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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실태 파악
류
성도들의 교과 공부를 응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마석 교회 류대균입니다.
심
안녕하세요 마석교회 심경희입니다.
류
새로운 교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이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입니다.
이번 한기 하나님과 함께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가운데
더 큰 영적 성장을 이루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심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영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지금 어떻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며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 하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가장 기쁘고 중요한 일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쁜 세상 살이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 졌습니까?
이번주 요한 계시록 3장과 요한 복음 15장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생태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와 연결 된 사람이 누리는 축복에 대하여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공부 하시기 전에
마석교회 미디어 부에서 이웃 교회 구독 켐페인 하고 있는데요
형제 교회들 구독 눌러 주셔서 미디어 사역에 힘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웃 교회 구독해 주시는 김에
마석 교회 유튜브도 많이 구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류
일요일 교과입니다.
예전에 사랑의 반댓말은 무관심이다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반댓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었나 봤더니 사랑의 반댓말은 사랑했었노라 라고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과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성도들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그분과의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고민해 보실적 있을실까요?
교과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굳건하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이전에는 굳건했었다”고 하실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계시록 3장 13절에서 예수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계 3:14) 이심을 보게 되는데요
그럼 거짓말 하지 않은 충성된 증인께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당신의 백성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지 살펴보시겠습니다.
라오데게아는 안좋은게 있었는데
물 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0킬로 정도 떨어진 히레아폴리스 지방의
온천수를 수로로 연결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히에라 폴리스의 뜨끈 뜨끈한 온천수가 10킬로 미터의 수로를 흐르는 동안
식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는 미지근한 물이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광물질이 짙게 용해된 미지근한 물을 마시려니
참 힘이 든 것입니다.
미지근한 물의 어려움을 아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4-16)
광물질이 섞인 미지근한 온천수~~
그 물을 마시는 괴로움을 아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주님께서는 차든지 뜨겁던지 하라는 것입니다.
심
차거우면 어느 정도 차가운 물일까요?
차겁다는 헬라어로 프쉬크로스입니다
이것은 얼음같이 차다란 뜻입니다.
그럼 뜨거운 물은 어느 정도 뜨거운 물일까요?
헬라아로 제스토스인데~~
끓는 정도로 뜨거운 물입니다.
즉 차던지 덥던지 입장 분명히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버취는 우리의 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상태 가운데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세상 중간에 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주 던져 버리기에는 너무 종교적이며,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위해 견고하고 연합된 입장을 취하기에는 너무 세상적이다.
겉치레는 대단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정신은 거의 없다.
행위는 풍성하지만 믿음은 결핍되고, 공언은 흔하지만, 이에 따르는 영적인 생활은 거의 없다.”
라오디게오 교회처럼
마지막 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던져 버리기에는 종교적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위해 견고히 서 있기에는 너무 세상적입니다.
라오디게의 미지근한 온천수는
차지도 않고, 덮지도 못한채
어정쩡 하게 있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류
그래도
불신자 보다는 낳지 않습니까 말하는 분들 계실수 있겠습니다.
그런데요 중간에 있는 분들이 가장 위험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아닌 것처럼 보이려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버리지도 못한 채 쫓았습니다
예수님 제자이면서
제자 아닌 것 같이 중간에 있던 베드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장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요한은 십자가 지시는 예수님을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하며 쫓았습니다
정체를 분명히 한 요한은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시대의 소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 요한은 제판정에 들어갈 때에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욕하고 있는 사나운 무리들과 섞이지 않았다. 그는 거짓된 성격을 가장하여 자신을 의심받게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질문도 받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의 진정한 신분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태도를 가장하므로 그는 자신을 원수의 편에 두었으며 쉽게 원수의 밥이 되었다.”(소망, 711-712)
그리스도의 이름을 던져 버리기에는 종교적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위해 견고히 서 있기에는 너무 세상적이십니까?
지금 가장 위험한 형편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것은 자신도 위험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도 위험하게 하는 것이니다.
