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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항상 행복하다. 항상 행복해야 그리스도인이다.
요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최근 하나님께서 진리의성령교회의 설교를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해주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입니다.
고난을 통해 각자에게 있는 영적문제들,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옛 모습,
마치 나무 밑동이나 잔뿌리처럼 마음 깊이 숨겨져 있던
세상을 향한 욕심과 야망 등이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것들을 겸손히 인정하며 고백하고, 회개하여 돌이켜 순종하면서
‘이제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인생’이 될 때
우리는 자기를 온전히 부인할 수 있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으며,
영적으로 점점 자라가며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훈련) 없이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기에 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나의 인생은 평생을 고통만 당하다 끝나는 것인가?
진짜 너무 싫다...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고난 없이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차라리 그리스도인을 하지 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난을 통해 성화될 수 있는 기회인 하나님의 은혜를 미워하여
“고난은 너나 많이 받으시라.”고 하면서 기복주의 교회로 멀리멀리 떠나는
안타까운 교인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며,
또한 누리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해주고 계신 분,
심지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죄의 제물로 삼으신 분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선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고난과 행복’, ‘환난과 평안’,
정반대로 보이는 이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우리가 둘 다 취할 수는 없을 것 같기에
이 부분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세계관을 마음의 중심에 둘수록
고난과 행복은 양극단에 있는 것이 아닌
동의어에 가까운 말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안과 환난을 동시에 말씀하심으로
고난과 행복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천명하셨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고난과 행복은 절대 동시에 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인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와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서로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오류에 불과한, 이상한 말씀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면서 동시에 평안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롬 5:1-4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본디 고난이란 반드시 힘들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고난 때문에 힘들 때는 열심히 힘들어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부정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부분을 인정하며 고백하면서
회개와 돌이킴과 자기를 부인함과 순종으로 변화되고,
또한 인내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인내를 함과 동시에
그것과는 별개로 잠시 후엔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거나 신앙생활이 파괴되지 않고,
힘든 와중에서도 마음의 가장 깊은 곳, 중심에는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100%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비밀스러운 행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항상 나에게 충만하게 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때론 돼지의 사료인 쥐엄 열매를 입가에 묻히고 돌아온 탕자의 모습일지라도
이제는 기다려주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순종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간 자신의 성장에 미소가 지어지며,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신의 모습에 뛸 듯이 즐거우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전히 사랑해주고 계신다는 이 변치 않는 명확한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할 진실,
하나님께서 매일, 매순간 자신을 지켜봐주고 계신다는 확신에 진심으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4:1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사람들이 청량한 하늘을 보거나, 멋진 바다를 보거나, 향긋한 숲의 향기를 맡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이라는 멋진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 채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말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온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나님,
생명과 빛으로 지혜와 권능으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사랑이 넘치는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구원의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 구원의 하나님, 우리의 자랑과 기쁨 구원의 하나님.
(찬송가 53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온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의 자랑과 기쁨이신 그 하나님을 알고 있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든 고난을 겪고 있을 때라도 그 기쁨은 조금도 변색되질 않습니다.
무려 신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내가 서로 사랑하며 친밀하고,
하나님과의 추억이 마음에 한 가득인데
잠시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귀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고후 6:4-10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또한 우리가 경험해 왔던 것처럼,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인생을 살펴보아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극한의 고난만 주시는 분도 아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허락하시면서 능히 감당할 능력도 같이 주시며,
피할 길도 주시고,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빠르게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움직이심으로 즉시 벗어나게 해주시는 놀라운 때도 있으며,
더불어 충분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위로와 상급을 주실 때도 있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잠시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과 감사와 평안을 버리면
나중에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주시며 위로해주실 때에 하나님께 너무 죄송할 것이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미리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우리는 늘, 말 그대로 항상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화평해졌고,
그 절대자의 전적인 지지와 완벽한 보호 아래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하나님과의 여러 추억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해진 사람은
굳이 자연을 보지 않아도 그 기분 좋음과 편안한 느낌을 늘 품고 있게 되는 원리입니다.
어떤 의심도 없이 확실히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분께서 나를 구해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실과
예수님께서 승천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으며,
지금도 항상 자신과 함께 해주고 계신 것을 정말로 믿고 있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설교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하실 겁니다.
결정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내가 영적으로 어떤 상태여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고 계신다는 그 명확한 사실을 의심 없이 믿음으로서
이 안정감과 행복은 극대화됩니다.
심지어 죄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사랑하시면서 기다려주시는 분이기에 이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너무나 확실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늘 행복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는 강력한 이유입니다.
롬 5:5-11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오늘 하루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였어도,
혹은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어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안식처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즉시 만나며 느낄 수 있으니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다시 새 힘을 얻어 일어나는 동력의 원천이 되어주신 분이며,
또한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니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지쳐 넘어졌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나 있고,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이해보일 수도 있는 무한한 행복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 중에도 웃으면서 감사하거나 심히 아픈 중에도 행복해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저질렀을 극단적인 선택,
즉 하나님의 소유인 자기 자신을 살인하는 자살도 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 5:11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또한 그분을 100% 의지하는 믿음을 품고 있다면
언제든 무한히 행복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도 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덕분에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어야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봐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늘에 가득하신,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지켜보시며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며,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구해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그 엄청난 은혜를 값싸게 여기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의 고난들에 원망과 불평의 마음만 가득하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
하나님의 사랑은 많이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자,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무소부재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자,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여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다 영의 눈이 멀어버린 자로서
시간이 다 지나도록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여
결국 천국 잔치에 참여할 예복을 준비할 수 없게 됩니다.
