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신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성자
모임에 나가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왔다. 시간도 잘 가고 스트레스도 풀린 것 같다. 집에 오니 우리집 고양이 사와자키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 캣타워에서 자고 있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뛰어 내려왔나 보다. 쓰다듬고 뽀뽀해 주었다. "할머니 기다렸어? 아이구 내 새끼야." 이놈은 그야말로 진심이다. 말을 안 하니 더 진심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전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와자키를 사랑하고 저도 나를 사랑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이 없어도 믿는다.
쉬려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연다.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자로 하는 말, 말, 말. 요즘 들어 부쩍 보이스피싱이 기승이다. 또 왔다. 내 계좌에서 98만 원이 정상 출금되었으니 연결된 번호에서 확인하시란다. 이런 말을 믿을 줄 알고? 일거에 수신차단이다.
유튜브에 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나의 sns 불신 태도는 이곳에서 비롯된 것 같다. 몇 년 전 목 디스크를 진단받고 여기저기 검색해 보다 조회수 많은 유튜버의 사이트에 들어갔었다. 동영상을 보고 이것저것 동작을 따라 하다가 된통 고생했다. 운동을 잘 못한 것이었다. 그뿐이었는가. 다른 사이트에서 권하는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구매해서 부지런히 먹었었는데 또 다른 유튜버 말로는 영양제 과다는 또 다른 병을 부르기도 한다나 어쩐다나. 병원에서 당뇨 전단계라 하니 또 뭐가 좋은가 검색해서 이것저것 안 먹던 것도 사서 먹고 조금 지나보면 또 그 음식은 당뇨에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전문가를 마주치게 된다. 혈압도 오르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무서워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여기저기 알고리즘 따라 돌아다니기 일쑤가 되었다.
사실 유튜브가 얼마나 편한가. 건강 강좌에 오프라인으로 참석해 보려면 전화로 등록해야 하고, 시간 맞춰 찾아가서 사람들 많은 곳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고, 옷 차려입어야 하고, 미장원도 다녀와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는데, 집에서 편한 자세로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는 유튜브 강좌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문제는 아무 장단에나 맞출 수 없게 된 데 있다. 몇 년을 시청하다 보니 이제는 그 어떤 유튜버의 말도 곧이곧대로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말?" "레알?" "저 사람 말이 맞나?" "댓글 부대 동원된 거 아닐까?" 실망이 거듭되고 불신은 깊어지다 보니, 이제 복수 검증 내지는 직접 확인 등을 거치지 않은 충고라는 말씀은 일단 거른다. 불신한다.
그렇다 해도 이 시대에 유튜브 없이 살 수는 없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더하며 시청할 수밖에 없다. 피곤한 일이다. 속이 빤히 보이는 광고성 영상에는 화나고 지친다. 이리도 불신을 낳는 세상이다 보니 인간이 입을 통해서 하는 말이나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날리는 문자들이 믿음을 받지 못한다.
오늘 점심 모임에서 내가 했던 말들, "자네 젊어졌네",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네"와 내가 들은 말들, "건강이 좋아 보이십니다", "자주 뵙고 싶어요"는 과연 그대로 믿을 만 한가? 추호의 거짓이라도 섞여있지 않은가?
사와자키가 할머니 보고 반가워서 "니아~옹" 하는 소리와 그 진실성 면에서 높다고 할 수 있는가? 나의 집 베란다에 있는 관음죽에 물을 주며 내가 하는 말 "많이 먹어라, 이쁜 것아"는 진실하다.
비록 연로한 나이 일지라도 매일을 고양이와 나무들과 진실을 나누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의 불신주의 존재 방식에는 절충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믿지 않되 되도록 잘 불신할 일이로다.
조만간 AI 시대가 도래한다는데 이 또한 불신할 것 천지일 듯한 예감이 들어 벌써부터 긴장된다.
좋아했었던가 아닌가 나의 기억에마저 불신이 생기지만 오늘 저녁엔 옛 노래 하나를 다시 들어봐야겠다. 이광조 버전으로 듣겠다. 물론 유튜브에서다.
웃는 얼굴 다정해도
눈짓 몸짓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달이 가면 변할 줄 알았으니까
웃는 얼굴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해가 가면 변할 줄 알았으니까
만나서 하는 이야기 즐겁긴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간지러운 속삭임
그러니까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헤어지면 아픈 가슴 슬프긴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쑥스러운 속삭임
그러니까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2024.7 전남여고 특집 제출용
조성자
전남여고 42회
2015 [에세이스트] 등단
계간 [리더스에세이] 2024년 여름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