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병아리 아이콘 -
☆ 2014년 가해 4월19일 (자) 부활 성야
[수도회] 슬픈 부활절에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서간 : 로마 6, 3 - 11
† 복음 : 마태 28, 1 - 10
★ 부활 성야 미사의 말씀 전례는 일곱 개의 구약 성경 말씀, 신약 성경의
서간과 복음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긴 세월 동안
행하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특히 오늘 듣게 되는 탈출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과정이다. 이 해방의 파스카 사건은 부활 성야 미사의 의미를 잘 전해 준다
(독서).
★ 마리아 막달레나와 마리아가 새벽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 당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다. 두 여인은 이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린다(복음).
◈ 오늘의 묵상
부활의 첫 번째 증인들이 빈 무덤과 마주했습니다. 그저 비어 있는
무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허무와 죽음에 대한 승리의 표징이었습니다. 우리의
부활 신앙은 마음의 위안 차원이 아닌 더없이 강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이들을 위한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이 믿음의 눈은 자신을 비우고 죽이며
내려놓는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지난해 가을에 선종하여 이제 주님 부활의 은총을 몸소 체험하고 있을 소설가
최인호 베드로의 유고집 『눈물』에는, 그가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 데레사)
성녀를 바라보며 부활의 신비를 깨닫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은총의 밤에
고인이 남긴 소중한 깨달음을 함께 음미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주님도 돌아가신 후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주님께서 묻히셨던 무덤이
먼저 텅 비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두 손이 텅 비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의 두 손을 오롯이 합장하여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무덤이
비지 않으면 주님도 부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합니다.
죽어서 무덤 속에 묻혀야 합니다. 그런 후 마음의 무덤은 (데레사) 성녀의
빈손처럼 무(無)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살아 계신 주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처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나를 보게 될 것이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부활 담화문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특히 죽음과 어둠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의 빛이 이
땅에 고통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 버림받은 이들에게 환히 비추어 지기를
바랍니다.
2.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주간 첫날 동틀 무렵에 두 여인이 예수님께서 묻히신
곳으로 달려갔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천사의 말을 듣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습니다”(마태 28,5-6;7).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여인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3.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는 다름 아닌 갈릴래아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마태 4, 17참조), 가난한 이, 억눌리고 소외된 이들에게 참된 행복을 말씀하신
자리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랐으며,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했던 자리,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삶을 살았던 자리가 바로
갈릴래아입니다. 바로 그 갈릴래아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가십니다.
주님께서 희망의 빛으로, 생명과 사랑의 빛으로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찾아가십니다.
200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우리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현대세계에 관한 사목헌장
1항’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이 땅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이 그리스도 제자들인 우리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그들의 슬픔과 고뇌가 그리스도 제자인 우리들의 슬픔과 고뇌가
되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의
갈릴래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는 다름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속에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곳이 생명과 희망, 위로와 사랑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요, 또한 예수님과 함께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4. 오늘날 우리 사회는 참된 평화와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불안과 부조리, 그리고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장애인, 노인, 결손가정 아이들의 인권과 복지는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권력의 힘에 의해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이익만을 쫓아가며, 생각과 가치가
자신과 다르다고 하여 비난하고 증오하는 삶의 풍토가 이 땅에 만연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앞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이 땅에 희망의 빛,
생명과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 앞장서는 그리스도인들, 물질
만능주의의 풍조에 맞서 생명 존중과 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자신의 삶 안에서 묵묵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나는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이 꿈꾸는 현대 세계안에서의 교회 모습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 교황님은 세례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모임인 교회가 세상에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하고 계십니다.
신자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듯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금년 8월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겸한 한국 천주교회 사목방문을 오십니다. 그리고 바쁘신
일정 중에 꽃동네를 방문하시어 ‘장애 아동들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교황님의 음성 꽃동네 방문과 장애 아동들과의 만남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관심을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이 교구의 평신도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성직자들의 삶을 쇄신하여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고, 가장 작은이들 안에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6월 4일에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진정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가진 분들이 선출되도록 모든
교우들은 소중한 선거권을 신중하게 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 4월 20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부활에 동참
교회는 성토요일에는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다.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무르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이날은 노자 성체만 허락되며, 제대포는 벗겨
둔다. 부활 성야 예식을 거행한 뒤에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이 기쁨은
50일 동안 넘쳐흐른다.(매일미사)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오늘. 그래서 오늘은 매년 그러했듯이 ‘새벽을 열며’
묵상 글도 유일하게 없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시면서
더욱더 그 사랑에 깊이 빠져 드는 은총의 시간이 되십시오. 그래야 오늘 저녁
예수님 부활의 큰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시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오마에 겐이치).
성금요일인 어제 부천장애인 복지관 관장으로 사목활동을 하시던 유영훈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신부님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사진은 1989년 신부님과 함께 설악산 등산을 가서 찍은
것입니다. 맨 우측 상단이 유신부님이세요.
