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한 무덤의 수가 무려 191기나 된다고 한다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이제 동래시장 곁에 있는 동래부 동헌을 향한다
옛 학소대(鶴巢臺) 터에 자리 잡은 법륜사(法輪寺)
복천동 고분군과 동래시장 사이에 있다
법륜사(法輪寺)
1950년경 우장춘(禹長春) 박사가 귀국하자 정부에서 학소대(鶴巢臺) 동산에 후대의 원예 교육 학교 건립을 제안했다
우장춘 박사는 이 터를 범어사에 기증하였고, 범어사는 이곳으로 동래포교당을 옮겼다
대신 범어사는 지금의 동래원예고등학교 터를 박사에게 기증하였다.
법륜사(法輪寺)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을 시작으로 해서
1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근대 영남 지역 대중 포교의 중심이 되어 온 사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1976년 어린이 법회를 열었으며, 1983년에는 지역 최초의 불교 유치원인 ‘법륜유치원’을 개원하였다
또, 중고등부와 청년 법회를 개설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고승을 모시고 매년 봉행해 온 화엄 산림 법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옛 학소대 터 임을 보여주듯 고고한 자태의 소나무들이 보인다
지금은 대부분이 도심의 일부가 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으나
동래 중심지에 우뚝 솟은 학소대(鶴巢臺)의 모습만큼은 그 옛날부터 학이 깃들만한 명소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채 아름다운 학의 군무(群舞)가 펼쳐지던 바로 그곳에
지금의 법륜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학소대 터의 법륜사를 떠나 학소대 터 아래에 있는 옛 상춘정을 찾아 간다
옛 상춘정 자리에 있는 동래유치원 (동래구 칠산동 246번지)
이곳 동래유치원은 옛 상춘정이 있었던 자리다
상춘정(賞春亭)은 부산 동래 지역 유지들의 친목 단체인 기영회(耆英會)에서
세운 정자로 일명 회심정(會心亭)이라고도 불렀다
상춘정 자리는 도화동천(桃花東天·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 불리던 곳으로
옛 동래부사와 지역 선비들이 봄맞이를 하거나 시를 짓곤 하던 곳인데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존속되어 오다가, 1942년 지금의 동래구청 부근에 있던 동래유치원이 옮겨 오면서
상춘정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동래기영회에서 동래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래 상춘정 터에는 동래부사 정현덕의 태평원 시비를 비롯하여
동래부사 민영훈의 생사비를 포함한 2기의 생사비와 3기의 거사비가 있고
봉호복정(蓬壺福庭)이라는 돌기둥 등 여러가지 유적들이 있다
수령 220년이 된 보호수 푸조나무
참고로, 동래기영회(東來耆英會)는
1846년(헌종 12) 3월 동래부에 거주하던 50세 이상의 노인 40명이
동래 학소대(鶴巢臺) 아래 윤언서(尹彦瑞) 집에 모여 기영계(耆英稧)라는 친목 시회(詩會)를 만들었다
1883년(고종 20)과 1897년(광무 1)에는 동래 부사가 모임에 가입함으로써
기영회는 동래 지역의 대표적인 모임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다
1963년 재단 법인 동래기영회가 발족되었고 1970년 동래유치원을 인수하였다
1985년에는 동래문화회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170년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봉호복정(蓬壺福庭)
복스러운 정원이라는 뜻의 봉호복정이라는 한자가 새겨 진 돌기둥은
동래기영회 회원들과 동래부사들이 모여 시회를 열던 곳의 유물이지만 지금은 방치되어 반쯤 흙속에 파묻혀 있다
동래부사 정현덕의 태평원 시비(太平園 詩碑)
태평원(太平園)은 현 동래중학교 앞 쌍용예가 자리에 있던 곳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죄수를 사형시키던 곳이라 한다
이 비석은 한말에 부사 정현덕이 쓴 시를 새겨 태평원 안의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만년대 자리에 있던 것을
1955년 동래기영회에서 현 위치인 동래유치 원으로 옮겨 두었다고 한다
태평교 다리 아래 태평원에는 정원의 풀과 꽃이 날로 무성해지네
돌 위엔 큰 글자 셋 새로이 새기었고 길 가에선 한 지방 얘기 많이도 듣는 다네
멀리 가는 수레도 변방이 괴롭지 않으니 농사꾼도 모두 임금의 은혜를 아네
촌 늙은이 살펴보니 머리는 눈 같은데 느릅나무 우거진 곳에서 손자 아이와 유희하네
태평원 안의 만년대에는 도호부사가 외영(外營)을 물 가에 열었네
경치 좋은 곳에 아지랑이와 안개 쉽게 거느리고 언덕 둘러 꽃나무도 손수 새로 심었다
젊은 학생 풍류거리 잘도 만들고 젊고 경험이 적은 이는 장수의 재질 아니라네
요즈음 변방에는 놀랄 일 별로 없어 그림 다리에 앉아 달구경 하고 밤 깊어 돌아오네
만년대 밑의 만년교에는 물길에 걸친 긴 무지개 그림자 흔들리니
방초(芳艸)된 맑은 시내에 술잔 씻는 것 바라보고 녹음진 밝은 달에 퉁소를 불게 하네
자주 푸른 장막 열어 관가 길 바라보지만 어찌 검은 두건 눌러 쓰고 군의 조회에 누우리오
길가는 행인들아 괴이하게 생각 말아라 요사이 일이 없어 날마다 소요한단다
상춘정(賞春亭) 터 기념비
2기의 생사비(生祠碑) 와 3기의 거사비(去思碑)가 있는데, 동래성 안에 흩어져 있던 비를 모은 것이다
좌(左)로부터, 부사 민영훈 생사비, 부사 윤필병 거사단, 부사 강필리 거사단
부사 한배하 거사단, 부사 이항 생사비
동래부 동헌
옛 상춘정 터에 있는 동래부사 정현덕의 태평원 시비(太平園 詩碑)를 일별하고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동래부 동헌으로 왔다
망미루(望美樓)
온천장에서 금강공원으로 가는 입구에 있던 이 망미루는
2014년 12월에 원래의 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망미루의 앞쪽
동래부 동헌의 바깥 대문인 이 '독진대아문'도 그동안 금강공원 안 연못 근처에 있었으나
원래의 자리를 찾아 2014년 8월에 이곳으로 이전을 하였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독진대아문의 정확한 원래 위치에는 이 농협 건물이 차지를 하고 있어
그 바깥에 표지석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동헌 앞의 동래경찰서 수안치안센터에는 옛 모습의 포졸들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2022년 10월에 추가로 편집한 사진이다보니 코로나 때문에 포졸들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