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영국에서 한 노인의 사망이 화제가 됐습니다. 죽은지 6년뒤 발견됐다는 뉴스였습니다. 독거(獨居)노인의 고독사가 우리의 고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일본·미국·영국에서 생활해보며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자부심이 사문화(死文化)된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야만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 게이오대(慶應大)에 연수갔을 때 조국은 희대의 환란(換亂)을 겪고 있었습니다. IMF라는 터널을 빠져나오려던 시기였기에 ‘강한 일본’을 눈여겨봤지요. 그때 인상 깊었던 게 60대 이상의 활발한 사회 참여였습니다. 미남미녀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중년 이상 세대는 각 분야의 일선에서 배척된 우리와 일본은 달랐습니다. 백발성성한 이들의 자리가 분명했습니다. ‘고령화사회의 해법은 바로 이 길이구나.’하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60~70대들이 주인공인 분야는 의외로 많았습니다. 어느 영화해설가는 구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망 후 사회면 톱으로 다루더군요. 인생의 심오함, 삶의 신산(辛酸)을 전달하는데 무슨 ‘꽃미남 꽃미녀’가 필요하겠습니까?
더 관심있게 바라보았던 현상이 신문을 장식하는 부음(訃音)기사였습니다. 우리는 아침 신문에 부음을 비중있게 다루는 경우가 드물지요. 뒤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활자로 발인날짜와 병원, 연락처를 적는 정도입니다. 일본은 한 인간의 사망을 시대를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듯 했습니다. 1면이나 사회면 톱으로, 그것도 전면(全面)을 할애해 보도하는 경우를 여럿 봤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고독사(孤獨死) 같은 경우가 적지 않지만요.
미국, 정확히 말하면 하와이에서 놀란 것은 버스를 이용했을 때입니다. 미국버스는 굉장히 속도가 느리고 승하차할 때의 편의가 대단합니다. 앞바퀴에 바람이 스스륵 빠지면서 휠체어가 오르내리는데 불편이 없습니다. 운전기사 뒷좌석, 즉 버스의 전반부는 대부분 노인들이나 임산부, 유모차를 가지고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간혹 그런 ‘불문율’을 무시하는 것은 대부분 동양인들입니다. 그럴 때 미국인들은 단호하지요.
“이 자리는 노약자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주위사람들도 수긍합니다. 우리에게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젊은이가 “왜 시비냐?”며 주먹을 들지 않았을까요? 이런 폭력사태를 우리는 이제 심심치않게 봅니다.
영국에서는 노인들의 활발한 모습에 감탄합니다. 카페에 홀로 앉아 독서를 한다든가, 마켓에서 노인들이 차와 샌드위치를 즐긴다는가, 학술 모임에 활발하게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참석해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 독서하는 할머니 위로 '예스(yes)'라는 단어가 보인다. 긍정적인 삶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사진=이서현
그런 편린(片鱗)들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①영국의 노인들은 ‘양보’를 절대 기다리지 않습니다.
길 갈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오히려 양보를 합니다. 문(門)이 열리자마자 달려들어 엉덩이부터 들이밀거나 ‘자선’을 바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습니다.
②영국의 노인들은 남들과 마주칠 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젊은 놈이 왜 인사 안해?’하는 식의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친절한 미소와 함께 덕담(德談)을 실천합니다. 뭔가를 물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③영국의 노인은 당당합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관광지에서, 극장에서, 서점에서 문화를 즐기고 인생은 끝까지 달리는 마라톤임을 입증하듯 지식욕이 넘칩니다. 그런 노년은 풋풋한 젊음 못지않게 매력적입니다.
- 옥스포드 시티센터의 거리에서 독서하는 노인. 영국에서 책과 신문의 가치는 여전히 유용하다./사진=이서현
④영국의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올인한 뒤 기대지 않습니다. 이게 영국식 연금탓인지, 젊어서 저축을 많이 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외는 있겠지요. 하지만 노인 거지는 본 적이 없습니다.
