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과(西瓜) : 수박(watermelon)
○ 기온(氣溫)이 올라가는 요즘 수박은 제철과 같다. 더운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시원한 “수박” 몇 조각이면 더위를 잊을 수 있을 만큼 대표적(代表的)인 여름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토착(土着)식물(植物)이 아닌, 아프리카(Africa) 원산지(原産地)라고 전(傳)해지는 이런 과일이, 우리나라 여름철의 대표적(代表的) 과일이 될 정도로 많이 재배(栽培)되어, 이제는 “국민과일”이 되었다.
(1) 한반도(韓半島)에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正確)한 것을 알 수 없으나,
허균(許筠)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26권 설부(說部) 5 도문대작(屠門大嚼) 편을 보면 : 《수박[西瓜] : 고려(高麗)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 개성(開城)에다 심었다.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 충주(忠州)에서 나는 것이 상품인데 모양이 동과(冬瓜 동아)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이다.(西瓜.前朝洪茶丘始種于開城.考其年則殆先於洪皓之歸江南也.忠州爲上.形如冬瓜者爲佳.而原州次之.)》라고 하였는데,
홍다구(洪茶丘, 1244년 ~ 1291년)는 : 《고려 말기의 원종, 충렬왕(忠烈王) 때의 부원분자(附元分子)로 원(元)나라의 장수이다. 원(元)에 귀화하여 고려를 공격하는데 가담하였으며, 1274년 10월의 1차 일본정벌, 1277년 2차 일본 정벌에 참여하였다.》고 하는 인물(人物)이란 점을 생각하면 :
송막기문(松漠紀聞)【서과(西瓜)에 대한 기록(記錄)을 남기고 있다.】의 홍호(洪皓)는 : 서력(西曆) 1,088-1,155년의 인물(人物)이며, 그가 금(金)의 유배(流配)로부터 풀려나 돌아온 것이 1,143년이라고 하니, 홍다구(洪茶丘)는, 홍호(洪皓)보다 일백(一百)년 뒤(後)의 인물(人物)이다.
(2) 신오대사(新五代史) 호교(胡嶠) 함로기(陷虜記) :
《글란(契丹) 회동10년 (947년), 그는 선무군절도사 소한의 장서기로 글란(契丹)에 들어간다. 소한은 모반으로 고발되어 피살당하고, 호교(胡嶠)도 연루되어 글란(契丹)에 7년간 억류된다. 후주 광순3년(953년)에 비로소 석방되어 중원으로 돌아온다. 함로기(陷虜記)는 그가 거란에 7년간 붙잡혀 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것이다. "평천에 들어가니 초목(草木)이 많고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글란(契丹)이 회흘(回紇)을 무너뜨리고 이 씨를 얻었다고 한다. 소똥을 덮은 시렁(棚)에 심는다. 크기는 중국 동과(冬瓜)와 같고, 맛이 달다.》라고 서과(西瓜)에 대한 이야기만 전해주고 있다. 이는 곧
호교(胡嶠) 함북기(陷北記) : 契丹國志 25 胡嶠陷北記 :《明日東行,地勢漸高,西望平地松林,鬱然數十里. : 명일(明日) 동(東)쪽으로 가는데, 지세(地勢)는 점점 높아지고, 서(西)쪽으로 평지송림(平地松林)이 바라보이는데, 무성한 것이 수십(數十)리이다. 遂入平川,多草木,始食西瓜,云契丹破回紇得此種,以牛糞覆棚而種,大如中國冬瓜而味甘.中略 : 마침내 평천(平川)에 들어오니, 초목(草木)이 많고, 처음으로 서과(西瓜)를 먹었는데, 전하는 바로 글란(契丹)이 회흘(回紇)을 깨뜨리고 이 종자(種子)를 얻어, 종자(種子)를 소똥을 덮은 시렁(棚)에 심었는데, 크기는 중국 동과(冬瓜)와 같은 것이, 맛이 달다. 중략(中略). 福州,翰所治也.嶠等東行,過一山名十三山,云此西南去幽州二千里. : 복주(福州)는 한(翰)이 다스렸다. 호교(胡嶠)일행은 동(東)쪽으로 가면서, 십삼산(十三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山)을 지났는데, 이곳으로부터 서남(西南)쪽으로 유주(幽州)가 2천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송막기문(松漠紀聞) : 서과(西瓜) : 홍호(洪皓 : 建炎三年(1,129)∼紹興十三年(1,143)(洪皓羈留金境凡十五年)이다. 그가 유배(流配)에서 풀려나 송(宋)으로 귀환(歸還)할 때, 서과(西瓜 : 수박)씨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때가 서력(西曆) 1,143년인데, 〈내가 가지고 돌아와서 지금 금포(禁圃, 황실 채마밭)와 향유(鄕囿, 일반마을 밭)에 모두 있다.〉고 하였다.
