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벌: 이도심
완성: 한지훈
반갑습니다.
수요마음공부방 초청 강좌 이슬람 문화의 이해로 특강을 이맘님과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보산님- 혹시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가보신 분? 아마 한국에서 이렇게 이슬람 문화를 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 이맘 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이맘님을 모시고 강좌를 듣는 건 교단 내에서 처음일 것입니다. 간단한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이맘님은 한국 사람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멘즈대에서 수학하셨습니다.
현재 한국이슬람교에서 이맘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예배, 종무, 업무를 이행하시는 최고 지도자가 이맘입니다. 원래는 외국인들이 많으신데, 오직 한국인으로서 이슬람 이맘직을 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소타원 원불교 신성해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맘님께 언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이맘님
<이슬람 문화의 이해>
다른 종교 단체에 와서 이슬람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감사드립니다.
사실 한국에서 우리가 종교 간의 대화의 이름으로 가끔씩 다른 이웃종교와 함께 만나서 대화를 하는 데 가장 친근감 있게 대화를 하는 종교는 원불교입니다. 자연스레 대화와 이해를 해주시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공감대가 많이 형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슬람 전반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주제를 선정해봤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함께 재미있는 유익한 시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슬람 하면은 무슬림, 이슬람 얘기를 하며 오해를 합니다. 우선 이슬람은 종교를 말합니다.
이슬람이란 뜻에는 단어에는 아랍어입니다. 평화 복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 현세의 삶에서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 말씀에 복종을 하고 가르침을 코란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내세에서 천국에 임하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복종 하나님의 말을 듣고 귀의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착각하는데, 무슬림은 이슬람 종교를 따르고 복종하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이라는 것은 종교이름으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슬람을 아랍에 국한되어있다고 생각하지만, 세계 속 남태평양 작은 곳에도 분포 되어있습니다. 쭉 발전해온 종교이긴 하지만, 이슬람이 전 세계 어디를 가던 사회를 초월해서 다닐 수 있어요. 현재는 거의 18억의 이슬람 인구가 있습니다. 거의 4사람 중에 1사람은 무슬림입니다. 전 세계 약 58개국에 분포되어있는데,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터키 같은 경우 99퍼센트의 인구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 중국 또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국을 아시는데 사실은 중국에도 가보면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이 특별하게 한정되어 있습니다. 서북부에 가면 이슬람 자치위원회가 있어요. 이슬람을 2500만 명 4500만 명이라 하지만, 중앙 아시아로 보면 90년대 초반에 소련이라는 나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작은 중소 공화국들로 만들어지고 많이 불리는데 소련이 14개의 공화국인데 그 중에 ~스탄이라고 불리어지는 나라는 이슬람을 국교로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체체니스탄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국가에도 많이 분포 되어있어요.
유럽에 이슬람교의 인구는 한국 보다 훨씬 많습니다.
한국의 이슬람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과거에는 자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해상로나, 육로로 통해서 이슬람과 접촉을 했던 흔적들이 많았습니다. 초형가에 나오는 얼굴을 보면 이슬람 사람입니다.
