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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
이 기 영
1
강참봉 집 창고를 짓는 인부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한참 동안 쉬게 되었다. 목수들은 주막으로 더운점심을 먹으러 가고 인부들 중에도 찬밥을 싸가지고 온 사람들도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치삼이 어서 이리 오게 응!”
“아니 난 생각 없어…… 자네나 어서 먹지.”
원식이는 찬밥 바가지를 망태기에서 꺼내며 한동리에 사는 치삼이를 보고 같이 먹자고 부르는데 치삼이는 저편으로 베돌며 굳이 사양하는 말이다.
“아따나 같이 좀 뜨게나그려. 조곰 요기하면 그래도 낫지. 근행아, 너도 이리 오너라 응!”
하고 ‘아따나 박서방’도 밥을 못 가지고 온 정첨지 아들을 같이 먹자고 권한다. 그러나 그들의 싸가지고 온 벤또라는 것은 거의 맨 좁쌀에다가 풋나물을 찢어 넣어서 마치 풀떼기같이 만든 것리었다. 어떤 이의 것은 그것도 못 되고 수숫겨와 쑥으로 개떡을 부친 것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모두 허발을 해서 먹으며 그나마 못 가지고 온 사람보고 같이 먹자고 동정하는 터이었다.
“아, 배부르다…… 아따나 같이 좀 뜨지 않고 그래!” 아따나 서방은 빙그레 웃으며 치삼이를 또 바라보다가 부시럭부시럭 배를 담는다.
“아니 괜찮어요…… 참 시작이 반이라드니 거진 절반은 된 모양이지.”
그는 뒷짐을 지고 서서 벽돌로 쌓아 올리는 창고를 쳐다보며 신기한 듯이 부르짖는다.
“글쎄 처음 시작할 때는 엄두가 안 나 보이더니만…… 참 사람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야.”
“벌써 우리도 이틀째가 아닌가. 아즉도 며칠은 더 와야 할 모양이지.”
“글쎄……난 큰일 났는데…….”
“누구는 큰일 안 나고…… 돈이나 있어야 품을 사서 대신 보내지.”
“제 ――미 붙을……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남을 며칠씩 건부역¹을 시킨담! 그래 자기 혼저만 잘살자고 남은 죽어도 좋단 말인가.” 우락부락한 원식이는 별안간 분통이 터지는 듯이 두 주먹을 부쥔다. 그는 자기 집에 할 일이 많았다.
“허허 누가 살라는 것을 사나. 돈 없으면 죽으라는 세상인데.”
“그래도 우리 농군들이 없어보우. 부자들이 저 혼저 잘살 수 있겠나.”
“그야 그렇지만…… 우리들이 무슨 힘이 있는가 원!”
“왜 힘 없어요. 그렇기에 힐심 단합을 하란 말이 아니여요?”
“하긴 그렇지. 일심 단합만 되면 천하에 무서울 일이 어디 있겠나.”
“참 강참봉 아들은 또 첩을 얻었다지?”
“이번 첩은 아주 하이칼라 여학생이던 데요.”
“넌 벌써 보았니? 곰보가 계집은 되우² 줏어들인다.”
“아니 그럼 멧짼가?”
하고 원식이가 신이 나서 대드는데
“무얼 아즉 한 다쓰도 못 되는 셈이지.”
하고 식자나 있는 치삼이가 시치미를 뚝 따고 말한다.
“강참봉도 월전에 기생첩을 했다지.”
“아니 부자가 번갈어 계집만 줏어들이면 그것들이 대체 가만있다나.”
“그러기에 밤낮 풍파라우. 일전에도 큰마누라와 사이에 싸움이 나서 시쳇말로 동맹 파업을 했게.”
“허허…… 이 사람아! 동맹 파업 인가 동맹 파첩이지.”
“그래 어떻게 됐다나?”
하고 아따나 박서방의 뒤미처 묻는 말에
“아따나 강참봉이 개개빌었다나.”
하는 원식이의 말에 그들은 와그르르하고 웃음통이 터졌다.
“이 사람아 어른 흉내 내지 말게!”
그들에 게서는 또 홍소가 일어났다.
“야, 고만 일이 해라! 어서어서.”
