수를 앞장세워 자배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남조로를 따라 수망리 네거리에서 중산간도로로 접어들어 서귀포쪽으로 5km 정도를 달리니 길가에서 앞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자배봉은 중산간도로와 접해 있다. 주차장까지 만들고 산책로와 운동기구까지 갖춘 시민공원이었다.

오름 입구에서 준비운동을 마친 우리들은 곧이어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폐타이어 줄을 이용하여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걷기에 계단보다 편했다. 그러나 줄을 연결한 철사가 삭아서 끊어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얽힌 곳이 많아 정비가 필요한 곳이 많았다. 밤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울창하여 산책로 이외에는 사람이 들어 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안내판에는 야생란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양을 심었다고 하니 야생란이 자라는 데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비고가 111m의 오름이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고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라 어렵지 않게 등성이에 오를 수 있었다. 원형 굼부리를 따라 한 바퀴 빙 돌 수 있게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가 울창하여 굼부리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크기를 느낌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굼부리를 일부만이라도 볼 수 있는 곳은 옛날 봉수대가 있던 남쪽 봉우리이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쳐 가장 높은 북쪽 정상에 도착했으나 굼부리쪽은 나무로 막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한라산 쪽과 동남쪽은 훤히 트여 아름다운 동쪽 오름군들과 이색적인 한라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굼부리를 한 바퀴 도는 데 1km는 족히 될 것 같다. 안쪽의 나무를 조금 잘라 굼부리를 볼 수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봤다.

▲ 백량금 자생지인 영천오름에서

내친 김에 오름을 하나 더 오르기로 하고 5.16도로변에 있는 영천오름으로 향했다. 영천오름도 우리가 처음으로 오르는 오름이다. 아름다운 효돈천을 끼고돌아 잘 꾸며놓은 오름 입구에 닿았다. 영천오름은 서귀포시에서 한방파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많은 예산을 들여 산책로와 운동기구 등을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제법 가파른 계단으로 된 북쪽 사면을 따라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게 자란 곰솔과 편백 상수리 나무 등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인근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직접 쓴 나무이름 팻말을 달아 놓아 한결 정겨웠다. 그리 더운 날은 아니지만 계단을 오르느라 땀이 비오 듯하고 숨이 가쁘다. 나무 밑에는 자금우과 백량금이 지천으로 깔렸다. 여기가 백량금 자생지라고 한다. 백량금은 자금우과에 속하지만 자금우보다 키가 크다. 백량금은 키가 1m까지 자라며 열매도 많이 달린다. 가을에 빨갛게 익은 열매가 늦은 봄까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금우는 잎이 백량금과 비슷하나 키가 10~20cm로 더 자라지 않는다. 뿌리줄기로 뻗어나가 자꾸 새끼를 치며 자란다. 열매는 백량금과 비슷하지만 보통 한 두 개만 달린다.

어린이들이 쓴 나무이름 팻말을 보며 오르다 보니 정상에 닿았다. 시원하기는 하나 마을과 하천에 가까워서인지 풀모기가 많다. 꼴찌가 가지고 온 귀한 북한 술인 들쭉술로 “희수까지 good짝!!” 을 합창하니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 모두들 건강하여 희수까지 오름을 오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려올 때는 남쪽 등반로를 따라 내려왔다. 남쪽을 북쪽에 비하여 경사가 덜 급하여 편하다. 거의 다 내려오니 산책로가 오름을 휘감아 돌며 만들어져 있다. 장마철이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산책객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은 지난주에 갔던 보목리 해녀식당을 다시 찾기로 했다. 그 때 먹었던 자리물회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풍광 좋은 바닷가에서 맛있는 자리물회를 먹고 술까지 한잔 걸치니 일어나기가 싫다. 오늘 처음으로 오른 자배봉과 영천오름 또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좋은 오름이다.       2007. 7. 5.

[관수]

일상적으로 느껴보는목욕탕문화와 일본목욕탕 문화를비교 해봤군요 남을 배려 하는마음이 부족하다 보니 공중도덕 실천 면에서대단히 부족하다고 공감합니다. 과거에는 호구지책, 해결 최근엔 ,공부,공부만을 뒤쫓다 보니,가정 ,학교,사회에서 덮어져 소홀해 진것이 예절,자기 중심적인 태도등 인성 교육 이라고 생각. 일본과는 역사,정치적으로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으나 사회 ,문화,교육은 훨씬앞서 간다고 누구나인정. 그들을 배타만 할 것이 아니고 본받고, 배울점은 배워서 우리 문화를 한단계up grade 시켜야 한다고생각해봅 니다.한때나마 인성교육을담당 했던사람으로서 노추의 푸념 한마디....,.감사합니다.

[玩山]

공중도덕의 기본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 선진국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선진국민들은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도 남에게서 피해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여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주의의 큰 단점은 정이 모자라는 데 있다. 정감있는 개인주의는 없는 것일까? 공중도덕심의 결여는 초등교육에 몸담아 왔던 우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玩山]

오름 휴식년제를 실시하여 유명한 오름들의 등반을 막는다 해도 오를 오름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배봉과 영천오름을 올라보니 오를만한 오름이 적어도 150여개는 되지 않겠나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