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혈(穴) 論 - 와혈지혈(窩形之穴) - 30
소와격(小窩格) - 9
傳疑* 楊無敵,宋初太原人。父信漢,麟州刺史。
전의 양무적,송초태원인。부신한,인주자사。
전의) 양무적은 송나라 초의 태원사람이다.
부친 신한은 인주자사였다.
※ 전의(傳疑) : 경전이나 고사의 의심스러운 점에 대하여 정론(定論)을
주장하지 않고 그대로 후대에 전함
無敵名業,事劉崇,屢立戰功,時號無敵。
무적명업,사류숭,누립전공,시호무적。
무적의 이름은 업이고 류숭을 섬기며 전공을 여러차례 세웠고
시호는 무적이다.
太宗征太原,業勸其主繼禮降,以保生眾。
태종정태원,업권기주계례강,이보생중。
태종이 태원을 정복할 때 그 주인 계에게 항복을 권하여
살아있는 백성을 보호하였다.
太宗召見,以業爲代州兼三交駐泊兵馬都部署,屢與契丹戰,
태종소견,이업위대주겸삼교주박병마도부서,누여계단전,
태종이 불러서 보고 업을 대주로 삼고 삼교주박병마도부서를 겸하였고
여러 차례 거란과 전쟁을 하다가
被擒,不食而死。業不知書,忠烈武勇,有智謀,
피금,불식이사。업불지서,충렬무용,유지모,
붙잡이고 먹지 않다가 죽었다.
업은 글을 알지 못하나 충성서럽고 용맹하였으며 지모가 있어
與士卒同甘苦,故士卒樂爲之用。
여사졸동감고,고사졸락위지용。
사졸과 달고 쓰고를 같이 하여 사졸들이 그 쓰임을 즐거워했다.
(사졸들이 충성을 다했다.)
子延昭,太宗時以崇儀使知保州,屢敗契丹。
자연소,태종시이숭의사지보주,누패계단。
아들 연소는 태종 당시 숭의사로 지보주를 하다가
거란에 여러 차례 패하였다.
後爲商陽關副都部署,智勇善戰。契丹憚之,目爲楊六郎。
후위상양관부도부서,지용선전。결단탄지,목위양육랑。
후에 상양관부도부서가 되었으며 지혜와 용기가 있어 전쟁을 잘했다.
거란은 그를 꺼렸고 지목하여 양육랑이라고 하였다.
昭子文廣,從狄青南征,爲廣西鈐轄,知宜邕二州,英宗稱爲名將。
소자문광,종적청남정,위광서검할,지의옹이주,영종칭위명장。
소의 아들 문광은 적청을 따라 남쪽 정벌을 가서 광서검할이 되었고
지의옹 이주를 맡으니 영종이 명장이라고 칭하였다.
屢遷興州防禦使、秦鳳副總管。後徙定州,遷部軍都虞候。
누천흥주방어사、진봉부총관。후사정주,천부군도우후。
여러 차례 옮기며 흥주 방어사, 진봉 부총관이 되었고
뒤에 정주로 옮기어 부군도우후가 되었다.
遼人爭地界,文廣獻陣圖,並取幽燕策,未報而卒。
요인쟁지계,문광헌진도,병취유연책,미보이졸。
요인과 땅의 경계를 다투었고 문광은 진도를 헌납하며
유연책을 취하였으나 보답하지 못하고(효과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其後世爲邊帥。
기후세위변수。
그후 세상사람들은 (그를) 변방의 장수라 하였다.
첫댓글 신한 양무적(업)의 전공에 대해서 ......
배웁니다... 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