더운점심에 술까지 얼근히 먹은 목수들은 백구야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오다가 이렇게 고함을 지른다. 이 바람에 인부들은 벌떡 일어서서 제각기 맡은 일터로 헤져 갔다. 그들은 모두 헌 누더기를 걸치고 얼굴은 영양 불량으로 누르퉁퉁하였다. 그들의 호된 고역은 때때로 무거운 한숨을 토하게 하였다.
긴 봄날은 해가 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2
고요하던 건축공장은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광토골서 온 아따나 박서방 외의 칠팔 명은 비계⁴ 맨 위로 벽돌을 져 나르는 판이다. 그들은 이런 일은 처음 해보는 터이라 벽돌 한 짐씩을 지고 높은 비계 위로 올라갈 적에는 정신이 아찔하도록 현기증이 났다. 그것은 마치 수십 길 되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와 같이 두 다리가 벌렁벌렁 떨린다. 그래 그들은 한 행보를 치르고 나면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며 숨이 턱에 닿아서 씨근거렸다.
정첨지는 오늘 양식을 구하러 선바위를 가기 때문에 부역을 대신 나온 근행이(정첨지 아들)는 점심도 못 싸가지고 가서 이 위험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아따나 박서방한테 쑥개떡 두어 쪽을 얻어먹긴 하였으나 배는 금시로 다시 고파서 허리를 가눌 수 없었다. 나중에도 두 귀가 먹먹하고 눈이 아물아물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벽돌을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이 애달픈 고역은 괴로운 시간을 삭이며 일각일각 질행⁵하였다……
이때 별안간 “철꺽!” 소리가 나자 사람의 아우성 소리가 쏟아졌다.
“사람이 떨어졌다!”
뒤미처
“누구야? 누구야?”
하고 군중이 우 몰려와 보자 광터골 사람들은 다시 외쳤다.
“아 근행이다!”
근행이는 과연 땅바닥 위에 정신 모르고 척 늘어졌다. 그는 머리가 깨져서 피를 내쏟는다. 목수들도 뛰어왔다.
“누구 한 사람이 이 사람을 업고 병원에 가라!”
목수 중에 한 사람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병원에는 돈이 있어야 가지.”
“그러나 사람이 당장 죽어가니 병원으로 가야 않겠나.”
“아니 그럼 누구 한 사람은 강참봉 댁으로 가서 치료비를 좀 달래보지.”
그들은 이렇게 공론하다가 급기야 원식이는 부상자를 업고 읍내로 가고 아따나 박서방은 최참봉 집으로 달려갔다. 하기는 광터골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따라가 보고 싶었으나 첫째 그런 자유도 없거니와 만일 강참봉이 알게 되면 하루 부역을 더 시킬까 봐서 고만두었다.
그래 그들은 우두커니 서서 서글픈 듯이 원식이와 그의 등에 업혀 가는 근행이를 바라보았다. 근행이는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고 근드렁근드렁 매달려 간다. 아따나 박서방은 두 주먹을 부르쥐고 겅충겅충 노루걸음으로 뛰어간다.
이른 저녁때―너웃너웃한 해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걸렸다. 그 햇빛이 논물 속에 백금처럼 번쩍인다. 넓은 들 건너 먼 산에는 아지랑이가 아물거린다. 나물을 캐는 계집애들은 바구니 끼고 밭고랑에 앉았다.
“야, 어서 일이 해라! 바새기……”⁷
목수가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일터로 헤어졌다.
3
옥녀봉 밑 산골짜기 사이로는 큰 내가 흘렀다. 그 내 건너 넓은 들 가운데 있는 많은 전답은 무학동 사는 강참봉 집 땅이었다. 수십 호마 되는 이 마을에도 오직 강참봉 집 대소가뿐이 지붕에 기와를 덮고 산다. 그 밖에는―인근동 사람들도―모두 가난뱅이 농민으로서 대개는 이 강참봉 집 전장 몇 두락에 실 같은 목숨을 매달고 사는 터이었다.
어느덧 삼동도 지나고 새해의 농사철이 돌아오자 이 근처 강참봉 집 작인들은 농사지을 준비를 부지런히 하였다. 그런데 강참봉 집에서는 올봄에도 각 작인들에게 또 부역을 징발하였다. 그는 올부터는 창고에다가 곡식을 쌓으려고 지금 곡물 창고를 굉장히 짓는 중인데 인부는 사지 않고 이런 근동 작인에게다 벌써 며칠씩 부역을 시키는 터이었다. 그런데 근행이도 그날 남과 같이 부역을 나왔다가 고만 비계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날 원식이는 십 리나 되는 읍내를 진땀을 흘려가며 근행이를 업고 갔다. 병원에는 다행히 의사가 있었다.
