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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숙(私淑)
私 : 사사로울 사(禾/2)
淑 : 사모할 숙(氵/8)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학문이나 인품을 본받아 배우며 인격을 수양해 나간다.
사(私)는 '절(竊)' 즉 '남 몰래 마음속으로'라는 뜻이고, 숙(淑)은 '선(善)'을 말한다. 사(私)는 '자기 또는 개인'이라는 뜻이고, 숙(淑)은 '맑다', '사모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 또는 먼 곳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 德을 사모한다는 말로,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으나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자기의 학문이나 인격을 수양한다는 의미이다.
사(私)자가 원래는 '벼의 일종'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니 '벼 화(禾)'가 의미요소이고, 사사 사(厶)는 발음요소였다. 그런데 그 본뜻보다는 발음요소인 의 의미 즉 '사사롭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매우 특이한 예(例)다. 숙(淑)자는 물이 '맑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물 수(水)'가 의미요소로 쓰였다. 叔(아재비 숙)은 발음요소이니 뜻과는 무관하다. '착하다', '사모하다' 등으로 확대 사용됐다.
국어사전에 사숙(私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숙(私淑)이란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 받아서 도(道)나 학문을 배우거나 따름'이라고 나와 있다.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맹자가 말하였다(孟子曰). "군자의 은택도 다섯 세대로 끊어지고, 소인의 은택도 다섯 세대로 끊어진다. 나는 공자의 무리가 되지 못하였지만, 나는 다른 분에게서 그 분을 사숙하였다(君子之澤, 五世而斬, 小人之澤, 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맹자는 제(齊)나라의 남쪽 작은 나라인 노(魯)나라 부근에서 태어나서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제자가 되어 유학을 배웠다고도 하고, 자사의 문인에게서 배웠다는 두 설이 있다.
맹자는 공자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군자가 끼친 덕은 다섯 세대로 끊어지고, 소인이 끼친 은덕도 다섯 세대에서 끊어진다.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되는 것은 얻지 못했지만 나는 이것을 사람들을 통하여 사숙(私淑)하였다." 한 세대(世代)를 30년이라고 치면 5세대는 150년이니, 군자(君子)나 소인(小人)이나 그 끼친 은덕(恩德)은 150년 정도에서 끝난다고 한다.
참고로 사숙문인(私淑門人)이란 어떤 사람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학문을 익힌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서 '그는 율곡(栗谷)의 사숙문인(私淑門人)이다'라고 했을 경우, 그 사람이 율곡 이이(李珥) 선생에게 직접 배운 것은 아니지만, 율곡의 책이나 언행을 통해 율곡의 학문이나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재전제자(再傳弟子)는 어떤 사람에게 직접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제자나 그 사람의 사상에 대한 전수자에게 그 학문이나 사상을 배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예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 예수의 사상을 배웠다면, 그는 베드로의 제자이면서 예수의 재전제자(再傳弟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의 재전제자(再傳弟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의 제자와 제자, 또 제자들을 통해 기독교의 사상과 믿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성당(聖堂)이나 교회(敎會)에 나가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의 사숙문인(私淑門人)이 된다.
[원문]
孟子曰 : 君子之澤, 五世而斬, 小人之澤, 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은택도 다섯 세대로 끊어지고, 소인의 은택도 다섯 세대로 끊어진다. 나는 공자의 무리가 되지 못하였지만, 나는 다른 분에게서 그 분을 사숙하였다.
[참고]
사사(師事) / 사숙(私淑)
절학무우(絶學無憂; 배움을 끊어라. 근심이 없을지니)는 노자(老子)가 한 말이다. 하지만 배움을 끊을 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평생을 독서로 일관한 이덕무(李德懋)도, '배우는 일보다 더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아무리 안다고 해도 그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겸손해야 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배움과 관계된 말에 사사(師事)와 사숙(私淑)이 있다. 이 두 낱말은 상당히 자주 잘못 쓰이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난곡 김응섭, 여초 김응현, 송은 심우식 같은 대가(大家)들에게서 23년을 사사한 첫 결실이다. 사사(師事)는, '누구를 스승으로 섬김.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을 뜻한다. '사사하다'는 타동사이므로 목적격 조사를 써서 'ㅇㅇ를(을) 사사하다'로 해야 올바른 용법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에서 대가들에게서 23년(동안) 사사한 부분은 '대가들을 23년(동안) 사사한'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무개에게서 사사 받았다' 처럼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숙(私淑)은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으나 그 사람의 도(道)나 학문을 본으로 삼고 배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퇴계 선생을 사숙하다', '연암 선생은 제가 사숙하는 분이다' 등이 바른 용례다. 스승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느냐 아니냐 하는 점에서 사사(師事)와 사숙(私淑)이 구분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잘못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이루하(離婁下)
오세이참장(五世而斬章)
사숙제인장(私淑諸人章)
孟子曰: 君子之澤五世而斬(군자지택오세이참), 小人之澤五世而斬(소인지택오세이참).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유풍은 다섯 세대면 끊어지고, 소인의 유풍은 다섯 세대가 지나면 없어진다.