⑤영국 노인들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히틀러, 무솔리니와 싸웠고 스탈린과 겨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켜냈기에 어떤 논쟁이 생겨도 자신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업적을 기념합니다.
- 이른바 '땡땡이 무늬' 옷을 입고 자전거로 거리를 활보하는 영국의 할머니./사진=이서현
- 블레넘 궁전의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 사진처럼 그들은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이서현
영국의 대중교통도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버스에 타면 대부분 2층으로 올라갑니다. 1층은 나이든 분이나 임산부, 뭔가 배려해야할 이들의 자리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지요.
뉴스로 서울시에서 2층 버스를 도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가지 선행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패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첫번째가 운전기사의 인내심-저속운전과 승하차할 때의 충분한 시간확보-가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1층에만 승객이 몰리는 현상-우리 민족 특유의 ‘나만 먼저’ ‘빨리빨리’와 연관됩니다.-이 개선되지않으면 버스가 전도(顚倒)되는 사태도 우려됩니다. 이 두가지 요건은 버스회사와의 수지와도 연관될겁니다.
- 블레넘 궁전의 도서실을 보는 노인들. 켜켜이 먼지쌓인 장서들이 마치 그들의 인생을 상징하는듯하다./사진=이서현
영국에서 보기드문 현상 가운데 하나가 어린아이들을 식당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펍같은 곳은 아예 오후 6시 이후에는 출입을 금지시키는데 그것은 술을 파는 곳이라 당연하겠지만 일반식당도 엄격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어린아이들이 식당 내부에서 온통 소리지르고 야단법석쳐도 서로 못본 체 합니다. 간혹 종업원들이 제지를 하면 난리가 나지요. “왜 우리 귀한 아이 기를 죽이느냐?”면서요. 전 그 원인을 이렇게 봅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특유의 ‘나만 먼저’ 의식이 아이에게 적용됩니다. 그 결과 공중도덕이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엔 사회적으론 질서 해체, 국가적으론 원로(元老)의 부재에 따른 가치의 혼돈으로 나타납니다. 일본, 미국, 영국이 어찌 아이 수가 줄어들고 핵가족화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도 이런 혼란상을 겪었겠지요. 그렇다면 가치를 재정립하는 노력을 했을 것이고 거기서 우리와의 차이가 생겼을 겁니다.
- 유명 관광지 버튼 온 더 워터에서 만난 부부. 이들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덧없는 인생을 속삭이고 있을까./사진=이서현
제가 영국과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을 면밀히 검토해보진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영국의 노인들은 우리 노인들보다 행복해보였습니다. 그게 수입의 과다(寡多)나 의료혜택의 차이 때문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 의료제도는 선진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보다 편리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뉴스에 팔뚝이 잘릴뻔한 영국인이 병원 세군데를 전전하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식 의료의 맹점이지요.
영국은 주치의 제도를 둡니다. 주치의에게 미리 검진을 받으며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줄인다는 취지지만 응급환자가 생길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지요. 갑자기 극심한 치통이 생긴 겁니다. 이럴 때 외국인은 별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부룩스대학병원에 전화해보니 “예약을 해야한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더 참을 수 없어 “굉장한 응급상황이다. 도와달라." 고 했지요.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영국의 노인들을 보며 ‘노인’이란 단어를 대체할 말이 없을까 궁리해봅니다. ‘실버(Silver)’는 조금 값싸보이고 ‘백금(白金·Platinum)세대’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요. 황금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더 값진 백금 말입니다.
- 유명관광지 바스의 '로만 바스'에 입장하는 노인들./사진=이서현
- 광장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인들./사진=이서현
- 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영국의 노인들. 우리처럼 카페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사진=이서현
- 쇼핑을 마친 뒤 차를 나누는 영국의 할머니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거리는 더 활기차다./사진=이서현
- 세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서웨이의 집에서 관리를 맡고있는 할머니가 화사한 꽃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사진=이서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