의사는 위선 상처를 진찰해본다.
“대관절 어떻겠습니까? 곧 나을까요?”
원식이는 의사의 말을 기다리다 못하여 이렇게 물어보았다.
“저렇게 중상을 당했는데 곧 나을 수 있겠소.”
하고 의사는 당치 않은 말이라는 듯이 원식이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서
“머리는 곧 낫겠으나 팔목을 몹시 삐었는데 위선 치료해봐야 알겠지마는 아마 수술을 해야 될 것 같소. 한 삼 주일 동안 입원을 하고.”
“네? 입원을 해야 돼요? 며칠간이나요?”
원식이는 놀라운 눈으로 다시 의사를 쳐다보며 묻는데
“스무 날 말이여요!”
하고 어느 틈에 왔는지 모르는 간호부가 대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하겠소. 입원을 시킬 수가 있겠소?”
“글쎄요…… 저 애 집이 가난하니까 어떻게 할는지요.”
“네! 그럼 위선 붙일 약을 드리지요― 지금 약값은 이 원이올시다.”
“네! 그 돈은 지금 누가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런데 입원을 키자면 하루에 얼마씩이나 됩니까?”
명세가 구차하다니까…… 삼등으로 해서 하루에 삼 원씩이올시다.”
“삼 원? 서른 냥 말이여요?”
원식이는 입을 딱 벌리었다. 스무 날이면 육백 냥이 아닌가! 그런 큰돈은 근행이네 집을 팔아도 나올 도리가 없다. 그래 원식이는 오직 강참봉네 집에서나 반가운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 때 아따나 박서방은 숨이 차서 돌아왔다.
“대관절 어떻게 되었소?”
하고 원식이는 궁금증이 나서 아따나 박서방을 대하기가 무섭게 물어보는데 그는 입맛을 한 번 쩍 다시며 또 한 번 씽끗 웃는다.
“돈 스무 냥 주데.”
하더니 그는 품 안에서 일 원짜리 두 장을 부시럭부시럭 꺼내는다.
“뭐? 이 원?…… 아니 요것뿐이야?…… 예, 여보! 그까짓 것을 그래 뭐 슈¸ 받어가지고 온단 말이오!”
“그럼 어짜나. 나도 받기가 싫데마는 당장에 돈도 없이 병원에 간 생각을 하니 그나마라도 없는 것보다는 날 것 같애서.”
하고 아따나 박서방은 다시 근행이를 들여다본다.
“아니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 겨우 돈 이 원을 줘요? 뉘 일을 하다가 그랬는데…… 박서방만 해도 그렇지 그것을 준다고 그래 주는 대로 받어 온단 말이오?”
“아따나 이 사람아 나도 그런 생각이야 왜 없겠나마는 아모리 사정을 해도 더 주지 않는 것을 어짜나. 제가 잘못해서 떨어졌지 누가 떨어뜨렸냐고까지 말하는데야 도모지 더 할 말이 있거디. 자네도 강참봉의 심보를 뻔히 알면서도 그러네그려.”
“무엇이 어째? 참 멀쩡한 도적놈이로군! 그렇게 말하는 자를 그대로 두었단 말이오?”
하는 원식이는 만일에 강참봉이 이 자리에 있으면 당장에 박살을 낼 것같이 주먹을 부르쥔다.
“아따나 그런 말은 예서 할 말이 아니야. 대관절 근행이는 어떻겠다나?”
“무에 어때요? 어서 약값이나 치르고 가십시다.”
“약값은 얼마라건데?”
“이 원이라우! 참 귀신 곡하게 잘 알고 주었구려! 허허…… 내― 원.”
“글쎄 말일세. 아니 그대로 가도 낫겠다나?”
원식이는 간호부에게 약값을 치르고 나서
“괜찮으면 팔을 짤러야하겠대요!”
“무어? 팔을 짤르다니?…….”
“팔을 짤르고 한 스무 날 입원을 해야 된다우.”
