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에 동생이 있는 캄보디아에 가게 되었다. 자식도 없이 살다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하면서 살겠다며 떠난 동생을 5년만인가 보러 가는 것이다. 캄캄한 밤에 프놈펜에 내려 어두운 밤 봉고차로 50분쯤 가니 목적지에 닿았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낮에는 거의 다니는 사람이 없다. 하루는 동생과 같이 왕섬이란 곳으로 갔다. 차로 4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3시간정도 가니 밀림이 우거진 곳으로 차를 꺽는다. 그리고 조금후에 8차선 정도의 넓은 아스팔트도로가 나온다. 비행기 활주로로도 쓸만한 도로가 1시간 넘게 뻗어있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물었더니 이 길을 중국사람들이 닦아주었다고 한다. 아니 왜 중국사람이 닦아주지 하고 물었다. 무슨 조약을 맺었다고 한다. 옆에는 밀림을 개뱔하여 방갈로같은 집들이 수백채들이 지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길 닦아 주면서 사람도 살 수 있게 중국사람들이 집까지 지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이것이 일대일로 정책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놈펜시와 항구도시인 시하누크빌시를 잇는 고속도로는 총연장 190.3km, 폭 24.5m로,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고속도로는 중국도로교량공사(CRBC)가 19억달러를 투자한 50년 건설·운영·양도(BOT)사업이며, 기존 국도 보다 50km 짧아 주행 시간이 5~6시간에서 2~3시간으로 대폭 단축될 전망이다이 .
중국은 우라니라 남한의 거의 100배가 되는 영토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고 우리의 원수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쓰나미로 원전으로 피해를 입어 지금도 방사능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중국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그런 반면에 중국은 세계를 향하여 기지개를 펴고 주변국가서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경제협력을 빙자하여 중화제국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중국에게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었을까? 박근혜 전대통령과 시진핑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6.25전쟁에 중공이 참전한 이래 소원하던 것이 1992년 수교 이후 2015년, 23년 동안 이번 회담을 포함해 총 36 번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근혜전 대통령이 6번째 방문하던 2015년 9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 시각 오전10시, 톈안먼(天安門) 뒤편에 있는 단문(端門) 앞에서 외국 국가원수들을 맞이했다. 시진핑이 자신의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에는 박 대통령과 함께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시진핑은 박 대통령과 나란히 걷기를 바랬지만 박 대통령의 걸음은 느렸다. 그럴 때마다 시 주석은 걸음을 늦추고 뒤를 돌아보며 박 대통령을 찾았다. 문 대통령을 홀대하는 시진핑의 모습이 아니다. 시진핑의 한국 길들이기가 보통 정성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노란색 옷을 입었다. 친근함으로 다가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과의 인연
2005년 7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서울을 찾았다. 당시 저장(浙江)성 당 서기의 신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제1야당 한나라당 대표일 때였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과 면담을 희망했다. 평소 중국과 시 주석에게 관심이 컸던 박 대통령은 지방 일정을 취소하게 하고 면담 일정을 잡으라고 했고 두사람은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같이하게 됐다. 당초 한시간 정도 예정됐었으나 두 시간 가까이 환담을 나눴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진 배경엔 ‘새마을운동’이 있었다.
시 부주석 측은 면담 이후 박 전 대표 측에 박 전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을 알 수 있는 책과 자료 등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은 『한국형 경제건설』 전집과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저서 『아 박정희』 등이 포함된 각종 서적,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관련 연설문 등을 전달해 주었다.이후 중국은 2005년 말 ‘신농촌 건설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3년의 만남
그로부터 8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20일 취임 후 첫 전화통화를 했다. 이번 통화는 박 대통령이 요청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먼저 “2005년 방한했을 때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면서 말을 꺼냈고, 시 주석도 박 대통령을 향해 “중국 국민과 나의 오랜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의 핵문제에 대하여 중국이 힘을 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는 말을 듣고도 행실을 살핀다(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라고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북한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뜻이 되겠다.
이에 시 주석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면서 한·중 관계가 아주 돈독하다는 것을 통일신라 시대의 학자 최치원의 시‘범해(泛海)’를 인용하면서 강조했다.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다. 당나라 시대 최치원 선생님은 중국에서 공부하시고 한국에 돌아가셨을 때 ‘괘석부창해 장풍만리통(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이란 시를 쓰셨다”고 운을 뗐다. 시 주석은 “풀어 말씀드리자면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이다”라고 했다. 최치원에게 중국은 선진문명국으로 보였을 것이다.
