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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배순명
禁食(금식)에 대하여...
2011.5.31.殉命 배종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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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금식(禁食)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없다.
그런데 왜 금식하나?
금식하면 영적 대청소가 된다. 영(靈)도, 혼(魂)도, 몸도, 생활(生活)도, 대인관계도, 돈도, 죄악도, 혈기도, 욕심도, 정욕도, 성질도, 하나님과 멀어진 사이도...
예전에 기장의 한신교회 이00 목사님이 살아 계실 때, 그 분의 설교와 책들을 사랑하여 많이 읽고, 세미나에 가기도 하고, 설교도 들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몸이 너무나 약하여 도무지 금식을 할 수 없는 분이었다. 당신 말로 목숨을 건 대수술을 6번인가 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이없이 가시고 말았다. 하나님은 정말 아까운 사람은 빨리 데려 가신다.
그런데 이목사님은 자신이 몸이 약하여 금식을 못하니,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좀 부정적인 어투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당시에 내가 밥 먹듯 금식하고 있었기에,“아하! 존경하는 목사님도 저렇게 편견에 치우쳐 말하는구나!”하는 사실 앞에 씁쓰레하던 기억이 난다.
이목사님은 성령의 은사들과 방언에 대해서도 아주 부정적으로 말했었다.“방언하는 것들! 떠들면 다야?”뭐 이런 투였던 것 같다.
그 분은 정말 기도를 많이 하는 분이었는데,“기장”이라는 교단의 특성 때문에 성령과 은사, 그리고 대사회적 영성이 아닌, 개인적 영성 쪽은 부정적이셨던 것 같다.
나는 대부분의 기도회 인도 시나 개인기도 시에 언제나 방언으로만 기도한다. 방언 통역이 됨으로 말로 기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방언의 위력을 알고, 늘 방언 가운데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방언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성령과 은사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목사님 가운데도 분명히 그런 분이 있을 것인데, 이제라도 방언을 받고, 방언 공부를 좀 하셨으면 한다. 특히 우리 장로교 통합측 목사님들은 대부분 방언과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성령과 은사들에 대하여 얼마나 그릇된 편견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방언(方言)이니, 은사(恩賜)니, 신유(神癒)니, 축사(逐邪)니... 하는 단어만 듣고도 바로 이단시 해 버리는 목사님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땅을 치고 통탄할 영적 無知(무지)의 현상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방언(方言)을 받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아랫 배에 힘을 주고 큰 목소리로 빠르게 소리 내어 간절히 기도하면 그냥 방언이 터져 버린다.
방언을 받는 첫째 조건은 말소리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빨리 하면 발음이 잘 안되어 혀가 구르다가, 계속하면 마침내 자동적으로 랄랄랄라 하며 혀가 자동적으로 구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첫 방언이다. 처음에 랄랄랄라, 두두두두, 츠츠츠츠... 하다가 차츰 차츰 단어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방언을 받은 후에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계속 방언기도 하여 한 6개월 정도 지나면 제법 유창하게 방언을 할 수 있고, 마침내 자기 방언이 통역되어 그 뜻을 알게 된다. 방언 얘기는 이 정도로 하자.
나의 사명 중 하나는 나의 성령 사역과 은사 사역들을 통하여, 우리 교단 내에 성령의 풍성한 은사와 사역의 강물을 도도히 흘러 가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꿈 중의 하나는 목사님들을 위한 성령세미나를 하루 속히 여는 그 날이 오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의 집중적인 성령세미나로 성령의 모든 세계를 열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렬하여, 지금도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한다.
많은 경우, 내게 기도를 받으러 온 성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방언으로 새벽기도회 같은 데서 좀 크게 기도하면 담임목사님이 와서 기도를 제지한다고 한다. 조용히 하라고... 나는 개탄한다. 기도를 조용히 하라니... 정말 답답하다.
기도는 터져 나와야 한다. 기도는 폭탄 같이 터져 나오고, 장강대하 같이 강력하게 흘러 나와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기도의 권능이 갈무리 되어 묵상기도를 하거나 조용하게 기도하는 것은 차원 높은 기도의 경지에 도달한 다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목사님들이 아예 성도들이 마음껏 기도도 못하게 기도 줄을 막아 놓으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보나 마나 그런 목사님은 기도문이 전혀 열리지 않은 사람이다.
진정한, 깊은 성령 안의 기도가 안되는 목사의 목회는 결코 성령의 목회가 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목사가 성령 받고 진정으로 성령으로 목회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가 없다. 그저 인본적인 목회를 할 뿐이다. 교인들과 머리 싸움 하는 목회 만을 할 뿐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 가지 못하는, 이성적(理性的)인 목회를 할 뿐이다. 신앙과 영성은 이성(理性)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를 훌쩍 넘어 가는, 진정 그야말로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편견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특히 그런 면이 많다. 목사님들은 주로 교단의 색깔과 신학 노선에 따라 편견과 치우침에 사로 잡힐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이러한 편견이 신앙의 핵심 사항이 되어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무지(無知)의 사실 앞에 목숨을 건다면 정말 웃을 일이다. 우리가 명심할 일은 편견(偏見)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열면 정말 넓은 세상이 열리고,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먼저, 금식(禁食)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금식 만큼 최고의 고강도의 영성훈련 방법은 따로 없었다. 금식이 힘들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금식 자체를 매도해서는 아니된다.
