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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1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3) 受苦惱救護
마. 譬喩로 重明함
上講禮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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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 龍樹菩薩略纂偈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利天 夜摩天王兜率天
化樂天王他化天 大梵天王光音天 遍淨天王廣果天
大自在王不可說 普賢文殊大菩薩 法慧功德金剛幢
金剛藏及金剛慧 光焰幢及修彌幢 大德聲聞舍利子
及與比丘海覺等 優婆塞長優婆夷 善財童子童男女
其數無量不可說 善財童子善知識 文殊舍利最第一
德雲海雲善住僧 彌伽解脫與海幢 休舍毘目瞿沙仙
勝熱婆羅慈行女 善見自在主童子 具足優婆明智士
法寶?長與普眼 無厭足王大光王 不動優婆遍行外
優婆羅華長者人 婆施羅船無上勝 師子嚬伸婆修密
?瑟?羅居士人 觀自在尊與正趣 大天安住主地神
婆珊婆演主夜神 普德淨光主夜神 喜目觀察衆生神
普救衆生妙德神 寂靜音海主夜神 守護一切主夜神
開敷樹華主夜神 大願精進力救護 妙德圓滿瞿婆女
摩耶夫人天主光 遍友童子衆藝覺 賢勝堅固解脫長
妙月長者無勝軍 最寂靜婆羅聞者 德生童子有德女
彌勒菩薩文殊等 普賢菩薩微塵衆 於此法會雲集來
常隨毘盧遮那佛 於蓮華藏世界海 造化莊嚴大法輪
十方虛空諸世界 亦復如是常說法 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世主妙嚴如來相 普賢三昧世界成
華藏世界盧舍那 如來名號四聖諦 光明覺品問明品
淨行賢首須彌頂 須彌頂上偈讚品 菩薩十住梵行品
發心功德明法品 佛昇夜摩天宮品 夜摩天宮偈讚品
十行品與無盡藏 佛昇兜率天宮品 兜率天宮偈讚品
十廻向及十地品 十定十通十忍品 阿僧祗品與壽量
菩薩住處佛不思 如來十身相海品 如來隨好功德品
普賢行及如來出 離世間品入法界 是爲十萬偈頌經
三十九品圓滿敎 諷誦此經信受持 初發心時便正覺
安坐如是國土海 是名毘盧遮那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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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湘祖師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意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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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본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제 26권이 이렇게 손에 들어왔습니다. 간단하게 점안의식을 거행하고 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서문을 천천히 마음 담아서 크게 한 번 읽는 것으로 점안의식을 대신하겠습니다.
서 문
불교란 오로지 보시이며, 보시가 곧 불교입니다.
달리 말하면 무엇이나 마음을 다해서 베풀고 나누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는 베풀고 나누는 이 일 한 가지뿐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불교라면 베풀고 나누
는 일 외에 달리 무슨 일이 더 있겠습니까?
먼저 법을, 진리를, 진리의 가르침[法]을 베풀고 나누는 일입니다. 다음은 재산[財]이나 물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리하지 말고 형편에 따라 베풀고 나누는 일입니
다. 다음은 외롭고 두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
어주고 편안함[無畏]을 베푸는 일입니다.
잡보장경에서는 無財七施(무재칠시)라 하여 돈을 들이지 않고도 베풀고 나누어 무량대복을 지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부드럽고 자비로운 눈빛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대하는
것은 慈眼施(자안시)입니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和顔施(화안시)입니다.
아름답고 공손한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言辭施(언사시)입니다.
몸소 행동으로 사람을 돕는 것은 捨身施(사신시)입니
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心慮施(심려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床座施(상좌시)
입니다.
잠깐이라도 잠자리나 거처 등을 마련해주는 것은
房舍施(방사시)입니다. 이 일곱 가지 보시만으로도 세상
은 얼마나 밝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이 모든 보시거리는 실은 사람ㆍ사람이 본래로 마음속
에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본래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시하는 것은 곧 회향이 됩니다. 그리고 그 보시를 보다
높은 뜻으로 회향하여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온 우주를
흠뻑 적시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가르침인 진정
한 불교입니다.
80권이나 되는 화엄경과 나아가서 8만4천 대장경은 이 보시하여 회향하는 것이 진정한 사람의 길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오직 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
니다.
布施一法(보시일법)이 總攝諸行(총섭제행)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이 한 가지 일이 모든 수행을 다 포섭하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훌륭한 수행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려면 숨을 쉬듯이, 또
음식을 먹고 배설하듯이, 지식을 배우고 가르치듯이
일체를 보시하여 회향합시다.
2015년 4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여기 10회향 품이 상당히 깁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면 善根廻向! 좋은 일을 회향하다.
내가 좋은 일을 가지고 있고, 또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더
확대하고 넓혀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 배려하는 것.
←이것이 불법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화엄경의 10회향 품입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 중에 가장, 다른 스님들,
화엄경이야기 이외에 다른 스님들이나 다른 불교를 가장 많이 이야기한 분이 있지요? 자제공덕회 증엄스님의 구호활동! 천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대동하고 어느 곳이든지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뛰어가서 재난을 구호하고,
제일 늦게 그 자리에서 나오는 그런 단체. 어떤 고준한 선 법문을 거론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런 어려운 사람ㆍ불쌍한 사람ㆍ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일.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그것이 곧 진짜불교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러한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자고 하는 그런 일에 불과한 것이다.’근래에 더욱, 저도 禪에 관한 그런 어록들을 몇 가지를 강의도하고, 또 해설해서 책도 내고, 또 선방에도 10여년 이상 다니고 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것이 다 밑거름이 되어서 그러는지는 모르는데, ‘불교가 바로 세상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데 참 뜻이 있다.’ ←이렇게, 세월이 가니까 결론이 지어집니다.
그런 일에 세상이 감동하고, 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
이지, 달리 어떤 고준한 선 법문도,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소리, 아는 듯 말 듯 그렇게 해봐야 아무 감동 없습니
다.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첫째 보탬이 안 됩니다.
세상 사람에게 아무 보탬이 안 돼요. 보탬이 안 되는 일을...
그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聖人의 가르침이다.’
라고 ‘이렇게 해도 과연 되는가?’그런 생각을 하고,
저는 말도 겁 없이, 거침없이 합니다.
특히 이 10회향 품을 우리가 이렇게 보면서,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부분도 10회향 품을 시작했습니다.
10회향 품을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내용들을 공부하다 보니까 더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화엄경 본 강의는
138쪽입니다.
부처님 오신 달입니다.
제가 여기 법공양사무실에 이번 달을 위해서 특별히 책을 많이 준비해놨습니다. 여러분 들고 갈수 있는데 까지 들고 가서, 주변에 가면서 오면서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여러분의 각자 사찰에 신도님들에게 뭔가 좀 법을 나누는 그런 마음을 좀 쓰시라고 그렇게 준비해놨으니까 잘 가져가셔서 그런 법 보시를 많이 잘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하고, 간혹
개인적으로 와서 인사하는 분들에게는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절에까지 들고 가서해야 할 일을 스님이 대신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
니다. 사실이고요. 저는 늘 그런 마음으로 삽니다.
잘 아시듯이 대만에서 우리가 화엄경 공부 하는 것을 알고
그 먼데서 돈을 많이 들여가면서 그 무거운 책을 직접 들고 와서 한질씩 법공양을 이렇게 올렸지 않습니까?
그것 보면 무슨 달리 다른 변명이 필요 하겠습니까?
그래서 염화실지에도 그 분들이 다녀간 행적을 쭉~~ 아직까지 계속 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실을 것인
데요. 그런 감동적인 일들이 우리에게 제일 큰 교훈을 주
고, 사람을 만들게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다른 말로 사람 변화 안 시킵니다. 그런 감동적인 실천행이 비로소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만듭니다. 사람을 만들
어요. 성취시킨다고 그러지요. 성취ㆍ교화ㆍ성숙ㆍ제도.
그러고 보니까 그런 낱말들이 전부 다 같은 의미지요.
사람을 사람 되게 한다. 성취 시킨다. 성숙시킨다.
교화ㆍ제도 다 같은 뜻으로... 그래서 그런 일을 우리가 말로는 너무나도 잘하는데, ‘실지적으로 그런 것을 몸소 그렇게 실천 행으로 나가기까지는 보통 변화가 있지 않고는,
어렵지 않나?’ 그런 것을 늘 생각합니다.
마. 譬喩로 重明함
何以故오 譬如日天子가 不但爲一事故로
出現世間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不但爲一衆生故로 修諸善根하야
廻向阿?多羅三?三菩提라
普爲救護一切衆生故로 而修善根하야
廻向阿?多羅三?三菩提하며
↑75강 - 1
↓75강 - 2
如是不但爲淨一佛刹故며 不但爲信一佛故며
不但爲見一佛故며 不但爲了一法故로 起大智願하야
廻向阿?多羅三?三菩提라
爲普淨一切佛刹故며 普信一切諸佛故며
普承事供養一切諸佛故며 普解一切佛法故로
發起大願하야 修諸善根하야
廻向阿?多羅三?三菩提니라
譬喩로 重明(비유중명)함.
비유로써 거듭 밝힌다. 했는데요.
이것이 무슨 내용인가 하니, 고통ㆍ고뇌를 받는 것으로써 중생들을 구호하는 내용입니다. 代衆生苦.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받는다. 그런 의미가 많이 있지요.
그것이 여기 10회향 중에 첫 회향에 나옵니다. 그것을 또 한 가지 예를 비유로 이렇게 들었는데요.
何以故오? 무슨 까닭인가?
譬如日天子(비여일천자)가,
비유하자면 日天子가, 일천자는 태양입니다.
不但爲一事故(부단위일사고)로, 다만 한 일 때문에
出現世間(출현세간)인달하야,
세간에 출현한 것이 아니듯이, 그렇지요. 태양이 뒤뜰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위해서 태양이 저렇게 따뜻한 햇빛을 쪼여주는 것이 아니라고요.
태양이 뜨면 온 지구상에 있는 만물이 전부 혜택을 받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전부 혜택을 다 받습니다.
곡식들은요? 태양 빛이 아니면 영양소가 거기서 생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비타민D도 햇빛 안 보면 안 생긴다잖아요.
비타민D는 햇빛을 쏘임으로서만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어느 것 하나 태양의 은혜를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듯이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不但爲一衆生故(부단위일중생고)로
修諸善根(수제선근)하야,
한 중생만을 위해서 여러 가지 선근을 닦아서
廻向阿?多羅三?三菩提(회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다. 말입니다.
보살이 어찌 한 중생만을 위해서 했겠습니까?
우리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無上正覺을 이룬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무상정각을 이루고 나면, 거기에 따르는 혜택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요.
석가모니부처님 보십시오. 석가모니불 한 분이 그렇게
正覺을 이룸으로 해서 지금 2600여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에,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혜택을 입고, 사람답
게, 비로소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普爲救護一切衆生故(보위구호일체중생고)로,
널리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까닭으로
而修善根하야, 선근을 닦아서
廻向阿?多羅三?三菩提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그랬습니다.
