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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몸서리 치는 독야청청 푸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
왼쪽 숲이 덕목재의 깃대봉 들머리이고 이곳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돌면서 친환경붙박이장 공장의 뒤쪽에 보이는 산으로 간다.
덕목재의 깃대봉 들머리는 개발이 가능한 나지막한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도로를 내며 크게
깎이는 바람에 좁아빠진 능선의 우거진 잡목 숲을 2분 쯤 헤쳐가면 완공을 목전에 두고 부도
난 큰 건물이 있다. 너저분하게 방치된 그 주변이 끝나는 곳은 재향군인회에서 운영하는 무슨
공장의 넓은 마당과 붙어 있었다.
들머리까지 차가 들어섰다가 돌릴 곳이 없어서 문이 활짝 열린 그 공장 마당까지 올라가게 되
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차에서 내려 50m 쯤 앞에 보이는 바로 그 등로로 얼른 가로질
러가는데 건물 안에서 직원이 나오더니 통과를 제지하였다. 바로 앞에 빤히 보이던 그 등로를
두고 사정해보다 통하지 않아서 덕목재 들머리로 도로 내려와서 올라가야 했다. 세상에서 쉬
운 건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 5구간 - 덕목재에서 무상사갈림길 17.8km + 하산(향적봉 경유 무상사) 2.7km = 20.5km
* 예상시간 - 7시간40분(점심 및 휴식 포함)
향적산(국사봉 574m)은 정맥이 아니지만 하산 코스로 삼았으므로 최고봉이 되겠다. 이 구간
정맥의 최고봉은 해발 404m의 함박봉이고 나머지는 200 ~300m급의 자잘한 봉우리들로 이
어져 있다. 천마산의 바로 턱밑인 두리봉에 올라서기 전 원터길에 내려서면 바로 맞은 편 된
비알로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른쪽으로 길 따라 100m 쯤 가면 개가 여러 마리 짖어대는 외딴 농가가 나오는데 이 농가의
마당을 북쪽으로 관통해야 두리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천마산부터는 대전광역시와 위
성도시인 계룡시의 시민들이 산책코스로 이용하는 곳이라 길은 잘 나있다.
문제는 정맥 마루금이 완전히 주저앉은 양정고개에서 305봉 들머리에 이르는 1,3km 거리의
길을 찾는 것이다. 이 지역은 계룡시의 시가지가 조성되고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서 길
찾기가 다소 애매하다. 그러나 중간 지점에 엄사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에 이 학교를 찾으면 길
잃을 우려는 없다.
힘을 거의 소진한 막바지에 올라가던 향적봉에서 고된 맛을 보았다. 전체적으로 급하게 오르
내리는 곳이 적지 않아서 힘은 좀 들었다. 더구나 바람이 도와주지 않는 폭염 속에서는 예상시
간내 종주가 결코 쉽지 않았다.
덕목재에서 30분간 줄기차게 올라간 깃대봉(394m).
이곳의 고사리는 게을러서 그런지 이제야 싹을 올리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덕목재에서 1.8km 지점의 확 트인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횡단하는 송전탑이 있었다.
맞은 편 봉우리는 올라가야할 398봉.
송전탑이 통과하는 능선 주위로 벌채를 했으므로 덕분에 처음으로 탁 트인 풍경을 보았다.
능선의 서쪽인 논산시 신양리 일대의 전경.
이 구간 최고 높이의 함박봉(404m) 도착.
동쪽은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서쪽은 숲을 제거해서 그런지 시원하게 트여 있다.
논산시의 드넓은 황산벌과 왼쪽으로 바다같은 탑정저수지가 보인다.
탑정저수지의 최상류가 금남정맥 2구간의 금안봉과 태평봉수대 사이의 작은싸리재이다.
함박봉에서 급하게 내려가니 황령재(215m).
계백장군이 신라의 화랑 관창과 사투를 벌였던 황산벌 전투의 기념안내판이
오른쪽 산기슭에 있었다. 이곳에서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한다고 5분간 지체하였다.
황령재 고갯마루의 동쪽으로 가면 천호산 들머리가 나온다.
황령재에서 1.1km 지점의 330봉 정자.
줄기차게 올라오면서 두 개의 봉우리를 넘었다.
대목재를 지난 후 된비알 봉우리를 550m 쯤 올라가면서 더위에 어찌나 땀을 흘리고 지쳤던지
정상의 의자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지도를 보니 해발 340m에서 1m는 정도는 더 높을 것
같은데 천호산으로 주기되어 있다. 그러나 천호산은 아직 아닌 것 같다.
341봉에서 내려오며 북쪽의 계룡산으로 연결된 정맥 마루금을 보았다.
왼쪽 골은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일대이고 호남선이 지나고 있다.
이곳이 바로 덕목재에서 6.9km 지점의 천호산(371m).
