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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남 부여 계향산 미암사(戒香山 米岩寺)를 찾아서 ②
- 쌀바위와 그밖의 이모저모 -
맛있는 공양을 든 다음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마시고 싶은 생각이 나서 보살님께 마셔도 되냐고 여쭈니 마셔도 되는 좋은 물이라고 일러 주셔서 물을 마셔 보니 참으로 뱃속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이 절은 물이 풍부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량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쌀바위로 향했습니다.
와불 옆의 달마비 모습
와불과 쌀바위 사이에 세워진 달마상(達磨像) 대작비(大作碑)
달마상 대작비(達磨像 大作碑)에 대한 안내문이 있어 전문을 옮겨 봅니다.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 셋째 왕자로써 대승불교의 승려이고, 520년경 중국 남경 금능 에서 양무제를 만났다. 그때 달마의 나이는 130세였다. 양무제는 달마대사께 묻기를 "나는 절을 많이 세우고 경을 간행하여 배포했는데 그 공덕은 얼마나 되겠소?" 하고 묻자 달마는 "무공덕이요." 라고 대답하고 갈대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서 숭산 (嵩山 少林寺)에 가서 9년간 면벽좌선으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한 것이다'고 깨닫 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에게 전수했다.
이로써 달마는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되었고, 중국 보리유지 스님과 광통율사의 질투로 독살 당한 뒤 중국사신으로부터 서천국에서 달마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 관속 을 열어 보니 짚신 한 짝만 남겨 놓고 서천국으로 돌아간 달마상을 미암사에 세운 것은 선(禪)과 교(敎)의 전법 도량을 상징한 것이다.
화강석의 육각갑(六角甲) 무늬가 새겨진 귀부(龜趺. 龍趺 : 높이 81cm, 너비 150cm, 길이 210cm) 위에 비신(碑身 ; 높이 210cm, 두께 45cm, 너비 75cm)을 세우고, 비신 위의 이수(螭首 ; 높이 72cm, 너비 99cm, 두께 63cm)는 쌍용으로 씌웠다.
비신(碑身)의 전면은 달마가 갈대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 건너서 숭산(소림사)으로 향하 는 탁본을 석만청(釋萬淸) 대종사께서 불기 2545년 중국 소림선사에 방문 당시 무승 (武僧) 총교두(總敎頭) 석연로(釋延魯)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아 비에 새긴 것이다.」
달마일위도강(達磨一葦渡江)
비신(碑身)의 후면에는 달마비문 연혁(達磨碑文 沿革)이 국한문(國漢文) 혼용체로 새겨 져 있는데 그 내용을 토를 달아 전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달마비문연혁(達磨碑文沿革)
「달마(達磨)는 중국(中國)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승려(僧侶)로 중국선종(中國禪宗) 의 초조(初祖)이다.
범어(梵語)로 그의 이름은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음역(音譯)하는데 달 마(達磨)는 그 약칭(略稱)이다.
남인도(南印度)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승려(僧侶)가 되 었고 반야다라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통(法統)을 이은 뒤 벵골만을 떠나 중국에 도착 한 것이 520년(五二○年) 경 양무제(梁武帝) 때로 그때 나이 130세(一三○歲)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양(梁)나라를 떠나 갈대줄기를 꺾어 타고 양자강(揚子江)을 건너서 북위(北魏) 낙양(洛陽)의 숭산(嵩山)에서 구년간(九年間)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사람의 마음은 본래(本來) 청정(淸淨)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弟子) 혜가(慧可)에게 전수(傳授)했다.
불기(佛紀) 2545년(二五四五年. 2001) 9월(九月) 10일(十日) 중국(中國) 숭산(嵩山) 선림 선사무승(禪林禪寺武僧) 총교두(總敎頭) 석연로(釋延魯 스님의 초청(招請)으로 대각종 (大覺宗) 종정(宗正) 석만청(釋萬淸) 대종사(大宗師)께서 소림선사(少林禪寺)에 방문(訪 問) 당시(當時) 대명천계(大明天啓) 갑자년(甲子年) 여름 관중(關中) 사람 양건연(梁建延) 작품인 달마상(達磨象) 비문(碑文)을 증정(贈呈)받아 불기(佛紀) 2547년(二五四七年. 2003) 중추(仲秋) 미암사(米岩寺)에 세웠다.」
쌀바위 바로 옆의 폭포와 연못
달마비 옆은 바로 쌀바위입니다.
쌀바위 모습
신비한 전설이 얽힌 쌀바위[米岩]
부여 저동리(扶餘 苧洞里) 쌀바위 -도문화재 제371호-
「미암사에 있는 높이 30m의 거대한 자연석 바위로 일명 음경석ㆍ촛대바위ㆍ부처바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계의 교훈을 주는 쌀바위 전설이 남아 있다.
