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가 영세 상인의 대형마트 및 백화점 진출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 부회장이 사촌누나인 이혜진 래딕스글로비즈 대표의 회사들을 지원하는 바람에 대형마트 등에 입점하고 싶은 영세 상인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사진은 래딕스글로비즈와 래딕스플러스 본사가 입주한 창강빌딩. ⓒ스카이데일리
신세계그룹은 그간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주인공으로 여러 차례 등장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11월 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근처에 400평 규모의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를 오픈했다.
신세계의 주류사업은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맥아 및 맥주제조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하며 공식적으로 맥주사업에 발을 들였다. 데블스도어가 오픈하자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이 호프집마저 넘본다는 볼멘소리가 높아졌다.
신세계는 또 지난해 로열티 없는 편의점 ‘위드미’도 출범시켰다. 위드미는 매출의 일정부분을 본사에 지불하는 형식이 아닌 매달 가입비를 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존 편의점과는 다른 ‘상생’을 내세우긴 했지만 소상공인들은 위드미가 골목상권을 잠식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룹 계열사인 신세계건설 역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세계건설은 사업 다각화 명분으로 대형 건설업계 최초로 목욕탕 사업과 음식점업 진출을 선언했다.
신세계건설은 지난 2월26일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주주총회를 열고 △공중목욕탕, 수영장, 고급 사우나업 △스파 서비스업 △음식점업 △음·식료 제조 판매업 △위탁운영업 △종합 소매업 △스포츠 서비스업 등의 신규 사업을 목적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정용진 회장(사진)이 이끌고 있는 신세계그룹은 그간 ‘골목상권 침해 논란’의 단골손님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를 오픈하면서 인근 상인들에게 ‘대기업이 영세상인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스카이데일리
신세계건설의 이 같은 비건설 부문 사업 다각화 전략에 자영업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신세계건설이 해당 사업들을 본격화 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은 그 중심에 있는 재벌”이라며 “신세계가 자본력을 동원할 경우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더욱 운영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 역시 “대형 건설사가 업종과는 전혀 무관한 음식점과 목욕탕을 하겠다는 것을 납득할 중소상인들이 있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인지 정 부회장은 최근 전통시장과 협력을 강조하며 부랴부랴 상생을 부르짖는 모습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소상공인시장 진흥공단과 함께 ‘전통시장 우수상품 페어’를 개최했다.
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내 전통시장은 오래된 역사만큼 상품성이 높은 숨어있는 스타상품이 많다”며 “전통시장과 신세계가 협력해 이런 상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세계적인 상품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스카이데일리
앞으로는 상생, 뒤로는 영세 상인들에게 피해
그러나 정 부회장이 밝힌 상생의지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최근 정 부회장이 상생은커녕 골목상권 침해를 돕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사촌누나인 이혜진 래딕스글로비즈 대표이사를 보살피느라 영세 사업자들의 대형마트 진출을 막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 대표는 이창희 새한그룹 창업주의 외동딸이다. 이 창업주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으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동생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형이다.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아들 정용진 부회장은 이혜진 대표의 사촌동생이 된다.
이 대표는 ‘래딕스글로비즈’와 ‘래딕스플러스’ 대표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래딕스글로비즈는 해외 가공식품, 스낵류, 유아식품·용품, 생활용품을 수입·유통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다.
업계에 따르면 래딕스글로비즈는 대형 유통그룹인 신세계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2004년 이마트를 시작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아이앤씨(I&C) 등을 잇달아 유통채널로 확보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2010년에는 ‘이마트 온라인 쇼핑몰’에도 진출했다.
래딕스글로비즈의 매출은 2008년 40억원을 기록하고 3년 후인 2011년 149억원, 다음해인 2012년에는 201억원을 기록하는 등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현재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10층(신관)에 래딕스글로비즈의 지점을 두고 있다는 것도 정 부회장의 물밑 지원을 짐작하게 한다. 또 같은 층에 입점한 디저트 카페 ‘만나’의 주인 역시 이 대표다.
▲ 현재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10층(신관)에 래딕스글로비즈의 지점을 두고 있다는 것도 정 부회장의 후원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같은 층에 입점한 디저트 카페 ‘만나’의 주인 역시 이 대표다. 사진은 신세계백화점 충무로 본점. ⓒ스카이데일리
이 대표는 HR(인적자원)아웃소싱 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현재 래딕스플러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통해 유통·제조 분야를 전문으로 인력파견, 채용대행·헤드헌팅, 아웃소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마트, 신세계엘앤비(L&B), 신세계푸드, 신세계I&C 등이 주요 고객사다. 이 중에서도 할인마트 업계 1위 이마트의 운반·진열·캐셔·보안 업무와 관련한 사원 채용을 래딕스 계열사들이 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래딕스플러스는 2009년 458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후 2012년에는 673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세상인 입장에서는 대형마트 등에 입점하는 게 꿈같은 일이다. 그래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다”며 “정 부회장이 앞에서는 상생을 외치지만 뒤로는 영세 상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래딕스글로비즈·플러스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맞지만 두 회사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 대표의 회사들이 신세계백화점, 이마트에 독점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골목상권 침해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