“입원을 해…… 그럼 하루에 얼마씩?…….”
“삼 원!”
“삼 원?…… 아니 서른 냥 말인가?”
“그래요!”
아따나 박서방은 하도 기가 막힌 듯이 말도 못 하며
“이 사람아 어서 가세!”
하고 손을 내젓는다. 그래 원식 이는 근행이를 다시 업었다. 그를 박서방이 따라 선다. 그들은 어둠컴컴하도록 근행이를 번갈아 업고 광터골까지 다시 걸어갔다.
4
집에 돌아온 뒤로 근행이 병은 점점 더하였다. 그는 팔이 부어서 전신을 꼼짝 못하고 드러누웠다. 그날 병원에서 얻어온 약을 몇 번 갈아 붙여보았으나 그까짓 것으로는 아무 효험이 없었다. 그래 정첨지 내외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뒤로는 좋다는 상약은 모조리 해보았다. 그러나 병은 점점 더칠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여보 영감 오늘은 강참봉 댁에 좀 가보시구려. 암만해도 저 애를 그대로 두어서는 못쓰겠다고 보는 사람마다 그러는구려.”
하고 마누라는 슬쩍 영감의 눈치를 보았다. 노란 맨 좁쌀만 삶은 조밥을 된장국에 떠먹던 정첨지는
“글쎄 강참봉 집은 뭐 하러 가란 말이야?”
하고 볼먹은 소리를 꽥 지른다.
“설마 그 양반도 사람이지. 자기 집 일을 하다가 그리되었으니 사정 이야기를 하면 거저야 있겠소? 하다못해 빚으로 주더라도…….”
“이거 왜 익은 밥 먹고 선소리를 해. 그렇게 후할 것 같으면 벌써 주었지 여적 있어!”
“그래도…… 그럼 어떻게 하우…… 병은 점점 더쳐가고 아모 것도 먹지를 못하니.”
어느덧 마누라의 목소리도 떨리어 나왔다.
“무엇을 어째 죽으면 죽었지…….”
영감이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자 마누라는 입에 넣었던 숟갈을 던지고 방바닥에 쓰러져 운다. 그는 암만해야 영감이 그 집에는 갈 것 같지 않으므로 되든 안 되든 자기가 한번 가보기로 작정하였다. 강참봉이 돼지 같거나 무엇 같거나 그래도 그 집밖에는 떼를 쓸 데도 없지 않은가.
그래 그는 아홉 살 먹은 딸에게 다녀올 동안 병인의 시중을 잘 보아주라고 당부하는 그길로 강참봉 집을 찾아갔다.
이날 강참봉 집에는 무슨 잔치가 있는지 큰사랑에는 손들이 가득 모여 앉았다. 안팎으로 하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연해 긴 대답 소리가 난다. 안에도 여간 부산하지 않아서 솥마다 불을 지피고 한편에서는 부침개질을 하네 한편에서는 갈비를 굽네 또 한편에서는 술상을 보느라고 야단인데 이 집 마님은 총대장 격으로 팔간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담뱃대로 지휘를 한다.
정첨지 마누라는 일 년 내 가도 이런 음식은 구경도 못 하는 터이었다. 그는 그 고기 한 점을 아들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잘 먹으랴 하는 생각이 났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한편 구석에 서서 주저주저하다가 주인 마누라가 담배 한 대를 다시 담는 틈을 타서 겨우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강참봉 나리를 좀 뵈옵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볼춘댁 마님은 한참 동안 그의 말을 듣고 나더니
“응 광터골 정첨지 마누라여!”
하는 한마디로 겨우 누군지를 알았다는 눈치를 보일 뿐! 비록 외면치레라도 어린 아들이 그렇게 다쳐서 안되었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손님이 와서 부산할 뿐 외라 그날 병원에 갈 때 나리가 치료비를 주신다던데 무슨 돈을 또 달라느냐고 다시 두말 못하게 잡아떼었다. 소위 혹을 떼러 갔다가 붙이는 셈이 아닌가? 정첨지 마누라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분이 나는 대로 하면 한바탕 몸부림을 하고 칼부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는 날에는 당장에 논이 떨어질 터이라 할 수 없이 꿀꺽 참았다. 그래 그는 그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는 두어 걸음을 떼어놓자 별안간 두 눈이 캄캄하여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근행아! 근행아! 네가 무슨 죄로 남의 집 부역을 하다가 팔이 부러졌느냐?…….”