《西瓜形如匾蒲而圓,色極青翠,經歲則變黃.其瓞類甜瓜,味甘脆,中有汁,尤冷. : 수박(西瓜)의 모양은 부들과 같이 납작하고 둥근데, 색깔은 진한 녹청(청취:靑翠)이며, 날이 지나면 누렇게 변한다. 그 북치(질:瓞)는 첨과(甛瓜)의 종류인데, 맛이 달고 연하며(취:脆), 가운데엔 즙(汁)이 있어, 더욱 시원하다.》
(3) 조선왕조(朝鮮王朝)세종실록(世宗實錄) : 서과(西瓜) : 5년(1423년) 10월 8일 : 주방을 맡은 환자 한문직을 귀양 보내다 :《환자 한문직(韓文直)이 주방(酒房)을 맡고 있더니, 수박[西瓜]을 도둑질해 쓴 까닭에, 곤장 1백 대를 치고, 영해로 유배(流配)보내었다. (宦者韓文直典酒房,盜用西瓜,決杖一百,配寧海.)》
…수박(西瓜) 1개를 도둑질했다고 곤장 일백(一百)대를 치고, 유배(流配)를 보낼 정도였다면, 이때까지만 해도 수박(서西瓜)은, 특별(特別)한 아주 귀(貴)한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말하는 대로 :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말하는 대로, 홍다구(洪茶丘)가 씨를 들여와 개성(開城 : 都城)에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이후(以後), 120년 뒤의 세종(世宗) 5년(1,423년) 때라면 시중(市中)에 널리 재배(栽培)되었지 않았을까 의문(疑問)이다.
◆ 왜냐하면 당시(當時)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는, 제주(濟州)의 귤(橘)나무까지도 내지(內地)의 경상도(慶尙道)와 전라도(全羅道) 땅에 옮겨 심어 대대적(大大的)인 생산(生産)을 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事情)을 감안(勘案)해 본다면, 개성(開城)에서 시작된 수박(西瓜)재배(栽培)는 120년이 흐르는 동안, 왕실(王室)의 전용농장(專用農場) 또는 백성(百姓)들이 재배(栽培)하여 왕실(王室)에 공납(貢納)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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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許筠)【1,569년∼1,618년】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를 보다가, 허균(許筠)에 대한 총평(總評)에서, 역사통설(歷史通說)은 말하기를 :「조선(朝鮮)시대 반역(反逆)과 이단(異端)의 상징(象徵)」이라고 하였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도 제주(濟州)에서는 다양한 귤(橘)들이 생산(生産)되었으며, 특산(特産)이라고 하였다.
이런 제주(濟州)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영토(領土)가 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균(許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26권 (참고)
…금귤(金橘) : 제주(濟州)에서 나는데, 맛이 시다.
…감귤(甘橘) : 제주에서 나는데, 금귤보다는 조금 크고 달다.
…청귤(靑橘) : 제주에서 나는데, 껍질이 푸르고 달다.