아직은 부족하다(‘좋은생각’ 중에서)
1995년, 오랫동안 특수 교육 교사로 재직한 몰리 하워드는 제퍼슨 카운티
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큰 기대를 안고 학교에 가 보니 문제가 많았다.
학생의 80퍼센트가 빈곤층이라 대학 진학률은 15퍼센트에 그쳤고, 아이들은
공부도 못하고 능력도 없다는 생각에 매사 소극적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살펴본 뒤, 개별 지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상담 선생을 짝지어
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성적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엔 점수가
A, B, C, NY밖에 없었는데 NY란 ‘Not Yet(아직은 부족하다)’이라는 뜻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숙제를 대충하거나 안 한 뒤에 D나 F를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NY’ 점수를 받자 ‘선생님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느끼며 자신에 대한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육 참여도와 졸업률,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으며 하워든 2008년
미국중고등학교장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교장’으로 뽑혔다.
그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그동안 ‘절대로 안 된다’라던 생각이 ‘아직은
부족하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노력이 부족할 뿐이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기타] (2014년 가해 4월19일 토요일 부활성야 복음 묵상)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Peace for a Christian is an unshaken calmness which can be earned
by believing Christ is with oneself.'
2014년 가해 4월19일 토요일 부활성야 한 줄 복음묵상
“평안하냐?” (마태오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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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평화란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을 믿기에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말합니다.
キリスト者にとって平和はキリストが共に居られるのを信じるから得られる?
るぎない平?を言います。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수도회] 슬픈 부활절에...
2014년 가해 4월19일 부활 성야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고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레아로 가실 것입니다.>
마태 28,1-10
슬픈 부활절에...
차츰 드러나고 있는 세월호 대참사에 얽힌 소식들을 접하며 치미는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는지,
역사와 후손들 앞에 길이 남을 부끄러움입니다. 대형 참사 후에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인재, 초기대응의 미흡,
얄팍한 상술, 무책임, 안이한 대처, 애꿎은 희생자들...
금쪽같은 자녀들, 삶의 희망이요 보루이던 자녀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황당함과 비통함에 울부짖는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잊습니다.
마치도 예레미아 예언서의 한 장면 같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미아 31장 15절) 거짓말 같은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아직도 자녀들의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님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생길 수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먼저 드는 생각이 혹시라도
이게 꿈이었으면, 혹시라도 시계바늘을 뒤로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교회가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만일 지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큰 슬픔을 겪고 있다고 할 때
가장 얄미운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 이런 찢어지는 가슴은
조금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겠지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평소처럼
희희낙락하며 즐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 이 큰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고 나와 함께 눈물 흘려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따뜻한 연민의
마음을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큰 슬픔에 다양한
방법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마치 내 일처럼 만사 제쳐놓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의 최일선에 서서 움직였습니다. 피해자들의 구조 활동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피해 당사자들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미리 계획해놓았던 스케줄들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큰 슬픔 중에 있는 가족들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변방’,
‘변두리’, ‘경계’란 단어입니다. 이 시대 사목자들은 이 세상의 가장 변두리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그 변방, 세상의 끝은
가장 고통스런 삶의 현장, 이 세상에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곳, 가장 우선적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한국 교회와 사목자들이 나아가야 할 변방,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요?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입니다. 생때같은
자식들 잃고 혼절한 부모들이 자리한 곳입니다. 쓸쓸한 희생자들의
영안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희생된 아이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들이만 모두 우리 아이들입니다. 영안실을 찾아가 정성껏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큰 슬픔에 잠겨있는 유족들, 아직도 자녀들
생사를 확인 못해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부모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리는 일입니다. 각 본당이나 수도회 차원에서 기도운동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점점 희박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간절히 함께 기도해봐야겠습니다.
다시 돌아온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다른 해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드러내 놓고 부활 축하 인사를 드리기도 민망합니다. 수많은 우리 어린
영혼들이 희생된 대형 참사 앞에, 전 국민적인 비극 앞에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이번 부활절 다른 무엇에 앞서 영성적 회개, 공동체적 회개, 범국민적 회개의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안전 불감증으로부터의 회개, 적당주의로부터의
회개, 물질만능주의로부터의 회개, 극단적 이기주의로부터의 회개...
예수님 부활절 때마다 드는 생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인류를 위한
엄청난 선물인 예수님 부활, 너무나도 감동적인 주님의 부활이건만 별 감흥
없는 부활, 별 의미 없는 부활, 나와는 거리가 먼 부활은 웬일입니까?
부활의 개별화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한 개인 체험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내 안의 변두리, 내 안의 변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한계, 내
비참함, 내 죄, 내 적나라한 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포장들을 모두 벗겨내야 합니다. 내 영혼에 덕지덕지
덧칠해져있는 거짓과 위선, 교만과 아집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 내 부끄러운 알몸, 나의 정확한 현주소를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거짓 자아에 완전히 죽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제의 나, 그릇된 나, 우상숭배의 나에서 완전히 죽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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