천호산에서 1.6km 쯤 내려가면 260봉이 있고 이곳은 원터 고갯길로 내려가는 능선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이다. 좌우 어느 방향을 선택하든 원터고갯길의 천마산 들머리와 연결되는데 우리는
왼쪽으로 내려갔다. 이유는 오른쪽 능선의 원터고개 부근이 통행을 금지하는 사유지가 있기 때
문이다. 왼쪽 능선으로 원터고갯길에 도착하니 맞은편 된비알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우리는 그 길이 천마산 오름인 줄 알고 30m 쯤 올라간 후 다시 동쪽으로 10m 쯤 급히 내려가던
곳에서 길이 끊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되돌아 나왔다. 정맥을 앞서 종주했던 많은 사람들이 원터
고갯길로 내려왔다가 바로 올라가는 된비알이 우리처럼 천마산 들머리인줄 착각하여 내다만 길
이었다.
이곳이 바로 맞은편 된비알로 알바하기 쉬운 원터고갯길.
천마산 들머리는 이곳에 내려서자마자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오른쪽으로 길 따라 100m 쯤 가니 전신주 옆에 컨테이너 농막이 있었고
개들이 거주하는 왼쪽의 마당을 통과하여 천마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있었다.
컨테이너 농막에서 야트막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약초밭과 과수원으로 개간한 야산과 농가가 또 있었다.
농가의 입구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능선으로 올라가야할 골이 보였다.
농가 입구에서 10분 만에 올라선 천마산의 바로 아래 두리봉(278m).
두리봉에서 6분 만에 도착한 천마산(287m).
산이라고 하지 말고 봉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다.
천마산에서 11분 쯤 걸려 자잘한 봉우리 셋을 넘자 사방이 탁 트인 250봉이 나타나는데
정자와 암릉이 일품이었다.
250봉의 동쪽 아래는 계룡시청이 있는 금암동이었다.
아래 연두색 옥상 건물이 금암초등학교이다.
문득 티 없이 해맑은 모습으로 뛰어다닐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날씨가 무더워서 그런지 인적이 없는 정자에서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하였다.
여기까진 바람이 귀해서 힘들었는데 정자에 오르니 백만불 짜리 바람이 마구 불었다.
250봉의 서쪽은 계룡시종합문화체육공원이 있었고
오른쪽 뒤에 이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 향적산(국사봉)이 보였다.
250봉의 암릉에서 북쪽에 보이던 계룡산을 배경으로.
250봉에서 무려 43분 동안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정맥 마루금이 완전 신작로.
양정고개에 도착하기 전의 240봉 내리막길.
양정고개(130m)의 계룡경찰지구대 앞으로 내려섰다.
건너편의 S-오일 주유소로 건너가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엄사초등학교를 찾아간다.
횡단보도를 건너 슈퍼 옆길로 들어가니 논산계룡농협지점 앞 전신주에
대구마루금 안내 리본이 우리를 반기며 환영해 준다.
200m 쯤 가서 오른쪽의 호남선을 넘어가는 고가도로 아래의 통로를 통과한다.
가로수도 없는 땡볕에서 잠시 해방되는 즐거움을 맛보는 곳이다.
통로를 통과하여 200m 쯤 가면 오른쪽으로 호남선 철길을 건너는 교량이 있다.
이 다리를 건너 150m 지점 왼쪽에 엄사초등학교가 있다.
금남정맥이 주저 앉은 지대, 오른쪽의 호남선 철길.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엄사초등학교 동쪽 담장 사거리에서 정문이 있는 왼쪽으로.
엄사초등학교 끄트머리에서 50m를 직진한 후 오른쪽으로 100m를 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타나는 광경.
직진하여 끝에 보이는 야산이 무상사 갈림길 들머리다.
엄사지구의 무상사 갈림길 들머리.
계속 찾아올 탐방객들을 위해서 안내판을 계룡경찰지구대부터 200m 간격으로 세워두길 바라나이다.
들머리에서 500m 쯤 계속 올라가면 290봉에 도착하고 편한 능선길로 350m를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상사 갈림길은 왼쪽 방향이다.
불볕더위에 지쳐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향적산은 아직도 멀리 보인다.
저곳이 바로 무상사 갈림길이다.
왼쪽은 무상사로 내려가고 향적봉은 직진하는 된비알이다.
가물어서 물이 바짝 말라있던 장군샘의 암자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왼쪽은 무상사로 내려가고 오른쪽 된비알로 400m 쯤 올라가면 향적봉이다.
이곳에서 향적봉을 왕복한 후 무상사로 내려간다.
바람도 찾지 않는 된비알을 13분 동안 줄기차게 올라선 향적산(574m).
덕목재에서 8시간 걸렸으니 예상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었다.
향적산의 서쪽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대우리 일대.
향적산에서 남서쪽 방향의 백연봉 능선.
뾰족하게 솟은 암릉이 농바위봉(506m).
향적산은 기가 세다하여 무속신앙인들의 기도터로 소문난 곳이다.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 무속인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기도석들이 있다.
향적산의 동쪽 전망대.
동쪽 전망대 아래 골짜기,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무상사계곡.
아파트 밀집지역이 계룡시 엄사면 엄사초등학교 있는 곳.