澤, 猶言流風餘韻也.
택은, 유풍(전해진 풍속)과 여운(남아 있는 운치)을 말함과 같다.
父子相繼爲一世, 三十年亦爲一世.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 일 세가 되고, 삼십 년이 또한 일 세가 된다.
斬, 絶也. 大約君子小人之澤, 五世而絶也.
참은, 끊어짐이다. 대략 군자와 소인의 유풍은, 오 세가(오 세가 지나면 끊어진다.
楊氏曰: 四世而緦, 服之窮也; 五世袒免, 殺同姓也; 六世親屬竭矣. 服窮則遺澤寖微, 故五世而斬.
양씨가 말하기를: “사 세면 시마복을 입고, 복이 다함이고; 오 세면 단면을 하니, 동성을 죽이는 것이요; 육 세면 친속이(촌수가 가까운 일가) 다한다. 복이 다하면 유택이 점점 약해지고, 그러므로 오 세면 끊어진다.”
予未得爲孔子徒也(여미득위공자도야), 予私淑諸人也(여사숙저인야).
내가 공자의 무리가 됨을 얻지 못했으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그를 사숙했다.”
私, 猶竊也.
사는, 절과 같다.
淑, 善也. 李氏以爲方言是也.
숙은, 선이다.
이씨가 방언으로 여겼는데 옳다.
人, 謂子思之徒也.
인은, 자사의 문도를 말한다.
自孔子卒至孟子游梁時, 方百四十餘年, 而孟子已老.
공자가 죽고부터 맹자가 양나라에 갈 때까지, 바야흐로 140여 년이며 맹자가 이미 늙었다.
然則孟子之生, 去孔子未百年也.
그렇다면 맹자의 출생이, 공자와 거리가 백 년이 안된다.
故孟子言予雖未得親受業於孔子之門, 然聖人之澤尙存, 猶有能傳其學者.
그러므로 맹자가 내가 비록 직접 공자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그러나 성인의 유풍이 오히려 남아서, 오히려 그 학문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故我得聞孔子之道於人, 而私竊以善其身, 蓋推尊孔子而自謙之辭也.
그러므로 내가 공자의 도를 남에게 들었고 사사로이 몸을 선하게 했으니, 대개 공자를 추존하고 스스로 겸양하는 말이다.
○ 此又承上三章, 歷敍舜禹, 至於周孔, 而以是終之.
○ 이것은 또 앞의 세 장에서, 순임금과 우임금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주공과 공자에 이른 것을 이어서 이것으로 끝냈다.
其辭雖謙, 然其所以自任之重, 亦有不得而辭者矣.
그 말이 비록 겸손하지만, 그러나 그 스스로 맡은 것의 무거움은, 또한 사양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공자를 사숙한 맹자
인류에 공부의 문을 여신 유가의 비조인 공자님의 군자지학(君子之學)을 고도의 윤리지학으로 변주시킨 인물을 들라면 아마도 맹자를 비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맹자는 불멸의 철인임에는 분명한 까닭은 공자님의 인(仁)을 의로 주석을 달아 인의(仁義)로 명명한 인류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리라.
고래로 ‘성경현전불가감론(聖經賢傳不加減論)’이라 하여 본래 경(經)과 전(傳)이라는 것은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되는 거다. (마태복음 5:17-18) 서진(西晉) 학자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 제6권 문적고(文籍考)에 따르면, 성인의 말씀을 일러 경(經)이라 하고(聖人制作曰經), 현자의 말씀을 일러 전(傳)이라 한다(賢者著述曰傳). 이를 합하여 경전(經傳)이라 하는데 어려서부터 이러한 경전들을 가까이 두고 읽고 완숙하여 사람의 도리를 몸으로 익혀가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 된다.
문제적 인간 호굉(胡宏)에 따르면 이를 수신의 공부라 한다. 물론 지금의 세상에서는 다소 케케묵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책들은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사람의 입에 입을 통하여 검증에 검증을 받아 살아남은 책이라는 점에서 후학들은 반드시 한번은 읽고 가야 할 책이다.