그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자기 집에까지 울고 돌아왔다. 근행이는 여전히 끙! 끙! 앓는 소리를 하며 누웠다.
강참봉 집 창고 짓는 부역은 근행이의 팔이 부러진 뒤에도 날마다 계속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요새 한창 바쁜 때―못자리 가꾸고 논 갈고 보리밭 매고 미구에 모를 내야 할 판인데 막걸리 한잔 안 주는 건부역을 벌써 며칠째 하는 그들 작인은 여간 불평이 있지 않던 터에 불행히 근행이가 그렇게 떨어져서 중상이 되었는데도 치료비까지 안 물어주려는 강참봉의 심사에는 순하기 양과 같은 그들도 와락 역증이 떠올랐다.
그들의 이 공통한 불평은 차차 한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하였다. 그날 저녁때 강참봉 집에서는 “내일 또 광터골 사람들은 일제히 부역을 나오라”는 기별이 왔다. 날이 저물자 동리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하나 둘씩 정첨지 집 마당으로 모여들어서 강참봉 집 욕을 빗발치듯 하고 있을 때 근행이 모친은 설거지를 하고 나와서 오늘 아침에 강참봉 마누라에게 당한 소조⁸를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였다.
그 말을 듣자 여러 사람들은 일시에 열이 꼭두까지 올랐다. 성미가 괄한 원식이는 분이 나서 씨근거리며 그 자식을 당장에 쫓아가서 박살을 내자고 서둘렀다.
이렇게 예서 제서 위불군 뒤불군 하던 그들은 마침내 인근 각동에 있는 강참봉 집 작인에게 사발통분⁹을 돌리었다.
그들이 그날 밤중까지 서로 모여서 의논한 결과는 각 동리 작인 일제히 내일 아침에 강참봉 집으로 몰려가서 다시는 부역을 시키지 말 것과 근행이의 치료비를 배상하라는 조건 등으로 진정을 하는데 그중에서 교섭위원으로 각 동리마다 두 사람씩을 미리 뽑아 넣기로 하였다.
그래 광터 골서는 치삼이와 원식이, 중터에는 박첨지와 원여, 바위는 김접장과 원석이, 왜장골은 원출이와 성선이, 사기소는 덕춘이와 광보, 정자말은 인화와 석여 등 여섯 동리 열두 사람이 뽑히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의 근 백 명의 군중은 한 패 두패씩 길거리에서 만나자 일렬로 행렬을 지어가지고 강참봉 집으로 몰려갔다.
강참봉 집 사랑은 무학동 골안의 수양버들이 우거진 높은 지대에 올라섰다. 뜰 앞에는 화단을 모으고 거기만은 각색 화초를 심었다. 읍내 × × × × 이슨사란 장월계화도 있었다. 마당 저편으로는 연못을 파고 그 한가운데는 석가산을 모았다. 연못 속에는 잉어가 꼬리 치며 논다. 여기서만 심심하면 강참봉 아들이 낚시질을 하는 것이다.
후원에는 대숲이 우거지고 좌우 산기슭으로는 푸른 솔이 울창하였다. 수양버들이 우거진 돌개천이 흐르는 유수한 이 동학에 강참봉의 수십 간 와가는 왕궁과 같이 덩그렇게 섰다. 옥녀봉 중터리¹⁰에는 아침 안개가 뭉게뭉게 떠오른다.
그들이 그의 호화로운 이 생활을 엿볼 때 증오심은 불같이 더욱 탔다. 그들의 무의식한 중에도 이렇게 잘사는 것이 누구 때문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음이다.
강참봉은 사랑에서 담배를 먹고 있었다. 별안간 그들이 우 달려드는 것을 보자 심상치 않은 듯이 놀라운 눈으로
“웬일들이야!”
하고 마루로 뛰어나온다. 대뜰 아래로 근감하게¹¹ 늘어선 군중 속에서
“억울한 사정이 있어서 여쭐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무슨 억울한 사정?…….”
군중 속에서 치삼이가 대뜰 위로 올라서자 호주머니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서 강참봉을 내주었다. 거기에는 지금 농번기에 있는 작인들에게 부역을 시키는 억울한 사정과 근행이가 부역을 하다가 그렇게 중상을 당하였다는 사정을 말한 후에 다음과 같은 인구 조건을 제출하고 일치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었다.
