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53/0926]한 웅큼 땅콩만한, 땅콩만큼의 ‘땅콩 선물’
땅콩을 캐고 씻어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아버지와 여동생 등 3인이 했다. 몇 백 개를 심고, 한두 번 비료를 주는 일은 분명히 혼자 했지만, 비둘기와 떼까치들이 파먹는 것을 말리고자 허새비(허수아비의 방언)를 세우고, 새벽부터 훠이훠이 소리질러 쫓는 일은 아버지 몫이었다. 얼마 전 ‘통신’에서도 썼지만, 딱 한 알 심었는데 뿌리가 번질대로 번져 몇 백 개씩 땅콩이 매달려 나오는 것이 어찌나 신기한 지, 직접 눈으로 봤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장관壯觀이었다. 모두 3가마, 30여kg가 나왔다.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당신의 노고가 가장 많았다.
그러니, 땅콩 처분을 어찌 내 마음대로 하겠는가? 나와 동생이 섭섭치 않게 완곡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이번만큼은 절대로 팔 생각하지 맙시다. 이웃 등 아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줍시다. 아버지도 아시지만, 지난 몇 개월간 우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택배로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분들께 성의 표시라도 하면 좋겠어요” “그래라”고 선선히 말씀하셨지만, 안봐도 비디오인 것이, 그 땅콩을 누구에게 준다는 것이 아까운 게 아니고, 택배비용 등을 먼저 생각하실 게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일단 두 가마, 20kg는 따로 보관해놓고(땅콩장사에게 가마니째 주면 1kg 7천∼8천, 15만원은 될 터이니 용돈하시라며 아버지 주머니에 넣어드릴 생각이다), 10여kg의 배분에 나섰다. 일단 동네에 꼭 드리고 싶은 대여섯 분에게 작은 상자로 하나씩 손수 배달을 하여 치사致謝를 받았다. 아버지 대신 내가 생색을 냈지만 기분은 '완전짱'이었다. 우체국에서 파는 종이상자에 가장 작은 것이 1호(400원), 다음이 2호(500원)이다. 1호에 500g이나 될까, 1봉지를 넣으니 땅콩 선물하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2호는 2봉지. 그래 이렇게 보내면 되겠다. 2호는 숙모, 이모, 사촌누님, 셋째형, 여동생, 처남, 처형 등에게 땅콩과 말린 새우 조금, 고사리 조금 등을 넣었다. 나의 특기를 살려 달필로 손편지를 썼다. 한때는 ‘서간문의 황제’라 불린 적이 있었다. “구순의 아버지와 심고, 가꾸어 수확한 ‘2020 국산 햇땅콩’입니다. 한 웅큼 땅콩만한, 땅콩만큼의 ‘땅콩’을 보내드리니 ‘귀엽게’ 받아 드소서. 그냥 까서 드셔도, 삶아 드셔도, 볶아드셔도 맛있을 것입니다”라고 공통적으로 적었다. 맨앞에 호칭만 바꾸고, 내용은 샘플대로 따라써야 속도가 난다. 흐흐.
문제는 대상자 선정인데, 미안한 말씀이지만, 누구는 주고, 누구는 제외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으로야 모두에게 다 보내주고 싶지만, 솔직히 택배비도 만만찮은 게 사실이고, 이런 경우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겠다. 땅콩상자 1개에 무조건 4500원(상자값 500원). 10개 4만5천원. 25개를 보내니 10만원이 넘는다. 받는 분들도 ‘애개, 이렇게 조금?’이라며 실망할 것같고, 그것을 생각하면 조금 면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가? 말 그대로 ‘촌성寸誠’인 것을. 그리고 이 작은 ‘땅콩선물’로 모처럼 문자가 오가거나 통화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자면 ‘소통疏通의 수단’이 되지 않은가. 속셈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몇몇 분이 카톡답장을 보내온 것만도 고마운데, 가장 재밌는 답장은 이랬다. 편지와 내용물 사진을 보내며 <태산보다 더 큰 땅콩! 첨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태산보다 더 큰 땅콩이라니? 신이 났다. <뭘 저까지 신경을 쓰시는지요? 귀한 선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햇땅콩 잘 받았네. 외관부터 프로 농사꾼 포스가 느껴지네. 죄송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네. 고맙네> <올해는 농사결실이 힘들었을텐데, 저한테까지 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님과 땀 흘린 노고를 생각하며 잘 먹겠습니다> <친구, 정말 땅콩같은 땅콩선물, 부자의 정성이 깃든 땅콩을 잘 받았습니다. 친구의 덧붙여온 글귀마저 마음에 쏙 들더이다. 고마우이. 아버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조카, 고마워. 농사 진 것들을 건건이 챙겨줘> <날마다 귀한 글 선물도 과분한데 선물까지 보내셨능가요? 고맙습니다. 편안흐고 안전한 명절 쇠세요> <귀해도 너무 귀한 땅콩이 전라도닷컴 천신이 되얐는디… 어떠코롬 요리해서 노놔묵을지 궁리하느라 머릿속이 복합해요. ㅎㅎㅎㅎ>….
나는 적어도 이런 것이 ‘사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곧 있으면 ‘가을의 탐스런 열매’ 대봉을 딸 것이다. 주먹만한 대봉이 홍시가 되어 입안에 한 가득 밀어넣어 먹는 진정한‘고향의 맛’, 아실 것이다. 문제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보내드리지 못한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정말 꼭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문자를 보내주시라. 사서라도 보낼 드릴 것이다. 그것이 비록 200개, 300개일지라도, 편지봉투에 넣어서라도 보내드릴 용의는 충만하다. 고향집 고친 것 다음으로 잘한 일이다. 땅콩아, 고맙다.
요즘 며칠 ‘완전 가을’이다. 그 긴 장마도, 태풍도 까마득이 옛일같다. 가을이 깊어간다. 어제는 산속에서 홀로 알밤을 주웠다. 나는 ‘가을남자’가 된다. 가끔 멜랑코니해지기도 한다. 옆지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한다. 밤이 벌어질대로 벌어져 여기저기 투욱 툭 떨어져 있는 것을, 다람쥐나 맷돼지들이 먼저 먹기 전에 줍기만 하면 된다. 금세 한 바가지를 주웠다. 삶아서 퇴근하시는 아버지께 드리니 좋아라 하신다. 하늘이 드높다. 매우, 몹시 드높다. 전형적인 가을이고, 가을날씨다. 흰구름들이 양떼처럼 아주 느리고 한가롭게 자리를 옮겨다닌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우리집 대문앞 코스모스가 제철을 만났다. 사진 찍을 줄도 모르는 내가 사진을 찍었을까. 가을이 깊어가면 겨울도 오리라. 흰눈도 내리리라. 제발 정상적인 사계절의 변화가 이렇게 계속 됐으면 좋겠다. ‘이상기온’ 이런 말 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업보業報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첫댓글 내 인생에 이 처럼 귀한 땅콩같은 땅콩을 받아보긴 첨이다.
그것도 친구의 멋진 편지와 함께 땅콩을 받은 영광을 누렸네
에게~ 삥아리 눈물만큼이네 라고 생각했다가
징그러운 장마를 견디며 수확한것에 감사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돌아갔을 선물이 나에게도
로또 당첨만큼이나 반갑게 당첨되어 도착했다
생땅콩을 한 두개씩 까먹으니 고소한 맛보다는 아버님과 친구의 사랑을 까먹는 기분이 들어
울컥 묘한 기분이 든다.
고마우이 친구
고맙습니다 아버님.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오
아버님의 땅콩주신 은혜가 더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