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4부 - 잉태하는 기적을 이룬 사라의 믿음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히 11:11)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7)
사람들은 흔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던 여자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편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으며, 그리하여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녀의 이름이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올려지는 영광을 얻었다. 로마서에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 4:18~22)
1) 잉태하는 기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약속하셨건만, 만국의 아비 라는 그의 이름의 뜻이 무색하게도 100살이 넘도록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이제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도 생산할 능력이 없어진 늙은 여인으로 변했다. 그들의 몸은 생산과는 거리가 먼,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늙은 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 아닌, 사라의 몸에서 친히 난 아들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15~17)
그가 가라사대 &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0~14)
위의 성경 절을 보면, 처음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이 모두 웃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을 행하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라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웃은, 믿음이 없는 여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라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했으며, 사라의 믿음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같이 로마서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성경에 그들의 심정, 특히 사라의 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루어진 일을 보아 결과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 사라는 늙은 자신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하도 기가 막히고 믿어지지 않아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와 사자들이 떠난 다음에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불신으로 인해서 하나님 약속의 성취가 무산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만일, 그녀의 불신 때문에 여호와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사라는 엎드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였을 것이다.
여호와여! 계집 종의 믿음 없음을 보지 마시고, 저의 불신을 용서하시고 잉태의 기적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능력을 제가 믿나이다! 얼마나 그녀의 간구가 처절하고 간절했을 것인가! 드디어 그녀의 기도는 가납함을 받았고, 죽은 것 같은 태에서 잉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만일, 그녀가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드디어 믿음의 공과를 잘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믿음 없음. 에 대한 기록이 믿음 있음. 이라는 기록으로 대체되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던 것이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19~21)
2) 기적을 믿는 믿음
믿음의 장에 특별히 사라의 믿음과 잉태함에 대하여 언급된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라의 잉태를 통하여 믿음의 심오한 뜻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과학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기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라가 잉태할 수 없는 늙은 나이에 이르도록 기적을 연기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하시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만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기적으로 아들이 출생한 경우가 성경에 몇 번 기록되어 있다. 그중 아브라함과 사라, 마리아 그리고 사가랴의 아들 출생은 우리에게 큰 영적 진리를 가르쳐 준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믿고 하나님께 순복하면,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이루어진다.
믿음을 통하여 기적으로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처럼, 영적 생명을 낳게 하는 일, 곧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행하는 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생애에도 기적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하셨던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것이요, 주님은 미쁘사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
3) 행함을 생산하는 믿음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 2:14,22) 사라가 믿음을 가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곧 아들을 생산한 것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믿음은 기적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은 다름이 아닌 행함 이며, 이 행함은 기적의 결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무엇인가를 반드시 생산하는데, 그것은 의로움이며, 의로운 행실이다. 믿음은 의로움을 만든다. 로마서 2장 13절은 누가 의로운 사람들인지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행하는 자이다. 의롭다는 것은 옳게(의롭게, righteously)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의로운(옳은) 사람은 율법을 행하는 자이므로, 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는 것, 그를 의롭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율법을 행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롬 4:5). 그것이 옳은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 사람이 사실은 악하고 불경건하지만, 그냥 그 사람의 죄와 실수를 보기 좋게 겉치레로 의롭다고 간주하신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행하는 경건한 자로 만드신다는 뜻이다. 물론 그 일에는 사람의 편에서 협력하는 일, 곧 믿음이 선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믿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진정한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즉, 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 율법을 행하는 자로 머무르기 위하여 -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일이 계속 행사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3 : 31)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생애로 계명을 범하게 하며 계명을 아무 효과가 없게 하는 대신에, 그것을 우리 마음 가운데 세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는 말씀, 곧 순종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믿는 각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4) 진정한 믿음을 가진 남은 무리
진정한 믿음은 말뿐만의 믿음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과 행함을 동반한다. 물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 을 받는 일은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진정한 믿음 그 자체 속에는 행위가 들어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감동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반응이다. 믿음은 단지 올바른 교리에 대하여 지적으로 동의하거나, 감정적으로 편안한 안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희생의 피로 우리의 죄가 속해지도록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약속을 믿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감사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와 화목하자. 는 하나님의 호소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행위를 가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행하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포함한다.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행하는 대신 예수님의 뜻과 의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에 나타날 여자의 남은 자손은 진정한 믿음, 곧 죄를 버리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여 마음으로 그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 기적이 그들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사람들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남은 무리에 들어가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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