―, 부역을 시키지 말 것
―, 사음을 없앨 것
―, 박근행의 치료비를 물어줄 것
―, 농자금을 무변리로 대부해줄 것
―, 농자와 비료는 무상 배부할 것
―, 소작권은 상당한 이유 없이 이동치 말 것
―, 소작료는 사 할 이내로 할 것
강참봉은 보기를 다 하자 코똥 한 번을 “쿵!” 하고 뀌었다.
그는 한참 있다가
“그래 일들을 못 나오겠단 말이야!”
“네 못 하겠습니다 대관절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원식이가 부르짖었다.
“아니 그럼 여기 온 여러 작인이 모다 그렇단 말이야?”
하고 다시 묻는 말에 일동은
“그렇습니다!” :
“그럼…… 다들 올라가서 맘대로들 하소! 나는 이 가운데서 한 가지도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강참봉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성이 나서 부르짖더니만 고만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이 거동을 본 군중들은 별안간 왁자지껄하고 떠들었다. 강경파는 이곳을 끝까지 떠나지 말고 판단을 짓자는 말에 온건파는 그래도 별수가 없을 것이니 그대로 돌아가 다시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이었다. 이때 치삼이와 원식이는 팔을 걷고 나서며 외쳤다. 우리가 만일 지금 이대로 헤어지면 모두 산심¹²이 되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위 일을 벌인 이상에는 좌우간 끝까지 결론을 보고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역설하였다.
과연 그렇다! 그들은 벌써 강참봉의 심사를 엿보았음이다. 그는 내일부터라도 부역을 나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논을 뗀다고 위협할 것이다. 그러면 겁쟁이들이 무서워서 하나 둘씩 일을 가게 되면 이번 일은 아무것도 안 되고 도리어 자기들만 경을 칠 것이 아닌가? 그래 그들은 온화파를 누르고 끝까지 이 집을 떠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이렇게 작정되자 그들은 맨땅에 죽 둘러 앉아서 하회¹³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이냐? 날이 거의 한낮이나 되자 별안간 온 동리 개가 발끈 짖더니만 뒤미처 제꺽제꺽 소리가 나자 경관 한 패가 대들었다. 이 기미를 알자 강참봉은 다시 사랑으로 뛰어나왔다.
부장은 마루 위로 올라서자 강참봉과 인사를 한 후 위선 기간 사정을 청취하더니 대표 열두 사람을 즉시 불러 올렸다. 그는 열두 사람의 주소 성명을 수첨에다 일일이 기록한 후에
“이 진정서는 누가 꾸몄나?”
“우리들이 모다 꾸민 것이올시다.”
원식이가 대답하였다.
“그래도 이것을 기초한 사람 말이야!”
“네, 내가 했습니다.”
치삼이가 대답하는 말이었다.
“그러면 이런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면 그대로 돌아가서 회답을 기다릴 것이 아닌가? 이렇게 군중이 집단을 해서 행동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 줄 모르나.”
“그러나 우리는 그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경관께서 이미 참견하셨으니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잘 가려줍시오!”
“뭐, 그대로 갈 수 없다니!…….”
하고 그는 눈을 딱 부릅뜨자 부하에게 무슨 명령을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시에 해산! 해산! 하고 군중을 마구 내몬다. 이 광경을 보자 원식이는 피가 끓어올랐다.
“그래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멀쩡하게 이 바쁜 때 작인들에게 며칠씩 건부역을 시키고 또 부역을 하다가 팔이 부러진 사람의 치료비도 안 물어주랴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가만두고 그런 억울한 사정을 하러 온 만만한 우리들은 말도 못 하게 내쫓으니” 하고 그들에게 달려들어서 한바탕 격투가 일어났다. 이 풍파에 마침내 그들 열두 사람은 읍내로 검속을 당해서 압송하고 군중은 다시 그들의 뒤를 쫓아가며 아우성을 쳤다. 그들이 가는 도중에서 각기 가족들이 알고 쫓아오며 또한 울며불며 야단이었다.