한국에도 사실 역사적 문헌을 보면 아랍과의 교류를 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시대를 보면 이슬람이 뿌리내린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과 교류적인 차원을 넘지 못했어요. 지금 부산에 가면 UN 묘지가 있는데, 한국에 도와주러 왔던 사람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 중 터키 사람들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들어왔는데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기 때문에 선방에는 싸웠지만 후반에는 종교 활동도 했었습니다. 한국 1세대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요, 이 때 이슬람에 입교한 사람들이 있고, 그 분들이 한국의 이슬람 1세대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50-60년대 발전하지 못했지만 60년대 말 70년대 중동, 석유파동으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석유를 들여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가 이슬람이 부각되던 시기입니다. 70년대 들어와서 서울 중앙서원에 60-70 중동 외교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중앙에 땅을 지불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정부도 아랍 국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서원이 만들어졌고요. 일종의 센세이션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76년도 5월21일에 서울 중앙서원을 건설하고 한국에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났습니다. 서울 중앙서원이 생기고 부산, 전주, 경기도 광주, 안양에도 생기고 단기간에 50년이라는 시간에 무슬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네요. 중동국의 흡수가 있었고 오일달러라는 말이 생기고 이슬람 문화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많이 컸습니다. 80-90년대 되기 전에 이슬람이 한국 사회에 소개가 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90년대 접어들며 한국경제가 성장하며 사람들의 부유함에 인해서 종교를 멀리 했습니다. 다행히 한국사회에 이슬람은 또 다른 기회가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에 우리 교단이 의도적으로 선교를 하지 않았음에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생적으로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연스레 들어왔던 거죠. 많았을 때는 15만 명이 공단들을 중심으로 해서 외국인 근로자 분들(무슬림 만) 약 15만 명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속히 만 명 천명이면, 이슬람 서원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10만 명이 넘어가니 포화상태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슬람 사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역사성이었던 거죠. 2000년대를 맞이하며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나 씩 생겨났습니다다. 공단을 중심으로 생겨났고, 서원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아마 2000년대 초반에 9.11 테러를 통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라크 침공을 했던 걸 기억 하실 겁니다. 또, 2007년도에는 샘물교회 사건 등 벌어졌었죠. 어쩌면 이러한 대형 사건사고로 인해 이슬람이 많이 위축되고 현재도 그러합니다. IS 로 인해 이슬람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에서는 테러나 파괴 등 안 좋은 종교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샘물교회 사건을 얘기하자면, 샘물교회 신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인질로 잡혔었죠. 당시만 해도 사원들에 협박전화도 오는 등 여러 모로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가 완화 되었고, 시간이 지나며 이슬람을 오히려 옹호하는 추세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이냐, 9.11 테러 사건 이후 서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마비상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던 것이죠. 저희도 그 기회를 잘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아주 대표적으로 이를테면, 이왕이면 이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드리자, 해서 이슬람 바로 알기 등 역사 세계사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초빙해서 중요한 내용을 알려드렸습니다.
오해와 편견이 아니라는 것을 반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지나오면서 현재 적혀있는 것처럼 내, 외국인들이 13만 5천명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서원은 15개가 있고 예비로 예배서가 만들어져 있으며 대충 100개 정도가 있습니다.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는 임시 사원들이 생겨났습니다. 광주, 안양, 서울 등 다른 지역에도 이슬람 성원이 있고, 보시는 것처럼 금요일에 합동 예배때는 1200명정도 있다.
오해받는 종교 이슬람과 비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적으로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을 때, 알라신을 믿는 종교라고 이름 붙이는 등, 사실 역사 왜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교육당국에서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특정 교과서에는 있지만, 국정교과서는 수정이 되었더군요.
흔히들 알라라고 합니다. 회교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쓰입니다. 정확한 종교의 이름은 알라교도 아닌 ‘이슬람교’입니다.
이슬람 역사를 쭉 보시면, 이슬람 역사 속에서 이슬람은 칼에 의해서 살인과 강요로 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라비아 반도 1400년 전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 페이지에 보시면 유대교, 기독교가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슬람도 아라비아 반도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으시오, 라고 했을 때, 다신행위 유일신을 믿는 행위 다신행위를 믿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다양한 종교에 사람들이 있는데, 물이 있으면 살지만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물을 찾아다녔었죠. 가축과 함께 이주합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나오는 오아시스가 충분하면 같이 살고 없으면 몇 명만 살았습니다. 근데, 열 사람 양의 물이 있어서 열 명만 살 수 있는데, 이주해온 사람이 스무 명이면 서로 죽이고 싸운 생존의 아라비아 생활이 그 당시에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 있으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약탈경제에 의해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경제 상황에서 이슬람이 들어오는데, 그 당시에는 당연한 정서였던 것이죠. 이때 무하마드께서 메카에서 첫 계시를 610년에 받았다. 이슬람을 전파했는데, 메카에서는 개종이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하게 되십니다.
