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골-오륜대 순교신앙 사적지 걸으며 하느님의 종 시성 기원... 2008년 8월부터 2년째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순교자들 숨결 따라 14.7km 순례 행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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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교구 신자들이 묵주 기도를 바치며 온천천 산책로를 걷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신자들은 장대골에서 오륜대까지 걸으며 교구 출신 순교자 이정식(요한), 양재현(마르티노) 등 2위의 시복시성을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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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도보 성지순례 2주년 파견미사 강론을 통해 "시복시성은 순교자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따를 것을 선언하는 의미다"며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통해 우리 신앙을 성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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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징표를 올바르게 깨달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의 박해에 의연히 대처하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매달 한 차례씩 이뤄지는 도보 성지순례에 앞서 장대골순교신앙사적지에서 신자들이 순례기도를 바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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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륜대 순교 성지 순교자 묘역. 이정식(요한), 양재현(마르티노) 등 부산교구가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순교자들 유해가 1977년 동래 명장동에서 이 곳 묘역에 이장돼 묻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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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들의 숨결을 따라 걷는 길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청소년들도 어르신들과 함께 장대골에서 오륜대까지 14.7㎞에 이르는 길을 쉼없이 기도를 바치며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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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시30분이면 어김없이 수영 장대골 순교신앙사적지를 출발해 오륜대 순교기념관에 이르는 도보 성지순례가 펼쳐진다. 이 순례는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자발적 평신도운동으로 기획, 2주년을 맞고 있다. 사진은 온천천을 따라 걸으며 하느님의 종 시복시성 등을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부산교회사연구소장 겸 활천본당 주임인 한건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 |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
다윗이 부르는 '순례의 노래'를 되새김질했다. 기쁨과 환호, 눈물과 회한, 고난과 기도, 미련과 아쉬움이 점철했다. 부산 구포역에서 KTX를 내려 도시철도를 경유, 침묵 속에 영혼을 가라앉히고 걷다보니, 부산 수영 장대골 경상좌수영 장대터였다. '1868년(고종5년) 8월 천주교도 이정식(1795~1868, 요한) 등 신도 8명이 참수형을 당했다'는 짤막한 기록이 장대터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정작 장대골 순교신앙사적지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수영공원을 내려와 물어물어 성지를 찾아갔다. 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546의4 주택가 한쪽에 성지가 조성돼 있고, 250여 명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장대골 순교신앙사적지'였다.
9월 순교자성월을 앞두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진행된다는 도보 성지순례에 따라 붙었다. 순례는 홀로 걷는 게 제격이라지만 물어물어 생소한 순례코스를 찾아가는 게 싫어 순례행렬 끝에 불쑥 끼어들었다.
길에서 만난 이들과 풍경의 기억은 가슴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때가 되면 살아나서 말을 걸기도 한다. 143년 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와 수군들이 머물던 수영 장대는 표지석에 그려진 옛 지도에서 위용을 가늠해볼 수 있다.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장대에서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다.
도시의 길에서 마주한 장대터에서 순교자들의 선연했던 믿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순교자들이 피로 증거한 신앙이 생생하게 실재하는 기억으로 살아나기엔 길은 권태롭고 안이한 타성에 젖어 있다. 그럴 땐 회상의 길을 더듬어 순교자들과 재회를 꿈꿀 수밖에 없다.
1868년 7월, 박해를 피해 울산에서 살고 있던 동래 출신의 이정식(요한) 회장은 맏아들 이월주(프란치스코), 이삼근, 처 박조이(마리아), 대자이자 동래 출신 좌수 양재현(마르티노), 이관복, 동래 출신 옥조이(바르바라), 차장득(프란치스코) 등과 함께 순교의 길을 걷는다. 원래는 11명이 동래부 관아에 잡혀왔으나 3명은 혹형에 못 이겨 배교하고 8명이 처형됐다. 당시 사형장 광안 장대골로 향하며 부르던 순교자들의 기도가 지금도 전해져온다. "영화롭도다. 이 길이 영화롭도다."
땀에 젖어 길을 걷다가 9명(순교자성월이 9월이어서)에게 물었다.
"이 길을 왜 걸으십니까?"
2008년 8월 부산교구 도보 성지순례가 시작될 때부터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는 주부 여윤석(프란체스카 로마나, 46, 남산본당)씨는 "이정식(요한)ㆍ양재현(마르티노) 등 하느님의 종 2위 시복시성에 '저처럼 미약한 사람의 기도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가족 건강 등 개인 지향이 응답을 받아 꾸준히 걷고 있다"고 했다.