최상의 깨달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6권 서문에도 여러 가지 보시를 소개를 하긴 했는데요. 그 보시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면, 無上正覺을 이루게 하기까지, 거기 까지가 보시의 어떤 목적입니다. 물론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 주면, 그래
서 그 사람 배를 채워주면 사실은 일단 작은 목적은 달성
했습니다.
일차 작은 목적은 달성했는데, 사실은 그러려고 밥 한 그릇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복을 제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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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2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3) 受苦惱救護
마. 譬喩로 重明함
(4) 廻向하는 心
(5) 廻向하는 願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복을 제일 많이...
그렇다고 누구에게 밥 한 그릇 보시한 적은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복을 지었는가?”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그런 법보시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물질도 많이 따라오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지요.
“4월 초파일 돼봐라. 전국 사찰마다 부처님 앞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부처님이 무슨 복을 지어서 그러냐?
법보시하는 복을 지어서 그렇다.”그것은 우리가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해인사ㆍ통도사ㆍ불국사ㆍ저 모든 훌륭한 사찰들이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 됐다. 말입니다.
그것 어느 누구도 함부로 못합니다. 왜냐? 부처님 재산이기 때문에요.
부처님은 어찌하여 그런 부자가 됐느냐?
그런 까닭을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요? 우리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법에 대한 그런 존중심ㆍ법에 대한 어떤 가치관이 확실하게 서 있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 하나로 우리는 불법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普爲救護一切衆生故로
널리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까닭으로 선근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如是, 이와 같이
不但爲淨一佛刹故(부단위정일불찰고)며,
다만 한 佛刹을 청정하게 하지 않으며,
不但爲信一佛故며, 한 부처님을 믿기 위한 것도 아니며,
淨一佛刹. ←이것이, 불교는 우리가 왜 공부하는가?
왜 수행하는가? 간단하게 표현하면 딱 두 마디입니다.
그야말로 上求菩堤 下化衆生인데요. 우리 개인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나아가서 그 인격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아름답게, 향기롭게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것. 그겁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스님이라고 늘 말하는
대만의 성엄스님은 법문하실 때, 꼭 그 두 마디를 좌우에다 걸어놓고 합니다. 그 스님들 법문하는 그림을 보면, 각자
어떤 신념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한 쪽에는
裁成人格(재성인격) 그래 놨어요.
자기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 그 다음에
淨佛國土(정불국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
이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드는 것.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 법회를 하노라. 그것을 딱 써 붙여놓고 합니다.
그런 글 한줄 써 붙여놓은 것을 볼 때마다,
‘아, 그 스님의 정신이 무엇이구나!’하는 것, 그리고 또
‘불교를 어떻게 정리했구나!’하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한 불찰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한 부처님을 믿기 위한 것도 아니고,
不但爲見一佛故며,
다만 한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不但爲了一法故(부단위료일법고)로,
다만 一法을 알기 위해서, 한 가지 이치를 알기 위한고로,
起大智願(기대지원)하야, 대 지혜와 원력을 일으켜서
廻向阿?多羅三?三菩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다.
不자가 여기 저기 있어서 정확하게 갖다 새기려면 지금 새긴 것하고 똑같습니다. 아니다.
爲普淨一切佛刹故(위보정일체불찰고)며,
一切佛刹 = 온 세계를 널리 다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普信一切諸佛故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다 믿기 위한 까닭이며,
普承事供養一切諸佛故(보승사공양일체제불고)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널리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기 위한 까닭이며,
普解一切佛法故로 發起大願(기대지원)하야
일체 모든 불법을 널리 이해하기 위한 까닭으로 큰 서원을 일으켜서 修諸善根하야, 모든 선근을 닦고, 그래서 그것으로써 廻向阿?多羅三?三菩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제가 늘 이야기하지요? “우리가 시내에 가서 급식활동 하는 일들이 많은데 참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국수 한 그릇 밥 한 그릇에도 불법을 담아서 줘라.” 기독교인은 어디 가서, 저 아프리카나 못사는 나라에 가서 구호활동 할 때, 교회부터 지어놓고 그 교회에 나오도록 부터 시키고,
찬송가부터 부르도록 해놓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구호활동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은 실컷 나눠주고 부처님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와 버려요. 보면 그것 참 신기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늘, 저는 그런 일을 못해서 크게 주장할 바는 못 되지만, “국수 한 그릇을 급식활동을 하고, 밥 한 그릇을 하더라도 거기에 불법 하나라도 담아서 줘라.”그래서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누가 묻더라고요.
“나는 처음에 일지경이라고해서 한 페이지, A4용지 한 장에다가 부처님 말씀 인과 법문 하나라도 써서 그렇게 가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나눠줬다. 밥 한 그릇 줄 때도, 급식활동 할 때도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하면 그것 버리는 사람도 있고, 코 닦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휴지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10000장을 가져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건진다.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읽고 감동한다.
그러면 10000장 찍은 보람이 있다.” 말입니다.
저는 늘 그 주의입니다.
그물 쳐놔서 그 그물에 모든 그물눈 마다 전부 새가 다 걸리면 그 새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감당 못합니다.
수 천 개의 눈을 가진 그물을 쳐놨는데, 거기에 새 한 두 마리 그냥 걸리는 겁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래요. 그렇습니
다. 그래서 우리불자들도 어디 가서, 저기 아프리카나 어디 동남아에 가서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은 좋은데, 불법을 전
하고 오진 않아요. 그냥 좋은 일만하고 옵니다.
가만히 보니까 우물만 파주고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지어 주고요. 어떡하든 좋은 일이지요.
그것까지도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보시행이고,
훌륭한 보살행이고 훌륭한 불법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부처님은
궁극에 가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불자가 하는 모든 보시행의 절정에 있다니까요.
그것을 우리는 하든 못하든 알고는 있어야 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4) 廻向하는 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佛法으로 而爲所緣하야
起廣大心과 不退轉心하야 無量劫中에
修習希有難得心寶하야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이니
菩薩이 如是觀諸善根하야 信心淸淨하며
大悲堅固하야 以甚深心과 歡喜心과 淸淨心과
最勝心과 柔軟心과 慈悲心과 憐愍心과 攝護心과
利益心과 安樂心으로 普爲衆生하야 眞實廻向하고
非但口言이니라
廻向하는 心. 회향하는 마음.
열 가지 마음을 여기서 소개합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佛法으로, 모든 불법으로써
而爲所緣(이위소연)하야, 인연할 바를 삼아서,
그렇잖아요. 모든 부처님 법으로써 인연할 바를 삼아요.
그래서 起廣大心(기광대심)과, 광대한 마음과,
不退轉心(불퇴전심)하야, 퇴전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서,
無量劫中(무량겁중)에, 한량없는 겁 가운데,
修習希有難得心寶(수습희유난득심보)하야,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마음의 보배를 수습한다. ←이것이 뭐겠습니까? 영원히 변치 않는 참마음 자리입니다.
진여불성 자리입니다. 참 생명ㆍ진여생명 참 나 자리입니다. 남방불교 공부한 사람들은 또 “그 無我인데, 무슨 그런 참 나를 말하느냐?”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런 사람들 몫이고요.
선불교ㆍ대승불교에서는 참 나 빼버리면 무너집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이야기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차별 없는 참사람이라고도 하고, 眞心이라고도 하고, 참 나라고도 하고요. 常樂我淨할 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합니까? 참 나 아니고는 설명 못하는 겁니다.
그것이 希有難得心寶입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일거수일투족에 그 마음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 그와 같이 모든 부분에 다 쓰고 있는 것이지만, 정작 그것은 우리 손에 안 잡힙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손에 안 잡힙니다.
마치 내가 내 그림자를 밟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그림자를 밟으려면 그만치 가버리고, 그림자를 밟으려면 저만치 가버리고요. 우리 참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눈앞에 있고 손에 잡힐 듯하지만, 정말 그것을 확연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어떤, 쉽게 표현해서 법사라고 합시다.
어떤 법사가 1분 안에 見性하고, 1분 안에 참마음 아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당히 일리는 있어요.
일리는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또 반론하는 사람도 물론 많기는 합니다. 참마음은 사실은 우리가 떠나려야 떠날 수는 없으면서 그러나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眞空妙有. 찾아보면 없지만 그러나 모든 일을 다 관장하는 겁니다. 그 놈이 들어서 모든 일을 다 관장해요. 인생사 모든 것을 그 놈이 다 관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다 제가 별을 쳐놨네요.
希有하고 難得한 心寶. 그것을 수습해서
與一切諸佛(여일체제불)로 皆悉平等(개실평등)이니,
그것 알면 모든 부처님으로 더불어 함께 다 같이 평등해진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착한일 할 때 ‘부처님 행동해야 부처님이지,’ 그것이 아닙니다. 착한일한다고 부처님이아니라, 착한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간에 바로 그 참마음의 작용이 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때, 그것이 바로 부처의 작
용입니다.
그것이 부처의 작용입니다.
이것이 그 말 아닙니까?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이라
希有하고 難得한 心寶를 수습해 가지고서,
그것을 닦는다고 표현은 했지만, 닦아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닦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與一切諸佛로 皆悉平等함이니
菩薩이
如是觀諸善根(여시관제선근)하야,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관찰해서.
信心이 淸淨(신심청정)하며 大悲가 堅固(대비견고)하야,
以甚深心(이심심심)과, 깊고 깊은 마음과,
歡喜心(환희심)과, 환희하는 마음과,
淸淨心과, 청정한 마음과,
最勝心(최승심)과, 가장 수승한 마음과,
柔軟心(유연심)과, 유연한 마음과,
慈悲心(자비심)과, 자비한 마음과,
憐愍心(연민심)과, 연민히 여기는 마음과,
悲자도 연민의 뜻이 있습니다만, 좀 더 확연하게 이렇게 했네요. 연민히 여기는 마음과,
攝護心(섭호심)과, 거둬들여서 보호하는 마음과,
利益心(이익심)과, 남을 이익하게 하는 마음과,
安樂心(안락심)으로, 안락 하는 마음으로
普爲衆生하야, 널리 중생을 위해서,
眞實廻向(진실회향)하고, 진실하게 회향하고,
非但口言(비단구언)이니라. 다만 말로,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니라. 그랬습니다. 非但口言.
밑줄 쫙 입니다. 非但口言. 핗핗핗피/p>
우리 보리심ㆍ보리심. 불교의 수많은 용어 중에서 한 마
디만 딱 선택하라면, 사실은 보리심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菩提心. 그런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 범어잖아요.
보리라는 말은 범어잖아요. 心자는 우리가 아는 것이지만요. 이타심입니다. 利他心. 조금 더 부연하면 지혜와 자비의 마음. 한 마디로 하면 利他心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 그것이 보리심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이 보리심을 제일 많이 강조하는데요.
그냥 보리심ㆍ보리심 했지, 보리심을 더 이상 풀어서 말을 안 해요. 그래서 백방으로 제가 책을 읽고, 뜯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利他心이더라고요. 利他心. 근래에 부산만 하더라도 티벳 스님이 절을 세워서 티벳불교를 선양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사이트에 들어가면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문을 녹취해서 올려놓은 것도 있고,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저는 평소에 늘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 그렇게 늘 강조했는데 더 간략하게 하면 利他心.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10회향에서는 더욱 더 그렇지요.