사실 쫓겨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메카에서 야밤에 산 속에 숨었다가 밤에 도망을 갔었죠. 야반도주와 같았습니다. 13년 동안 메카에서 교화했지만 실패해서 메디나에서 2차 선교를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총 메카에서 13년 메디나에서 10년, 23년 짧은 역사 속에서 이슬람이 아라비아반도에 교화가 되었고, 중국, 유럽에도 전파가 되었습니다.
왜 이슬람교가 그렇게 급속도로 퍼질 수 있었느냐, 이슬람에서는 혁명적인 제안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혁명적인 제안이 호소력이 있게 다가갔습니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기면서 유대인, 기독교인, 다신행위 하는 사람,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해온 예언자들 일단, 다문화적 다종교를 융합할 수 있는 특단의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이슬람이 제안했던 것은 신앙이 있던, 없던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신은 유일하다, 하나님은 한 몸이시다. 이것을 따르면 형제고 아니면 다른 것을 제안했습니다. 인도세를 내라고 했습니다. 점령 당했으니까 점령세금을 내라고 했고, 아니면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라비아 반도를 상상해보십시오. 아비신이라는 기독교 지역 북쪽으로는 비잔틴 문화가 있었다. 사실 이슬람이 제안했던 세금의 양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했습니다.
이성적이고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던 것이죠. 단시간에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를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한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은 사실상 이슬람교 경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도 그렇듯이 이슬람교는 절대로 폭력이나 살인을 허용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종교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여러분들 모두 신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 강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평화나 포용이 없이는 우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렇기에 이 말은 이슬람적이지 않은 말임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랍사람들이 믿는 종교라고 믿지만, 아라비아 반도는 대부분 사막입니다. 그렇기에 인구적으로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하나님을 믿는 방법을 시작했지만, 이슬람의 중점적인 시작이 아라비아이지 않았습니다. 메카에서 13년 메디나 10년 우마이와 왕족에는 수도가 옮겨지며, 바그다도 옮겨져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7세기 이상 이스탄불이 이슬람이 오스만 터키 제국이었습니다. 그 쪽이 이슬람의 중심으로 보여 지지만, 인구적으로 활동적으로 보다 다른 지역으로 더 많이 있어요. 바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이다. 유럽 쪽에는 이슬람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민들로 인해서 그렇죠. 이슬람은 아랍인들에게 국한된 종교가 아닙니다. 현재 17~18억의 인구가 믿고 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무슬림을 볼 수 있습니다.
테러의 종교?
그러면은 우리가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가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사실 여기 보시면, 예배 희사 성지순례가 있는데 보시면 일반적으로 믿습니다! 하시면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5번씩 예배를 드려야 한다. 1년에 한번 씩은 해가 떠있는 시간동안 단식을 해야 하고 잉여 재산이 있으면 희사를 해야 하고. 성지를 일순간 찾아서 자기 자신이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재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5가지의 의무들이 이것을 실천했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한 이슬람이라면 이러한 5가지의 기둥을 꼭 지켜야 구원과 구원받지 못함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신앙선언(아슈하두 아라라 일라하 일랄라)
아슈하두 – 다짐한다, 정언한다 하나님 이외에는 믿음의 대상이 없는 것이다.
무함마단- 하나님의 전달자 입교하는 절차도 아주 쉽다. 무슬림이 되면 5번째를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슬람입니다. 예배는 두 번째 기둥인데요,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한다. 7시 이전에 예배를 해야 합니다. 5시 30-7시에 해야 합니다. 정오 예배 해가 오심에 걸려 있어서 그림자가 가장 작아지는 시간, 그림자가 생겨날 때 예배를 드리는 정오예배, 중간시간, 저녁예배 해가 지고 나서, 자기 전에 하는 예배 이러한 예배들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세 번 반성을 해서 그릇되지 않게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동양에서는 그러하다. 하지만, 이슬람은 하루 5번 자기 자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합동예배 근행모습
금요일 날 1시에 합동예배를 한다. 다른 예배들도 있다. 그리고 단식은 우리가 금식과 단식이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받는다? 금식은 물을 마시고 곡기를 끊지만, 단식은 해가 떠있는 낮 시간에 새벽예배 직전까지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거죠. 해가지는 직후에 또 먹을 수 있다. 낮 시간 동안 단식을 하면서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그들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단식을 함으로 인해 3가지를 깨끗이 정화합니다.