걸어온 정맥의 마루금이 아스라하게 멀다.
다음 구간인 향적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마루금.
오른쪽 넓은 곳이 국군계룡대통합본부.
향적산에서 15분을 쉰 후 올라왔던 장군샘 암자로 다시 내려간다.
향적산에서 33분 만에 무상사 입구로 하산.
덕목재에서 8시간45분 경과했으니 1시간 연착한 셈이다.
엄사초등학교를 지날 때 미리 점찍어 두었던 순대전골식당에서 기쁜 우리 하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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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겪어본다는 말을 할 땐 그 상황이 대수롭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인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금시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세월이 그만큼 흐를 동
안 전혀 없었던 일이 발생했으니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눈뜨면 쏟아지는 소식 중에서 관심을 갖게 하는 으뜸은 역시 사고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억울하
게 죽은 일과 당한 숫자가 얼마냐에 따라서 경중은 달라진다. 결국 참극적인 사건이 감성을 더
자극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비분강개할 정도라면 세상은 뒤집어질 수도 생긴다.
난생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수사를 받고 구
치소에 갇혀 교도소행이 임박한 꼴도 난생 처음으로 본다.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
소야대 국회에게 발목이 잡혀 애를 먹더니 엉뚱한 일로써 그렇게까지 모욕을 당하며 치욕적으로
쫓겨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에 그런 일들이 전혀 없었을까. 아니다. 탄핵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 차고도 넘쳤다. 대표적인 것만 뽑아도 이승만의 사사오입, 박정희의 삼선개헌, 전두
환은 체육관 출신이라서 깜도 안 되고, 노태우의 천문학적 비자금, 김영삼의 아들 국정농단과
IMF, 김대중의 불법대북송금, 노무현은 불법선거개입으로 이미 치렀고, 이명박의 만사형통 등등
.....
미주알 코주알 그 일들을 까발리기엔 밑도 끝도 없어서 그만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게 하나
있으니 날씨다. 예부터 덕이 있는 왕이 권좌에 오르면 하늘이 도와서 농사짓기에 어려움이 없다
고 백성들은 믿었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이 들기라도 하면 왕은 자신의 덕을 빌기 위해 지체 없
이 천제단에 올라 하늘을 향해 치성을 올렸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공화정을 도입한 이후에도 천재지변의 발생을 자신의 덕이 있고 없음에 비유하는 국
가 지도자가 있었다. 농업에 의존하지 않고 공업을 장려하여 공산품을 수출해서 먹고 살아도 농
자천하지대본의 옛 전통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망한 이유도 그렇지만 인재
(人災)로 세상이 뒤집어져 버렸지 천재(天災)로써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천재나 다름없는 큰 가뭄이 발생했지만 있던 대통령을 탄핵하여 내쫓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반쪽 행사인 5.18이나 심지어 6.10기념식장까지 참석하여 애
정을 과시하면서 정작 전국적인 대가뭄의 현장을 찾아 대책을 강구한다든지 쩍쩍 갈라진 논바닥
못지않게 속이 찢어지는 농민을 만나 위로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수자원 활용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전전 대통령이 만든 4대강 보의 물이 전혀 쓸데 없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취임 즉시 완전 방류를 지시했거나 보 철거를 준비했을 것 아닌가.
그래도 이 극심한 가뭄에 당장 이용해보려는 지략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
만한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4대강 보의 물이 가뭄에 큰 역할을 한다면 자신이 이때까지 주장하
며 지난 정권을 흔들어댄 절대적인 당위성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보의 철거와 완전 방류를 주장
하던 그의 홍위병들조차 가뭄의 심각성을 알기는 아는지 잠잠하다.
회의석상에서 웃도리를 손수 벗는다니 청와대 식당에서 소통을 위해 직원들과 같이 밥먹는다느
니 행사장에서 일반인들과 격이 없이 같은 자리에 앉는다느니 무슨 행사장으로 가다 경호를 무시
한 채 길거리에서 시민들의 손을 잡아주며 자상함을 보여 준다느니 하면서 언론들은 새 대통령의
파격적인 겸손함에 연일 찬가를 울렸지만 취임 전부터 국가상황이 한가하게 그런 잔잔함에 매료
될 시국이 아니지 않은가.
소식에 의하면 전라도 어느 섬에 사는 노인은 본격적인 여름도 되기 전에 이런 가뭄은 난생 처음
이라고 한다. 덕이 없는 대통령인지 국민들이 덕 볼 사람을 잘못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
든 천재는 이미 벌어졌다. 논길뿐만이 아니라 계곡과 산길도 바짝 말랐고 조금만 걸어도 쌓인 흙
먼지가 풀풀 날려서 맵싹하게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등산화와 바짓가랑이는 이내 뿌옇게 흙
먼지 투성이로 변했다. 바람 한 가닥 불지 않던 능선을 오르며 온몸에 열불을 느끼던 고통도 농사
를 포기하는 농심의 고통에 비한다면 호사다마라는 생각으로 정맥종주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