(5) 廻向하는 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廻向之時에
作是念言호대 以我善根으로 願一切趣生과
一切衆生이 皆得淸淨하야 功德圓滿하며
不可沮壞하며 無有窮盡하며 常得尊重하며
正念不忘하며 獲決定慧하며 具無量智하야
身口意業의 一切功德으로 圓滿莊嚴이니라
又作是念호대 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承事供養一切諸佛하야 無空過者하고 於諸佛所에
淨信不壞하야 聽聞正法하며 斷諸疑惑하야
憶持不忘하며 如說修行하야 於如來所에
起恭敬心하며 身業淸淨하야 安住無量廣大善根하며
永離貧窮하야 七財滿足하며 於諸佛所에
常隨修學하야 成就無量勝妙善根하며 平等悟解하야
住一切智하며 以無碍眼으로 等視衆生하며
衆相嚴身하야 無有?缺하며 言音淨妙하야
功德圓滿하며 諸根調伏하야 十力成就하며
善心滿足하야 無所依住하고 令一切衆生으로
普得佛樂하며 得無量住하야 住佛所住케하나니라
廻向하는 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廻向之時에, 회향할 때에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念言이라고 하는 말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말을 하는 겁니다.
以我善根으로, 나의 선근으로
願一切趣生(원일체취생)과, 원컨대
一切趣生과, 이 밑에는 一切衆生. 그랬잖아요.
一切趣生하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다 포함해서 말할 때 一切趣生. 이라고 하고, 그것도 다 중생에 포함되긴 되지만, 또 우리에
게 익숙한 말로써 一切衆生.
원컨대 一切趣生과 一切衆生이
皆得淸淨하야, 다 청정해서, 이 淸淨이라는 말도 참 쉬운 말이면서도 뜻이 아주 무궁무진합니다.
功德이 圓滿(공덕원만)하며
不可沮壞(불가저괴)하며,
가히 무너뜨리거나 막을 수도 없으며,
無有窮盡(무유궁진)하며, 다 할 수도 없으며,
常得尊重(상득존중)하며, 항상 존중함을 얻으며,
正念不忘(정념불망)하며,
正念 ←이것이 남방불교에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많이 사용하는 글자지요. 正念. 마음 챙김 ←이렇게도 표현하고 하는데요. 正念이 不忘하며, 바른 생각을 잊지 아니하며,
獲決定慧(획결정혜)하며,
확실한 지혜, 결정한 지혜를 얻으며,
具無量智(구무량지)하야, 한량없는 지혜를 갖추어서,
身口意業의 一切功德으로
圓滿莊嚴(원만장엄)이니라.
원만하게 장엄하게 하여 지이다.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겁니다. ←이것이 첫째 생각이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생각은
又作是念호대 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承事供養一切諸佛(승사공양일체제불)하야,
일체제불에게 承事供養해서,
저는 一切諸佛 나올 때 보현행원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고 합니다. 대승불교 경전에는 자주 등장하는
一切諸佛 ←이렇게 하는데요. ‘도대체 무슨 부처님이 그렇게 무량 아승지 숫자로 부처가 있다는 말인가?’
일체사람과 일체생명을 一切諸佛이라고 표현합니다.
一切諸佛 = 일체사람과 일체생명. 사람을 앞에다 놓는 것이 좋지요. 일체사람과 일체생명!
그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해서
無空過者(무공과자)하고, 헛되게 지나치지 않고,
於諸佛所에, 모든 부처님처소에
淨信不壞(정신불괴)하야, 철저하게 믿고,
증엄스님 이야기를 아까도 했는데요.
그 분의 3대강령이 있지요. 그 스님 약력에 들어가면 3대강령을 딱 써 놨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나는 언제 출생하고, 무슨 공부를 했고, 그런 이야기 한 마디도 없고,
普天三無(보천삼무).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를 천번 만번 만 번 속인다.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 사람을 믿을 것이다.
아~~! 대단하잖아요? 설사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나는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그런 뜻입니다. 그것 普天三無중의 하나지요. 淨信不壞. ←이것이 사람에 대한 믿음입니다.
불법에 대한 淨信도 포함되겠습니다만, 여기는 諸佛所에, 했으니까요.
聽聞正法(청문정법)하며,
대승 경전에 오면 正法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요.
사실은 불법이라는 간판 밑에도 邪法(사법)이 많고,
非正法도 많고요. 그러니까 이 대승불교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승불교 운동하는 사람들은 正法이라는 말을 꼭 쓰기 바랍니다. 법 중에도 바른 법! 정법을 청문하며,
斷諸疑惑(단제의혹)하야, 모든 의혹들을 다 끊어서
憶持不忘(억지불망)하며, 다 기억해서 잊지 아니하며,
如說修行하야, 설한 바대로 수행해서
於如來所에, 여래 소에서
起恭敬心(기공경심)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身業이 淸淨하야
安住無量廣大善根(안주무량광대선근)하며,
한량없이 광대한 선근에 安住하며,
永離貧窮(영리빈궁)하야, 영원히 빈궁한 것을 떠나서,
빈궁한 것을 떠나려면 어떻게 하지요?
우리가 복을 많이 지어야지요. 복 짓는 것이 뭡니까?
보시하는 겁니다.
七財에 滿足(칠재만족)하며, 그랬습니다.
일곱 가지 법의 재물을 만족케 한다. 이것 10무진장 품에
열 가지무진장을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처음에 나오는 일곱 가지하고 똑 같습니다.(65강 ~ 66강)
일곱 가지 법의 재물 = 1信(신) = 믿음. 2戒 = 계율.
3?(참). 4愧(괴). 5聞(문) = 많이 듣는 것.
6捨(사) = 보시. 글자는 버릴 捨자인데 보시입니다.
7慧(혜) ←이렇게 일곱 가지가 법의 재물이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 또한 말하자면 법으로써 빈궁함을 떠나야 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물론 생활상에 경제적으로 빈궁함을 떠나는 것도 급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문제가지고 이야기하는 마당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淸福(청복)이니 濁福(탁복)이니 그런 말을 하잖아요. 이 일곱 가지 법의 재물이 만족하면
그 사람은 淸福이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청정한 복이 넘쳐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
도, 개인적으로 설사 아무리 빈곤하게 산다하더라도, 또
사회적인 아무런 지위가 없어서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화엄경을 의지하고,
화엄경과 마주하고 있고 당당하게 ‘나는 화엄행자다.’ 잘하든 못하든 ‘나는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신념
가지고 사니까 그 사람은 淸福이 아주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아주 깨끗한 복!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아주 훌륭한 청정한 복을 잔뜩 가진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부자입니다. 淸福으로써의 부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자부심.
그런 신념ㆍ긍지가 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대한 믿음. 현수 품에 보면 10信! 믿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잖아요. 믿는 마음같이 큰 재산은 없다.
믿음은 불법에 대한 큰 재산이다. 그랬습니다.
사실은 정말 믿는 마음만치 중요한 재산은 없습니다.
有形. 눈에 보이는 재산, 그것이 얼마 되겠습니까? 또
상당히 있다 손치더라도 그것 크게 믿을 것이 못됩니다.
유형한 재산은 크게 믿을 것은 못됩니다.
그런데 불법에 대한 신심의 재산은 이것은 누가 뺏어갈 수도 없고, 무슨 태풍이 불어도 바람에 날려갈 일 없고,
폭우가 쳐도 물에 떠내려갈 일도 없고, 불에 탈일도 없고
그렇습니다.
於諸佛所에 常隨修學(상수수학)하야,
모든 부처님처소에서 항상 따라서 修學해서, 배워서
成就無量勝妙善根(성취무량승묘선근)하며,
한량없는 수승하고 미묘한 선근을 성취하며,
平等悟解(평등오해)하야, 평등하게 깨달아 알아서,
住一切智하며, 일체지혜에 머물며, 모든 것을 아는 평등과 차별을 공히 아는 그런 지혜. 一切智에 머물며,
以無碍眼(이무애안)으로, 걸림 없는 눈으로
等視衆生(등시중생)하며,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며,
그렇습니다.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려니까 평등해야 평등하게 보지요. 그런데 단 부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다 같이 평등한 그런 부분이 또 있습니다. 대단한 부분이 있다고요.
외형만 보면 전부가 차별하지요. 그래서 임제스님은
차별 없는 참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짖은 겁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
그것은 부처나 보살이나 중생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그것은 정말 평등한 겁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입장으로 等視衆生해야 됩니다.
중생을 똑같이 평등하게 봐야 됩니다.
衆相으로 嚴身(중상엄신)하야,
여러 가지 모습으로써 몸을 장엄해서,
無有?缺(무유점결)하며, 결점이 하나도 없으며,
言音淨妙하야, 말이 아주 청정하고 미묘해서,
功德이 圓滿하며, 말도 참 잘해야 됩니다.
특히 남 앞에서 법문한다든지, 아주 짧은 스피시도 사람에게 정말 감동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하고 다듬어서 해야 됩니다.
제가 남 훈수 안 들기로 스스로 약속을 아주 많이 하고,
남 잘, 잘못, 눈에 거슬리고 하는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기로 항상 다짐하면서도 또 합니다. 업이 되어서요.
불교 TV를 보면, 차라리 판서 안하든지 직직직직 개미 기어가는 것 같이, 자기도 못 알아보게 그냥 아주 무성의하게 직직직직 쓰고, 글씨 잘 쓰고 못쓰고는 절대 문제 아닙니
다. 성의 있게 써야 됩니다. 한 획ㆍ한 획을 성의를 있게 쓰면 그것이 잘 쓰는 글씨입니다.
그런데 전혀 성의 없이 직직직직 직직, 그런데 제가 반대로 칭찬도 해야지요.
저~ 기 논산에 안심정사에 있는 태고종 법안스님.
불교 TV에 나와서 판서하는 사람 중에 제일 잘 써요.
제일 깨끗하게 잘 써요. 태고종 스님입니다.
안심정사 법안스님. 자주 나오지요. 얼마나 정갈하게 쓰는지 몰라요. 신심 나게 씁니다. 쳐다만 봐도 신심 나게 써요. 도대체 조계종 중은 그렇게 하는 중이 하나도 없어요.
야~~ 참 신기하지요. 그런데 글씨라고 씁니다.
아주 무성의하게 직직직직 직직. 명필로 쓰라는 뜻은 아
닙니다. 한 자ㆍ한 자를 써도 성의를 담아서 마음 다해서
쓰라는 것이지요. 조계종 스님으로서 괜찮게 쓰는 스님은 지안스님 글씨가 괜찮아요. 아주 얌전하게, 많이는 안 쓰는데 아주 얌전하게 통도사 계시는 지안스님이 깨끗하게 잘 써요. 법안스님이 그렇게(전부 眼자 들어간 스님이네요.)
그 스님이 그렇게 아주 참 정갈하게, 질서정연하게 쓰더라고요.
보는 사람이 그것만 봐도 신심 나잖아요.
글씨도 글씨지만, 말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言音淨妙라고 했잖아요. 말이 淨妙해야 됩니다.
