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드라이브
김 영 숙
매일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잠만 자게 되니 언제부턴가 나에게 먹혀 주기만 하는 밥보기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하루의 에너지를 주는 너에게 기필코 밥값을 하겠노라는 다짐을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인가 곰곰 생각하다가 여고시절부터 취미 란에 적어 넣었던 버스드라이브 생각이 났다. 장소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망설이다가 요즘 자주 보고 있는 연속극의 무대인 백제권이 떠올랐다. 재작년에 문학기행도 가본 적이 있어 초행이 아닌 남원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 가장 맛있고 가격 저렴한 식당 이름과 미니 담요에 수필집과 먹을 것을 챙겨 길을 나서려니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밑의 여동생이 집에 노느라 심심할 테니 맛있는 점심 해주겠다고 오라고 했다. 첫마디에 일탈하러 남원 간다고 했더니 일기예보에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더라며 낭만도, 취미도 개성도 다 좋지만 이 나이에 버스타고 미친 일 아니냐며 다음에 가라고 말리기도 했다.
버스드라이브하면 아주 옛날에 있었던 웃지못할 사건들 몇 가지가 생각이난다.
처녀시절 퇴근길에 버스드라이브를 하다가 어느 정류소에서 속으로 우스운 일이 생각나 창밖을 보며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남자가 떠나려는 버스를 붙잡고 뛰어 오르더니 자기를 보고 왜 웃느냐며 다짜고짜로 팔을 붙잡고 막 내리라고 했다. 혼자 속으로 웃을 일이 있어서 그랬으니 그렇게 봤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내려라 못내린다로 싱강이를 벌이다가 차장과 주변의 만류로 무마되었지만 지금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부근쯤 가면 젊었던 날들의 그 어처구니없음에 입가로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사십이 불혹이란 말은 벌써 옛말일거고 오십이 넘었는데도 나는 버스만 타면 잠이 쏟아진다. 습관인지 병인지 모르지만 이 일로 내가 곤경에 처하거나 함께 탄 사람을 민망하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큰놈이 어릴 적에 한밤중에 버스를 타고 친정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자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깜박 잠이 들었는지 깨어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을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할 수 없이 내려 길 건너편에서 다시 갈아타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또 잠이 들었는지 꿈결에 어떤 아가씨가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깨우기에 일어나 보니 종점이 가까운 칠곡의 동명이었다. 엉겁결에 내려보니 사방에는 집도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없이 캄캄한 벌판이었다. 핸드폰은 물론 집에 전화도 없고 통금까지 있던 시절이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타고 온 차는 막차라서 내일 이침에 나간다고 하니 시간도 꽤나 되었을 것이고 한겨울의 밤바람에 뺨과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발고 시렸다. 춥고 배도 고파 내가 한 일에 분노가 치밀고 짜증이 나 내 자신에게 분풀이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믿을 곳이라곤 등에 업힌 백일 지난 아이 뿐이라 생각하니 무섭고 슬퍼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흘러 내렷다. 그러다가 내 설움에 복받쳐 엉엉 소리까지 내며 길가에 서서 대성통곡을 했더니 갑자기 아이가 놀랐는지 자지러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조금 들어 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가쁘거나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뛰다 보니 등줄기에 땀도 흐르고 얼굴도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오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 한참을 기다리다가 가까스로 택시를 합승해 집보다는 가까운 친정에 들어섰더니 거의 통금이 가까워져 있었다. 남편도 친정에 와있었고 아이를 업은 채 어디로 붙잡혀 갔다고 시댁까지 다 초비상 상태가 되어 있었다.
어디로 갔었느냐고 질문이 쏟아졌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인 듯해 부끄러워 차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다들 알게 되어 두고두고 등신 같다고 놀림 받으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가용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거의가 버스를 타고 놀러가는 사람이 참 많았다. 일요일 오후쯤 할일이 없으면 친구들과 가끔씩 동화사를 찾았다. 자리는 항상 나이 드신 분에게 양보를 덜해도 되며 다른 사람의 이목이 없어 뭘 먹기에도 알맞은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나 시야가 가리지 않아 달리는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오는 맨 앞자리를 자주 선택해 앉았다. 종점에 도착하면 우리는 내리지 않고 그냥 앉아 있어 자리가 확보되어 있지만 서로 먼저 타려고 줄이고 질서고 없이 마구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더러는 창문으로 가방이나 짐 보따리를 밀어 넣으며 자리 좀 맡아 달라고 부탁할 때는 친구들과 눈 싸인을 주고받으며 잘 생기고 인상 좋은 남자들 것만 골라서 받아 꼭 내 자리 내어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가 콩나물시루처럼 만원이 되어 떠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차문에 매달리자 여차장은 다음 차로 오라며 결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궁둥이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기 모자를 벗어 차장 머리에 씌우며 타려고 하자 그 모자를 벗어 휙 던지니 그 남자도 포기한 듯 버스에서 내려 멀어지고 있었다.
