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았으니 바로 그날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날이니 매년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 즉 건국절로 삼아 기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이를 대한민국의 건립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국가란 영토와 주권, 국민이라는 3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상하이 임시정부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국가를 단지 법적 실체로만 보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국가는 단지 법적 실체인 것만은 아니다. 국가는 철학적・이념적 실체이다. 왕국은 왕을 비롯한 주변 신하 몇몇이 “이제 내가 왕이고 내가 다스리는 나라를 ‘○○왕국’이라고 한다.”라고 선언하여 그것에 포함된 이념을 퍼뜨리고 동의를 얻어내면 성립한다. 그때부터 반대하는 세력을 무력과 설득력으로 복속하게 하면 된다. 그 왕의 통치력(주권)이 미치는 영토가 확정되고 그 영토에 사는 주민이 모두 통치력에 복종한다는 명시적 의사 표시가 있어야만 왕국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저항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면 건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건국하겠다는 선언으로 주권이 먼저 성립되고 영토와 주민에 대한 지배력은 후차적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왕국이나 공화국이나 마찬가지다.
건국을 기념하는 행위는 더욱 그렇다. 건국일을 기념하는 것은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을 공고화하여 국가 주권을 강화하자는 데 있다. 따라서 건국기념일이 영토, 주권, 국민이라는 국가의 3요소가 모두 갖추어진 날일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 건국기념일은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을 선언하거나 그 이념을 형상화하는 행위를 개시한 날을 기념하여 그 이념을 재확인하는 날이다.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파리조약이 체결된 것은 1783년 9월 3일이고 조약이 발효된 날은 1784년 5월 1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이다. 이날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공화국의 건국기념일, 즉 혁명기념일은 부르봉왕조가 무너진 날도 아니고 프랑스 제1공화국이 출범한 날도 아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날이다. 파리시민들은 1790년 이 날을 건국기념일로 기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이념을 세계만방에 최초로 선언한 날이 언제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을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이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지 10년 만에 독립선언을 공표했으며, 2천만 동포는 이를 열렬히 환영하며 동의했다. 이것으로 대한민국은 건국된 것이다. 곧이어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헌장(나중에 임시헌법)을 채택한 것은 독립선언서의 이념을 법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며, 임시정부를 구성하여 그 이념을 실현할 기구를 갖추고 주권을 확보했다. 물론 영토는 여전히 일제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임시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한적으로나마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주민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3월 1일을 단순히 독립 만세운동을 개시한 날로 기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부적절하다. 마땅히 건국기념일, 독립기념일로 제정하여 대한민국의 이념을 되새기고 우리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더 있다. 일부 논자들은 우리 민족의 이념은 홍익인간이고 그 이념을 선포한 날이 개천절이니 개천절이 다름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와 민족을 혼동한 데서 나온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