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기연구원 창원본원 전경 (사진=KERI)
[경제투데이 최희정 기자] ‘국산화’의 의미가 남다른 곳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전기전문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시장 및
산업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숨은 공신 중 하나다.
KERI는 올해 국가 전력계통을 움직이는 두뇌역할을 하는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 개발에 성공, 기존 해외 제작사의 계통운영시스템을 대체한 국산 기술로 차세대 EMS를 통합제어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EMS 국산화를 이뤄낸 것이다.
명성호 KERI 선임연구본부장은 “그동안
해외 기술을 쓰다보니 고장이 나거나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경우 비용이 많이 지출됐다”며 “7~8년 전부터 국산 자립화를 시작, 지난 10월부터
모든 것(외국산)을 걷어내고 자체 개발한 EMS를 운영해 전력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0월부터 전남 나주의 한국전력거래소에 한국전기연구원(KERI) 등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차세대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이
구축, 국가 전력망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KERI)
이와 함께 KERI는 순수 우리 기술로 100MW 이하 규모
풍력발전단지를 통합운영할 수 있는 운영제어시스템을 개발하고, 잠수함 등 전기선박용 육상시험소(LBTS)를 설립했다. 모두 국내 최초란 타이틀을
달았다.
지난 21일 버스를 타고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국전기연구원(KERI) 본원을 방문했다.
1976년
전기기기시험연구소란 이름으로 설립된 한국전기연구원(이하 전기연)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창원에 본원을, 경기도 안산과 의왕에
분원을 두고 있으며 밀양과 양산에 2개의 연구센터가 있다.
◆KERI, 국제인증 시험설비 갖춰 국내 기업
지원이날 오전 전기연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연구소 건물 뿐 아니라 거대한 기계설비로 가득찬 시험동 건물
들이 눈에 띄었다. 연구소에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대형 설비가 있다니 마치 대기업 공장지대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전력시험동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에서는 전력기기에 대한 여러 시험항목 중 실제 단락사고 모의시험을 통해 전력기기의 성능에
이상이 없는지를 검증한다. 전력계통에서 단락(합선) 또는 지락(대지와의 접촉)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전력기기가 이를 차단해 대형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 KERI 본원 대전력시험동 내에 설치된 합성시험설비(사진=KERI)
최익순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합선사고가 났을 때 전기기기가 동작되는지 보기 위해 시험할 수 있는 설비가 한국에서는 KERI가 독보적”이라며 “우리 설비는 국내 최대이면서도
전세계 5위안에 들어가는 설비 용량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1년 세계단락시험협의체(STL) 가입 후 우리나라에서
시험을 받는 것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며 “국내 출연연이다 보니 KERI가 수행하는 (대전력)시험료가 저렴하다. 상용 시험기관
시험비용의 최소 2~3배 저렴하다 보니 한국 기업에게는 굉장한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KERI는 국가공인시험인증기관으로
기업체가 생산한 각종 전력기기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시험하는 시험인증분야에서 ‘세계단락시험협의회’ 정회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
현재
KERI는 4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창원)를 갖추고 있으며, 500MVA(의왕) 시험설비도 함께 갖추고 있다. 하지만 KERI에서 보유한
시험설비로는 급격히 증가하는 중전기기업체의 시험물량을 적기에 소화하지 못해 설비 증설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해 4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를 증설 중이다.
◆풍력발전단지 출력제어시스템 국산화 기술
개발
7만2000볼트(V)이상에서 76만5000볼트급(765kV-우리나라 최고 계통전압) 기기들의 절연설계 성능을
평가하는 고전압평가실을 지나 케이블 시험동으로 향했다.
KERI의 김종율 박사는 대용량 풍력발전단지를 통합운영할 수 있는
운영제어시스템을 개발하고, 상용화를 위한 풍력발전단지 실증적용 연구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난 21일 김종율 박사가 한국전기연구원(KERI)을 방문한 미래창조과학부 기자단을 상대로 KERI가 최근 개발한 풍력발전단지
운영제어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KERI)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이 부는대로 전기가 생산되다 보니 전기가
들쑥날쑥 생산돼 전력시스템 운영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전력공급자인 한전 또는 전력거래소가 요청하는 계통연계기준(Grid Code)에
맞춰 필요한 만큼만 풍력발전기에서 발전하도록 출력을 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김종율 박사는 “현재 풍력발전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지멘스, GE 등이 독점하고 있는 풍력발전기 출력제어장치를 국산화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며 “국내 시장이라도 확보하지 않으면 외국에
나가는 것은 요원하다. 기술이라도 축적해서 해외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개발된 KERI의 풍력발전단지
출력제어시스템은 비단 풍력발전뿐만이 아니라 태양광 발전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의 출력제어시스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국내업체가 향후 국외 요소기술을 아웃소싱해 제품을 개발할 경우, 운영제어시스템의 기술 독립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이번 운영제어시스템의 국산화로 국내 SI업체, 중전기기업체 등에 대한 기술이전을 통해 국내 풍력발전단지 운영제어기술 자립화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됐다.
KERI는 풍력발전기와 더불어 에너지저장장치까지 동시에 통합제어할 수 있어 시스템 비용저감과 동시에 제어효율성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박사팀은 이번에 개발된 시스템의 상용화 및 실용화를 위해 실증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내
풍력발전단지를 대상으로 실적용을 협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