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梅軒 윤봉길의사 상해義擧 제82주년 기념식 엄숙히 거행
-윤봉길의사 '殺身救國'정신과 세월호선장 '해상뺑소니
비겁한 행위' 너무나 대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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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9일(화) 오전 11:00시에 서울 양재동 ‘양재시민의숲’소재 매헌기념관대강당에서
(사)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안중현서울지방보훈처장을 비롯하여 김달수 기념
사업회 명예회장,박유철 광복회 회장( 안홍순 부회장),박희태 전 국회의장,윤승혁 파평윤씨
대종회장,윤석민 전 국회의원(파평윤씨대종회고문), 유족,시민,학생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82년전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의 숭고한 살신성인의 큰뜻을 기리면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한편 중국 상해의거 현장 루신(구 홍거우)공원에서도 오전10:00시(현지시각)에 국가보훈처
대표(정부대표)를 비롯한 주 상해총영사, 교민등 수백명이 참석해서 국내와 동시에 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국내 기념식 거행순서는 양시현 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사회로 식순에 의거,
오전11:00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애국가제창,윤봉길의사와 순국선열,호국영령에 대한 묵념등
국민의례에 이어서, 윤봉길의사 약력봉독(안병원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기념식사(김달수 기념
사업회 명예회장),기념사(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처장과 박유철광복회 회장을 대신하여 안홍순
부회장 대독)가 있었다.
이어서 晩史 윤필구 인물화가께서 직접 만드신 윤봉길의사 초상화 기증 및 감사장 수여가
있었는데,윤필구 만사 영정연구원장께서는 역대 대통령 존영 및 국가홍보,국군의 날 행사카드
섹션제작, 전국사찰 고승 영정 100여점을 제작하는 등 권위가 있는 인물화가이다.
그리고 일본순국지 학생탐방 소감문 공모전에서 11명의 우수한 학생등에게 상장수여가 있었으며,
태극기를 손에 든 역사어린이 합창단에 의한 윤봉길의사를 기리는 합창이 있었으며,윤승혁 파평
윤씨대종회장에 의한 만세삼창을 끝으로 행사를 엄숙한 가운데 마쳤다.
본인은 이번 기회에 25세의 약관의 나이로 숭고한 “殺身救國”하셨던 매헌 윤봉길의사에 관해서
우리 모두가 올바른 역사관 확립차원에서 똑바로 알 필요가 있어서 좀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께서는 1908년6월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광현당에서 윤 황 공과 김원상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으며,
1913년 6세때 큰아버지에게 한문수학을 한후,
1918년도 11세때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9년 12세때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교육을
배격하고 학교를 자퇴,마을 최병대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4세때 오치서숙,성주록문하
에서 유학에 정진하였으며, 1922년 15세때 성주배씨 용순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장남 종(宗),
차남 담(淡)을 두었다.
1926년 19세때부터 22세때까지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운동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하여,농촌운동교재 “농민독본 ” 3권을 펴냈으며,월진회를
조직하는등 청년시절 교육 계몽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1930년3월6일 23세때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는
『丈夫出家生不還』” 이란 遺書를 남기시고 조국독립을 위해 집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 길에
올랐다.
그후 이 정보를 일본경찰이 입수하여 미행, 중국 선천(宣川)에서 체포되어 45일간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출옥후 12월에 따렌(大連)을 거쳐 찡따워(靑島)에 도착하였다.
24세때인 1931년 5월8일 배편으로 상하이에 도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 국무령을
만나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할 큰 뜻을 피력 호소하여, 金九선생이 단장인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김구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일왕의 생일연(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 축하식단상에 수통형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협의 끝에 윤봉길
청년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폭탄은 도시락모양과 물통모양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폭탄을 도시락 및 물통으로 위장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일왕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전승기념행사에서 식사가 제공되지않으므로,
일본측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각자 도시락을 지참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사당일 삼엄한 경계를 뚫고 공원에 입장한 후 11:00시가 되자 중국주둔
일본군(천진군)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대장이 등장했고,
상하이에 있는 외교관과 내빈이 자리를 잡았다.
군악이 울려퍼지고 열병식이 이어졌다.
천장절 행사가 끝나자 외교관과 내빈들은 돌아가고, 일본인들만 남아 일본 상하이 교민회가
준비한 축하연이 이어졌다.
11시50분경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의사는 물통폭탄을 단상으로 힘차게 던졌다.
경축대위에 폭탄이 명중한 것을 확인한 윤봉길의사는 다시 바닥에 놓아둔 도시락 폭탄을 집어
들려는 순간 일본 헌병이 덮쳤다.