…유감(柚柑) : 제주에서 나는데, 감자(柑子 귤의 일종)보다는 작지만 매우 달다.
…감자(柑子) : 제주에서 난다.
…유자(柚子) : 제주와 경상도 전라도 남쪽 해변에서 난다.
…감류(甘榴) : 영암(靈巖)과 함평(咸平)에서 나는 것이 제일 좋고, 그밖에는 그만 못하다.
◆ 이런 귤(橘)이 특산품(特産品)으로 생산(生産)되는 제주(濟州)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내지(內地)였다는 사실(事實)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사학계(史學系)는 이런 현실(現實)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특산품(特産品)이라면, 자연환경(自然環境)과 밀접(密接)한 관계(關係)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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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수박【출처 : 블로그 : 즐거운 나의 집】
② 수박【출처 : 다음백과 : 약이 되는 열대과일 | 저자 박종철 | 푸른행복】
③ 수박【출처 : 블로그 : 따뜻한 오후, 커피한잔】
○ 수박 :【출처 / 다음백과】 : 수박 : 서과(西瓜)·수과(水瓜)·서과피(西瓜皮)·시과(時瓜)·취의(翠衣)·한과(寒瓜) : watermelon
덩굴은 기면서 자라고 덩굴손이 갈라지며 잎이 깊게 갈라진다. 꽃은 연한 노란색으로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핀다. 덩굴마다 달리는 열매의 수는 2~15개인데, 열매는 구형이나 긴 타원형이고 껍질은 푸른색·녹색·노란색·흰색 등의 바탕에 그물무늬, 줄무늬, 노란색 반점 등이 나타난다. 달고 즙이 많은 과육은 붉은색·흰색·노란색이며, 무게는 1~2㎏에서 20㎏ 이상 되는 것까지 다양하다. 씨는 달걀 모양이고 흑갈색이며 500개 정도 들어 있다.
“아프리카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수박은 호온성 작물로 고온에서 잘 자란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잎과 줄기만 무성해지고 낙화가 많아지며, 열매는 비대해지고 품질이 나빠진다. 모래땅·사양토에서 잘 자라는데, 통기성이 좋고 배수가 잘 되는 곳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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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 【출처 : 우리주변식물생태도감】
동의어 : 서과(西瓜)·수과(水瓜)·서과피(西瓜皮)·시과(時瓜)·취의(翠衣)·한과(寒瓜) / 다른 표기 언어 : watermelon
1년생 초본의 덩굴식물로 종자로 번식한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재배식물로 전국적으로 심는다. 원줄기는 지상으로 벋으면서 가지가 갈라지고 전체에 백색 털이 있으며 마디에 덩굴손이 있다. 어긋나는 잎은 길이 10~20cm 정도의 난형으로 우상으로 깊게 갈라진다. 5~6월에 피는 황색의 꽃은 자웅이화이다. 장과의 모양, 크기, 과육색 등은 품종에 따라 다르고 종자는 난형으로 흑갈색이다. 주로 식용으로 재배하며 공업용으로도 이용한다. [Daum 백과 수박 : 우리주변식물생태도감, 강병화, 한국학술정보/인용(引用).끝.]
○ 서과(西瓜)란 서(西)쪽에서 유래(由來)했다는 말이고, 원산지(原産地)는 아프리카(Africa)라고 한다. 이곳으로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를 거쳐, 중원대륙(中原大陸)으로 들어왔을 것임이 틀림없는데, 거란(契丹)이 회흘(回紇)을 정복(征服)하고, 그곳에서 씨앗을 얻어 재배(栽培)한 것이 시초(始初)라고 이야기한다.
과연(果然) 이러한 설명(說明)이 맞는 것일까? 서력(西曆) 953년【오대(五代)때의 호교(胡嶠) 함북기(陷北記)】이라면 : 고려(高麗) 세 번째 왕(王)인 “정종(正宗) 왕요(王堯)” 때의 일이다.
2017년 06월 19일 〈글쓴이 :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