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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 날씨, 어물전 맨 앞줄에는 녹색의 주먹 뭉치만한 것들이 두 줄로 가지런히 노란 상자에 담겨져 있다. 예전 같지 않고 그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나오는 날보다 안 나오는 날이 더 많아 보인다. 바로 '매생이'다. 지역에 따라 '매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산어보>에는 '매산태(莓山苔)',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매산(苺山)'으로 소개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매생이의 특징을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끊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고 있다. 개숭년 들어서 오질 말라고 하니까
광주에서 부지런히 달려서 3시간만에 도착한 장흥군 회진면 덕도. 한승원의 소설 <앞산도 첩첩하고>의 무대이며, 작가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1960년대까지 섬이었다. 1962년 세계기독교봉사회 구호식량지원금으로 개척단을 동원해 만든 둑방길은 섬을 육지로 만들었고, 소설에서 '장례'와 '달병'이 사랑을 속삭이던 장소로 등장한다. 지금은 둑방길에 김 양식에 사용하고 남은 듯 말장(지주)들이 즐비하게 기대어 서 있다. 덕도에서 유일하게 매생이 양식을 하고 있는 장산리. 원둑이 막히기 전까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김 양식으로 먹고 살았다. 장산리뿐아니라 덕산·신상·대리 등 덕도의 네 마을 주민들도 모두 김발을 막아 생활을 했다. 장산만 해도 김발이 좋을 때 120여호까지 거주했지만 지금은 68호가 살고 있다. 이중 40여호가 미역 양식을 하고 일부 젊은 사람들은 마량과 완도까지 나가 김 양식을 하고 있다. 인근 대덕읍 내저리는 마을 전체가 집단적으로 매생이 양식을 하고 있지만 장산리는 7호에 불과하다.
도대체 작년까지 잘되던 매생이가 금년에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현지 어민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듯 싶어 한사코 말리는 길을 나섰다. 아무리 야박하기로서니 시골 인심이 있는데 내쫒기야 하겠냐 싶었다. "오지 마랑께 와부렀소. 개숭년(흉년) 들었단 말이요." 회진에 도착해 원둑을 넘어 장산마을 앞에 차를 멈추고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 목소리와 똑같다. 오히려 친근감이 갔다. "마을 앞 회관에 있는데요." "100m만 큰길로 올라오쇼." 김씨는 이내 불쑥 찾아온 필자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축협 선거로 급히 소재지에 나갈 채비를 하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30여분을 할애해 주었다. 급한 김에 개숭년이 든 이유부터 여쭈었다. '짐작'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하고서 진단은 시작되었다. "인제 금년에는 기후 변화로 해서 가을날이 따수아 부렀단 말입니다. 수온이 18도 이하로 가야 하는디 18~20도가 되어 부렀단 말입니다. 그래서 포자 붙여 놓은 것이 녹아부렀제. 기후도 문제지만 수온이 제일 문제여. 매생이는 공해가 전혀 없는 것이여. 조금만 오염되어 있으면 매생이가 제1번으로 가버려." 웬수 같은 매생이가 늘그막에 효자 노릇하다
장흥의 장산마을은 회진면에 속한 작은 어촌 마을이다. 개척단을 이끌고 원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덕도'의 4개 마을 주민들은 김 양식을 주업으로 살았다. 섬을 둘러싸고 갯벌이 발달해 고기잡이보다는 일찍부터 지주식 김 양식이 활발한 곳이다. 김 양식은 물살이 센 곳에서 양식이 잘 되며, 다음은 미역 양식이지만 매생이는 물살이 센 곳에서 할 수가 없다. 종종 김발에서 매생이가 붙어서 김 양식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잡태라고 부르는데 파래와 매생이 등이 김발에 붙게 되면 김이 상품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김 양식 어민들에게는 '웬수 놈의 매생이'이가 되는 셈이다. 도시인들이 깨끗하고 잡태가 섞이지 않는 김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민들은 약품 처리도 마다하지 않고, 그 결과 잡태만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갯벌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김씨도 미역줄을 들어 올리는 기계가 들어오고 나서 미역 양식을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최근까지 4구간을 했지만 최근에는 2구간으로 양을 줄였다. 1구간에 100m 미역줄이 30줄이 들어가는데 미역줄이 길고 무겁기 때문에 조류 등에 휩쓸리게 되면 통째로 잃어 버리는 일도 있다. 