옛날 노파가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위해 이 절에 찾아와 식음을 잊고 불공을 드리던 중 관세음보살이 현몽하여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어 바 위에 심으면 하루에 세 끼의 쌀이 나올 것이니 아침과 점심, 저녁을 지을 때 쌀을 가져다 지으라 하였다.
꿈에서 깨어보니 바위에서 쌀이 나오고 손자도 얻어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욕심 많은 노 파가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 팠더니 쌀은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 주변이 핏빛으로 물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전설은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바위에 일심(一心)이란 글자가 신비합니다.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할 때는 일심(一心)으로 하라고 경계하는 글씨로 보여집니다. 일심으로 하면 성과(成果)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 일심은 욕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붙으면 그 효과는 달아나고 맙니다.
바위에 一心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바로 그 밑의 구멍이 쌀이 나오던 구멍이라 합니다. 노파가 처음엔 일심으로 기도를 하여 소원을 성취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그지 없어서 욕심을 내게 되었지요. 그러나 욕심을 부린 순간 그 복이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고, 농서(隴西)를 얻으면 촉(蜀) 땅이 욕심나는 법입니다. 양 아흔아홉 마리를 가진 사람은 한 마리 겨우 가진 사람의 양을 노리는 법이지요. 황금이 수미산처럼 많아도 인간의 욕심은 만족을 모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족함을 아는 자가 가장 큰 부자이니라[知足最富]." 라 하셨습니다.
氣를 받는 사람들. 쌀바위에서 나오는 기가 건강에 참 좋다고 합니다.
쌀바위[米岩]의 영험(靈驗)과 효능(效能)
「쌀바위[米岩]에서는 원적외선(遠赤外線)이 방사(放射)되어 각종(各種) 질병(疾病)의 원인(原因)이 되는 세균(細菌)을 없애며, 노화방지(老化防止), 신진대사촉진(新陳代謝促 進), 성인병예방(成人病豫防), 중금속제거(重金屬除去), 숙면(熟眠), 탈취(脫臭), 곰팡이 번식방지(繁殖防止) 등 모세혈관(毛細血管)을 확장(擴張)시켜 혈액순환(血液循環)과 세 포조직(細胞組織)의 생성에 도움이 되므로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백팔배(百八拜)를 행한 다음 바위를 끌어안고 심호흡하면서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건강(健康)에도 좋고 악업(惡業)이 소멸(消滅)되며 신비한 영험으로 소원성취(所願成就)를 할 수 있다.」
-안내판에서 옮김-
산신각 앞의 삼층석탑
삼층석탑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 탑이 어떻게 조성되었는 지는 모르나 원래 자리는 아닌 듯 싶고 훼손된 석탑의 부재를 모아 세운 것으로 보입니 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지난 7년 전에 왔을 때는 관음전이었는데 산신각으로 바뀌었네요. 쌀바위에 관세음보 살님의 영험설화가 서려 있어 관음전은 주요 전각이었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가 의아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산신에게 집을 내주고 어디로 가셨을까? ㅎㅎㅎ
아마도 사세의 확장으로 관음전이 신축되고 있지 않을까? 지금 미암사는 주차장 주변 일대에 대작불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 쪽에 관음전이 건립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쪽에는 가 보지 않아서 확실한 건 알 수 없습니다.
산신각에 들어 삼배례를 올립니다.
산신각에 들어 예를 올리고 보니 안에는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과 독성 나반존자 (獨聖 那畔尊者), 산신(山神)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 이라고 하는데 이 전각을 왜 산신각(山神閣)이라 했을까?
문패는 그 집 주인의 이름입니다. 편액을 산신각이라 했으니 이 전각의 주인은 산신(山 神)입니다. 그래서 그랬는가? 불단의 중앙에 산신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산신을 중앙으로 모시고 그 좌우에 독성과 치성광여래를 모셨으니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미암사에선 산신(山神)을 우선시하여 왼쪽에 독성(獨聖), 오른쪽에 치성광여래 (熾盛光如來)를 칠성(七星)으로 생각하여 이런 웃기는 배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듭니다.
말하자면 산신이 좌우보처로 독성과 여래를 두고 있는 격이니 이런 하극상이 어디 있을 까 싶습니다. 이 경우 좌는 우보다 우선되는 것인데 부처님이 서열상 제일 하위를 차지 하고 있는 셈입니다. ㅠㅠ
처음엔 불단을 중심으로 삼성의 배치를 참 이상하게 오른쪽부터 일렬로 배치했다고 생 각했는데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한 배치요 부당한 배치로 보여집니다.
