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2:1~21)
어제 본문에 이어서 오늘도
성전 예배의 회복을 위해 제사장 및
여러 예배 관련 직분을 규정한다.
성전 예배를 위해 여러 가지 체계를 정립하는 것은
온전한 예배를 위한 충분조건이다.
즉 성전 예배의 체계 정립이
온전한 예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반대로 온전한 예배가 성전 예배 시스템 정립으로만
모든 것이 충족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시스템 정립은 기본 필수요건이고
거기에 많은 것들이 담겨져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적 동기, 마음의 중심, 진실성(신령과 진정) 등이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또 흔히 성전 예배와 생활 예배를 분리해서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그 두 예배가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성전예배가 온전하다면 생활에서도
예배적 삶을 살도록 도전받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활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마음을 잡고 실천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 당연하다.
장로교 통합 측에서
목사의 정년을 연장하는 규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논리는 시골 목사님의 부족이다.
도시의 대형교회는 기성세대가 꽉 잡고 있는 반면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현장에 발도 내밀지 못하는 현실이다.
시골 교회에 투신하지 못하는 목회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목사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얼마나 해결의 몫을 감당할까?
문제 해결을 위해 목사 정년 연장이
몇 %나 기여할 수 있을까?
정말 미미할 것임이 틀림 없다.
근본적 원인이 정년 연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천하고 졸렬한 변명으로
도시의 대형교회 소수 목사들이 누릴 세속적 편리함이 흉측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젊은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또 교회라는 존재를 혐오할 것이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나
목사님들의 정년 연장이 필요한 것인지 갈등을 조금 할 뿐이지,
세상 사람들은 ‘그들만의 코미디가 또 시작되었다.’고
쓴웃음을 질 것이다.
<오늘의 명언>
‘주님은 우리가 의도한 때와 계획한 방식, 인간적 이해를 뛰어넘어
가장 옳은 것을 행하시는 분이다.’ -딘 더 한-
오늘의 명언을 보며 생각한 것.
한심한 교회의 행태를 보며 답답해 하는 것,
반면 한심한 짓을 하며 그런 세속 추구가 지속될 것 같은 어리석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한 방식과 인간적 이해를 뛰어넘어
가장 옳은 방향으로 고쳐짐으로,
가장 선량한 방식으로 창조의 질서로 환원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제발 그들이 위기감을 느끼기를
긍휼한 마음을 최대한 짜내며 소원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을을 보내 주셨네요!
너무나 죄송하게도 이런 찬란한 지구를, 우주를
저희들의 죄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최소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서
지금이라도 물리적 환경이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분투하게 하소서.
다음 세대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하소서.
이 좋은 가을의 기운이
양정환에게, 양소영에게, 우리 가족과 아들의 여친들에게,
사랑하는 단국대 학생들에게, 친지들에게, 교회 식구들에게,
특별히 목장 식구들에게, 저희 지체들에게, 저희 어머니에게,
지금 이 시간 말로 표현못할 물질의 고통, 질병의 고통, 갖가지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영혼들에게
같은 은혜와 벅찬 감사로 스며들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과 내일, 천안에서 학생들을 상대하고 학교 일을 합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셔서 보람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