功德이 圓滿하며, 그래 그런 것, 말하는 것 보고, 또 글씨 쓰는 것 보고 사람들이 신심을 내고, 환희심을 내면 그 사람은 저절로 공덕이 불어나는 겁니다. 功德이 圓滿하며,
諸根이 調伏(제근조복)하야,
모든, 안이비설신의 6근이 전부 조복되어서
十力成就(십력성취)하며, 열 가지 힘을 성취하며,
부처님이나 보살을 표현할 때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十力입니다.
善心滿足하야, 선심이 만족해서,
無所依住(무소의주)하고, 의지하는 바가 없고,
저는 다 못 외우는데 十力중에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옳은 것과 옳지 아니한 것. ←이것이 十力중에 제 1조입
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가려서 아는 지혜의 힘. ←이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앉을자리 설 자리를 잘 가려서하라. 그것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그 인품 괜찮은 겁니다.
그것은 남의 일에 훈수 안 두는 것하고도 연관이 있습니다.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普得佛樂(보득불락)하며,
부처님의 즐거움을 널리 얻는다.
得無量住(득무량주)하야, 한량없이 머물 곳을 얻으며,
住佛所住케하나니라.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머물게 하여지이다.
令一切衆生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이 ‘무엇을 즐기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중생들도 좋아하게 한다니까요. 또
得無量住하야,
우리는 머물 곳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취사선택을 잘합니까? 취사선택 참 잘합니다. 사람도 취사선택 잘하고요.
어디 뭐하는데 있다면 ‘거기 누가 나오나?’이름 한번 열거해보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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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3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6) 代苦救護
가. 代衆生苦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이름나오면
“아이 나, 바빠서 못나간다.”그래버리지요. 가려고 했다가도 ‘에이구 그거 보기 싫어서 못나간다.’그런 경우 얼마나 많습니까? 장소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때가 그렇고요.
부처님 경우는 그렇지가 않지요.
住佛所住. 부처님이 머무는 바에 머문다.
부처님이 어디 머물겠습니까? 극락세계에 머물겠습니까?
아니지요. 부처님은 중생이 어려운 곳에 머물고, 재난이 있는 곳에 머물고,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머물고, 그곳이 부처님이 머무는 곳인데요. 우리는 반대로 아주 근사하게 왕궁을 꾸며서 높은 자리에다 부처님을 모셔놨습니다. 사실은 부처님은 그런 데에 머무는 분이 아니거든요.
평생을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려고 했고 그렇게 살았지, 뭐 어디 근사한데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6) 代苦救護
가. 代衆生苦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見諸衆生이 造作惡業하야
受諸衆苦일새 以是障故로 不見佛하며
不聞法하며 不識僧하고 便作是念호대
我當於彼諸惡道中에 代諸衆生하야
受種種苦하야 令其解脫호리라하고
菩薩이 如是受苦毒時에 轉更精勤하야
不捨不避하며 不驚不怖하며 不退不怯하며
無有疲厭하나니 何以故오 如其所願하야
決欲荷負一切衆生하야 令解脫故니라
菩薩이 爾時에 作是念言호대 一切衆生이
在生老病死諸苦難處하야 隨業流轉하고
邪見無智하야 喪諸善法하나니 我應救之하야
令得出離라하며 又諸衆生이 愛網所纏과
癡蓋所覆로 染着諸有하야 隨逐不捨하며
入苦籠檻하야 作魔業行하며
福智都盡하야 常懷疑惑하며
不見安隱處하고 不知出離道하며
在於生死하야 輪轉不息하며
諸苦?泥에 恒所沒溺이어든
菩薩이 見已에 起大悲心과 大饒益心하야
欲令衆生으로 悉得解脫하야 以一切善根廻向하며
以廣大心廻向하며 如三世菩薩所修廻向하며
如大廻向經所說廻向하야 願諸衆生이 普得淸淨하고
究竟成就一切種智니라
代苦救護(대고구호).
고통을 대신 받고 중생들을 구호한다. 그런 뜻인데요.
代衆生苦(대중생고).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받는다.
대신 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것 참, 보살행을 표현하는 이 화엄경, 대승보살불교에서는 보통 우리들의 어떤 상식하고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고,
우리가 따라잡기가 참 어려운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그릇에는 설사 차지 않는다하더라
도, 우리 그릇하고는 거리가 있다하더라도 그래도 이런 말을, 아! 중생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는다. ←이런 말 한 마디라도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耳根공덕만 하더라도 그것
상당한 겁니다. 워낙 높은 불교기 때문에, 뜻이 깊어서 높
은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見諸衆生(견제중생)이, 모든 중생들이,
造作惡業(조작악업)하야, 악업을 지어서,
受諸衆苦(수제중고)일새, 모든 온갖 고통을 받을세.
以是障故(이시장고)로, 이러한 장애 때문에
不見佛(불견불)하며 不聞法(불문법)하며
不識僧(불식승)하고,
부처님도 보지 못하고, 법도 듣지 못하고, 승가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 앞에 見자 있었지요?
見諸衆生이하는... 그러한 사실들을 보고,
便作是念(변작시념)호대, 곧 이러한 생각을 한다.
我當於彼諸惡道中(아당어피제악도중)에,
저 모든 악도, 고통을 받는 중생들이지요.
내가 마땅히 그런 중생들 가운데서,
代諸衆生하야, 모든 중생을 대신해서,
受種種苦(수종종고)하야, 가지ㆍ가지고통을 받아서,
令其解脫(영기해탈)호리라하고,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겠다.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겠다.
지장보살도 지옥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문 앞에 서 있다고 까지는 했지만, 그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당신이 대신 받는다는 말은 지장 경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화엄경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 그 훌륭한 지장보살도 지옥중생들의 고통을 당신이 대신 받는다는 말은 없다니까요.
문 앞에 서 있다가 잘 가르쳐서 앞으로라도 선행을 하도록, 그렇게 가르치기는 하시지만,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받겠다.” 그런 말은 없습니다. 앞으로 여름에 지장기도 많이 할 철이 돌아왔지요? 그러니까 화엄경공부를 해보면 화엄경이 정말 다입니다. 가장 높은 경전이고, 가장, 물론 방대하기도 방대하지만, 뜻이 아주 제일 수승하고 그렇습니다. 보살 정신이 아주 극치지요.
菩薩이
如是受苦毒時(여시수고독시)에,
이와 같이 苦毒을 받을 때에 = 고통을 받을 때에,
轉更精勤(전갱정근)하야,
더욱 더 용맹심이 일어나서 열심히ㆍ열심히 정근해서,
不捨不避(불사불피)하며,
그 고통을 버리지도 않고 고통을 피하지도 아니하며,
不驚不怖(불경불포)하며,
놀라워하지도 하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하지도 아니하며,
不退不怯(불퇴불겁)하며,
물러서지도 않고, 겁내지도 아니해요.
無有疲厭(무유피염)하나니,
한 번도 치곤해 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나니,
何以故오? 왜냐?
如其所願(여기소원)하야, 그 서원하는 바와 같아서
決欲荷負一切衆生(결욕하부일체중생)하야,
결정코 일체중생을 荷負하고자 한다. 일체중생을 내가 다 짊어지고 간다. 말입니다. 짊어져서
令解脫故(영해탈고)니라.
그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헤이 참, 보살정신 대단하지요.
보살마음 대단합니다. 사실은 이런 것이 불교입니다.
이런 것이 불교입니다. 어느 천하에 고준한 선법문을 하는 이들도 “중생고통 대신 받겠냐?”하면 그것 선뜻 나설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이 차원
이 더 높습니까? 어느 것이 더 어렵습니까? 이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실지로 보살행이 더 어렵습니다.
菩薩이
爾時에, 그러한 때에
作是念言호대, 이러한 생각을 짓되,
一切衆生이
在生老病死諸苦難處(재생로병사제고난처)하야,
生ㆍ老ㆍ病ㆍ死의 諸苦難處에 있어서,
아주 고통스러운 곳에 있어서,
隨業流轉(수업류전)하고, 업을 따라서 流轉하고,
邪見無智(사견무지)하야,
삿된 소견으로 지혜가 없어서,
보통 邪見하면 ‘연기법을 모른다. 인과의 법칙을 모른다. 인연의 법칙을 모른다.’그러면 邪見에 해당되는 겁니다.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인연의 법칙ㆍ인과의 법칙ㆍ연기의 법칙을
깨달았다.
천하 모든 사람들이,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뭡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 뜻이거든요.
인과의 법칙을 깨달았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우리는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너무 많고, 우리가 잘 검토해보면 실지로 우리
생활에는 팥 심어놓고 콩 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제가 일일이 꼬집지 않더라도 검토해보면...
그런 말 자꾸 하려니까 박덕해질까봐 겁이 나서 잘 안 하는데요. 그것 참...
우리가 그 인과의 법칙ㆍ인연의 법칙만 잘 정말 철저히 뼈에 사무치도록 믿는다면,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
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 그것은 내가 그와 어떤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해가 떴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왜? 밤이 오느냐? ‘해가 지니까 밤이 오는 것이고, 그렇지만 다음에 또 뜬다.’ 말입니다. 그렇게 알면...
그래서 저기 성엄스님은 그런 법문을 합니다.
生老病死 ←이것 순서 틀렸다.
老病死生이라고 해야 된다.
희망적으로 이야기해야 된다.
늙고ㆍ병들고ㆍ죽고, 그 다음에 태어난다.
老病死生이 바른 순서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 그것 상당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
다. 참 의지하고 싶은, 정말 푸근한 스님! 대만의 성엄스님!
이 시대에 포교당을, 전 세계에 포교당을 수 100개를 세워서 법을 펴도록 하는 그런 병원이다. 학교다. 유치원이다. 대학교다. 온갖 포교당이 수 100개라니까요. 수 100개...
우리나라 스님들, 절 두 개ㆍ세 개 가지고 있다고 절대
흉보지마세요. 그 스님은 수 100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 100개... 여기 홍법사도 불광사 지구입니다.
여기 가까운 홍법사도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지요.
“홍법사를 자매결연 맺고 거기에 여러 가지 사상도 이어
받고 그러는데, 여기 절 지을 때 혹시 지원한 것이 있느
냐?”사실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물었더니 “아 지원했습니다.”
“얼마나 지원했느냐?”말난 김에 물었지요.
10000불을 지원했대요. 상당한 돈 아닙니까?
邪見無智.
아~~ 이것 참 아주 뼈를 뚫고 들어오는 말입니다.
邪見無智해서, 삿된 소견으로 지혜가 없어서
喪諸善法(상제선법)하나니,
그 좋은 온갖 선법들을 다 손상 시킨다. 죽여 버린다. 말입니다. 邪見無智해서 喪諸善法이라.
모든 선법들을 상실하게 한다.
我應救之(아응구지)하야,
내가 응당히 그들을 구제해서, 그래서 다른 물질적인 것,
우선적으로 보시를 하고 베풀어야 되긴 되겠지만,
법에 대한 신념. 그것을 우리는 사실은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됩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잖아요.
“그럼 구체적으로 무슨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으냐?”
부처님이 뭘 제일 많이 이야기했다고요?
마승비구가 이야기했잖아요.