김발과 미역발을 할 수 없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매생이 양식은 소일거리로 적격이다. 면소재지로 나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서면도 김씨의 매생이 자랑은 계속되었다. "옛날에는 서울 사람들 안 묵었어, 묵을지 몰라. 그란디 지금 묵고 사는 것이 제일로 농약치고 뭐한 것은 안 묵잖아요. 공해 제일 먼저 받는 것이 매산이여. 건강에 좋고 첫차에는 매산이가 소화제여, 변비는 일번이고. 지금은 서울시민들이 많이 묵고, 계약이 돼 보내라고 하는디, 매산이가 없어. 팔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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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찾아간 필자에게 김씨 부부가 내온 것은 점심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회진에서 들어오는 길에 점심 먹을 곳을 찾고 있었다. 광주에서 새벽 같이 출발한 탓에 벌써 뱃속에선 밥 달라는 소리로 요란하다. 동치미, 김치, 파래 무침, 김, 장, 돼지볶음, 고등어무조림. 시장기가 아니더라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밥도 고봉밥이라던가, 고등학교 시절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가 고봉밥에 시래기국을 끊여서 아랫목에 묻어 뒀다 주셨다. 밥상을 받고 갑작스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점심을 마치고 신씨 부인은 아들과 함께 매생이를 뜯기 위해 장산리 마을 어장 갯벌로 나갔다. 노력도와 덕도를 연결하는 연륙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곳 아래 옴팍진 곳이 매생이 양식장이다. 선착장과 산으로 쌓여 물길이 잔잔하고 깊지 않아 양식장으로 제격이다. 미역발은 3년에 한 번씩 제비를 뽑지만 매생이발은 주민들 중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같은 바다라도 미역이 잘 되는 바닥과 잘 되지 않는 바닥이 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제비(추첨)을 뽑아서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비를 뽑아서 양식장을 결정하는 것은 서남해역 해조류 양식을 하는 마을의 일반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다. 매생이 발은 10개 발을 지주에 묶어서 '한때'라고 부르는데, 3m 길이의 대나무를 쪼개어 60개를 엮은 것이 '발' 하나다. 발과 발 사이에 대나무나 나무로 지주를 세운다. 3m의 매생이발을 가운데를 넓게 하고 양쪽 끝은 짧게 해서 지주에 고정시킨다. 가운데를 '날새'라고 하고 양쪽 끝은 '고타리'라고 하는데 날새는 길게 하고 고타리는 짧게 해서 매생이 발이 처지지 않도록 묶는 것이다. 때로는 발이 처지지 않도록 대나무 밑 부분만을 쪼개서 사용하기도 한다.
돌이나 뻘에 매생이가 보이는 갯가는 일단 매생이 양식이 가능하다. 이런 곳에 매생이 발을 만들어 4겹으로 겹쳐서 포자를 붙인 다음 육안으로 포자가 확인되면 좀 깊은 곳으로 내린다. 매생이 포자를 붙이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상강(10월 23일경)을 전후한 시기가 적절하다. 김씨의 경우 금년에는 크리스마스부터 매생이를 뜯기 시작했다. 상강을 10월 하순으로 계산한다면 한 달 보름, 혹은 두 달만에 뜯기 시작하는 셈이다. 이렇게 시작한 매생이 작업은 보통 3월까지 이어지지만 장신리처럼 미역 양식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설을 전후해서 마무리 짓는다. 매생이발이 끝날 무렵이면 매생이들이 밤색으로 변한다. 이를 '늦대기'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남아 있는 것조차 모두 훑어 버린다. 마치 마지막 고추를 훑어내듯이. 이렇게 하고 나면 매생이 발을 걷어서 깨끗이 세척해서 말려서 보관해 둔다. 매생이는 3월 무렵이면 짝짓기를 마친 후 발아해 포자 상태로 패각이나 뻘 속에 휴면 상태로 여름을 지낸다. 그리고 수온이 내려가는 11월 무렵 활동을 시작한다. "상강을 삼일 남겨 놓고 추분살에 막고, 인자 삼강이 넘으면 잡태가 덜한다고 해서. 삼강 있고 얼마 안돼 막은 사람들은 씨는 잘 붙는디 크지는 않아. 우리가 경험한 것으로 보니까 삼강 지나면 씨는 잘 올라온디 안 커불드라고. 이녁 짐작으로 헌디 해우나 파래도 섞여 있어요. 노출에 잡태 죽일려고 해도 파래는 죽는디 해우는 안 죽어. 