윤봉길의사는 팔목이 잡힌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쳐 됐다.
홍커우공원에서 폭탄투척을 실행한 윤봉길의사는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상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 등을 죽이고,
총영사 무라이, 제 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제 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마모루에게 중상을 입혔다.
당시 중국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蔣介石)는 이와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
하였고, 이는 그동안 장제스가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홍커우공원에서 의거를 거행한 직후, 곧 바로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어 넘겨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으며,1932년5월28일 상하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18일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어 20일 오사카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12월 19일 오전 7시40분경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총살형 집행으로 윤봉길의사께서는
25세의 짧은 나이에 거룩한 殉國을 하셨다.
특히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는가?”최후의 진술을 묻자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말할 바 없다”고 윤봉길의사는 의연한 자세로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윤봉길의사는 거사 이틀전인 1932년 4월27일 공원을 답사한 직후
김구선생의 요청에 의해 유언을 작성했다,
이 자리에서 윤봉길의사는 거사가(擧事歌), 조선청년단에 대한 당부의 시, 김구선생에 대한
존경의 시, 두아들에게 남기는 유언등 4편의 시를 2시간여 만에 썼다고 한다.
두아들 종과 담에게 남긴 시에는 거사를 앞둔 비장한 심경과 자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는데,이를 소개해본다.
"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잔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아비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그후 14년이 지난 뒤에야 1946년도에 국민장으로 용산 효창공원에 안장하였으며,1962년도에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 장을 윤봉길의사께 추서하셨다
본인은 2012년도에 이어서 금년도에도 행사장에 참석하여 기념행사를 지켜보면서,
25세의 젊은 생애를 조국을 위해 바치신 '민족의 영웅! 대한의 아들! 윤봉길의사의 82년전
상해의거의 자발적인 “殺身救國” 의 숭고한 애국정신, 그 큰뜻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특히 지난 4월16일 오전 9시경 인천항을 출발하여 제주항으로 향하던 중, 진도앞바다에서
476명을 태운 ‘세월호’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사고가 발생하여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나온 것은 자기들 안위(安危)만 챙긴 선장(船長)과 선원(船員)들의 이기적 행동과 미숙한 대처
때문이었다는 분명한 사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구조된 학생과 승객들은 4월16일 오전 浸水 사고 직후 여러 차례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대부분인 승객들은 이 말에 따라
객실 등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대피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생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선장(69세)과 향해사,조타수,기관사등 선박직 선원들은 모두 내목숨만 살겠다고
어린 학생등 승객들을 방치한 채 제일 먼저 탈출하였다고 한다.
정말 선장으로서 선원으로서 A.B.C도 모르는 '해상뺑소니 비겁한 행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도리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기에 온 국민이 憤痛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신데 대하여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깊은 哀悼를 표하며,가족과
친지,친구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慰勞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면, 우리 모두는 2009년 1월 미국 뉴욕 상공에서 엔진이 고장 난 비행기를 과감하게 허드슨강에
불시착시키면서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모두 구한 체슬리 설렌버거 機長을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는 機長으로서 내 생명보다는 승객의 고귀한 생명을 더 중시하며 마지막까지 비행기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더 없는지 두 번이나 둘러 보고 탈출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진정한 리더나 지휘관(선장,기장 등)은 '가장 먼저 들어가고 , 마지막에
나와라(First In, Last Out)'고 하는 말처럼, 자기 이름과 직을 걸고 公人으로서
부여된 역할을 다하고 책임지는 모습, 그것이 진정한 리더다.
현재의 기성 정치인인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 정부고위층 인사들 일부께서는, 말로는 국가를
위한다고 외쳐대고 있으나, 당연히 내야하는 세금납부문제(납세의무)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를 갔다 와야 하는 문제(병역의무)조차도 진정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는지 되묻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즉 公人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을 잘 지키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20~30세대의 우리 젊은이들 중에 얼마나 윤봉길의사 같은 위인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올바르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특히 근.현대사 교육)은 물론,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뻐져린 값진 교훈을 되새겨서 매헌 윤봉길 상하이 義擧의
값진 희생과 큰뜻을 되새겨서 올바른 역사관확립 교육과 나라사랑정신을
드높혀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금번 ‘세월호 여객선 대형 참사’의 뼈저린 교훈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우리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반성하고 '범 국가적 차원'
에서 ‘재난안전 대비 계획과 대책’을 현실성있고 주도면밀하게 세워서 명실공히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 맞는 ‘재난안전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길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4월 29일
작성자 : 이 화 영 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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