사리불이 처음에 만났을 때,
아주 품위 있는 스님이 탁발을 하거든요. 붙들어 놓고 당신은 스승이 누구고 어떤 가르침을 받느냐? 그러니까,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성도해서 그분의 제자다. 그럼 도대체
그 분은 뭘 말씀하시느냐?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이 말이 因緣生 因緣滅. 因緣生起 ←이것을 늘 말씀하신다.
제일 많이 말씀하셨다. 그랬거든요.
그 마승비구는 5비구 중의 한사람입니다.
맨 처음에 석가모니하고 같이 출가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6년 고행했지, 그 다음에 또 깨닫고 나서 거기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수행을 함께한 사람이니까 얼
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 맨 날 인연이야기
만 한다. 한마디로 하면 그 말이지요. 그래요.
우리가 그것 제대로 꿰뚫어 알면 된다고요.
그러면 사실은 邪見無智가 안 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한마디만 우리가 철두철미하게 아주 곱씹고ㆍ곱씹고 여러 가지 상황
에 그것을 대처해서 분석해야 됩니다. 과연 기도 심어서 합격이 나오느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면서 기도 심어서 합격이 나오느냐? 합격이 나오려면 합격이 나오는 것을 심어야 합격이 나오지, 기도 심어서 합격이 나오는 것 아니잖아요.
콩 심은데 팥이 나와야 기도 심어서 합격 나온다는 소리
하고 똑 같은 겁니다. 우리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요.
화엄경 앞에 놓고 우리가, 무슨 우리이해관계, 최소한도 이 자리에서는 무슨 돈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서 신도들에게
딴 소리 할 것은 없잖아요. 여기에서 바른 소리 안하고
어디 가서 우리가 경전 속에 있는 소리를 깨놓고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8만대장경에 기도라는 말이 있는가? 찾아보니 한마디도 없어요.
**요즘은 1분이면 찾습니다.
저~ 기 대만에서 만든 시비에타 가동시켜서 “기도”딱 치면, 착 다 떠버립니다. 1분 안에 다 떠버립니다.
1분도 안 걸립니다. 없더라고요.
아~~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반”딱 치면, 수 만 곳에서 열반이라는 낱말이 있는 곳을 전부 다 지적해줍니다. 요즘 그런 세상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근래에 와서 기도불교가 파워가 가장 셉니다. 제일 파워가 센 것이 기도불교인데요. 그래서 제가
함부로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안 하지요.
아주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는 알고 넘어가자 이것이지요.
시대가 기도불교 시대니까요. 또 당장에 기도 안하고는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기도라고 하는 사실은 그런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면서 왜 기도심어서 합격을 바라고,
기도 심어서 돈을 바라느냐고요.
돈을 바라려면 돈 되는 일을 해야 되고, 합격을 바라려면 돈 합격되는 일을 해야 그것이 기도지요. 그것이 제대로 되는 인과법칙 이지요. 그것이 제대로 된 인과법칙입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분야ㆍ분야에 다 적용시켜서 이야기는
부처님은 안했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렇게 번역이 되거든요.
그것은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만고의 철칙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철두철미하게, 각 분야ㆍ분야에 그것을 적용시켜서 분석해서, 제대로 우리가 소화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 보다 더 좋은 법은
없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법... 일상생활에 있어서 더구나 더 그래요. 화엄경도 전부 인과! 인과이야기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 공부한다고 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경 공부하면 경 공부가 나올 뿐입니다.
우리가 경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것이지요.
참선 심으면 참선 나옵니다. 이런 말 처음 들어 보시지요?
참선 심으면 참선 나오고, 기도 심으면 기도 나온다.
팥 심은데 팥 나오고, 콩 심은데 콩 나온다는 말하고 같은 말이지요. 경전 공부 심으면 경전 공부 나옵니다.
도둑질 심으면 도둑질 나옵니다.
처음에는 도둑질할 때, 상당히 떨리고 서툴고 잘 안돼요.
그런데 두 번째 하면 아주 익숙해요. 세 번ㆍ네 번 하면 아주 더 익숙해요. 도둑질하는 것이 아무 양심에 가책도 되지 않고, 꼭 자기 것 들고 가듯이 들고 가는 겁니다.
요즘 뉴스에도 더러 상점에 가서 도둑질하는 것들 보면,
그 도둑질하는 사람들 보면 참 쉽게 하대요.
떨리지도 않고 아주 쉽게... 그것 왜 그러냐?
도둑질 심은데 도둑질 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교공부해서 邪見無智.
‘이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내 살림살이로 삼는다면 좋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喪諸善法하고 我應救之하야
令得出離(영득출리)라하며,
그들을 다 그런 데서부터 벗어나게 하며,
又諸衆生이
愛網所纏(애망소전)과, 애착의 그물에 얽힌바와,
癡蓋所覆(치개소부)로, 어리석음의 덮개.
어리석음의 번뇌지요. 蓋ㆍ網ㆍ纏. ←이것이 전부 다 번뇌입니다. 어리석음의 번뇌에 덮인 바로써
染着諸有(염착제유)하야, 諸有에 染着해서,
모든 있음에 染着해서, 곧이곧대로 새기면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 전부 있다고 하는데 染着하는 겁니다.
있는 것이, 꼭 있는 것이 아닌데 ‘꼭 있다고, 절대적으로 고정불변하게 있다고,’생각하는 그것이 染着입니다.
‘그것 있는 것이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色卽是空이다.’ 이렇게까지만 알아도 그것은 染着은 아닙니다.
우리가 諸有를 떠나서 어떻게 삶이 유지 됩니까?
인생살이는 諸有를 통해서, 모든 있음을 통해서 유지되는데, 있음을 있음으로 인정은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있음이 곧 없음이다. 라고 하는 이치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染着이 아닙니다. 그런데 꼭 있다고만 고집하니까 그것이 어느 날 자기하고 인연이 다 돼서 떨어져나갈 때면 가슴을 치는 일이 생기고 그러지요.
諸有에 染着해서,
隨逐不捨(수축불사)하며,
쫓아가고 쫓아가서 버리지 아니하며,
入苦籠檻(입고롱함)하야, 籠과 檻은 죄인을 싣고 가는 그런 것들입니다. 고통의 함 속에, 농속에, 그런 데에 들어가서 作魔業行(작마업행)하며, 마업의 행을 지으며,
福智都盡(복지도진)하야, 복과 지혜가 都盡해서,
아이고 참, 복과 지혜가 모두 다 없어져버려서 가지고,
쥐꼬리만 한 복이 있던 것 까지도 다 없어져버려서
常懷疑惑(상회의혹)하며, 항상 의혹을 품으며,
不見安隱處(불견안은처)하고,
安隱處. 편안한 곳이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不知出離道(부지출리도)하며,
벗어나는 길을 알지를 못하고,
在於生死하야, 생사에 있어서,
輪轉不息(윤전불식)하며,
흘러 다니고 흘러 다녀서 쉴 줄을 모르며,
諸苦?泥(제고어니)에,
고통의 진흙탕 속에서, 온갖 고통의 진흙탕 속에서,
恒所沒溺(항소몰닉)이어든, 항상 거기에 빠져 있었다.
菩薩이 見已에, 보살이 그러한 사실을 보고 나서는
起大悲心(기대비심)과 大饒益心(대요익심)하야,
대비심과 大饒益心을 일으켜서
欲令衆生(욕령중생)으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悉得解脫(실득해탈)하야, 모두 해탈케 하며,
以一切善根으로 廻向(이일체선근회향)하며,
일체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 이것이 회향 품이니까요.
以廣大心廻向(이광대심회향)하며,
광대한 마음으로 회향하며, 일체 선근으로 회향하고,
廣大心으로 회향하고,
如三世菩薩所修廻向(여삼세보살소수회향)하며,
삼세 보살들이 所修와 같이 회향하고,
과거ㆍ현재ㆍ미래 보살들이 닦은바, 뭘 닦았느냐? 이겁니다. 그들이 닦은바와 똑같이 회향하며,
如大廻向經所說廻向(여대회향경소설회향)하야,
大廻向經에서 설한바와 같이 회향하며,
大廻向經은 회향 품입니다. 이것은 따로 있는 것은 제가 못 봤습니다. 회향 품을 大廻向經이라, 그렇게 보면 됩니다.
이것이 열 권 반이나 됩니다. 80권에서 열 권 반이나 되는 것이 회향 품입니다. 그럼 大廻向經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大廻向經이 설한바와 같이 회향해서,
願諸衆生이, 원컨대 모든 중생이,
普得淸淨하고, 모두 청정함을 얻고,
究竟成就一切種智(구경성취일체종지)니라.
究竟에 일체종지를 성취하게 하나니라.
저~ 위에 欲令하는 令자 = 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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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4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6) 代苦救護
나. 廻向心 다. 保護衆生
라. 得樂 마. 智慧炬
바. 行願具足
(7) 衆生濟度
(8) 報恩廻向
(9) 離相廻向
가. 種種廻向 나. 業과 智慧
(10) 廻向의 利益
여러분도 어디 가서 다 스승으로 대접받는 스님들인데,
여기 와서는 또 이렇게 합니다. 저에게는 여러분이 스승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공부시키지 제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화엄경공부 같이 하려고 저는 사실은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공부시키는 겁니다.
제가 쉬면서 TV를 보다보니까 이상우라고 하는 남자가수 있지요? 자식이 형제인가 있는데요. 큰 얘가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 자식도 위하지만, 그것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면서 하는 소리가 그겁니다.
“내 장애아는 나의 스승이다. 왜냐?
장애있는 아들이 없었으면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눈
돌릴 줄 몰랐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다는 것도 그 아이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은 몰랐대요.
장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줄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안 그러겠어요? 노래나 하고 계속 그런 연예인들 세상에서 살았으니 아마 일반 서민들 보다 더 몰랐을 겁니다. 전혀 몰랐대요. 그런데 “저 아이를 통해서 내가 그러한 세상에 눈을 뜨게 됐고, 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헌신할 줄도 알았다. 전부 저 아이가 나를 가르쳤다. 그러니 나의 스승이 아니고 누구냐?”
이러더라고요.
야~~ 연예인 치고도 그 정도 되면 아주 훌륭한 연예인이지요.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요. 사실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인연 관계가 전부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 참, 괜찮은 말씀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공부내용이 아주 참 좋은 내용이네요.
좋은 내용이 나오면 제가 열을 많이 내고, 목소리를 높여서 목이 쉬이갑니다.
나. 廻向心
復作是念호대 我所修行이 欲令衆生으로
皆悉得成無上智王이라 不爲自身하야 而求解脫이요
但爲救濟一切衆生하야 令其咸得一切智心하야
度生死流하야 解脫衆苦라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普爲一切衆生하야 備受衆苦하야
令其得出無量生死衆苦大壑하고
我當普爲一切衆生 於一切世界와 一切惡趣中에
盡未來劫토록 受一切苦호대 然常爲衆生하야
勤修善根이니 何以故오 我寧獨受如是衆苦언정
不令衆生으로 墮於地獄하고
我當於彼地獄畜生閻羅王等險難之處에 以身爲質하야
救贖一切惡道衆生하야 令得解脫이라하며
廻向心(회향심)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所修行(아소수행)이, 내가 수행하는 바가,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皆悉得成無上智王(개실득성무상지왕)이라.