5
그 이튿날 강참봉 집에서는 인근동 각 작인에게 내일부터 부역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소작권을 뗄 터이니 생각해 하라는 통지서를 발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모를 미구에 낼 무렵이므로 그들의 논을 멘 대야 새로 주는 작인이 못자리를 다시 할 수가 없는 만큼 그 많은 전장을 누구에게 줄 사람이 없었다. 고지식한 그들에게도 이만한 전술은 알았다. 그런데 강참봉 집 작인이 소작 쟁의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자 읍내 농민조합에서는 가만히 응원단을 보내서 그들의 결속을 끝까지 지속하도록 격려하여놓았다.
그래 그들 작인은 그런 통지를 받고도 모르는 체하고 무학동 사는 강참봉 집 행랑살이 외에는 한 사람도 부역을 가지 않았다.
× × 에서도 그것이 관청 부역이 아닌 이상 부역을 나오지 않는다고 강제 징 발하지는 못하였다.
일이 그쯤 된 바에는 강참봉 집에서도 할 수 없었다.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할 수 있는 대로 지배 계급으로서의 체면 유지를 하려 하지마는 큰 이익 앞에는 생쥐처럼 한 푼이라도 긁어모으려고 눈이 벌건 강참봉은 자기가 논을 떼기 전에 작인들이 불경 동맹을 일으킬까 봐 그는 체면은 안되었지만 부역을 다시 시키지는 못하였다. 그 뒤로 그는 창고를 짓는 인부들은 목수보고 사서 쓰라고 내맡기어버렸다.
그래서 검속한 사람들도 열흘 구류를 살고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근행이의 치료비는 받지 못하고 말았다.
정첨지는 할 수 없이 원식이의 보증으로 집문서를 잡히고 읍내 × ×한테서 이십 원의 빚을 얻어 왔다. 그동안에 이 집이 몇 번을 나갈 것을 그는 어떤 곤란이 오더래도 집만은 잡히지 말자더니 이번 통에 기어코 올라가고 말았다.
정첨지가 근행이를 업고 병원에로 다시 가니 의사는 남의 사정은 모르고 이렇게 다시 올 것을 왜 그때 바로 입원을 시키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한다. 그는 상처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대번에
“팔을 짤러 야겠소!”
“네?”
정첨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인제는 죽든지 살든지 병원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근행이는 그 말을 듣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의사와 간호부는 수술할 차비를 차리었다. 간호부가 근행이를 업고 수술실로 들어가자 안으로 문을 꽉 잠가버린다. 정첨지는 문밖에서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멀쩡하던 아들이 이 뒤로는 팔 병신이 될 것을 생각해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장가나 들일 것을 어떤 놈이 병신자식에게 딸을 주겠느냐고一― 그는 이런 생각이 나자 별안간 긁! 하고 울음을 터치며 두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한참 만에 근행이는 팔을 무섭게 붕대로 휘감고 나왔다. 그는 병실에 갖다 뉘어도 정신없이 눈을 감고 있다. ……간호부는 그를 잘 누이고 팔을 다치지 않도록 베개로 고여놓았다. 거의 팔꿈치 가까이 자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근행이는 십여 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하기는 완치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돈이 부족하여서 그대로 온 것이다. 인제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약만 갈아 붙여도 되겠다고 하여서 그리 하였다.
장래에 약속 바르고 튼튼한 일꾼이 되겠다고 인근동에서 이르던 근행이도 인제는 속절없이 팔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전과 같이 나무도 못 하고 짐질도 못 하였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그를 팔 병신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경험한 강참봉 집 작인들은 여러 가지로 얻은 것이 많았었다. 그들은 첫째로 단결의 필요를 느끼었다. 그다음으로 그들은 농민조합의 필요를 느끼었다. :
―우리들의 무기는 단결이다!
―농민은 농민조합으로!
무의식한 그들에게는 이러한 슬로건이 이번 투쟁을 통해서 머리에 박혔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암암리에 이 가을까지에는 농민조합을 설립하고 이번에 실패한 대부분의 요구 조건으로 수확기에 가서 다시 소작쟁의를 일으키기로 지금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중에도 이번 쟁의 때에 각 동리 대표로 뽑힌 열두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읍내 있는 농민조합 간부와 비밀히 연락을 취하였다. 그들의 연락을 잇는 다리로는 근행 이가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였다.
이 비밀한 계획은 가을을 앞두고 착착 진행되었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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