마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께선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 미리 예언된바
원래 이 세상을 밝히 비출 수 있는 유일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을 빛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어서 비추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방법은
착한 행실과 부패하지 않는 정의로움도 있지만
오늘 말씀의 주제로 접근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이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자꾸만 어디서 새 힘을 받아오고,
자신들은 도저히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는 진정한 행복을
우리는 어디선가 계속해서 공급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그러면서 웃으며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 15:13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즐겁다면
우리의 얼굴도 당연히 빛나게 될 것이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은 어두워지고, 자신의 심령도 상하게 할 것입니다.
(단,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거룩한 근심은 기쁨 안에 있습니다.)
일례로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저의 어머니는
암수술을 받은 후 통원치료를 받으실 시기에
걷는 운동을 하라는 의사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운동을 하시다가
잠시 쉬기 위해 동네공원 벤치에 앉으셨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운동을 하러 나온 동네 중년여성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어느 교회에 오라고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셨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얼굴이 그토록 밝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저도 예수님을 믿어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중병의 환자들이 입실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어머니를 지켜본 같은 병실에 있는 분들이
어머니는 참 특이한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가발이나 두건을 쓰고,
살 빠진 얼굴과 안색을 보면 암환자라는 티가 나며, 또한 구역질과 화상(방사선)의 고통 때문에
표정이 어두울 수도 있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예수님의 복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빛을 이어서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막바지에는 병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회개할 것은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 못할 것 없이 다 용서하는 모습으로
‘어머니가 병원에 6개월 넘게 있다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
목회로 바쁘다며(?) 단 한 번도 간병은커녕 병문안조차 오지 않은 장남 부부’에 대해서도
서운한 마음을 다 버리고, 용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제가 형에게 찾아가서 왜 어머니를 만나러 오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형은
“엄마가 나를 서운하게 한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엄마는 저대로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병을 낫게 해주실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형은 결혼 후에도 6년 넘게 부모님에게 생활비 전부를 받아서 썼지만
자신의 몸이 안 좋은데도 더 이상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
어머니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다는 이유 등으로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되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천국에 들어가셨다는 점을 기억하고,
부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가정사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고, 말하지 않는 것이 마음은 편했겠지만
하나님의 엄중한 명하심에 의해 어렵게 추가했으며,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증언해주실 것입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병원 예배당에 가실 수가 없었고,
제가 주일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전달하라며 주신 점검의 말씀을 전해드렸기에
어머니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철저하게 하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경훈이 너 없었으면 나 정말 어떡할 뻔 했니? 정말 고맙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저를 사랑으로 길러주셨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대상포진 격리실에서 함께 격리되어 밤을 새우며 어머니의 배설물을 받고,
어머니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던 날, 천사 분들이 병실에 들어오는 것을 저는 보았고,
그 즉시 어머니는 갑자기 손에 힘을 주며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하시다가
평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만 입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저를 봤다면
‘저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감사합니다? 미친 자인가?’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제 신앙의 스승인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저는 꿈에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천국의 해변 같은 곳에서 어머니는 젊어지고 예쁜 모습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
“많이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하시며 저를 꼭 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받는 사람의 위로에 많이 울면서 잠에서 깼지만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본 것도 좋았고,
조금만 더 힘내라는 말에 큰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께 돌아가기까지
앞으로도 힘들고 지치는 날이 있을지라도,
반대로 힘든 일 없이 마냥 행복한 날이라 해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매일 조금씩만 더 힘을 내어서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천국을 바라보며 매일 행복하게 웃으십시다.
합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앞으로 우리의 모든 소유를 다 잃게 되는 극단적인 날이 온다 해도,
즉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전무후무한 환난의 날을
우리 중의 누군가는 겪어야만 한다 해도
여전히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고난과 행복, 환난과 평안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도저히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항상 기쁘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이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가 확실하기에
행복과 동의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행복,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머물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을 느끼는 존재들,
천국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진리를 계승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항상 지켜봐주고 계시며,
그 누가 우리를 사랑해주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리를 가장 사랑해주는 분이시며,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기를 가장 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난 중에 있을 때나
당장의 기분과 감정에 아무 상관없이, 완전히 별개로
하나님 덕분에 매순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맞습니다.
이 놀라운 기쁨을 매일 충만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십시다.
기쁨을 누리기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의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빌 4: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과연 오늘의 나는 그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힘겨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기에 항상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임재를 느끼면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의 비밀을 알며, 누리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고난과 행복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이라 느끼며,
하나님의 은혜인 고난을 미워하고 불평하면서
오로지 세상의 것들로 자신의 행복을 채워보려는 마음을 가진 자인지
객관적으로 점검해봄으로서
각자 자신이 현재 어떤 위치, 어떤 영적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심하고,
부디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순간을 지금 준비하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순종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눅 6:20-26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9.01.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63장 서산으로 해질 때
1. 서산으로 해질 때 천지 고요하도다 어둔밤에 별들이 아름답게 비칠때 경배하라
2. 우주안의 인생들 주님 앞에 나올때 멀리하지 마시고 품에 안아 주소서 주 하나님
3. 날이 저문 이밤에 사랑하는 주께서 우리 품어주시니 높이 계신 주님을 찬양하네
4. 해와 달과 별들을 볼수없게 될때에 주여 우리 눈앞에 광명하신 그 빛을 비추소서
[후렴]
거룩 거룩 거룩 주 하나님 어디든지 계신 주 천지 노래 하도다 만유의 주 아멘
첫댓글 아멘~ 목사님 어머니의 간증은 언제나 은혜롭고 큰
도전을 줍니다. 저 또한 자녀들에게 목사님의 어머니처럼
신앙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기를 간절히 소망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머니에게서 배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에녹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참된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또한 자녀들이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며 배우기를 힘쓰는 아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항상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은 시간을 잘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