1. 정신적인 정화 – 지속적인 자기 자신 정화
2. 육체적인 정화 – 건강한 사람만이 단식이 가능합니다. 자기 건강을 점검하는 시간이죠.
3. 물질적 정화 - 내가 가지고 있는 잉여재산을 배고픔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환원해서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위함입니다. 중요하고 숭고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이슬람에서 단식은 절대 가난한 자도 없고 절대 부자인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이슬람 경제관입니다. 단식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단식월이 되면, 부자 집 앞에 100명 정도 줄 서 있어요. 음식과 돈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슬람의 문화입니다.
희사(Zakat) - 이슬람에서는 절대적입니다. 일 년을 가지고 자기가 잉여재산이 있는 가, 없는 가 평가합니다. 저축권이 없으면, 희사 규정도 없어집니다. 자신이 일 년을 열심히 살았을 때, 즉 저축금이 있을 때 그 순수 저축금의 2.5프로를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여기서 보시는 것처럼 이웃이 굶는 것을 알면서 편안히 잠자는 사람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라고 꾸란은 말합니다.
성지순례는.. 과거에 성지순례 과정에서 메카에서 큰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은 계속 찾는다. 규정에 있기에, 자기가 조건이 될 때 건강, 경제적인 두 가지 조건이 될 때 무슬림은 일 평생 중에 한 번은 메카를 찾아 자신의 임무를 다 해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하며 스스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하며 어머니로 태어났을 때처럼 깨끗이 태어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죠. 성지순례가 끝났을 때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진은 하람 성원입니다. 성지순례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경제수준이 높아져서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금, 토요일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성지순례 때에는 300만 명의 사람들이 메카(대전정도 크기)에 모여서 성지순례를 하며 나갑니다. 이러한 의식들이 5가지의 기능들이 내가 원한다고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매일 같이, 매달, 일 년에 한번, 일평생의 한번 해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신앙심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며 얇아졌다가도 다시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지속적인 신앙심을 줄 수 있습니다. 신실하고 신앙심 있는 무슬림들은 생활에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이슬람의 여섯 가지 믿음
1.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2. 천사들에 대한 믿음 3. 성서들에 대한 믿음 4.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 5. 최후의 심판 일에 대한 믿음 6. 정명에 대한 믿음
여기보시는 것처럼 아까 말씀드린 다섯 가지들이 무슬림이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여기 나와 있는 여섯 가지 믿음이라는 것은 이러한 실천하기 이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GOD 하나님, 신성을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안 해도 됩니다. 꾸란에 보시면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알라’ 라고 합니다. 그 분의 속성을 표현해서 칼리크 랍 주님 우리 인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분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는 것은 신성을 적립할 수 있습니다. 꾸란에서는 ‘말하라 그 분은 한 분이시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 분은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죠. 음식을 먹지 않아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어떤 것이든 다 있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입니다. 낳지도 낳아지지도 않으신 분이죠.
천사들에 대한 믿음. 여러분은 천사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있고, 사실 정확한 숫자가 없습니다.
꾸란 내용
‘천국은 너희 어머니 발 아래 있는 나라’ (하디스)
‘너희들 중 가장 훌륭한 자는 아내에게 잘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보시면 하느님은 모세에게는 구약을, 다윗에게는 시편을, 예수에게는 신약을, 무함마드에게는 꾸란을 보내주셨습니다. 왜 보내주셨을까요? 왜 우리가 올바른 길을 살기 위해서 보내주신 것이다. 바른길을 인도하기 위해 보내주신 것입니다. 꾸란에 든 25명의 예언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몇 명이냐?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서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예언자들 이외에도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도 있죠. 누구나에게 언젠가 꼭 오는 그날에는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기위해 섭니다.