無上智王.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혜의 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말입니다. 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이 모두 전부 지혜의 왕이 되게 하는 것이다.
智王 = 지혜의 왕은 70억 인구가 다 돼도 경쟁이 없습니다. 경쟁 없어요. 싸울 필요도 없고, 투표할 일도 없고,
서로 시기 질투할 일도 없고 그렇습니다. 지혜의 왕.
다 비어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앉으면 되는 자리입니다.
不爲自身(불위자신)하야 而求解脫(이구해탈)이요.
자신을 위해서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但爲救濟一切衆生(단위구제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다만 구제하기 위해서,
令其咸得一切智心(영기함득일체지심)하야,
또 그들로 하여금 전부 일체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한다.
불교에는 뭐니 뭐니 해도 지혜입니다. 지혜가 우선입니다.
지혜와 자비. 또는 자비의 종교ㆍ지혜의 종교. 그러는데요. 사실은 지혜가 우선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치우친 뜻이 있지만, 그 지혜가 없이 자비를 행하는 것은 情에 떨어지기가 일쑤입니다.
전부 情에 다 떨어집니다. 그런데 지혜가 있고, 자비가 없으면 그것도 사실은 쓸모없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자비를 잘 쓰자고 하는 그런 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씨앗은 지혜라면 결국 열매는 자비입니다. 자비의 실천행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 無上智王. 좋네요.
그 다음에 一切智心.
度生死流(도생사류)하야, 생사의 흐름에서 건너서,
解脫衆苦(해탈중고)라하며,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當普爲一切衆生(아당보위일체중생)하야,
내가 마땅히 널리 일체중생을 위해서,
備受衆苦(비수중고)하야,
온갖 갖추어서 고통을 갖추어서 다 받겠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겠다. = 受備.
令其得出無量生死衆苦大壑
(영기득출무량생사중고대학)하고,
한량없는 생사의 온갖 고통의 큰 구렁에서 벗어나게 하고, 我當普爲一切衆生(아당보위일체중생)하야,
내가 널리 일체중생을 위해서
於一切世界(어일체세계)와, 일체 세계와
一切惡趣中(일체악취중)에
盡未來劫(진미래겁)토록, 미래제가 다 할 때까지
受一切苦(수일체고)호대,
일체 苦를 받되, 모든 고통을 받되,
然常爲衆生(연상위중생)하야,
그러나 항상 중생을 위해서,
勤修善根(근수선근)이니,
고통 받는 것만 가지고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그러면서 한편 勤修善根해야 됩니다.
선근을, 좋은 일을 부지런히 닦아야 됩니다.
그래 또 회향을 하지요. 고통을 대신 받겠다.
참 좋은 일이긴 하지요. 한편 끊임없이 선근을 닦아야 된다.
何以故오? 왜냐?
我寧獨受如是衆苦(아영독수여시중고)언정,
내가 차라리 홀로 이러한 온갖 고통을 받을지언정,
不令衆生(불령중생)으로 墮於地獄(타어지옥)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我當於彼地獄畜生閻羅王等險難之處
(아당어피지옥축생염라왕등험난지처)에
以身爲質(이신위질)하야, 몸으로서 바탕이 되어요.
몸으로서 그 험난한 곳의 바탕이 되어서,
救贖一切惡道衆生(구속일체악도중생)하야,
일체 악도 중생을 구제해서 면하게 한다. 贖罪(속죄).
그 죄를 면하게 한다. 그래서
令得解脫(영득해탈)이라하니라. 하여금 해탈케 한다.
참, 지옥ㆍ축생ㆍ염라왕 등 그런 險難之處에 내 몸이 바탕이 되어서, ‘그것이 되어서’ 이 말입니다.
다. 保護衆生
復作是念호대 我願保護一切衆生하야
終不棄捨라하고 所言誠實하야 無有虛妄이니
何以故오 我爲救度一切衆生하야 發菩提心이요
不爲自身하야 求無上道며 亦不爲求五欲境界와
及三有中種種樂故로 修菩提行이니
何以故오 世間之樂이 無非是苦며 衆魔境界라
愚人所貪이요 諸佛所呵시니 一切苦患이 因之而起며
地獄餓鬼와 及以畜生閻羅王處에 忿?鬪訟하고
更相毁辱하는 如是諸惡이 皆因貪着五欲所致라
耽着五欲에 遠離諸佛하야 障碍生天이어든
何?得於阿?多羅三?三菩提아
菩薩이 如是觀諸世間에 貪小欲味하야 受無量苦하고
終不爲彼五欲樂故로 求無上菩提하야 修菩薩行이요
但爲安樂一切衆生하야 發心修習하야 成滿大願하야
斷截衆生의 諸苦?索하야 令得解脫이니라
保護衆生(보호중생). 중생들을 보호한다.
復作是念호대
我願保護一切衆生하야,
나는 원컨대 일체중생을 보호해서,
終不棄捨(종불기사)라하고, 마침내 棄捨하고,
버리지 않는다 하고,
所言誠實(소언성실)하야, 말한 바가 성실해서,
無有虛妄(무유허망)이니, 허망함이 없음이니,
何以故오?
我爲救度一切衆生(아위구도일체중생)하야,
내가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해서,
發菩提心(발보리심)이요, 보리심을 발하게 함이요,
不爲自身(불위자신)하야, 내 자신을 위해서,
求無上道(구무상도)며, 가장 높은 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며,
亦不爲求五欲境界(역불위구오욕경계)와
及三有中에 種種樂故(급삼유중종종락고)로,
5욕 경계와 그리고 三有中에, 3계 가운데서 가지ㆍ가지
즐거움을 구하기 위한 까닭으로
修菩提行(수보리행)이니,
보리행을 닦는 것이 아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살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利他心입니다. 利他心! 끝까지 利他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발심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보살행 하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선근을 닦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이 보살의 정신입니다. 그것이 보리심이고, 그것이 利他心이고 보살정신이고요.
何以故오? 世間之樂(세간지락)이
無非是苦(무비시고)며, 고통 아닌 것이 없으며,
衆魔境界(중마경계)라.
온갖 마의 경계들뿐이다. 말입니다.
愚人所貪(우인소탐)이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탐하는 바고,
諸佛은 所呵(제불소가)시니,
모든 깨달은 사람들은 전부 그것을 꾸짖는 바고, 경계하는 바다.
一切苦患(일체고환)이, 일체고통과 우환들이
因之而起(인지이기)며,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며,
地獄과 餓鬼(지옥아귀)와
及以, 그리고
畜生閻羅王處(축생염라왕처)에,
忿?鬪訟(분에투송)하고,
분내고 화내고 싸우고 소송하고,
更相毁辱(갱상훼욕)하는,
다시 거기에 더하여 毁辱. 헐고 욕하고, 그래서
如是諸惡(여시제악)이
皆因貪着五欲所致(개인탐착오욕소치)라.
모두가 5욕을 탐착하는 것을 인한 소치다. 말입니다.
5욕은 眼耳鼻舌身. 5根이 서로 좋은 것만 탐하는 것.
경전에서 5욕은 그겁니다. 財色身名壽가 아닙니다.
財色身名壽는 유교에서 나온 용어이고, 여기서 5욕은
眼耳鼻舌身, 5根이 하고자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눈은 좋은 것만 보려하고, 귀는 좋은 소리, 자기 칭찬하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고, 전부 그런 것입니다.
耽着五欲(탐착오욕)에, 5욕을 탐착함에,
遠離諸佛(원리제불)하야,
모든 부처님들은 다 멀리 떠나서,
그렇지요. 5蘊이나 5根이나 좋아할 것만 자꾸 구하고 그러다보면, 깨달은 사람ㆍ지혜 있는 사람, 그런 길은 저절로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障碍生天(장애생천)이어든,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장애하거든,
何?得於阿?多羅三?三菩提
(하황득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아?
어찌 하물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菩薩이
如是觀諸世間(여시관제세간)에,
이와 같이 모든 세간을 관찰함에,
貪小欲味(탐소욕미)하야 受無量苦(수무량고)하고,
이것은 여러 곳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 조사스님들이 참 많이 인용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욕망의 맛을 탐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세상은 온통 그렇지 않습니까?
절 집안이라 하더라도 그런 관점에서 살면 전부 여기에 다 해당 됩니다. 貪小欲味하야 受無量苦라.
그런 경우가 예를 안 들어도 무수히 많지요.
終不爲彼五欲樂故(종불위피오욕락고)로,
마침내 저 5욕 낙을 위하지 않은 고로,
求無上菩提(구무상보리)하야, 無上菩提를 구해서
修菩薩行(수보살행)이요, 보살행을 닦음이요.
5욕 낙을 위하지 않은 까닭에 無上菩提를 구하고,
보살행을 닦음이요.
但爲安樂一切衆生(단위안락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안락케 하기 위해서,
發心하고 修習(발심수습)하야
成滿大願(성만대원)하야, 큰 원을 成滿. 원만히 성취해서
斷截衆生(단절중생)의 諸苦?索(제고견색)하야,
온갖 중생들의 여러 가지 고통의 그물과, 고통의 멍에,
이런 것을 끊어서 = 斷截해서
令得解脫이니라. 해탈케 하나니라.
라. 得樂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當以善根으로 如是廻向하야
令一切衆生으로 得究竟樂과 利益樂과 不受樂과
寂靜樂과 無依樂과 無動樂과 無量樂과
不捨不退樂과 不滅樂과 一切智樂이라하며
得樂(득낙). 낙을 얻는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當以善根(아당이선근)으로, 내가 마땅히 선근으로써
如是廻向(여시회향)하야, 이와 같이 회향하여,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得究竟樂(득구경락)과 利益樂(이익락)과
不受樂(불수락)과, 받아들이지 않는 낙과,
寂靜樂(적정락)과 無依樂(무의락)과
無動樂(무동락)과 無量樂(무량락)과
不捨不退樂(불사불퇴락)과 不滅樂(불멸락)과
一切智樂(일체지락)이라하며,
일체지혜의 낙을 얻게 한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그러한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것 得樂이지요. 낙을 얻는 것이다.
마. 智慧炬
復作是念호대 我當與一切衆生으로 作調御師하고
作主兵臣하야 執大智炬하고 示安隱道하야
令離險難하야 以善方便으로 ?知實義라하며
又於生死海에 作一切智善巧船師하야 度諸衆生하야
使到彼岸이니라
智慧炬(지혜거). 큰 지혜의 횃불.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我當與一切衆生(아당여일체중생)으로,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作調御師(작조어사)하고, 調御師가 되어서,
調御師. = 지도자.
作主兵臣(작주병신)하야, 병사를 맡은 신하가 되어서,
군대를 맡은 신하. 무슨 장군이나, 무슨 제갈량이나,
손무나 같은 그런 신하가 되어서
執大智炬(집대지거)하고, 지혜의 횃불을 잡고,
그런 사람들은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제갈량지혜 대단하잖아요.