교회증언 1권 188페이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 고백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분께 훨씬 더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실한 추종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짐이 된다. 그들은 불신자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고, 악한 천사들은 그들을 크게 기뻐하고, 그들의 잘못된 길을 보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비웃는다. 그들은 국내외에서 하나님의 사업에 저주가 된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1증언, 188)
누구 때문에 교회 안나오나요?
안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정쩡하게 믿는 사람이 훨씬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변화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진짜 그리스도인은 아닌 사람들 때문에
교회 다니는데 힘이 드는 것니다.
어정쩡한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사람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장애물이 된다고 교회 증언 1권은 이야기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 때문에 교회 오는 것 머뭇거립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영향 보다
그리스도를 잘못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교회 안가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본인도 위태롭게 하지만
남들의 신앙에도 위험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예수와 짧게 시간을 보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뜨뜨 미지근한 라오데기아 성도들을 향해서
지금 상태는 너무 끔찍하니
입에서 토해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지금 확실한 선택을 할 것을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망합니다.
입장을 분명히 해야 겠습니다.
뜨거운 사람 되어야 겠습니다.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고 주위를 복되게 하는 길입니다.
심
고대에 무엇을 사는 것은 물물교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말도 안되는 교환을 해볼 것을 권하십니다.
어떤 교환을 제안하실까요?
너그러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무관심을 당신의 금, 흰옷, 안약으로 바꾸자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장 18절입니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께서는 오직 그분만이 채울수 있는 풍성한 것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소망합니다.
우리의 무관심을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것으로 바꾸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류
월요일 교과를 보시겠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시대를 대표하는 책망 받는 교회는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인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식은 교회였습니다.(Loveless) 즉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이후 안식일이 일요일로 버꾼 버가모 교회의 시대에는
법이 없었습니다.(Lawless)
천년의 중세 암흑 시대를 살아야 했던 두아디라 교회는 활력이 없었습니다.(Listless)
죽은 교회와 같았던 사데 교회는 생명이 없었습니다.(Lifeless)
그중에서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Lordless)
마지막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엇이 없었을까요?
주님 되시는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참고(자막)
에베소 교회: Loveless 교회
버가모 교회: Lawless 교회
두아디라: Listless 교회
사데 교회: Lifeless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Lordless
계시록 3장 20절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는 문밖에 예수님을 세워두는
주님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우주의 왕께서 우리와 함께 좋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 교제하고 대화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주의 왕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갑자기 들이 닥쳐 대화를 강요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우리의 바쁜 삶을 방해하지 않고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심
오늘 교과를 통해서 세상 살이에 바빠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지 못하고 지내는 저희의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화요일 교과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과 늘 교제하기를 기뻐하는 분이셨음을 보게 됩니다.
교과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가까이 교제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감동이 되었던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조금 더 소개 하고 싶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있느냐” 부르시면서 부드럽게 부르시며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속해 정신없이 사는 부족한 사람들이이지만
아담을 찾고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 있느냐?
부드럽게 우리를 부르시면서
우리도 찾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에 정신 팔려 있는 우리를 찾아내
교제 하기를 원하시고
의의 옷으로 입혀 주시기를 소망하여
오늘도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귀한 초청에
응답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과는 이야기합니다.
“지금 그대의 하루가 시작되었든 아니면 이제 마치고 있든 하나님은 그대를 찾으시고 기다리시며 그대를 당신에게 더 가까이 이끌게 원하신다. 그대와의 관계를 세우거나 회복하기를 바라신다.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 여부는 그분이 아닌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
소망합니다.
우리를 찾으시고 문 열기 기다리시는 주님께 저 여기 있어요
저도 주님과 교제 하기 원합니다. 고백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
수요일과 목요일 교과에는
요한 복음 15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 누리는
풍성한 은혜에 대하여 생각할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수 없지만
우리가 예수와 연결되어 있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나무 가지 가지고 왔는데요~~
이게 정말 신기합니다.