정명에 대한 믿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그렇고 주어진 삶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다 말씀을 드렸는데요, 지금 부터는 전반적인 궁금한 것 들이 있으면 답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들은 손들고 얘기해주세요.
질문
유일신을 얘기를 하시는데요, 기도, 기독교나 카톨릭에서 유일신을 말하는 그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나를 믿어라, 하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나’가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죠. 그 이후에 그 상황에 맞게끔 민족에 맞게끔, 시대에 맞게끔 수없이 많은 예언자와 사도를 보냈다고 이슬람은 믿고 있습니다. 사도 중에 아담 이후에 예수, 무함마드도 있고, 모세, 아브라함 많은 사람들을 보내 예언자들을 보내 유일신 하나님을 믿어라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꾸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경배받기 위해 하나님을 보내셨다.
이슬람에서는 유대교, 모세의 율법을 따라는 종교입니다. 그 이후에 말하는 예수교라고 표현하는데, 기독교 같은 경우에 구약과 신약을 기초로 해서 믿고 있는 사람이죠.
쭉 내려오면서 유대인들은 마지막으로 무함마드가 예언 받았고 그것이 꾸란입니다. 이슬람에서 믿는 하나님이나, 유대교,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지 않아요. 그렇지만 비교해보자면, 소위 말하는 이슬람 이전 그리고 기독교 이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2016년 이전에 예수교에 의해서 율법을 받아 그 이후에 믿음의 폭이 넓어져서 610년이 지나고 나서 무함마드에 의해 예언을 받았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차이점이 있긴 있습니다. 이슬람의 믿음의 근간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고, 세 종교 다 그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왜 다르나? 유대교에서는 사건을 인정하지 않아요. 성모마리아도 부정한 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선면사상에 대해 기독교는 부정합니다. 흑인이던 백인이던 가난한 자 부자인 자 순수한 자는 구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죠. 그러한 부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슬람과의 차이는? 이슬람과 유대교가 다른 것은 선면사상과 만민평등 주의가 있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열심히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벌 받는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는, 무함마드의 사도승을 부인하는 기독교에서는 꾸란과 이슬람교를 이단이라고 칭합니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기독교 개념과 다르지만.
이슬람을 사실 보면, 갓 태어난 사람들과 다름 없습니다. 핏덩이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그러한 것들을 부정합니다. 이슬람은 하나님 앞에 순수하지만 살아가며 죄를 짓기에 이러한 것들을 지우기 위해, 예배, 단식, 희사, 성지순례 등을 해서 뉘우칩니다. 이슬람은 회개의 종교입니다.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신성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미한 믿음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박희정
수니파와 시아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같은 무슬림이더라도 별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같은 신앙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것이 다른 점인가요?
- 순니는 언어적으로 말하면, 순말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직역을 하면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을 추종하는 사람들, 이라는 뜻입니다. 꾸란을 가장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죠.
시아파는 가지라고 말합니다.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초기에 예언자 무함마드가 6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63세를 임기로 ‘내가 죽으면 누구누구에게 자리를 넘긴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무슬림들에게 내 뒤를 가장 성실하게 이어줄 사람을 투표해라, 라는 기회를 남기고 가신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치적 이념으로 순니, 시아파가 나뉘게 된 거죠. 예언자 무함마드를 이을 사람을 아부바크르가 가장 정당한 사람이다, 라고 90 프로, 계승받는 것을 찬성합니다. 그랬는데, 0.01 프로의 무리가 ‘아니다’ 무함마드를 이을 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동생, 사위인 ‘알리’ 가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다.
이슬람 법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뒤를 이을 사람은 사촌, 사위에게 가는 것은 없습니다.
저희는 사촌 지간에 결혼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사촌은 남이에요. 남을 숭배할 수는 없다 라는 교리입니다.