示安隱道(시안은도)하야, 안온한 길을 보이며,
令離險難(영리험난)하야, 험난한 곳을 떠나게 해서,
以善方便(이선방편)으로, 훌륭한 방편으로써
?知實義(비지실의)라하며,
실다운 뜻을 알도록 한다 하며,
又於生死海(우어생사해)에, 또 생사의 바다에서
作一切智善巧船師(작일체지선교선사)하야,
일체지혜의 善巧船師. 선장이 되어서, 아주 지혜롭고 그리고 아주 익숙한 善巧. 아주 익숙한 선장이 되어서,
度諸衆生(도제중생)하야, 모든 중생을 건네서,
使到彼岸(사도피안)이니라. 저 언덕에 이르게 한다.
彼岸에 이르게 하나니라.
바. 行願具足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隨宜救護一切衆生하야 令出生死하며
承事供養一切諸佛하야 得無障碍一切智智하며
捨離衆魔하고 遠惡知識하야 親近一切菩薩善友하며
滅諸過罪하고 成就淨業하야
具足菩薩廣大行願無量善根이니라
行願具足(행원구족).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如是廻向(여시회향)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所謂隨宜救護一切衆生(소위수의구호일체중생)하야,
편의를 따라서, 마땅함을 따라서 일체중생을 구호해서,
令出生死(영출생사)하며,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며,
承事供養一切諸佛(승사공양일체제불)하야,
一切諸佛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게해서,
得無障碍一切智智(득무장애일체지지)하며,
장애 없는 一切智智를 얻으며,
捨離衆魔(사리중마)하고, 衆魔를, 온갖 마를 다 떠나고,
遠惡知識(원악지식)하야, 惡知識을 멀리해서,
親近一切菩薩善友(친근일체보살선우)하며,
일체보살과 선지식을 친근하며,
滅諸過罪(멸제과죄)하고, 모든 허물과 죄를 소멸하고,
成就淨業(성취정업)하야, 淨業을, 청정한 업을 성취해서,
具足菩薩廣大行願無量善根
(구족보살광대행원무량선근)이니라.
보살의 광대한 행원과 무량한 선근을 구족하느니라.
참 좋은 내용입니다.
(7) 衆生濟度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正廻向已에
作如是念호대 不以四天下衆生이 多故로
多日出現하고 但一日出하야 悉能普照一切衆生하며
又諸衆生이 不以自身光明故로 知有晝夜하야
遊行觀察하야 興造諸業하고 皆由日天子出하야
成辨斯事나 然彼日輪은 但一無二니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修習善根廻向之時에 作是念言호대
彼諸衆生은 不能自救어니 何能救他리오
唯我一人이 誌無侶하야 修習善根하야 如是廻向이니
所謂爲欲廣度一切衆生故며 普照一切衆生故며
示導一切衆生故며 開悟一切衆生故며
顧復一切衆生故며 攝受一切衆生故며
成就一切衆生故며 令一切衆生歡喜故며
令一切衆生悅樂故며 令一切衆生斷疑故니라
衆生濟度(중생제도)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正廻向已(정회향이)에, 바로 회향하고 나서,
作如是念(작여시념)호대, 이와 같은 생각을 짓되,
不以四天下衆生(불이사천하중생)이 多故(다고)로,
사천하의 중생들이 많기 때문에,
多日出現(다일출현)하고,
많은 태양이 출현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태양하나만 출현해도 사천하 중생들이 다 혜택 받는데,
뭐 하려고 중생 한사람ㆍ한사람 따라서, 하나ㆍ하나의
태양이 다 뜰 필요는 없다.’ ←이런 뜻입니다.
但一日出(단일일출)하야, 한태양이 출현해서
悉能普照一切衆生(실능보조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다 능히 환히 비춘다. 말입니다.
중생만 비추나요? 온갖 식물 동물 할 것 없이 사물을 다 비춘다.
又諸衆生이, 또 모든 중생이,
不以自身光明故(불이자신광명고)로,
自身光明을 쓴 고로,
知有晝夜(지유주야)하야, 晝夜가 있음을 알아서,
遊行하고 觀察(유행관찰)하야,
그렇지요. 밤에는 들어가서 자고, 낮에는 활동하고요.
遊行하고 觀察해서
興造諸業(흥조제업)하고, 온갖 업을 짓지 않고,
(不以自身光明故의 不자를 여기 새깁니다.)
皆由日天子出(개유일천자출)하야,
자기광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日天子出.
태양이 나와서 세상을 환히 비추니까 成辨斯事입니다.
成辨斯事(성변사사)나,
이러한 온갖 일들을 내가 전부 만들어 간다. 이 말입니다.
成辨해 가나니,
然彼日輪(연피일륜)은, 그러나 저 태양은,
但一無二(단일무이)니,
오직 하나지 둘이 없다. 말입니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또한 이와 같아서,
修習善根廻向之時(수습선근회향지시)에,
선근을 修習하여 회향할 때에,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이러한 생각을 하되,
彼諸衆生(피제중생)은, 저 모든 중생은,
不能自救(불능자구)어니, 능히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니,
何能救他(하능구타)리오?
그러니 능히 어찌 다른 사람을 구제하겠는가?
唯我一人(유아일인)이, 오직 나! 태양이 하나 듯이,
보살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참 대단하지요.
‘내가 중생들을 전부 구제할 것이다.’ 이 말입니다.
唯我一人이 誌無侶(지독무려)하야, 오직 홀로,
벗이 없어요. 같이할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修習善根(수습선근)하야 如是廻向(여시회향)이니,
그랬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는다. 이겁니다.
세상에 보살이 많겠지요. 보살이 많지만,
‘그 보살에게 의지하거나 부탁 하거나, 믿거나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내 임무를 내가 완수한다.’←이런 뜻입니다.
所謂爲欲廣度一切衆生故(소위위욕광도일체중생고)며,
일체중생을 널리 제도하고자 하는 까닭이며,
普照(보조)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널리 비추는 까닭이며,
示導(시도)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인도함을 보이는 연고며, 인도하는 연고며,
開悟(개오)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開悟하는 연고며,
顧復(고부)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들을 되돌아보는, 일체중생을 보살피는 연고며,
攝受(섭수)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攝受하는 연고며,
成就(성취)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성취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歡喜故(영일체중생환희고)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悅樂故(열락고)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悅樂. 기쁘게 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 斷疑故(단의고)니라.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이니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각오로 오직 내가 홀로하지,
다른 사람 기다리고 할 것도 없다.’ 이겁니다.
보살은 그렇게 해야지요. 그것 뭐
‘같이 해야 된다. 종단이 안 해서,’ 자기가 하면 되지,
무슨 종단이 해주길 바라요?
‘나라가 해야 되는데,’ 나라가 해주길 뭘 바라요?
나라나 종단은 실체가 없는 것인데요. 실체가 없습니다.
소임자 계속 바뀝니다. 대통령도 바뀌고, 종문의 소임자들도 바뀌고요. 실체 없습니다.
세상에 허망하고 실체 없기는 국가니 종단이니 하는 것
같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큰절에 사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더 축소해서 보면 어떻습니까? 자기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몸도 책임진 어떤 실체는 아무도 없습니다.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니고, 손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전부 뿔뿔이 다 흩어집니다.
四大各離(사대각리)하니
今者妄身(금자망신)은
當在何處(당재하처)오.
地水火風사대가 각각 뿔뿔이 흩어지니, 지금 망령된 이 몸뚱이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 우리 불자들은 최소한도 그런 이치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 그런 지혜가 자신을 이렇게 지탱해주는 아주 좋은 지팡이가 되기
도 하고 그래요. 그런 데에 대한 안목이 하나의 지혜로써, 그런 것이 큰 의지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 뭐 국가가 어떻느니, 종단이 어떻느니, 사중이 어떻느니, 누가 책임집니까? 청와대 기둥이 책임지는가요?
기왓장이 책임지는가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계속 “정부가 어쩌고ㆍ정부가 어쩌고...”
참~~ 답답하지요. 정부는 실체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그림자 보고하는 소리지요. 그것은 그림자 보고요.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림자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幻影. 환영은 그림자 보다 더 한 것이지요.
그림자는 그래도 실체가 있어서 나타나는 것이 그림자지
만, 환영은 잘못 본겁니다. 헛것입니다. 내가 눈병 나서,
착각해서 보이는 어떤 영상이 幻影이잖아요. 사실은 환영
보고 하는 겁니다. 종단이니, 정부니, 사중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부 환영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면, 내 몸에 대해서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것 역시 환영입니다.
‘내가 있다.’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환영입니다.
단순하게 환영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환영에 속아서 그동안 잘도 살아왔지
요. 환영인데 환영에 속아서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겁니다.
(8) 報恩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應如日이
普照一切호대 不求恩報하야 衆生이 有惡이라도
悉能容受하고 終不以此로 而捨誓願하며
不以一衆生惡故로 捨一切衆生하고
但勤修習善根廻向하야 普令衆生으로 皆得安樂하며
善根雖少나 普攝衆生하야 以歡喜心으로
廣大廻向이니 若有善根이라도 不欲饒益一切衆生이면
不名廻向이요 隨一善根하야 普以衆生으로
而爲所緣하야사 乃名廻向이니라
報恩廻向(보은회향). 은혜에 보답하는 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應如日(아응여일)이, 내가 응당히 저 태양이
普照一切(보조일체)호대, 일체 사물을 널리 비추되,
不求恩報(불구은보)하야, 은혜 갚기를 구하지 아니해서,
衆生이 有惡(유악)이라도 悉能容受(실능용수)하고,
악이 있더라도, 아주 나쁜 놈도 태양은 비춰주지요.
悉能容受하고.
終不以此(종불이차)로 而捨誓願(이사서원)하며,
이것으로써 서원을 버리지 않아요.
태양이 비출 것 안 비추지 않는다. 이겁니다.
햇빛 거둬들이거나, 무슨 햇빛만 비추고 따스한 기운은 없애거나 그렇게 않아요. 그대로 똑 같습니다.
不以一衆生惡故(불이일중생악고)로,
중생이 악한 놈이, 나쁜 놈이 있다고 해서
捨一切衆生(사일체중생)하고,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아요. ‘나쁜 놈이 있는데, 아이고 그것, 저것 때문에 다른 사람도 손해 보겠다. 다른 사람에게
까지도 은혜를 베풀지 못하겠다.’우리는 그렇게 하잖아요.
사실은 그런 경우 많잖아요. 그런데 보살은 그렇게 아니합니다. 아무리 나쁜 놈이 있다 하다라도 그것까지 다 감싸고 같이 가는 겁니다. 더불어 같이 가는 것이지요.
한 衆生이 惡故로 일체중생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랬습니다.
但勤修習善根廻向(단근수습선근회향)하야,
다만 부지런히 선근회향을 닦아서
普令衆生(보령중생)으로
皆得安樂(개득안락)하며, 다 안락하게 한다.
모든 중생을 전부 안락하게 한다.
1점짜리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마이너스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100점짜리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
이고, 별별 중생들 다 있지요. 으레 그런 것을요.
그렇게 알고 보살은 그것을 다 감싸고, 품고 가는 것이지
요.
