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년회는 많지 않은 사람이 모였고, 분위기도 왁자지걸하기 보다는 조용했습니다. 올해 81선배는 전멸했습니다. 세월의 무게에 짖눌린 듯 약간은 가라앉은 분위기였는데 내 생각이 그런 건지 아니면 실제인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봐야 하겠습니다. 술도 많이 먹지 않았고, 저녁 10시 반 즈음에 헤어졌습니다.
어제 송년회에서 내가 산청에 집터와 텃밭을 산 이야기를 했다가 너무 비싸게 샀다고 최영진한테 얼마나 핑잔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는 좋습니다. 집터와 텃밭이 꼭 내맘에 드는데, 돈은 없고 해서 집을 담보로 돈을 융통했고, 집은 팔려고 내놨습니다. 집이 팔리면 윗층에 사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 작정입니다. 집터 주소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392-1,2,7,8 네 필지인데 약 576평 정도 됩니다. 2억2천에 샀고요. 잔금만 12월 초에 치르면 됩니다. 인터넷 위성 사진으로 보면 집이 보입니다. (대)가야 왕궁터가 100M 정도 떨어져 있고, 뒷 산에는 구형왕릉이 있습니다. 내가 터를 고르는 기준이 큰 산과 물이 있어야 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주변경관이 막개발로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터는 문화재관리구역이면서 상수원보호구역이라서 부동산투기적 입장에서는 가치가 별로 없는 지역입니다. 마을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터를 고르는 기준 중에 하나가 마을과 가깝되 마을 안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안에 있으면 많이 힘들답니다.
주변에 지리산 둘레길도 있고, 계곡도 있어서 여름 휴양지로는 제격입니다. 30평짜리 황토(고령토로 찍은 벽돌집으로 내부는 황토로 되어 있습니다.) 집도 있고, 내 친구가 혼자서 생활하는데 방이 3개라서 자기 먹을 것만 챙겨오면 언제든 놀러 갈 수 있습니다. 내년 휴가 때 마땅한 곳이 없으면 공짜로 사용할 수 있으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82동기는 한번 날을 잡아 놀러 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은 대학 못가고 고민하다 부사관에 지원해서 훈련받고 있는 큰 아들에게 계약 직전에 쓴 편지입니다. 많이 들떠서 쓴 글이라 엉망이지만 당시의 내 마음을 잘 대변했기에 전문을 올립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모두의 가정에 평안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주원아 보아라. 아빠는 지금 큰일을 벌이고 있다. 아마 오늘 오후면 결정 날 것이다.
엄마와 아빠 세대는 불행히도 수명이 120살까지 늘어나는 첫 세대일 것이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서 적당히 70까지 살다 하늘나라에 불려 가면 좋겠지만 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계속 늘리는구나. 그래서 그 긴 인생의 후반부(60년 동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건강하게 사는 법이고, 다음으로는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세대가 늙어서 병들고 불행해지면 그것이 다 너희 세대에게 떠 넘겨진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 아빠와 엄마를 위한 것이지만 너희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아빠 엄마 세대는 부모를 모셔야 하고 또 자식을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취직시키는 것까지를 자기 의무로 여기는 세대이다. 전형적인 386세대이다. 이 386세대가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을 일으켜,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서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을 세워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세대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 결국 노년에 고생하게 되어 있고, 그 부담이 자식들에게 떠 넘겨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빠 세대는 위기의 세대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고등학교 졸업까지 더 나아가면 대학교 입학금까지만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머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대학교 학비가 너무 비싸다. 그래서 대학 졸업까지로 늘려 잡았다. 그런데 세상은 넓어서 대학이 아니고도 다른 길이 많다. 주원이가 스스로 대학이 아닌 선택을 해줘서 아빠는 너무 기쁘고 고맙다. 그것이 너를 위한 것이고 부모를 위한 길이다. 주훈이도 공부가 특기적성이 아니어서, 대학이 아닌 새로운 인생길을 살게 되길 빈다. 그래야 아빠에게 노후자금 마련의 여유가 생긴다. 지금 시대는 대학을 언제든지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말이다.