2015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연쇄 회담 뒤 내놓은 한중정상회담 발표문에는 “양측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에 주목하고,각자의 구상을 실행하는데 상호 연계 가능성을 모색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시진핑의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은 중국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중국 문명의 계승자’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곧 중국문화에 영향을 받은 주변 국가와들은 중국의 속국이며 중국과 대등한 관계가 아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이 사드를 배치한 것에 대해 “대국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일대일로는 이러한 중국식 국제관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또 다른 조공체계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과 일대일로 경제구상
2014년 11월 중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 경제구상권을 정식으로 제창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대일로는 시진핑의 공식적 대외정책이 됐다. 이는 중국과 중국 이외의 유라시아 국가들을 연결하고 협동하도록 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는 계획이다. 이 구상은 크게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육지기반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해상기반의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계획이다. 이 계획은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노리는 한편, 철강산업과 같이 중국내 생산능력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된 분야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에 있다. 중국의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일대일로 계획은 지구상 인구의 63%에 해당하는 44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고, 이와 관련한 GDP는 전세계 GDP의 29%인 21조 달러에 달한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의 중국몽
마오쩌둥의 중국몽은 ‘초영간미(超英赶美)’,
“조속한 시간 내에 영국의 실력을 넘어서고,미국과 한판 겨룬다”는 것이었다. 초영간미를 위해 마오쩌둥은 건국 초기 외교의 기본을 소련에 의존하는 ‘소일변도(蘇一邊倒)’ 전술과 ‘제3세계론’ 전술에 의존했다. “소일변도 전술은 같은 사회주의 제국인 소련으로부터 중공업 위주의 경제원조를 받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중국이 어디까지나 강대국이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의 하나임을 분명히 밝혔다.

1966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전개된 문화대혁명 주자파로 몰린 인사들이 트럭에 태워진채 군중시위에 끌려다니고 있다
마오쩌둥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젠가는 19세기의 최강국 영국을 넘어서고, 20세기의 최강국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세계 전략을 갖고 있던 마오의 중국은 원폭을 제조하고, 수도 베이징에 만일의 핵전쟁에 대비한 지하갱도를 파는 등 많은 군비를 필요로 했다. 거기에다가 강철 생산량을 단시간에 미국과 영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륙 전역에서 마을마다 나무를 때어 철을 만들겠다는 마을 용광로를 설치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그 결과 의욕이 과도했던 대약진운동이 철저히 실패해서 경제가 수렁에 빠지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는 참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1958년 10월 허난성 바오펑현에서 토법고로에 쓸 돌을 깨고 있는 사람들.
이러한 마오에 대한 원망은 커져갔다. 마오는 권력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고생을 동원한 사실상의 정적(政敵)제거 정치투쟁을 10년간이나 벌이기도 했다. 그는 1966년 학교의 문을 닫아버렸고, 학생들로 하여금 홍위병이 되어 ‘부르주아 전문가’로 일컬어졌던 교사, 교장, 교수들에 대항하는 혁명투쟁을 벌이도록 선동했다. 이 혁명운동은 사회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사, 교수를 가르쳤고,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도록 걍요당했고, 청소부들이 환자를 돌보았다. 어린 홍위병들은 ‘자본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면서 정부와 당의 간부들을 공격하고 군부대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들고 싸움을 벌였다. 1969년에 인민해방군이 질서를 회복하기 전까지 온 나라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 직전까지 치달아 있었다.”
마오쩌둥이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네팔에서 부활하고 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마오주의가 전제군주제와 투쟁을 통해 다시 현실정치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2006년 네팔의 민주화운동은 실제로는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카트만두 민주의 벽에는 소비에트기가 그려져 있다. 네팔은 중국화된 나라이다. 네팔은 마이즘으로 유명하며 마오이스트들이 숨어 활동하고 있으며 마오쩌둥의 성지이다. 얼마전 눈사태로 희생된 전교조교사들이 희생당한 곳이 네팔이었다. 문재인대통령은 2016년 2018년 두번 네팔을 방문했다.
덩샤오핑의 중국몽, 도광양회
덩샤오핑은 “향후 100년 동안 미국 패권에 도전하려는 꿈을 꾸지 말고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충고했다. 韜 감출 도, 光 빛 광, 養 기를 양, 晦 그믐 회
‘도광양회(韜光養晦)’란 ‘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劍光)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고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원래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오는 말로 유비가 조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쓴 ‘도회지계(韜晦之計)’란 계략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조(曹操)가 유비를 초대해서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오늘날 천하에는 영웅이 나와 그대 두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조조의 질문을 받고 유비가 대답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천둥이 쳤고, 유비가 천둥 소리에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이 광경을 본 조조가 “대장부가 어찌 천둥을 두려워한단 말이오”라고 말하자 유비는 짐짓 벌벌 떨면서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친다는 것은 세상에 변고가 있다는 말인데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후 조조는 유비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것을 그만두었으며, 이때 유비가 쓴 계략을 ‘도회지계’라고 불러왔다.