메디나에 살던 주민들 이슬람 공동체의 사람들이 아부바크르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을 이맘이라 하는데, 무함마드가 이맘이었다. 생전에는 그가 인도하지 못했을 때 대신 인도한 사람은 아부바크르 였습니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부바크르에게 충성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아에서는 사촌 알리에게 숭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법적으로는 옳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칼리파 시대가 열렸습니다. 충성서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고요. 카르바 라는 곳으로 이전했고 거기서 시아가 번식하고 융화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처음에는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색채가 짙어졌습니다.
정치적인 이념, 오늘 날 같은 경우 아주 큰 것만 말씀드릴게요.
종교적인 이념까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순니에서는 성직자 제도가 없습니다.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맘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가 있지만요. 반대로 시아에서는 이맘이라는 것 지위가 격상됩니다. 어마어마하게 격상되어요. 거의 신처럼 대접 받습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의 호가 있습니다. 아얏홀라 호메니 .
아얏 꾸란의 한구절 툴라 아얏 툴라라는 말은 ‘최고 지도자가 한 말은 하나님의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정치적인 이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아와 순니가 대치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슬람 역사에서는 둘이 대치되어 싸운 적은 없었습니다.
순니의 인구가 93%이고, 나머지는 시아파 이지만 사실 그들 전부 다 시아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일부가 심각하게 빗나가는 이단이 있죠. 이란이라는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보여질 수 있지만, 예배 보는 모습도 비슷하며 이슬람이라는 이름도 같이 갑니다.
종교적으로 어떻게 또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가 말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도드라지게 싸우지 않았다.
한지훈
이슬람 교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종교를 걸으셨는지 궁금 합니다.
->1984년도에 대학교 3학년 이었는데 어떤 빌딩을 보고 (중앙성원) 외국인들도 많고, 영어를 조금 했는데 대체 이 종교가 무엇인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분은 영어를 잘 못하셔서 영어로 서로 소통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작은 소책자를 서너 권 주셨습니다. 지나가는 길이니깐 버리지 못하고 집에 와서 읽었는데, 새로운 지식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들을 시원하게 해석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것들이 계기가 되었고 2-3번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메디나 장학생 선발을 하는 곳에 명시를 했는데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그쪽 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84년 말이었고, 한국에서의 공부는 접고 메디나로 가서 아랍어를 전공하였습니다. 당시 이슬람 경전, 해설서, 교리책자들을 아랍어로 읽을 수 있었을 때 상당히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슬람 신학대학에 진학하고 전공했습니다. 1994년에 10년간 그 사이에 갈등도 있었지만 10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한국이슬람 중앙회에 의무감을 가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조현화
한국의 이슬람이 무슬림인데, 한국인들을 어떻게 선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선교라는 말을 ‘할랄’ 이라는 단어로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만큼 선교를 안 하는 종교도 없을 겁니다. 이슬람은 선교와 다르게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5가지 조항을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지극히 모범적인 사람들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을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지극히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굳이 선교한다고 하지 않아도. 나는 곧 이슬람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타 종교의 사람들 보다 정돈된 삶이다. 새벽에 예배, 단식 등 의도적인 5가지의 규칙들로 인해 주변인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에 선교를 합니다. 어떤 신문지에 한국에 유학생들이 다 선교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슬람 전파 역사를 말하자면, 프랑스가 근대산업의 지배자였습니다. 그랬을 때 이슬람 국가들도 지배하였습니다. 가장 쉽게 지배할 수 있었던 나라는 모로코, 알제리 등으로, 자연스럽게 프랑스화 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3D 직종을 하지 않고 이주민들을 이용하여 도맡아 하게 했습니다.