금륜(金輪)을 들고 계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는 칠성(七星. 北斗七星)을 뜻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거느린 금륜보계(金輪寶界)의 주존불로 북극성(北極星)을 뜻하는 여래입니다. 치성광여래는 일 광변조 소재보살(日光遍照 消災菩薩)과 월광변조 식재보살(月光遍照 息災菩薩)을 보처로 하여 칠원성군(七元星君)과 삼태육성(三台六星) 28수(宿) 등 많은 성군을 거느리고 인간 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에 모셔진 산신(山神)
산신이 중앙에 모셔진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산신 옆의 홍의동자는 산신을 보필하는 동자인데 그 옆의 백의의 신령스러운 분은 산신의 권속인 삼계도사(三界道士)가 아닌 가 합니다.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와 포대화상(布袋和尙)
나반존자와 포대화상에 대해서는 순례기에서 많이 거론되어 잘 아실 것입니다. 독성 옆에 포대화상을 모신 것은 처음 봅니다.
나반존자는 16나한(十六羅漢)의 한 분인 빈도로존자(賓頭盧尊者)로 여겨지는 분입니다. 즉 아라한(阿羅漢)이죠. 포대화상은 중국에서 18나한(十八羅漢)의 한 분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란히 모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포대화상(布袋和尙)으로 보이는 분의 모습입니다.
대좌(臺座. 받침대)에 초재진보(招財進寶)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포대화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초재진보(招財進寶)란 재물(財物)을 부르고 보화(寶貨)가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니 이는 곧 재운(財運)을 부른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중국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글 로 중국요리 식당에 가면 종종종 보게 됩니다.
왼손에 은화(銀貨)인지 금화(金貨)인지를 들고 오른손에 돈꾸러미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인간의 탐욕을 보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느 낌이라서 씁쓸하게 보입니다.
이런 모습의 포대화상을 모신 것은 신도들이 이곳에서 포대화상에게 기도하여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모셨을 것입니다만 너무 세속적이지 않습니까? 쌀바위의 경계는 잊었 단 말인가요?
부처님께서는 재가자에 대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도 모으라고 하셨지만 늘 탐욕을 경계하시여 "욕심을 떠나라." "재물을 오물(汚物)로 볼 줄도 알라." 하시지 않았는가?
원래 포대화상은 중국 후량(後梁)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라 했는데 몸집이 뚱뚱 하고 늘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물건을 보시 받아 넣어 두었다가 그것이 필요한 어린이 나 간난한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 주고 늘 사람들로 하여금 덕을 쌓도록 인도하신 분이 지 재물을 불러들여 인간의 재욕을 충족시켜 주시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당시에 그를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 불렀으며 후세 사람들이 그의 덕을 추앙하여 '시복불(施福佛), 인덕불(引德佛),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로 모셨던 것입니다.
이런 분을 중국사람들은 인간의 욕심을 더하여 초재진보미륵불(招財進寶彌勒佛)이라 하여 재물을 불러들이는 분으로 둔갑시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복을 비는 것도 인간 의 일이라 하지만 그 덕행을 본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혐오심을 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굳이 포대화상을 모시고자 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닌 덕을 베푸는 모습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
산신각 옆에서 한담을 나누시는 모습
산신각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제 이곳을 두루 살폈으니 내려갈 차례입니다. 묘법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보이지 않 으니 내려가신 모양입니다.
부처님 열반상인 와불의 발채 아래 축대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약수를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약수터는 곧 용왕전입니다.
용왕님께 합장배례하고 용왕님이 지켜 보는 가운데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마셨습니다. 쩌르르 오장육부가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맑은 물이 철철 흐르는 미암사는 물이 풍부해 서 참 좋습니다.
甘露淸茶 감로청다 청정하고 시원한 감로청정수 普益衆生 보익중생 널리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네.
이 감로청다 마시는 이 기갈을 면하시고 이 청정수를 마시는 이 윤회고를 벗어나소서. _()_
부처님께 하직인사 올립니다. 불광보조(佛光普照)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상으로 미암사의 순례는 끝났습니다. 머물렀다 갈 때는 늘 아쉽습니다. 지금 미암사는 큰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모할지 다음에 오면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어느 곳에 머물다 오면 잊은 것이 없는지 잘 살펴서 마무리를 아름답게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오후 1시 56분 경 마지막 순례지인 부여 만수산 무량사로 향하고자 백우거에 올랐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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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_()_ _(())_
....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_()_ _(())_
미암사 순례와 쌀바위 유래 잘 봤습니다. _()_
감사합니다. _()_ _(())_
저희같은 무지한 사람들은 산신각 배치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백우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_()_
상식을 벗어나면 어리둥절하게 되지요. 세속적 욕망이 가득해 보이는 저 포대화상을 교체했으면 하네요.감을 주게 됩니다.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_()_ _(())_
아마도 저 포대화상은 세속적 재물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조잡하게 만든 것으로 보여 바라보면 쓴웃음이...
이런 모습이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겉모양만 보고 오면 관광이 되고 내용을 알고 오면 순례가 되지요.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