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바다를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 따분함이 묻어있다. 남편과 함께 횟집을 운영하던 그녀에게, 이제 바다는 더 이상 구원과 낭만의 대상이 아니다. 그때 바다를 등지고 오토바이를 탄 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칼솜씨가 귀신같은 자였다.
주방장이 되어 도마에서 칼질을 하던 사내가 담배 한 대를 꼬나문다. 길게 내어뿜는 담배연기에 파란 하늘이 다가서고, 의식하면서 뒤돌아보는 눈에 상체를 숙인 채 식탁을 훔치는 그녀가 들어온다. 사내의 뜨거운 시선이 라운드 네크라인 티셔츠 안으로 스며들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움찔한다. 고개를 드는 여자,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언짢은 듯 애써 눈길을 외면하며 옷을 여민다.
그녀의 남편이 활어차를 몰고 나간 날, 여자가 수조를 청소하며 활어를 양동이에 담고 있다. 그때 거칠게 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와 여자를 밀어붙인다. 수조에 넘어졌다 일어서는 여자의 흰 옷이 물에 젖어 투명해진다.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십대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팽팽한 그녀의 가슴이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야! 너, 내가 촌년에다가 아줌마라 만만하게 보여?”
여자가 사내를 향해 쏘아붙이자 남자가 멈칫한다. 순간의 침묵이 흐르고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사내가 자조하듯 한마디를 던진다.
“근데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요.”
순간 여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여자에게 내재되어 있던 뜨거운 욕구가 활화산처럼 분출한다. 뒤로 묶은 머리를 제 손으로 풀어헤치며 여자가 남자에게 해일처럼 달려든다.
“키스해 줘!”
입맞춤이 발화성이 되자 고혹에 침범당한 두 남녀의 몸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엉킨다. 격정의 몸부림이 한참이나 지속되더니 급기야 그들의 몸이 수조에서 대형 도마 위로 옮겨진다. 도마에 걸터앉는 여자, 사내가 숲 언저리에 깊숙이 얼굴을 묻자 여자의 몸이 화살대처럼 뒤로 젖혀진다. 옷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여자의 얼굴에는 알 듯 모를 듯 경련과 희열이 교차되고, 뜨거운 숨소리에 귓가가 빨갛게 물들여지며 그녀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가 끝났지만 여운이 오래간다. 도마 위의 여자는, 대학교수인 여자 주인공이 연구목적으로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다. 위의 장면은 그 여인이 교수에게 자신의 사랑 체험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왜 전체적인 영화의 내용보다 그 장면만 자꾸 눈앞에 어리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지인들과 술 약속이 있어 우연히 횟집에 들렀다. 그런데 좋은 횟감을 선택하고 흥정하기 위해서 수족관의 물고기를 살피던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수족관에 갇힌 지 오래되었는지 활기가 없고 비실비실한 도다리였다. 예전 같으면 어종에 관계없이 무조건 힘이 넘치고 싱싱한 활어를 골랐을 터지만 오늘은 왠지 그 도다리를 선택하고 싶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도다리의 숨결이 끊어지자 주방장이 손질을 시작한다. 먼저 물에다 씻은 다음 뼈를 발라내고 껍질을 벗겨낸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에다 한 번 헹구고 마른 수건으로 횟감의 물기를 제거하더니, 회칼로 포를 뜨고 썰어서 접시에 담는다. 여인의 속살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도다리회가 완성된다.
소주 한잔을 마시고 도다리회를 초장에 찍어 입 안에 넣고 맛을 음미해본다. 조금 전에 생기를 잃고 다 죽어가던 도다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회가 쫄깃하고 입 안에 착착 감긴다. 비로소 도다리가 죽어 도마에서 다시 맛있는 생선회로 새로 태어났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도다리회를 선택했던 건 영화 속의 선정적인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영화라고는 하지만 도마 위의 여자가 선택한 행동이, 횟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죽은 활어보다도 더한 죽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생명은 아름다운 육체다. 그 몸에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흉측한 상처를 스스로 낸다는 건 죽음과도 같다.
처음에 여자는 남자에게 빠져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지런하고 착하기만 한 남편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고민한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하고 회칼로 자신의 양팔에다 위에서 아래로 깊고 길게 상처를 낸다. 회복된다고 해도 흉측한 흉터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는 자신이 이룬 모든 걸 포기하고 열다섯이나 어린 사내를 따라 나선다.
활어수족관에는 활어들이 가득하다. 그중에는 아직도 싱싱한 활어들이 태반이 넘지만 그들이 언제까지 그 싱싱함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 우리네 중년들의 모습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는가.
바다가 활어에게 드넓은 세상이듯이 우리 사는 세상도 바다와 같지 않은가. 먹고살기 위해서 가정과 직장에 얽매여 사는 우리들이나, 수족관에 갇힌 활어는 매한가지 신세다. 처음 편안함에 안주하는 게 똑같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쓰지 못하고 활기를 잃어가는 모습 또한 비슷하다.
그런데 어쩌랴. 죽어야만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섭리라면 나 역시도 꼭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을. 그래서 요즘 매일 수필이라는 도마에 눕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는 어떻게 죽느냐가 아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것 인가를 고민한다. 나는 주방장을 굳게 믿는다. 먹을 것이 못 되거나 칼을 대는 것조차도 꺼려할 물고기라도 나를 명품으로 태어나게 해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