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니 많이 묵어” 동생이 연신 어머니 접시에 게장을 올려놓는다. 나는 쑥스러워 표현을 못하는데 동생의 모습을 보니 아름답다. 어머니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며 동생에게 많이 먹으라고 양보를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멀리 외국에서 6개월 만에 귀국한 아들을 보니 좋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짠한 생각이 드신 모양이다. 동생은 우리나라의 60년대와 맞먹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사업을 한다. 내륙국가라 양고기나 돼지고기는 먹을 수 있지만 해산물은 쉽게 맛볼 수 없단다. 특히 바닷고기는 특별식이라 출국할 때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 거즈에 말아 얼음을 재어 갖고 나가 교민들과 잔치를 벌인단다. 한 식구임에도 동생은 해산물을 좋아하고 나는 육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귀국한 동생의 식성에 맞춰 게장백반을 시킨 것이다. “어무니 맛있지?” 동생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오르신다. 오늘은 철지난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기로 한 날이다. 삼형제 부부가 어머니와 함께 대천해수욕장에서 1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쉬엄쉬엄 기웃기웃 드라이브 겸 느긋하게 국도로 올라갔다. 내가 국도를 택한 것은 시골 풍경을 좋아하는 취향과 어머니의 역마살이 맞아 떨어진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따라 나오실 만큼 여행을 좋아하신다. 콘도에서 합류하기로 한 서울 팀들이 도착했다며 빨리 오라고 성화다. 옆에 앉은 동생도 고속도로로 가자며 재촉한다. 백미러로 어머니의 얼굴을 훔쳐보니 기분이 안 좋으신 모습이다. “고속도로로 빨리 가자. 국도로 가니까 멀미할려고 해” 구경을 좋아하시는 당신답지 않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동생 편을 든다. “알았어. 고속도로로 갈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이것저것 드시고 싶은 것을 권해도 생각이 없으시단다. 철지난 해수욕장은 젊은이들이 여름 끄트머리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인다. 모래밭에는 지난여름 젊은이들이 묻어 놓은 추억이 숨어있었다. 한 무더기 젊은이들이 체면을 차리는 친구를 붙들어 바다에 던진다. 한동안 미소를 머금고 그들의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서있자 막내가 우리도 물에 들어가잔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젊고 활기 넘칠 때가 아름답다. 녀석들이 시샘 나 막내와 나는 반바지 차림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즈백 동생은 구경꾼처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우리나라보다 그곳이 더 익숙한 탓에 이방인처럼 느껴졌을까? 불룩 나온 똥배를 보며 웃고 서있자 제수씨들이 따라 웃는다. 물장난을 치는 사이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따돌리고 멀어져간다. 어머니는 혹시나 불량한 남자들이 그들을 희롱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지 점이 되어버린 그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들도 꽉 갇힌 집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동안 자식들 키운다며 스스로 족쇄를 차고 힘들게 살아왔으니 순간이나마 자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녀들이 간곳을 뒤따르자 어머니가 절뚝거리며 뒤따라온다. “어무니 저녁 뭣 먹을까?” “아무거나 묵자. 느그덜이 좋아한 걸로.” 항상 본인 스스로 좋은 음식이 뭐라고 직접 얘기한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바닷가라 삼겹살은 격에 맞지 않을 테고 회나 조개구이가 제격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삼겹살에 소주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라 잠들어있는 간판들이 딴청을 부린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회를 파는 음식점에 삼겹살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삼겹살과 해물탕을 시켜놓고 가슴에 불을 붙이니 어느덧 바닷가의 어둠이 낭만을 싣고 다가온다. 해변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을 공짜로 즐기고 있자 막내가 어느 틈에 폭죽을 한 다발 사들고 온다. 난생 처음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우리는 어린이가 되어갔다. “어무니도 해봐” 밤하늘에 수놓는 불꽃을 바라보니 인생 또한 한 순간 불꽃이 아닌가 싶다. 한 순간 찬란히 타오르다가 사라져가는..... 예맥의 무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처럼 조상들의 가무 기질을 이어받은 때문일까? 노래방으로 빨려 들어간 우리가 어색해하자 음정과 박자가 제 갈 길을 찾는 어머니의 동백아가씨가 가슴을 적시고 마음을 열어젖힌다. 효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일까? 항상 이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보지만 어머니의 은혜는 티끌만치도 다가갈 수가 없다. 하룻밤 짧은 휴가를 시샘하듯 이튿날은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좋아하는 내 맘을 어찌 알고 하늘은 내 기분을 이리도 꼭 맞출까? 콘도 거실에 누워 하늘과 바다가 몸을 섞어버린 해수욕장을 바라보니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덧없다. 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말고 슬며시 졸음에 빠져들자 체크아웃 시간이라며 전화벨이 훼방을 놓는다. 주말부부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핸들을 꺾자 눈물 많으신 어머니가 기어이 눈물을 찍어낸다. 며칠 후면 출국할 동생 내외가 짠하고 혼자 밥해먹는 내 모습이 속상해서일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차안에 동백아가씨를 틀어보건만 끝내 말이 없으시다. “아가. 어제 게장 맛있디?” “엉. 맛있기도 하고. 왜?” “아니! 그냥” 맛없다고 말하면 서운해 하실까 얼버무렸으나 아무래도 뭔가 할 말이 있는 성 싶어 꼬치꼬치 캐묻자 사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부 토해버렸단다. 그러고 보니 어제 고속도로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럼 게장은 싫다고 말하지 왜 그랬어?” 갑자기 화가 치민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자식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족하단다. 저녁도 해물탕 국물만 몇 숟갈 뜨고 말았다니 더욱 화가 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속없이 흥에 겨웠던 자신이 밉고 노래방으로 몰려가 어머니를 귀찮게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머니가 부르는 ‘동백아가씨’를 들으며 감상에 젖어 가슴을 적신 것이 못내 부끄럽다. “콱! 앞으로 싫으면 싫다고 해. 글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 왜 말 못해? 입 두었다가 흉년에 죽 쒀 먹으려고 그래?”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 내가 소리를 꽥 지르며 액슬을 밟자 또 미안해하신다. 어머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 줄도 모르면서 말로만 효도를 외쳐 온 것이 자못 부끄럽다. ‘어무니 미안해. 다음부터는 제발 자식들 생각만 하지 말고 어무니도 생각해. 알았지?’ 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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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춘식아! 놀자! 원문보기 글쓴이: 창강
첫댓글 가슴이 따스해지고 가족애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도 그려봅니다..^^
어무이..마음은 아버지도 몰라..아들도 몰러..어무이가 된 사람만 알 수 있재^^
혼자 계시는 울 엄니 생각나요.. 가까이 있어도 바쁘다고 잘 안가지고.. 반성합니다..
춘식씨...해피 추석 맞으셔요~^^
ㅎ 즐거운 추석 알차게 보내세요... 참 지난번 백파 개인전 오셨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