이를 몸으로 실천해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인 이가 맹자인 것이다. 인류는 이러한 맹자를 일러 아성(亞聖)이라 부른다. 공자님 같은 성인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성인쯤은 된다는 말이다. 그가 그 자리에까지 이르는 데는 헐렁하고 느슨하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맹자의 아버지는 주국공(邾國公) 맹격(孟激)인데 여러 일설이 있으나 분명한 것은 맹자 나이 삼세 이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맹자는 어려서부터 공부만 한 사람이다. 물론 맹모삼천지교에서 보듯이 맹자가 어린 시절 모친이 이사를 잘못 가서 시장에서 물건 파는 장사 흉내를 내면서 지내기도 했고, 또 이사를 잘못 가서 묘지 근처에 살면서 장례지내는 흉내를 내면서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문헌에도 맹자가 공부 안하고 헐렁하게 지냈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맹씨보(孟氏譜)에 따르면 맹자는 나면서 총명했으며(孟子生有淑質),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夙喪其父), 어려서 인자한 어머니의 은택으로(幼被慈母), 세 번 집을 옮겨가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三遷之敎)고 전한다.
맹자(孟子) 이루장구하편(離婁章句下篇)의 본인의 자서(自敍)에 따르면 나는 공자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予未得爲孔子徒也), 다른 사람의 가르침으로 공자님을 배울 수 있었다(予私淑諸人也). 여기서 사숙(私淑)이라는 고사가 시작된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했지만 책이나 혹은 누군가를 통하여 그분의 사상과 철학을 간접적으로 듣고 배워 본받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결국 맹자는 공자님이라는 위대한 성인을 목표로 세우고 공부를 열심히 한 인물이다. 자신의 공부 과정을 맹자(孟子)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 편에서 이렇게 술회한 바도 있다. “그러므로(故)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는(天將降大任於是人也),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게 하며(必先苦其心志), 그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노기늑골 勞其筋骨), 그 체부를 굶주리게 하며(餓其體膚), 그몸을 빈궁하게 하여(空乏其身) 행함에 그 하는 바를 불란시키니(行拂亂其所爲) 이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며(所以動心忍性) 그 능하지 못한 바를 증익하게 하려는 것이다(曾益其所不能).”
공부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에둘러 완곡히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맹자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6명의 인물의 성공기를 말하는데 지면의 한계상 기록은 못하나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인생의 나락인 밑바닥을 치고 올라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맹자께서 말하고자 하심은 무엇일까. 읽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임이 모두는 각각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글자로 압축한다면 ‘공부하라’ 쯤 되지는 않을까.
군자가 가르치는 5가지 방법
孟子曰: 君子之所以敎者五: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가 사람을 교육하는 방법에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다.
有如時雨化之者,
그 첫째가 때에 맞추어 비가 내려 만물이 화육(化育)하듯이 교육하는 시중(時中)의 방법이다.
有成德者,
그 두 번째가 한 인간의 품덕(品德)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有達財者,
그 세 번째가 한 인간의 타고난 재능이나 재질을 발현케 해주는 방법이다.
有答問者,
그 네 번째가 질문에 대답해주는 방법이다.
有私淑艾者.
그 다섯 번째가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내려 스스로 터득케 하는 사숙예(私淑艾)의 방법이다.
此五者, 君子之所以敎也.
이 다섯 가지가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주희는 이 다섯 가지 방법이 모두 성현의 시이며, 각기 그 재질에 따라 작은 사람은 작게 이루어주고, 큰 사람은 크게 이루어주니 사람을 버림이 없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피교육자의 재질에 따른 다양한 방법론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5가지 방법을 잘 살펴보면 제1번으로부터 제5번에 이르기까지 점점 교육자의 열의나 적극성이 식어가는 느낌을 준다. 교육자는 항상 제1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만, 교육하다 보면 점점 소극적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는 세태에 대한 비판도 숨어있는 것 같다. 교육자의 열의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맹자 본인의 교육자로서의 여정을 총괄하여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요즈음은 사람을 직접 만나 가르칠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사숙(私淑)의 방법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나가 직접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정확히 선발된 학도들이 아니므로 나의 강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할 때 에너지 소비가 너무도 크다는 생각만 드는 것이다. 더구나 노교수의 대접이 이토록 빈곤한 세태에 서랴!