한 치 오차도,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삭막한 문명의 길은 공허한 욕망만이 꿈틀거릴 뿐 성찰은 한낱 사치로 전락한다. 장대골을 떠나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어놓는 와중에 이 순례를 주최한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김해권(프란치스코, 58) 회장을 만났다. 무릎 수술을 하는 바람에 25회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거의 대부분 참가했다는 김 회장은 "순례길을 걷다보면 일상을 하느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다"고 털어놓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침묵 속에 묵언 기도를 바치며 걷는다"고 전했다.
부산교구 평협이 부산교회사연구소와 함께 매달 갖는 도보 성지순례는 장대골 순교신앙사적지를 출발해 '동래의 젖줄' 온천천을 거쳐 오륜대순교성지에 이르는 14.7㎞ 여정이다. 순교자들이 치명한 장대터에서 순교자들의 시신을 운구해 순교자들이 묻힐 오륜대까지 걷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비록 유해도, 관도, 상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순례자들 어깨에는 순교자들 유해를 모신 상여가 얹혀있는 듯하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끊이지 않고, 길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00년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난 온천천 순례길 7㎞는 부산교구 도보 성지순례 코스의 백미다. 붕어와 미꾸라지ㆍ자라ㆍ소금쟁이 등이 살고 하천변엔 쑥부쟁이와 무꽃 같은 들꽃이 무성하다. 자전거 길과 달리기 길이 나란히 잇닿아 있어 자전거 길만 피해가면 아무 문제 없이 도보 순례를 만끽할 수 있다.
온 몸이 땀에 푹 젖었다. 곁에서 걷던 장영식(마르첼로, 69, 하단본당)씨는 "본당에서 '사도들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단원 7명과 함께 처음으로 도보 순례에 함께했는데 정말 가슴이 찡하다"며 "오늘 순례를 계기로 매달 순례에 참여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1년째 세 자녀와 함께 순례해 온 김경희(토마스, 42, 송도본당)ㆍ이상희(세라피나, 31)씨 부부는 "매달 순례에 함께하면서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려운 이웃을 늘 예수님처럼 여기며 살게 됐다"고 고백했다.
도보 성지순례 2주년을 맞아 특별히 교구장 황철수 주교도 교구 사제들과 순례에 함께했다. 황 주교는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을 기억하며 교우들과 함께 걷는 순례여서 더욱 뜻깊다"며 "교구 출신 순교자들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뜻도 있지만 순례를 통해 오늘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순례엔 2년간 4524명이 함께했다. 그 가운데는 성직자 92명, 수도자 97명도 포함돼 있다. 일가족이 함께한 경우도 22가구나 된다. 이날 순례에도 250여 명이 참가했다. 갈대밭이 줄지어 선 온천천은 비교적 곧게 뻗어있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진리에 목말라할 때 기도를 바치며 걸을 수 있는 그 길이 있어 일상에서의 영적 탈출을 도와준다.
박태선(브로다시오, 56, 괴정본당) 교구 평협 봉사부장은 "참살이(웰빙) 열풍이 불기도 했지만 가톨릭 스카우트 도보 순례를 보면서 전 교구가 함께하는 건강한 신앙문화를 만들고 싶어 도보 성지순례를 기획하고 함께해 왔는데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크다"고 전했다.
강현(프란치스코, 12, 봉래초교6) 군도 "이번 순례가 두 번째인데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계속 가족을 위해, 순교자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치며 걸어서인지 또 다른 순례의 기쁨을 갖게 됐다"고 순례 소감을 전했다.
한건(부산교회사연구소장 겸 활천본당 주임) 신부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순교자들이 시복시성이 될 때까지 한 명이 오든, 두 명이 오든 계속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가도 가도 막막한 그 길은 오륜대 언덕배기에서야 종착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산가톨릭대 메리놀교정을 지나 막바지에 오륜대 순교성지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1977년 9월 17일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에 안장돼 있던 수영 장대 순교자 8위 유해를 오륜대로 이장하면서 오륜대는 순교 성지로 거듭났다. 순교자들 유품과 박해시대 유물 500여 점과 성화ㆍ민속품 등을 소장한 순교자기념관, 한국 순교성인 26위의 유해를 모신 순교자성당이 있지만 그에 앞서 순교자들 묘소에 먼저 눈길이 갔다.
부르튼 영혼을 순교자들의 영혼에 내어맡기고 침묵했다. 마치 강이 연면히 흘러들어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 순례자들의 발길도 쉼 없이 걷고 걸어 성지로 향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영혼의 허기를 달래며 자신의 영적 리듬에 맞춰 걸어온 길은 닫혀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열릴 것 같은 역동적 순교신앙의 길로 순례자들을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