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오후 전북 전주 풍남동의 남부시장. 곡물·건어물 등 1000여 개의 작은 도매상점이 빼곡히 자리 잡은 이곳에 핑크색 염색머리와 짧은 스커트 차림의 젊은 연인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시장 골목이라 깔끔한 성탄절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서울에서 놀러 왔다는 김아연(26)씨의 말이 다소 의외다. “블로그에서 남부시장이 당일 여행코스로 좋다는 글을 보고 와 봤어요. 전주 명물 먹거리인 ‘피순대(선지순대)’ 먹어 보고 칵테일 한 잔 하러 가는 길이에요.”
재래시장에서 순댓국 먹고 칵테일로 입가심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남부시장 2층에 서울 홍익대 앞 스타일의 ‘청년몰’을 만든 젊은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20~30대 청년 18명은 지난 5월 시장 한복판에 ‘신개념’ 점포 18개를 일제히 열었다.
전주 한옥마을 옆이라는 입지 활용
볶음밥 전문점 ‘더 플라잉팬’을 운영하는 김은홍(38)씨는 10여 년간 식품회사 개발팀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요리 실력을 키웠다. 가족을 건사하느라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던 그에게 아내가 “꿈을 포기하지 마라”며 용기를 심어줬다. 멕시코 요리 전문점 까샤덴 타코의 김형철(30)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한 프랜차이즈 패밀리레스토랑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그는 “틀에 박힌 본사 매뉴얼 대신 나만의 레시피 요리로 성공하고 싶었다. 돈벌이가 예전만 못하지만 인정받는 멕시코 음식 요리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칵테일바 ‘차가운 새벽’의 강명지(27ㆍ여)씨는 전북대 법대를 나와 곧바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칵테일 매니어로 버는 돈 대부분을 좋은 술을 사는 데 투자한다.
이들이 모인 계기는 연초 정부가 주관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프로그램이다. 전북지역 사업자 모집에서 이들은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창업자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 등에서 지원했다. ‘문전성시’의 전북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사회적기업 이음이 이들 청년 창업의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창업 전 두 달 남짓 전통 재래시장에 젊은 고객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재래시장 침체의 문제점이 뭔지 발견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발품을 팔며 시장 안팎을 관찰했다. 그중에서도 큰 숙제는 바로 옆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왜 남부시장에 들르지 않는가였다. 사방팔방 의견에 귀를 기울였더니 “젊은 층의 볼거리나 쇼핑 아이템이 부족하다” “어둠침침하고 을씨년스러워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남부시장은 새벽장사가 대부분이라 관광객이 다니는 낮과 밤에는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다. 그러니 젊은 층을 위한 음식점이나 옷가게도 없었다. 관광객들은 남부시장이 전주의 토속음식 피순대와 콩나물국밥의 원조라는 사실도 제대로 몰랐다.
경영철학은 소박하게 ‘적당히 벌어 잘 살자’로 정했다. 사회적기업 이음의 김병수(44) 대표는 “다들 이 악물고 새벽부터 일하며 스트레스 받는 건 싫다고 했다. 오히려 반나절 일해도 손님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일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일손이 주인 한 명뿐인 점을 감안해 각 점포는 모두 17~35㎡(5~10평) 규모에 좌석 10석 안팎 정도로 최소화했다. 대신 2층 한가운데에는 상가 고객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15석가량의 공동이용 테이블을 마련했다. 일종의 ‘푸드코트’ 개념이다. 흔히 식당·카페 유리창에 붙어 있는 ‘외부음식 반입금지’ 경고문 대신 ‘외부음식 반입환영’이란 안내문을 붙였다.
이들 18명은 수시로 모여 비즈니스 현안을 논의하고 시장 상인들과 교류를 했다. 평일 손님이 적은 낮시간을 활용해 전통차 만드는 법, 생선요리법, 식물 키우기 등을 주제로 시민 무료 강좌를 연다는 계획도 세웠다. 내년에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가를 공동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외부음식 반입 ‘환영’하는 푸드코트
그렇게 해서 지난 5월 시장 한복판에 퓨전 요릿집과 옷가게 등 18개 상점이 ‘청년몰’이란 간판을 내걸고 영업에 들어갔다. 블로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홍보에도 나섰다. “전주 남부시장에 가면 ‘적당히 벌어 잘 살자’는 구호 아래 모인 괴짜 젊은이들이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내방객이 늘었다. 덕분에 남부시장에서 주로 중·장년층 상대로 피순대·콩나물국밥을 팔던 기존 식당들이 맛집으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청년몰 매출은 반년 만에 40%, 기존 식당들은 20%가량 늘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전주의 새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성탄절에 둘러본 청년몰은 초심을 꽤 잘 지키는 듯했다. 가게마다 손님이 북적였지만 한 가지 음식만 먹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커피전문점이나 전통찻집에서 바로 옆 가게에서 산 볶음밥이나 오코노미야키를 가져와 커피·차와 함께 먹는 손님도 여럿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대가 지나고 한가해지자 커피전문점 ‘카페나비’가 자연스레 젊은 ‘사장님’들의 수다방으로 변했다. 누군가가 가져온 바나나 한 다발을 나눠 먹으며 장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지나가던 50대 시장 상인이 이들 중 한 여성에게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 남자친구 생겼나”라고 농담을 건네는 바람에 웃음보가 터졌다. 청년몰은 개업 7개월 만에 청년과 중장년 상인, 손님이 뒤섞여 즐기는 공간이 됐다.