▶️ 私(사사 사)는 ❶형성문자로 厶(사)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둥글게 에워싸다, 자기 것으로서 거두어 넣다의 뜻을 가지는 글자 厶(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수확할 때 자기 몫으로 한 것, 나, 몰래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私자는 ‘사사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사사롭다’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私자는 禾(벼 화)자와 厶(사사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厶자는 팔을 안으로 굽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사롭다’라는 뜻이 있다. 팔을 안으로 굽히는 행위가 물건을 독차지하려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厶자가 사사로움을 뜻했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禾(벼 화)자가 더해졌는데, 이것은 곡식의 소유주가 나 자신임을 뜻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의 私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나 이기적임을 뜻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私(사)는 (1)자기 한 몸이나 집안에 관한 사사로운 것 (2)일을 처리할 적에 정실(情實)에 흘러 공정치 못한 일 등의 뜻으로 ①사사(私事; 사삿일), 사삿일(私事; 개인의 사사로운 일) ②가족(家族) 3집안 4간통(姦通) 5편복(便服) 6은혜(恩惠) 7가신(家臣) 8사처(私處) 9오줌 10음부(陰部) 11총애(寵愛)하는 것 12자매의 남편 13사사롭다 14간통하다 15사랑하다 16편애하다 17오줌 누다 18홀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평할 공(公)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을 사학(私學), 사삿 사람을 사인(私人),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배우거나 따름을 사숙(私淑), 개인에게 관계되는 것을 사적(私的), 개인이 설립함 또는 그 시설을 사설(私設), 사사로이 만나는 자리를 사석(私席), 제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을 사심(私心), 사삿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사사(私事), 개인의 소유를 사유(私有), 개인의 저택을 사저(私邸), 예전에 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을 사숙(私塾), 사사로운 개인의 의견을 사의(私意), 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사익(私益), 개인이 사사로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사재(私財), 개인이 사사로운 일로 저지른 죄를 사죄(私罪), 공공의 물건을 사사로이 씀 또는 그 물건을 사용(私用), 개인 소유의 논밭을 사전(私田), 개인의 의견을 사설(私說), 개인 소유의 집을 사택(私宅), 개인이 부담하고 지출하는 비용을 사비(私費), 사사로 하는 편지를 사신(私信),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사리사욕(私利私慾), 몰래 사사로이 하는 망령된 생각을 사사망념(私思妄念) 등에 쓰인다.
▶️ 淑(맑을 숙)은 ❶형성문자로 㳤(숙)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叔(숙: 맑다)으로 이루어졌다. 맑게 가득 찬 물의 뜻이다. 음(音) 빌어 좋다는 뜻으로 통하여 쓴다. ❷형성문자로 淑자는 '맑다'나 '깨끗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淑자는 水(물 수)자와 叔(아재비 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叔자는 콩꼬투리를 손으로 잡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淑자는 '맑다'라는 뜻을 위해 水자를 의미요소로 사용한 글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맑다'나 '깨끗하다'는 것은 물이 아닌 '사람의 성품'을 뜻한다. 그래서 淑(맑을 숙)은 ①맑다, 깨끗하다 ②착하다, 어질다 ③얌전하다 ④사모하다(思慕--) ⑤아름답다 ⑥길하다(吉--), 상서롭다(祥瑞--) ⑦(날씨가) 온화하다(溫和--) ⑧주워서 가지다, 이익(利益)을 얻다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晶(맑을 정), 洌(맑을 렬/열, 맑을 례/예), 淡(맑을 담, 질펀히 흐를 염), 淸(맑을 청), 淏(맑을 호), 湜(물 맑을 식), 渶(물 맑을 영), 渽(맑을 재), 潾(맑을 린/인), 澄(맑을 징, 나뉠 등), 澈(맑을 철), 澹(맑을 담, 넉넉할 섬), 澯(맑을 찬), 瀏(맑을 류/유), 瀅(물 맑을 형), 瀞(깨끗할 정) 등이다. 반의어로는 濁(흐릴 탁)이다. 용례로는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점잖은 여자를 일컫는 말을 숙녀(淑女), 자연의 맑은 경치를 일컫는 말을 숙경(淑景), 맑고 깨끗함을 일컫는 말을 숙명(淑明), 삼가 엄숙하게 들음을 일컫는 말을 숙청(淑廳), 정숙한 태도를 일컫는 말을 숙태(淑態), 새봄의 화창한 기운이나 자연의 맑은 기운을 일컫는 말을 숙기(淑氣), 선미한 덕행을 일컫는 말을 숙덕(淑德), 선량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숙심(淑心), 성품이나 언행이 맑고 깨끗함을 일컫는 말을 숙청(淑淸), 정숙하다는 소문을 일컫는 말을 숙예(淑譽), 여자의 자태가 조촐하고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을 숙려(淑麗), 아주 좋은 기회를 일컫는 숙회(淑會), 착하고 얌전한 성질을 일컫는 말을 숙성(淑性), 착하고 얌전한 성질을 일컫는 말을 숙질(淑質), 여자의 참한 행실을 일컫는 숙행(淑行), 여자의 행실이 곱고 마음씨가 맑음을 일컫는 정숙(貞淑), 여자의 마음이 어질고 깨끗함을 일컫는 말을 현숙(賢淑), 순진하고 정숙함을 일컫는 말을 순숙(純淑), 태도가 조용하고 마음이 맑음을 일컫는 말을 정숙(靜淑), 마음씨가 고요하고 맑은 여자를 일컫는 말을 요조숙녀(窈窕淑女), 재주와 슬기가 남달리 뛰어난 남자와 교양과 품격을 갖춘 여자를 이르는 말을 기남숙녀(奇男淑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