서부정류장에서 남원행에 오르니 우등이라는 따뜻하고 폭신하고 좋은 차에 손님이 기사까지 합쳐 네 사람밖에 안되었다. 이렇게 손님이 적어서 타산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주말이나 명절도 있고 휴가철에는 좀 낫다고 했다.
준비해간 미니 담요를 두르고 수필집을 꺼내어 몇 줄 읽다보니 또 졸음이 스르르 찾아온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밥값 하기로 약속하고 집 나섰으니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항상 가까운 경주 쪽만 맴돌다가 생소하기도 했지만 산새도 틀리고 창밖 풍경도 많이 달랐다. 전라도에 폭설이 내렸다더니 온 산과 들의 눈만 보고 가더라도 충분히 그 값은 할 것 같았다. 우선 내려 점찍어둔 황토 한식 뷔페 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광한루에 들렀다가 그때 너무나 인상 깊어 언젠가 혼자 한번 찾아오고 싶었던 이도령과 춘향이의 테마공원으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길도 얼어붙어 미끄러웠고 사람들의 인적은 뜸했지만 어디 가서 이런 설경을 보랴 싶었다. 겨울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마다 하얀 벚꽃이 만발한 듯 햇살에 반짝거려 눈이 부시고 소나무 위엔 하얀 새들이 무더기로 앉아 날을 준비를 하는 듯해 가을의 운치와는 또 다른 신의 멋진 인테리어 솜씨가 연출되고 있었다. 코트 깃으로 스며드는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바람에 대충 둘러보다가 내려와 그때 봐둔 로미오란 커피숍의 문을 밀었다. 이른 시간인지 실내는 조용했다. 아늑하고 따뜻한 난롯불 옆에서 커피 한잔에 음악을 들으며 몸을 녹이니 온몸과 정신이 나른해지며 또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서둘러 잠을 떨치고 밖으로 나오니 찬 공기와 함께 눈 덮인 긴 겨울강둑이 눈에 들어왔다. 난 강물만 보면 내 꿈같은 유년시절이 떠오르고 어린 날 그 강물을 무작정 따라가던 풍경들이 마음에 불을 지핀다. 여고시절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 그때의 22번 버스 종점인 동촌 강변을 자주 찾았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강둑길을 걸으며 그린 필드라는 팝송을 원어로 연습하느라 애를 먹기도 하고 뚜르게네프의 첫사랑 이야기를 수도 없이 주고받으며 풀꽃반지를 만들어 서로에게 끼워 주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옛날생각의 터널에 빠져 한참을 걷다 보니 바람도 차고 매웠지만 아까부터 스카프를 쓰고 뒤따르는 듯한 여인이 마음에 걸렸다. 앞서 가게 하려고 잠시 멈추어 섰더니 머뭇거리며 다가와 혹시 실연하셨느냐며 심각한 얼굴로 물어왔다. 순간 불안했던 내 기우는 깨어졌지만 이 나이에 이런 곳의 혼자 외출은 남들에게 저렇게 비쳐지는구나 싶어 얼른 나를 정돈해 지나가던 택시로 주차장을 향했다. 돌아오는 차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안흥 찐빵의 숫자만큼한 여섯 명이 타고 있었고 눈을 뜨니 또 대구였다.
살다 보면 別別한데 신경이 쓰여 지는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는 항상 소풍이나 여행이란 말을 마음에서 일으켜 훌쩍 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는다. 생각 없이 바깥 풍경과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염없이 관찰하다 보면 기분이 유쾌한 쪽으로 바뀌기도 한다. 천원으로 대구 일주를 하며 낮잠까지 푹 즐길 때도 있고 발목 잡힌 딱딱한 곳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머물며 아름다운 계절과 풍경들을 만나러 조금 먼 곳을 택하기도 한다. 그 길이 그냥 목적 없는 버스드라이브라도 좋고 알싸한 박하사탕 같은 사람이라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더없이 신명나고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좋은 취미가 내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항상 퇴근길에서 한 정거장 뒤에 타게 되는 남편을 만나 정이 들어 결혼도 했으니 말이다. 또 애써 운전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 취미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말로 엄마 취미에 대해 충고 하나 해도 되겠느냐고 아들이 물어왔다. 해보라고 했더니 모자 우아하게 쓰고 창문에 머리 박으며 자려거든 제발 입석 대신 좌석버스라도 좀 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첫댓글 며칠 전 낯 선 여인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내게 짙은 추파를 보냈습니다. 이럴 땐 따라가야 합니까, 우짜마 좋습니까?
교통이 불편하던 그 옛날의 버스 풍경이 재미있습니다. 남자들만 혼자 여행을 즐기는가 했더니 대단한 취미를 가졌셨습니다.
이런 경험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죠...저는 버스를 놓쳐서 기절한 일도 있습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