“커피와 커피잔에 불만 없으세요. 왜 커피는 뜨거워야 하죠. 왜 커피에는 설탕·크림만 넣죠. 사물을 볼 때 불만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창조적이지 못한 거죠. 의심의 눈초리로 늘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뜨거운 커피 대신 냉커피를, 크림 대신 우유를 넣어 라테를 만들죠. ‘창조적인 시비’를 거는 이들이 많아야 발전하고 역동적인 사회가 됩니다.”
26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커피점에서 만난 이홍(53·사진)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가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꺼낸 얘기다. 그는 학자이면서 혁신·창조·변화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산하 지식창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혁신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란 어떤 사람일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타인의 프리즘으로 사물이나 상품을 보는 ‘아웃사이더 인 싱킹(outsider in thinking)’, 그리고 독서·교류·여행 등 다양한 편력과 풍부한 ‘영감(inspiration) 창고’를 지닌 사람, 그래서 ‘나부터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혁신은 물론 변화조차 보통사람에겐 어려운 일 아닌가.
“아니다. 나이·성별·학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전문지식도 필요 없다. 세 가지 ‘창조습관’이 있을 뿐이다. 첫째, 사물이나 상품을 볼 때 즐겁고 쉽사리 ‘긍정적 불만’을 툭툭 던져 보자. 불만이 일상화된다. 둘째,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아웃사이더 인 싱킹’이다. 셋째, ‘영감 창고’가 풍부하다.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교류도 많고, 여행도 자주 다녀 창고를 채운다. 툭툭 던지는 불만을 해결할 때 그 경험을 꺼내 쓴다.”
-‘아웃사이더 인 싱킹’은 뭔가.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마케팅에서 중요하다. 국내 연구기관엔 우수 인재가 모였지만 쓸데없는 연구가 적잖다. 왜 그럴까.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외부와 고립된 ‘NIH(Not Invented Here) 현상’ 때문이다. 소비자 시각이 아닌 엔지니어 전문가 관점에서 연구해서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 속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을 고안해서다.”
-보통사람의 혁신 사례를 든다면.
“김장철이다. 주부들은 절임배추로 예전보다 편해졌다. 절임배추는 충북 괴산의 60대 농부가 고안했다. ‘김장을 담근 뒤 배추 쓰레기로 난리’라는 뉴스를 보며 ‘절임배추면 쓰레기 고민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수확이 끝나는 9월 이후 노는 고추밭을 보며 ‘뭐 다른 거 없을까’ 궁리해 봤다. 절임배추와 고추밭이 접목되면서 ‘괴산 절임배추’가 탄생했다. 그 뒤 전국 고추밭은 가을부터 배추밭으로 바뀌었다.”
-혁신가에겐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지 않나.
“전문지식 못지않게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일화다. 금강산 호텔을 지어 줄 때 북한 당국이 서커스장까지 해 달라고 했다. 겨울철이라 레미콘이 얼어붙어 공사가 어렵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추위만 해결하면 된다는 고민 끝에 겨울작물 재배 비닐하우스를 떠올렸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겨울철 공사에 비닐하우스 공법이 보편화됐다.”
이홍(53)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KAIST 경영과학 석·박사를 했다.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부터 지식창조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저서로 『창조습관, 더숲』 『자기창조 조직』 등.
“긍정적 불만과 창조적 시비 많아야 발전”
[중앙선데이] 2012.12.3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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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커피점에서 만난 이홍(53·사진)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가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꺼낸 얘기다. 그는 학자이면서 혁신·창조·변화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산하 지식창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혁신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란 어떤 사람일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타인의 프리즘으로 사물이나 상품을 보는 ‘아웃사이더 인 싱킹(outsider in thinking)’, 그리고 독서·교류·여행 등 다양한 편력과 풍부한 ‘영감(inspiration) 창고’를 지닌 사람, 그래서 ‘나부터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혁신은 물론 변화조차 보통사람에겐 어려운 일 아닌가.
“아니다. 나이·성별·학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전문지식도 필요 없다. 세 가지 ‘창조습관’이 있을 뿐이다. 첫째, 사물이나 상품을 볼 때 즐겁고 쉽사리 ‘긍정적 불만’을 툭툭 던져 보자. 불만이 일상화된다. 둘째,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아웃사이더 인 싱킹’이다. 셋째, ‘영감 창고’가 풍부하다.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교류도 많고, 여행도 자주 다녀 창고를 채운다. 툭툭 던지는 불만을 해결할 때 그 경험을 꺼내 쓴다.”
