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꺾마”의 뜻을 어제서야 알았습니다.
2022년 연말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강타한 유행어가 ‘중꺾마’였다는데 저는 그 말을 들은 적도 별로 없었고, 또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말이 ‘중국을 꺾어주마’ 혹은 ‘중국에 꺾이지 마’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꺾마’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장을 줄인 말이고 , 월드컵을 치르고 돌아온 축구대표단을 향해 한 축구팬이 태극기에 대표팀을 응원하는 문구로 써서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중꺾마’는 인터넷 게임인 『리그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된 유행어라고 합니다.
당시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 로그전에서 패배 후, 한 뉴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출전한 선수에게 패배에 대한 감상을 질문 받자 그는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답변했는데, 이 인터뷰를 했던 뉴스 기자가 해당 인터뷰 영상의 제목을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지었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꺾이지 않는 마음’에 걸 맞는 역전 드라마를 써내려가며 뒤늦게 해당 문장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다른 분야로까지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고 하는데 말뜻을 제대로 아는 어른들은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가정에 안내문을 보내면서 점심을 준다는 말을 ‘중식 제공’이라고 썼는데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를 해서 우리 아이는 중식보다 한식을 좋아하니 한식으로 제공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유머집에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난 안 심심한데. 진심이라면서 '심심한 사과'라니….” 몇 달 전 마음이 간절하다는 표현을 지루하다는 단어와 헷갈린 이들이 많아 문해력 논란이 일었었다.
2020년엔 광복절이 토요일이어서 다음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는데 ‘사흘 황금연휴’ 보도가 나가자 ‘3일인데 왜 4일로 계산하느냐’는 반론이 나왔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사흘의 뜻은 전파됐을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래퍼 노엘이 발표한 노래 가사 때문에 논란이 재점화했다. SNS에 공개된 가사에 ‘하루이틀삼일사흘’이란 표현이 담겼다. 실수일 수 있지만 사흘을 ‘4일’로 혼동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자 교육이 급감하고 독서량이 줄면서 문해력 비상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학교 안내문에 ‘중식 제공’이라고 적자 젊은 학부모가 ‘우리 아이는 한식을 좋아 한다’고 항의했다거나,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게 반납하라는 문구를 보고 책을 사서 보냈다는 경우까지 전해졌다.
‘골이 따분한(고리타분한) 성격’처럼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도 문해력 강화를 강조하고, 한자를 쓸지는 모르더라도 의미는 가르치자는 제언 등이 쏟아졌다.
하지만 요즘 의사소통에 쓰이는 말 가운데 무슨 뜻인지 헷갈리는 현상은 젊은 세대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이 지난해 말 입대하면서 팬 커뮤니티에 ‘자, 이제 커튼콜 시간이다’는 문구를 올렸다.
커튼콜은 공연 후 출연진이 관객의 박수에 답해 다시 무대로 나오는 것을 뜻한다.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는데, 진이 ‘게임 캐릭터 진의 대사’라고 힌트를 남겼다. 찾아보니 온라인게임 캐릭터 진이 ‘공격 모드’에 쓰는 표현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세대가 일상에서 쓰는 생소한 표현은 이 밖에도 많다. ‘내가 하드캐리 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에 등장하는 하드캐리는 팀워크가 중요한 게임에서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한 플레이어나 행위를 가리킨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순간적으로 올리는 스킬을 ‘버프’라고 하는데 ‘오늘 점심시간에 버프 받고 일했다’는 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중장년 세대에겐 대개 해석 불가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에 적어 열풍을 일으킨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표현도 유래는 게임 관련이었다. ‘롤드컵’으로 불리는 리그오브레전드 2022 월드컵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프로게이머가 1라운드 패배 후 인터뷰에서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이 달렸다고 한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사회의 지적 기반이 허약해지고, 학습 역량 저하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급속한 디지털화가 진행된 한국에서 문해력 저하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 문제다. 소통에 차질이 생겨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이 힘들어지고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 구별에 구멍이 난다.
정치적 진영 논리가 팽배한 국내 상황에선 확증 편향에 쉽게 빠지는 현상도 뚜렷하다. 사회적 갈등의 접점을 찾기 어렵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 대한 공격이 디지털 공간에 난무한다. 이런데도 좋은 학벌에 화려한 경력을 지녀 문해력 부족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정치인들마저 소통의 문을 닫은 채 상대를 밟고 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한자어나 게임 용어가 아닌데도 정치 주역들이 쏟아내는 언어는 해석하기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은 “당무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앞둔 ‘윤심’ 논란 속에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인 나경원 전 의원과 대통령실이 보여주는 양상은 국민의 문해력을 시험한다.
나 전 의원은 사의를 보냈다는데 대통령실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친윤 측의 난타전에 이어 이제는 나 전 의원에 대한 애정이 커 사의를 수용할 뜻이 없다는 보도가 전해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국회의원 불체포·면책 특권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어제 회견에선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하면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 행각을 벌인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윤 대통령과 제1야당 지도부는 만난 적이 없다. 올 신년인사회 때도 이 대표가 불참했는데, 정부가 e메일로 초대했다는 신경전만 시끄러웠다. 요새 표현대로 주문해본다.
하루이틀삼일사흘 ‘커튼콜 시간’이라며 서로 공격만 할 게 아니라 중꺾마 정신으로 대화를 하드캐리해달라.>중앙일보. 김성탁 논설위원
예전에도 아이들이 쓰는 말과 어른들이 쓰는 말 사이에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 혹은 속어가 존재했고, 지역에 따른 방언으로 인해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뉴스를 자주 접하지 않는 어르신들은 ‘개딸’이라는 말도 거북해할지 모릅니다. 말 앞에 ‘개’가 붙으면 얕잡는 말로 쓰일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개딸’은 ‘뱀딸기’의 방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크다, 좋다 등의 뜻을 더할 적에 앞에 ‘개’를 접두어로 잘 씁니다. 그래서 저도 듣기 거북할 때가 많았습니다.
개크다, 개쩐다, 개예쁘다 등의 말을 듣는 어른들이 어안이 벙벙할 것은 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글과 말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의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진영 간에 서로 이해 못할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걱정이 많은가 봅니다. 윤심과 이심도 그렇지만 빈곤포로나 비리공동체 같은 말들은 정말 국민들을 짜증나게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자기 거울에 녹을 만드는 일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