경남 산청에 외할머니랑 셋째 이모와 함께 주택을 낀 터를 살펴보러 간다. 마음에 들면 계약할 꺼다. 터가 꽤 넓어 더 집을 지을 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셋째 이모, 성수네 이모가 함께 살 예정이다. 아마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외삼촌네랑 광양 이모부네도 들어 올 수 있고, 큰고모가 들어와 살 수도 있다. 그리되면 터를 더 넓혀야 하겠지만 말이다. 너희 세대 중에서는 네 동생 주훈이가 유일하게 함께 살 수도 있다. 너희는 너희 나름대로 도시가 되었든 시골이 되었든 정말 열심히 살다가 자식을 대학 또는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고 나서 노후를 생각하고 가난하게 살 마음이 있을 때 빚이 하나도 없이 일정한 자금과 연금을 마련하게 되면 그땐 너희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다. 그런 터를 잡는 것이다. 이모는 5-6년 뒤, 아빠와 엄마는 아빠가 퇴직하는 6-7년 뒤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를 모시고 들어가 살 계획이다.
가야 왕궁터와 왕릉이 있어서 산청군에서 문화유적지로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막개발 되는 것을 막아 놓은 곳이다. 또한 주변에 지리산이 있고, 경호강이 있는데 상수원 구역이기도 해서 여러 가지 제한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참으로 아름답다. 또한 굉장히 오랫동안 이 아름다운 풍경를 유지할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건강하게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귀촌생활에는 안성맞춤인 터이다.
그 터에서는 개성에 맞게 다양하게 노년을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촌에서는 일손이 많이 딸려서 적은 품삯을 받으며 일할 수도 있고, 텃밭을 가꾸며, 자기 취향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각자 자기 연금이 있어야 한다. 농사 지어보지 않던 사람이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면 너무 힘들어 대부분 적응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적지만 생활비는 연금을 통해 꾸준히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부식거리를 자급자족하며 가난하게 살 작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더 이야기 하마. 건강하게 사는 법과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너도 많이 생각해 봐라.
꿈꾸는 아버지가.
첫댓글 명한아, 축하한다. 인생 후반을 위한 멋진 계획이다. 그래 네 말대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지 않으면 더욱 괴로운 것이다. 건강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잘 터득하기 바란다. 내가 뒤늦게 허브 공부를 하고 믿음 생활을 하게 된 것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기도 했다. 비록 허브 숍을 운영하느라 뜻하지 않게 비즈니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했지만 그것도 다 훈련이었다. 어쨌거나 너의 인생 후반의 노후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삶이 찰나라면 영원인 죽음을 예비하는, 어쩌면 윤회하는 것을 준비하는 것도 내 후반부 인생의 과제의 하나인데 아직은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불교에선 마음 속 깊고 깊은 텅비어 있지만 가득찬 자리를 보는 것을 견성이라 설명한느데 견성까지는 아니어도 내 마음과 그 밑바탕을 얼핏이라도 좀 들여다보고 나서 나를 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모시고 살 수 있는 공감대가 있는 분위기가 참 넉넉해 보입니다. 꿈꾸시는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쉰이 다되니까 세삼 인생을 달리보게 되는데 가정은 여자를 중심으로 굴러가야 평화가 유지되는 것 같더라. 세상도 요즘에는 그렇게 굴러가지. 어떤 신부님은 그러시더라. 남자 쉰이 넘어 가정에서 외톨이가 되지않고 인정받으며 살려면 여자가 시키는대로 살라고. 그래서 결심을 하기를 마누라 생각대로 하기로 했다. 거기에 우리 부모님도 끼어 넣은 거고. 그렇지만 요즘엔 처가살이에 등살이 휘는 남자들도 있다고 하드만. 결국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