善根이 雖少(선근수소)나, 선근이 비록 적으나
普攝衆生(보섭중생)하야, 중생을 널리 섭수해서
以歡喜心(이환희심)으로 廣大廻向(광대회향)이니,
환희 심으로써 광대하게 회향함이니,
若有善根(약유선근)이라도,
만약 어떤 이가 선근이 있다 하더라도
不欲饒益一切衆生(불욕요익일체중생)이면,
일체중생을 요익하게 하지 않고자 하면,
不名廻向(불명회향)이요. 그것을 회향이라 아니해요.
중생을 이익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회향이 아니지요.
不名廻向이지요.
隨一善根(수일선근)하야, 한 선근을 따라서
普以衆生(보이중생)으로, 널리 중생으로써,
而爲所緣(이위소연)하야사,
그 널리 중생들을 인연할 바를 삼아요.
전부 ‘나하고 인연 있는 사람이다.ㆍ인연 있는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해야
乃名廻向(내명회향)이니라.
그래야 비로소 회향이다. 말입니다.
마음이 툭 터져야 됩니다.
툭 터져서 어떤 경계도 없고, 어떤 분별도 없고,
취사선택이 없고, 가리는 것도 없고, 그 쯤 돼야 그것이...
至道無難(지도무난)이나
唯嫌揀擇(유혐간택)이라.
但莫憎愛(단막증애)하면
洞然明白(통연명백)이라.
명백하면 어쩌자는 말입니까?
洞然明白하면 어쩌자고요? 중생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으면 그것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하~~ 말은 기가 막히지요.
至道無難이나 唯嫌揀擇이라.
지극한 도는 하나도 어려움이 없고 쉽다.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증애심만 없을 것 같으면, 간택심만 없을 것 같으면 훤하
다. 훤해서 어떻게요? 그 다음에 뭐 하려고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이요. 明白하면 일단은 좋지요.
자기는 좋지요.
明白하다고해서 딱~~ 그냥, 그것만 품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천하의 참 小乘. 附佛法外道(부불법외도).
대승불교에서 그러지요. 불법에 붙어사는 외도다.
이 화엄경 같은 보살대승불교에서 보면, 특히 10회향 품
같은 데서 보면 그런 것이 참 같잖지요.
(9) 離相廻向
가. 種種廻向
安置衆生於無所着法性廻向과
見衆生自性不動不轉廻向과 於廻向에
無所依無所取廻向과 不取善根相廻向과
不分別業報體性廻向과 不着五蘊相廻向과
不壞五蘊相廻向과 不取業廻向과 不求報廻向과
不染着因緣廻向과 不分別因緣所起廻向과
不着名稱廻向과 不着處所廻向과 不着虛妄法廻向과
不着衆生相世界相心意相廻向과
不起心顚倒想顚倒見顚倒廻向과 不着語言道廻向과
觀一切法眞實性廻向과 觀一切衆生平等相廻向과
以法界印으로 印諸善根廻向과 觀諸法離貪欲廻向이니
解一切法無하야 種植善根도 亦如是하며
觀諸法無二하야 無生無滅廻向도 亦如是니라
離相廻向(이상회향). 상을 떠난 회향.
10회향 중에 제 1회향인데요. 제 1회향 이름이
救一切衆호대 離衆生相廻向입니다.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중생이라는 相을 떠난 회향이다.
그렇습니다. 여기 離相廻向이라는 것이 중생이라는 相을 떠난 회향. ←이 말입니다.
種種廻向(종종회향)
安置衆生於無所着法性廻向
(안치중생어무소착법성회향)과, 중생을 無所着.
집착할 바 없는 법성에 安置하는 회향과,
見衆生自性廻向(견중생자성부동부전회향)과,
중생 자성이 不動不轉함을 보는 회향과,
於廻向(어회향)에, 회향에 있어서
無所依無所取廻向(무소의무소취회향)과,
의지할 바도 없고 취할 바도 없는 회향과,
不取善根相廻向(불취선근상회향)과,
선근의 상을 취하지 아니하는 회향과,
不分別業報體性廻向(불분별업보체성회향)과,
업보 체성을 분별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五蘊相廻向(불착오온상회향)과,
오온 상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壞五蘊相廻向(불괴오온상회향)과,
오온 상을 깨뜨리지 않는 회향과, 오온 상을 집착하지 않는다고 오온 상을 그럼 무시하나요? 그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中道가 안 되지요. 바로 집착하지 아니하되, 무시하지도 않는 것. 五蘊빼버리면 우리가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사실은 오온이 다입니다.
色ㆍ受ㆍ想ㆍ行ㆍ識 ←이것이 우리 다 라고요.
그래서 무너뜨리면 안 되지요.
不壞五蘊相廻向이라. = 오온 상을 깨뜨리지 않는 회향이라.
不取業廻向(불취업회향)과,
업을 취하지 않는 회향과,
不求報廻向(불구보회향)과,
과보를 구하지 않는 회향과,
不染着因緣廻向(불염착인연회향)과,
인연에 染着하지 않는 회향과,
不分別因緣所起廻向(불분별인연소기회향)과,
인연 所起를 분별하지 않는 회향과, 회향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이 말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회향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不着名稱廻向(불착명칭회향)과,
명칭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處所廻向(불착처소회향)과,
처소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虛妄法廻向(불착허망법회향)과,
허망법에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衆生相世界相心意相廻向
(불착중생상세계상심의상회향)과,
중생상. 세계상. 심의 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起心顚倒想顚倒見顚倒廻向
(불기심전도상전도견전도회향)과,
心顚倒ㆍ想顚倒ㆍ見顚倒를 일으키지 않는 회향과,
不着語言道廻向(불착어언도회향)과,
語言道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觀一切法眞實性廻向(관일체법진실성회향)과,
일체 법 진실성을 관하는 회향과,
觀一切衆生平等相廻向(관일체중생평등상회향)과,
일체중생 평등 상을 관찰하는 회향과,
以法界印(이법계인)으로, 法界印으로써
印諸善根廻向(인제선근회향)과,
모든 선근을 印치는, 도장 찍는 회향과,
法界印으로, ←이것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觀諸法離貪欲廻向(관제법이탐욕회향)이니,
모든 법의 탐욕을 떠난 것을 관찰하는 회향이니라.
解一切法無(해일체법무)하야, 일체법이 없음을 알아서,
種植善根(종식선근)도, 선근을 심는 것도
亦如是(역여시)하며, 또한 이와 같으며,
觀諸法無二하야, 모든 법이 둘이 없어서,
無生無滅廻向도 亦如是니라.
無生無滅함을 관찰하는 회향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나. 業과 智慧
以如是等善根廻向으로 修行淸淨對治之法하고
所有善根으로 皆悉隨順出世間法하야
不作二相하나니 非卽業하고 修習一切智며 非離業하고
廻向一切智라 一切智가 非卽是業이나 然不離業하고
得一切智니 以業如光影淸淨故로 報亦如光影淸淨하며
報如光影淸淨故로 一切智智도 亦如光影淸淨하야
離我我所의 一切動亂思惟分別이라 如是了知하야
以諸善根方便廻向하나니
業과 智慧(업지혜)
以如是等善根廻向(이여시등선근회향)으로,
이와 같은 등 선근회향으로써
修行淸淨對治之法(수행청정대치지법)하고,
淸淨對治의 법을 수행하고,
所有善根(소유선근)으로
皆悉隨順出世間法(개실수순출세간법)하야,
다 출세간법을 隨順해서,
不作二相(부작이상)하나니, 二相을 짓지 아니하나니,
세간相이니, 출세간 相이니하는 상대적인 것을 二相이라고 그럽니다. 二相을 짓지 아니하나니,
非卽業(비즉업)하고, 업에 즉하지 아니하고,
修習一切智(수습일체지)며, 일체지를 닦으며,
非離業(비리업)하고, 업을 떠나지 않고,
廻向一切智라. 일체지혜에 회향함이라.
일체지에 딱 예속돼서, 卽이란 것은 그런 뜻이지요.
말하자면 닦는 것이 아니고,
업에 예속되지 않고 일체지혜를 닦고요.
또 그렇다고 업을 떠나느냐? 업을 떠나지도 않고 일체지혜에 회향함이라.
一切智가
非卽是業이나, 곧 업이 아니나
然不離業(연불리업)하고, 그러나 업을 떠나지 아니해서,
得一切智니, 일체지를 얻음이니,
업을 떠나서 일체지를 얻는 것도 아니니,
不자를 거기다 새겨야 됩니다.
그러나 업을 떠나서 일체지혜를 얻는 것도 아니다.
이것 참 유의해야 됩니다. 업과 지혜는 이와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以業如光影淸淨故(이업여광영청정고)로,
업이 그림자와 같아서 淸淨 = 텅 비어있는 까닭에,
報亦(보역), 업도 또한
如光影淸淨(여광영청정)하며,
업으로 광영과 같이 청정하고,
업에 따르는 報도 또한 그림자와 같아서 텅 비었어요.
업도 텅 비었고 과보도 텅 비었어요.
報如光影淸淨故(보여광영청정고)로,
報가 그림자와 같이 텅 빈 까닭에,
一切智智도, 일체지혜의 지혜.
평등과 차별을 다 아는 지혜지요?
지혜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亦如光影淸淨(역여광영청정)하야,
또한 그림자와 같이 텅 비었어요. 여기서 淸淨이라고하는 것은 무조건 텅 비었다고 보는 것이 제일 쉽습니다.
離我와 我所(이아아소)의
一切動亂과 思惟分別(일체동란사유분별)이라.
我와 我所의 움직임과 思惟分別을 떠난 것이다.
如是了知(여시요지)하야, 이와 같이 알아서
以諸善根方便廻向(이제선근방편회향)하나니.
모든 선근방편으로써 회향하나니라. ←이것이 업과 지혜에 관계 그런 회향법이다. 이런 말입니다.
업과 지혜에 관계되는 회향 법.
(10) 廻向의 利益
菩薩이 如是廻向之時에 度脫衆生하야 常無休息호대
不住法相하며 雖知諸法이 無業無報나
善能出生一切業報하야 而無違諍하야 如是方便으로
善修廻向이니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離一切過일새
諸佛所讚이시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一救護一切衆生호대 離衆生相廻向이니라
廻向의 利益(회향이익)
菩薩이
如是廻向之時(여시회향지시)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度脫衆生(도탈중생)하야, 중생들을 度脫해서,
常無休息(상무휴식)호대, 항상 휴식함이 없되,
不住法相(부주법상)하며, 법상에 머물지도 아니하며,
雖知諸法(수지제법)이 無業無報(무업무보)나,
비록 모든 법이 업도 없고 보도 없으나,
善能出生一切業報(선능출생일체업보)하야,
없지만 또한 일체업과 보를 잘 능히 출생함을 알아서,
而無違諍(이무위쟁)하야, 어기고 갈등, 다툼이 없어서,
如是方便(여시방편)으로, 이와 같은 방편으로
善修廻向(선수회향)이니라. 회향을 善修하나니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離一切過(이일체과)일새, 일체 過를 떠났을 세.
온갖 허물을 다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諸佛所讚(제불소찬)이시니, 부처님이 찬탄하는 바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第一救護一切衆生(제일구호일체중생)호대,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離衆生相廻向(이중생상회향)이니라.
중생이라는 상을 떠난 회향이니라.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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