덩샤오핑의 무리한 대륙통화팽창, 대륙 공산당 관리들의 부패, 대륙의 대량 인민 실업 직면, 소련의 정치와 경제 개혁이 주요한 배경으로 발생한 민주화운동인 천안문사태를 유혈진압했다는 이유로 미국,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단교(斷交) 위협을 포함한 외교적 제재를 받는 등 고립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중국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20자(字) 방침’이란 것을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다.

1989년 6월 5일 시위대가 인민해방군에 진압된 이후 탱크들이 진주해 있는 천안문광장
덩샤오핑이 말한 20자 방침이란 “첫째 冷靜觀察. 냉정하게 관찰할 것, 둘째 穩住刻步서두르지 말 것, 셋째 沈着應付 침착하게 대응할 것, 넷째 韜光養晦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실력을 기를 것, 다섯째 有所作爲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에만 나서서 할 것. 모두 20자이다
시진핑의 중국몽
시진핑의 대국굴기와 중국몽은 덩샤오핑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마우쩌둥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중국의 조급증에서 시작됐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 석유를 운반하는 주요 통로인 말라카해협을 봉쇄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80%가 통과하는 말라카해협이 봉쇄되면 중국 경제는 그대로 붕괴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두려움은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상망을 확장하자는 전술로 2013년 이어진 셈이다. 이 무렵 시진핑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의 건설권을 확보했다. 이제 해상수송로를 자국의 통제하에 두고자 했다. 중국은 자국의 쿤밍과 미얀마의 짜욱퓨 항을 연결하는 송유관 및 가스관, 자국의 카스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을 연결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미국의 원조가 끊긴 파키스탄. 중국의 투자로 지난 2006년부터 대형선 13척이 한번에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개발하고 있는과다르항
카자흐스탄, 미얀먀, 파키스탄 등지의 부패한 현지 정부와 항구 철도 도로라는 엄청난 일거리를 발견한 중국 기업들이 달라붙었다. 과다르 항 자유무역지대, 중국-카자흐스탄 국경지대의 호고로스 자유경제지대는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추진됐다. 건설 과정은 복마전이었다.
“중국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현지의 부패한 정부는 일대일로를 찬미했고 시진핑의 지도력을 추켜세웠다.
일대일로의 문제점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유럽까지 친중국으로 만들겠다는 일대일로 야심은 결국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견제를 자초했고 미·중무역전쟁이 터졌다. 미·중 무역전쟁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일대일로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인도, 한국 같은 소위 ‘중국에 인접한 깨어 있는 국가들’도 일대일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나” 하면서 중국 정부 내부에서조차 의아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대일로의 가장 큰 문제는 해외 인프라 건설을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중국 외화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언론을 통제하는 국가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일대일로는 상당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졌듯이 중국은 일대일로의 늪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470조원의 중국과 러시아의 가스관 공사. 러시아는 큰 부담없이 중국몽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일대일로 사업에선, 주변국이 아닌 중국 기업이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기술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일대일로는 경제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공동의 이익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 그리고 책임 공동체”라고 기능적으로 일대일로를 정의한다.
그러나 대부분 조건부로 이뤄져서, 수원국(受援國)의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 양허, 무역 협정, 투자 협상을 강요한다. 이러한 패키지에는 무리하다 싶은 요구 사항도 포함된다. 중국은 타지키스탄에 일부 국토의 양보를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중국군의 주둔을 타진했다.

일대일로는 “전근대적 조공체계”
그래서 “일대일로는 사업도 제도도 아닌 새로운 조공체계”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인프라를 깔아주겠다는 논리다. 심지어 일대일로는 주권국가로 구성된 근대 세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는 중국을 중심으로 양자 관계로 구성되고 중국의 호의에 기대야 한다. 21세기 세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국가들이 글로벌 문제에 똑같이 주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독립적이라든가 근대세계라는 말하고는 거리가 멀다.