이주민 정책에 실패를 했습니다. 종교를 못하게 강력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프랑스 인들이 봤을 때 이주민들은 순하고 착해서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였습니다. 그것이 10년만 하고 돌려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2세 3세가 생기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죠. 프랑스 여고에서 생긴 일은 여자들이 20명중 3명이 히잡을 쓴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종교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히잡을 반대했었죠. 결국은 이러한 부분들이 이러한 볼 수 있는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몇 세대 지나면서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선교 정책 보다는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을 봤을 때, 상당히 모범적인 사람들입니다. 술도 안 마십니다. 한 잔씩들 일반적으로 하지만, 유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삶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범적으로 살아가기에 그들을 보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단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모범적이고 착한 삶을 살기에 선교의 기본이 되지 않았다 싶습니다.
차명섭
저는 전공이 식품공학이다 보니, 오늘 연구실 동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동기가 할랄 식품이 아니면 먹기가 곤란할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할랄 식품을 인정했지만, 한국에서 할랄식품이 수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견해가 궁금합니다.
->사실 우리 정부는 할랄에 대해서 잘 몰라요. 우리 교단에서는 94년도에 들어왔을 때 먹거리가 있어야 하니까, 사람들에게 먹거리 제공해야 하는데 94년도 때부터 우리교단은 허용했습니다. 우리 삶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살아 왔지만, 정부에서는 최근에 많이 벌렸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슬람이 몰려온다, 등등 데모운동을 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이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4년 전에는 마포 일부 지역에서는 운동을 했었습니다. 그 때도 이슬람 통과 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익산에 할랄식품을 허용하게 하려 했거든요.
우리 정부에서는 할랄 단지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식품단지를 만들려고 하였던 겁니다.
우리가 수출하고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대학에서는 할랄식품을 검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류 상태입니다. 연구했던 교수님들이 이맘님께 자문을 했는데, 할라단지가 만들어지면 이주를 할 것인가? 공자로 한다면 가지만, 투자를 하면 안 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익산 쪽에는 몇 십만명이 이슬람 촌이 들어온다는 말이 나왔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현 주소를 보고 말하면 좋습니다. 이슬람의 할랄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고 이해한 후 한국의 음식이나 대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인해 경쟁력이 있는가? 연구를 해야 합니다.
무조건 이슬람 국가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러한 부분들을 무슬림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계발해야 합니다.
요즘 농심이 그 마케팅을 참 잘합니다. 신라면이 말레이시아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할랄이라는 단어가 써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매출이 급상승 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면 이슬람 문화에 좋을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더 많이 성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도원
한손에 꾸란 한 손에 칼 이라는 말을 듣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슬람을 폭력적인 나라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태국, 중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슬람 사람들은 무서워, 무서운 나라다, 라고 말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슬람 사람들은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은연중에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실은 반문을 하고 싶은 부분이다. 여기 오늘 히잡을 쓴 자매 두 분이 계시는데, 상당히 폭력적으로 보이시나요? 아닐 것 같아요. 우리가 왜곡이라는 문화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메스컴, 언론에 의해 관점이 달라집니다. 비교를 해야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도 강점기를 걸쳤다. 그랬을 때 유관순열사 등 주체의식을 찾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일컬어 한국에서는 열사, 의사라고 표현을 합니다.
근데,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은 열사, 의사라고 표현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합니다.
이슬람 국가를 포함해서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유학생활을 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스라엘이 넘어와서 ‘우리땅!’ 그냥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마한 강대국을 등에 업고 등장했었죠. 팔레스타인들은 화염병을 들고 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로켓을 들고 싸웠고요. 하지만 정당방위라고 하죠.
화염병을 강하게 만들어 던져 이스라엘 사람이 죽으면 그건 반면에 엄청난 테러리스트라고 표현됩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편협하게 바라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이라크를 대대적으로 침략했었죠.
대량살상 무기를 제거 하겠다, 하며 이러한 명분으로 이라크를 들어갔습니다. 어느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침략하고 싶어서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한 것입니다.
첫댓글 빠르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앞으로 더욱 더 신속하고 만족스러운 도자부가 되겠습니다☆ 도자부는 댓글을 먹고 자란답니다☆
예쁜 지훈교우님! 감사합니다~^^
도심교우님 지훈교우님 감사합니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