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햇빛이라는 축복이
이 가지를 살게 하는 축복이 됩니다.
햇빛을 받은 나무는 광합성을 하면서 자라고~~~~
또 생명으로 더욱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에서 떨어집니다
그러면 태양이란 축복이 뭐가 되지요?태양은 오히려 가지를 말리는 것이 됩니다.
햇빛이란 절대적 축복도
붙어 있는 가지에게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비를 맞습니다~~~
비를 맞은 가지는 더욱 생명으로 충만해 집니다.
여름에 시들 시들 하다가도
비를 맞으면 생기가 넘치는 나무가 됩니다.
그런데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비란 축복이 가지에게 뭐가되요?
비란 축복이 가지를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햇빛의 복도, 비의 복도 붙어 있을 때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으면
하늘의 모든 복을 누리지만~~
떨어져 있으면, 하늘의 모든 복이 오히려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중요한 이야기 아닌가요?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하늘에서 오는 모든 복이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땅의 복도 마찬 가지지요
심
맞습니다.
가지는 나무와 연결되어 있으면 뿌리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습니다
땅으로 부터 영양분도 받습니다
가지는 땅에 붙어 있지도 않은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나무의 붙어 있는 가지는 땅의 모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떨어진 나무는 어때요?
땅에 붙어 있습니다.
떨어진 가지는~~ 땅에 붙어, 땅의 모든 복을 다 누릴거 같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하지요?
땅에 붙어 있는 떨어진 나무 가지는
땅의 복을 하나의 복도 누리지 못하는 거에요!
오히려 땅은 그를 속히 썩게 할 뿐인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와 붙어 있을 때~~~
땅의 복을, 하늘의 모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떨어진 나무 가지에게는 모든 축복 조차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류
그래서 창세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49: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누구로 말미 암나니~~
네 아버지께로 말미 암나니~~
누구로 말미암나니 전능자로 말미 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싶은 샘의 복을 주실 것이라~~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생은
복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기 보다는
포도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포도나무 되신다고 했고
우리는 가지라 했습니다.
포도 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잘 붙어 있을 때~~~~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을
참된 복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결되지 않으면
복까지도 오히려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복도 그를 상하게 하고~~ 복도 망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란 위대한 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부귀와 명예를 다 얻었지만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 많은 축복 가운데서도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됫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상황의 변화, 더 많은 복을 위해 구할 것이 아니라
주와 먼저 연결 되어 있는 것이 지혜있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복음 15장 4절 부터의 말씀 보시겠습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심
오늘은 요한 계시록 3장 라오디게에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실태를 파악 해보았습니다.
온천수의 물이 수로를 통해 라오디게아에 도착하면
물은 차지도 덮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 한 상태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이었고,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의 신앙이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이 어정쩡한 신앙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 요한은 아무 질문도 받지 않았지만
제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으나, 그렇다고 폭도도 되지 못한 베드로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것은 자신도 위험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도 위험하게 하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더나가 미지근한 신앙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주고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세상에 정신 팔린 우리가 문 열어
주와 더불어 깊은 교제를 하기를 소망하시면서
오늘도 우리의 닫힌 마음 문을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제 바쁜 일들 뒤로 하고 주님과 교제 하는 일이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기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류
그리고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가자기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을 때 햇빛과 비란 하늘의 축복도
오히려 가지를 썩게 하는 것임을 살폈습니다.
땅의 복도 마찬가지지요
떨어진 가지는 땅에 붙어 있지만 땅으로부터 아무런 영양분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땅은 가지를 속히 썩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하늘의 복과 땅을 복을 다 누리는 것입니다
복복복 그러는데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복도 저주가 됩니다.
붙어 있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기억하고
주님께 잘 연결되어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심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있느냐 물으시며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은 내 마음이 어디에가 있는지 또 내 마음이 자꾸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하여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든 애타게 찾아 주시는 주님께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류
그럼 저희는 2과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주제로 성도들을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 안에서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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