말려 가지고 다시 막아도 파래는 하나도 없이 죽는디 해우는 안 죽습디다. 그래도 그대로 팔아야제, 2천원에라도. 뜯을 때는 미끼런께 덜 뜯어진 게 때가 있어, 고놈이 다시 자라기도 하제. 그만할 때가 되면 매생이가 밤색으로 변해, 늦대기라고. 밤색 모양으로 못 묵을 것이 되어 부러, 이것이 죽을 때가 되분가 부다 하고 훝어 버리제." 매생이 양식장에는 벌써 몇 사람이 나와서 작업중이다.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아 갓배를 타고 작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질 급한 사람들은 긴 장화를 싣고 들어가 매생이 발을 들어 올려 매생이를 뜯고 있다. 30여분이 지나자 매생이 발이 모습을 드러내고, 검푸른 매생이들이 속살을 드러냈다.
요즘 매생이는 한 재기에 3500원 혹은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10줄을 하는 김씨 부부의 경우 초기에는 한 번 뜯는데 30재기를 뜯었지만 최근 세사리(3일)에 150재기를 수확하기도 했다.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음력 매달 초여드레와 스무사흘) 때보다는 사리(음력 매달 보름날과 그믐날에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에 작업하기가 더 좋다.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바다 냄새와 갯냄새가 입 안에 가득하다. 매생이국에서 유일하게 씹히는 굴. 매생이 향이 굴의 비릿한 맛을 삼키고 통통한 굴이 입 안에서 톡 터진다. 매생이 국은 예쁘게 먹어서는 안된다. 부드럽게 때문에 한 수저를 뜨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때 얼른 머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어 코를 박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한다. 소리를 크게 낼수록 매생이는 덜 흘러 내린다. 자흥(장흥 사람들은 '자흥'이라고 고집한다)에서 돌아온 필자가 잘 가는 식당에서 매생이국을 찾았다. 요즘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먹는다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갯벌과 바다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주는 온갖 먹을거리의 맛이 새롭다.
다른 국과 달리 매생이 국은 펄펄 끊여도 김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국을 끊여 상에 올려 놓으면 김이 나지 않아 한 수저 입에 넣었다간 입 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밉다고 사위 입 천장을 데게 할 장모가 있겠는가. 매생이가 나는 곳은 대부분 김양식이 활발했던 곳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김을 채취하여 위판하여 공장에 넘기면 그만이지만 옛날에는 저녁 내내 손으로 김을 떠서 건장(한지를 뜨듯이 김을 얇게 뜬 김을 말리기 위해)에 꼬챙이로 꽂아서 말려야 했다. 김발을 하는 철이면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일손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을 많이 했던 남도의 갯마을은 겨울철에 너나 할 것 없이 걸어만 다니면 낮에 김을 채취하고 밤에는 김을 떠서 새벽에는 김발을 널어야 했다. 이런 탓에 김 양식 일이 힘들어 시집간 딸자식이 편히 살아 주기를 비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 중에 '해태(김)고장 딸 시집 보내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다. 갯살림은 대부분 여성들이 담당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갯벌이 성한 마을은 논보다는 밭이 많아 밭일도 여성들이 맡는 편이다. 그래서 갯마을의 여자들은 갯살림, 안살림, 밭일 등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도회지로 시집 보낸 딸이 사위에게 푸대접이라도 받는다면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아마도 '미운 사위놈 매생이국'이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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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미운 사위로 변해야겠네요....매생이국 얻어 묵을려면.....ㅎㅎㅎ
거저 ....... 배는 고파오고 저거 한 그릇만 먹어 보았음 좋겠는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