-‘아웃사이더 인 싱킹’은 뭔가.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마케팅에서 중요하다. 국내 연구기관엔 우수 인재가 모였지만 쓸데없는 연구가 적잖다. 왜 그럴까.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외부와 고립된 ‘NIH(Not Invented Here) 현상’ 때문이다. 소비자 시각이 아닌 엔지니어 전문가 관점에서 연구해서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 속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상품을 고안해서다.”
-보통사람의 혁신 사례를 든다면.
“김장철이다. 주부들은 절임배추로 예전보다 편해졌다. 절임배추는 충북 괴산의 60대 농부가 고안했다. ‘김장을 담근 뒤 배추 쓰레기로 난리’라는 뉴스를 보며 ‘절임배추면 쓰레기 고민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수확이 끝나는 9월 이후 노는 고추밭을 보며 ‘뭐 다른 거 없을까’ 궁리해 봤다. 절임배추와 고추밭이 접목되면서 ‘괴산 절임배추’가 탄생했다. 그 뒤 전국 고추밭은 가을부터 배추밭으로 바뀌었다.”
-혁신가에겐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지 않나.
“전문지식 못지않게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일화다. 금강산 호텔을 지어 줄 때 북한 당국이 서커스장까지 해 달라고 했다. 겨울철이라 레미콘이 얼어붙어 공사가 어렵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추위만 해결하면 된다는 고민 끝에 겨울작물 재배 비닐하우스를 떠올렸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겨울철 공사에 비닐하우스 공법이 보편화됐다.”
이홍(53)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KAIST 경영과학 석·박사를 했다.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부터 지식창조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저서로 『창조습관, 더숲』 『자기창조 조직』 등.
한국인 단점은 ‘변화 알레르기’ 모험 꺼리는 성향
[중앙선데이] 2012.12.30 04:1570여개 국 기업관리자 조사해보니
다이내믹 코리아-. ‘한강의 기적’ ‘빨리빨리’ ‘K팝’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변화를 흔쾌히 수용하고 즐길 만한 마음가짐을 지녔을까. 맨주먹으로 성공을 일구다 보니,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려다 보니 ‘고요한 아침의 나라’ 심성의 사람들이 변화 강박증에 떠밀려 온 건 아닌지.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변화 알레르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연구에 인용된 네덜란드 문화인류 심리학자 거트 호프스테드(Geert hofstede) 박사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한 나라의 문화가 기업 등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67~73년 66개국에 흩어진 IBM 지사 관리자들을 분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70여 개국으로 범위를 넓혀 검증을 확대했다. 이 결과 기업문화의 차이를 초래하는 요인을 ▶불확실성 회피 ▶권력 분배의 형평성 ▶개인주의 성향 ▶자기주장을 펴는 정도 ▶장기지향 여부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한국의 경우 불확실성 회피 점수가 80점으로 가장 높았다. 조직 구성원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협을 얼마나 느끼는지를 측정한 점수로, 규칙 등 확실성에 대한 선호가 높다 보니 혁신과 변화를 주저하게 마련이라는 해석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희재 수석연구원은 “호프스테드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되도록 통제하고 모험을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기보다 벤치마킹과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 주력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46점)·중국(30점)은 우리보다 불확실성 회피 점수가 훨씬 낮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변화 알레르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연구에 인용된 네덜란드 문화인류 심리학자 거트 호프스테드(Geert hofstede) 박사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한 나라의 문화가 기업 등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67~73년 66개국에 흩어진 IBM 지사 관리자들을 분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70여 개국으로 범위를 넓혀 검증을 확대했다. 이 결과 기업문화의 차이를 초래하는 요인을 ▶불확실성 회피 ▶권력 분배의 형평성 ▶개인주의 성향 ▶자기주장을 펴는 정도 ▶장기지향 여부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한국의 경우 불확실성 회피 점수가 80점으로 가장 높았다. 조직 구성원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협을 얼마나 느끼는지를 측정한 점수로, 규칙 등 확실성에 대한 선호가 높다 보니 혁신과 변화를 주저하게 마련이라는 해석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희재 수석연구원은 “호프스테드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되도록 통제하고 모험을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기보다 벤치마킹과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 주력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46점)·중국(30점)은 우리보다 불확실성 회피 점수가 훨씬 낮았다.
다른 국내 연구에서도 한국인의 변화 알레르기가 엿보인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2007년 성인 남녀 199명을 심층 면담해 자아정체성 연구를 한 결과 74%(148명)가 ‘폐쇄형’으로 분류됐다. 이는 경직성이 강한 탓에 변화를 접하면 쉽사리 당황하고 혼돈에 빠지는 유형이다. 변화를 흔쾌히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성취형’은 13%에 불과했다. 주어진 일은 성실하고 꼼꼼하게 해내지만 스스로 환골탈태하려는 도전정신은 낮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가 강해 보편적 기준을 중시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