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대강절 첫째주간 화요일
말씀제목
‘히브리 사람’을 편드는 여호와를 기억하자
성경말씀 출애굽기 3장 7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묵상본문
“가장 시원한 여름은 ‘올여름’이다.”
환경학자들이 매년 하는 말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지나 ‘열탕화’라는 표현이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올여름은 또다시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덥든 춥든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온도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온 열사병 사망 소식 가운데 올해 유난히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7월 7일, 베트남에서 온 한 청년이 구미의 건설 현장에서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 구미의 기온은 38.2도. 그러나 건설 현장의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높았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생계유지를 위해 포도농장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익숙지 않은 밭일을 하기가 여간 힘에 부친게 아니었지요. 해서 건설현장이 조금은 나을까 싶어 직장을 옮긴 첫날, 끔찍한 비극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건설업계는 이미 노사 합의를 통해 한여름에는 노동시간을 조정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나 청년이 일하던 공사장에서는 그 합의가 적용되지 않았나 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주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협상 ‘밖’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농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체감 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마다 20분을 쉬어야 한다는 노동법규가 있지만, 이런 법규가 있는 지도 잘 모를 뿐더러, 외국인 계절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는 스리랑카 노동자의 몸에 벽돌을 휘감고 지게차로 들어올려 놀리는 영상이 공개되어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법망 바깥의 사람을, 곧 ‘히브리’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불꽃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께 이름을 여쭈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엘리트 ‘우리’ 집단이 듣지 않는 ‘히브리’의 울부짖음을 듣는 신이라고요. 법, 제도, 규율, 규범에 자신들의 의미가 담기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복주시는 ‘여호와’시라고요.
연약한 이들의 울음을 들으시며, 여러 모양과 선지자를 보내주시던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급기야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그분을 따르는 우리 또한 취약한 이들, 이 시대 ‘히브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울음을 기어이 ‘법망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나그네를 본토인과 똑같이 품어내었던 여호와,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묵상기도
주님, 성탄의 계절, 기쁨에 들떠 울음과 탄식의 소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에게도 민감한 귀와 따뜻한 눈을, 그리고 내미는 손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묵상집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옮겼으나 몇 곳 조금 풀어 적었습니다. 오역이 되지 않고 그 뜻하신 바가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서설원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