문재인의 중빠몽
문 대통령은 중국몽을 우리 모두의 몽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지금도 매일 같이 중국 문화를 접한다"
"많은 소년이 '삼국지연의'를 읽고 청년들은 루쉰의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을 읽는다"
"적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하루 10리 밖에 전진하지 못하면서도 백성들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유비의 모습은 '사람이 먼저'라는 저의 정치철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중국이 북한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줄 것을 기대하며 한 말일 것이다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무역은 중국 25%,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을 다 합치면 36% 수준이다. 그래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중국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위험한 중국몽
지나친 중빠몽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은 한국의 친중적 자세 자체가 큰 소득이지만 우리는 친중을 해도 중국으로부터 특별히 더 얻을 게 없다. 중국이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그것을 추구하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러나 나아가선 미국을 군사적으로까지 추월하겠다는 야심을 담은 작금의 이른바 중국몽에 우리가 함께 놀아나야 할 이유는 없다. 첫째, 그 중국몽은 현실적으로는 우리에겐 다시 한 번 사대주의 시대와 같은 중국에 대한 굴욕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둘째, 뿐만 아니라 그 야심찬 중국몽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모택동 독재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시진핑
시진핑의 1인체제는 우한퍠렴보다 치명적인 독
2018년 7월1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주민들은 지하철 1호선의 객차를 탄 뒤 깜짝 놀랐다. 객실 내부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어록으로 도배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어록은 창문의 위와 옆면, 좌석의 좌우면, 개폐문의 중간과 아래를 차지했다. 또한 객실 바닥은 붉은색으로, 천장은 붉은 바탕 위에 공산당 휘장과 별로 칠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승강장과 객차 곳곳에는 선전원들이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공산당과 시진핑을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노래까지 불렀다. 한국 언론에선 ‘시진핑 사상 열차’라고 표현했다

중국 전역엔 2000만 대 이상의 CCTV가 설치됐다. 중국 정부는 CCTV 해상도를 4K의 초고화질로 높이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엔 첨단 인공지능(AI)과 안면인식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몇 년 뒤면 누구의 얼굴이라도 실시간으로 인식돼 3초 안에 신원을 구별하게 된다. 이미 베이징의 대학들은 안면인식 카메라를 이용해 교직원과 학생의 신원을 확인해 출입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농촌에선 쉐량(雪亮)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주민이 직접 스마트폰이나 TV로 마을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살펴보면서 상호 감시토록 하는 프로젝트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1억 명의 DNA 샘플을 수집하는 데이터베이스까지 구축하고 있다.
리원량(李文亮·34)의 외침과 죽음
우한시 중신병원의 리원량이 화난수산물시장을 다녀온 환자 7인에게서 폐렴 증세를 발견하고 의사 동문들과의 채팅방에 "신종 사스가 나타났다"고 올린 게 작년 12월 30일이다. 친구들이 이 소식을 SNS 웨이보에 올리자 경찰이 즉시 삭제하고 의사들을 불러 "그 소식은 가짜라는 확인서에 사인해라. 다시는 루머를 퍼뜨리지 마라"고 겁박하며 풀어줬다. 이 장면은 트로이전쟁 때 목마(木馬)가 성 밖에 나타나자 "목마 속에 적군이 들어있다.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한 예언자를 가두었던 프리아모스왕을 연상케 한다. 결국 트로이는 멸망했다.

그의 나이는 34살이었고, 부인과 5살 딸이 있다. 공안에 체포되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일선에서 환자 치료에 나서려 했지만, 의료 활동 중 감염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원량은 2월 6일 신종 코로나로 죽었다. 그로부터 우한시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비상사태'를 선포한 게 3주 후인 1월 20일이었다. 회생의 골든타임에 춘제 연휴가 있어 우한시민 500만명이 고속철도 항공기를 타고 초고속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도록 도왔다. 호흡기전문 자오젠핑이라는 의사는 우한시장실에 "우한 폐렴은 사람 간에도 전이가 된다"는 소식을 행사 이틀 전인 16일에 보고했다. 그러나 저우셴왕 우한시장은 코로나바이러스 비상 사태가 선포된 1월 20일 다음날인 21일 TV에 출연해 "바이부팅 커뮤니티에 올해 연회 개최를 허용한 것은 전염병이 사람 간에는 전이가 안 된다길래 그랬다"고 태연히 거짓말했다.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거짓말도 하는 게 시진핑 체제하의 중국 관료제의 현실이다.
우한폐렴으로 흔들리는 중국몽
11일 온라인 매체 펑파이(澎湃)에 따르면 엘리베이터 광고업체인 신차오(新潮)미디어는 열흘 연장된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가 끝나고 업무를 개시한 전날 직원의 10%인 5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생존을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해고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신종코로나 방역 현장을 처음으로 방문해
“특히 일자리 문제를 주시해야 하며 대규모 감원 사태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날 나왔다.
앞서 베이징 최대 KTV(노래방)인 ‘가라오케의 왕'(K歌之王)은 지난 7일 200여명에 이르는 전 직원과 근로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종업원의 30%가 동의하지 않으면 파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유명 IT 교육업체 ‘형제연교육’은 지난주 베이징 캠퍼스에서 학생 모집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신종코로나로 전국 교육기관의 오프라인 교육이 중단됐는데 이로 인한 타격이 컸다고 업체 측은 밝혔다.
화바오신탁의 녜원 애널리스트는 “신종코로나로 1분기에 200만∼3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중국에서 엘리베이터 광고를 하는 신차오 미디어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500명의 인력을 감축한다고 로이터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CCTV를 통해 대량 해고를 막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대조된다.
우한폐렴은 우연한 일일까?
잘못을 깨달으라는 신의 계시일까?
동창님들
늘 건강하기를~~~
첫댓글 수고많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