예수님도 금식하는 자의 외식(外飾)을 꾸중하셨지, 금식 자체를 버리신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예수님은 금식을 사랑하시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금식의 최고봉인 40일 금식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의 금식은 한 마디로 영적 전쟁의 정수(精髓)이다. 사탄과의 정면 대결에서의 승리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친히 하신 금식이라면, 우리는 40일 금식은 하지 못해도 자주 자주 우리 몸의 상태에 맞도록 금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주님을 따르려 하며, 성령으로 살기 원하며, 섬기는 교회가 성령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영성 훈련의 최고봉에 이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금식(禁食)을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금식은 오늘날 성도의 신앙생활과 목사의 목회에서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성훈련의 최고봉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한 끼부터 시작하여, 하루, 이틀, 사흘... 계속 금식을 늘려 나가야 한다. 금식의 날수가 늘어 나는 만큼 영성은 깊어지고, 성령의 권능과 은사들은 더욱 커져 가며, 인간적인 것들은 물러 가고, 성결함이 선물로 주어진다. 금식함으로 육적, 인간적인 모든 것들과 관점이 점점 영적으로 신령하게 변화 되어져 간다.
금식의 가장 큰 유익은 나를 버리고, 나를 얽어 맨 모든 흉악의 결박을 끊어 버리며, 내가 차마 떨치기 힘든 모든 정욕과 욕심을 내려 놓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녹아 버린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모든 욕심의 출발은 먹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금식은 명실공히 영성훈련의 최고봉이다.
특히 잘 싸우거나, 지속적인 특정한 악습에 물들어 있거나, 정욕에 붙들려 있거나, 혈기가 강하거나, 성질이 더러운 사람, 남을 늘 씹는 사람... 등은 내면의 영적 질서가 완전히 무너져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기적인 금식으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금식은 마침내 사람을 양선(良善)하게, 유순(柔順)하게, 온유(溫柔)하게, 성숙하게, 깊게, 원만하게... 만들어 버린다.
처음에 금식에 도전하면 더러운 성질이 본성을 드러 내어 혈기가 더 끓어 오른다. 이유 없이 남을 죽이고 싶고, 두들겨 패고 싶고, 욕을 하고 싶고, 성질이 나고, 내 속이 온갖 더럽고 악한 것들이 다 튀어 나오고, 끓어 오른다. 이것은 내 속의 귀신들이(?) 튀어 나오는 前兆(전조)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자극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들이 된다. 이러한 영적 명현(明顯) 반응이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어 나타 나다가 사라지기까지는 적어도 몇 개월, 몇 년은 걸리므로, 지속적으로 금식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계속적으로 금식을 하면서, 이러한 자기 내면의 엉망인 영적 질서의 상태를 直面(직면)해야 한다. 자기가 얼마나 믿음과 영성이 없는 자이며, 평소에 고고한 척 뻐기며 살아 온 자이며, 성질과 성품이 더럽고 악한지, 내가 겨우 그까짓 음식 하나에 목을 매고 사는 동물인지를 철저히 꿰뚫어 통찰해야 한다. 왜 자기를 100% 부인하고 버려야 하는가를 깊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바닥에 내려 가 보면 비로소 자신의 믿음이 없고, 영성이 없고, 고고함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고 또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훈련, 금식훈련, 성령훈련은 적어도 수년 간, 아니 10여 년 간은 지속해야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을까?
나는 금식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하고, 금식훈련의 의미를 모르며, 금식을 貶下(폄하)하여 말하고, 금식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의 영성을 바르다고 인정할 수 없다. 어쩌면 그는 영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 모른다.
정말 몸이 약하여 금식을 할 수 없는 목사님 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런 분들도 한 끼 씩의 금식은 얼마든지 주기적으로 할 수 있다. 요체(要諦)는 금식하려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배 고픔을 자기 몸으로 친히 겪으며, 배 고픈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스스로 진지해지며,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기도하고, 스스로를 돌아 보는 일는 너무나 원초적이고 중요한, 가장 기초적인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진정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훈련하며, 성령 하나님을 만나 그 권능의 세계 속에 살며, 영계의 문을 여는 최고의 비결은 금식이다.
금식을 자꾸 훈련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면 영계의 문이 점점 열려지며, 영적인 세계로 깊이 깊이 들어 가게 되고, 성령 하나님의 온갖 신비한 은사와 권능이 미천한 인간에게 부어진다. 놀라운 것은 하루, 이틀, 사흘... 금식해 가는 사이에 실제적으로 기적이 일어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기도 응답이 기적적으로 척척 이루어진다. 실제적인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은사와 권능을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하는 일들의 앞 날과 귀추(歸趨)를 분별하지 못한다.“이 일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나, 이 일이 잘 될까, 보이지 않는 앞 날을 어떻게 할까?”이런 점에서 답답하고 해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기도와 금식과 성령훈련이 어느 정도의 경지를 넘어 가면, 이러한 오리무중의 사실들에 대한 실제적인 분별이 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신다. 이것이 예언의 은사이며 영분별의 은사이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요일2:20절에,“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하셨고, 요일2:27절에는,“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하셨다.
문제나 고통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 와, 해결책을 묻는다. 나는 금식(禁食)하며 기도하라고 한다. 그러면 하루 이틀 하다가, 반쯤 죽는 시늉을 한다.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전에 금식훈련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금식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영성훈련의 방법을 나는 따로 본 적이 없다. 그 만큼 힘들고 어려운 방법이다. 금식 잘 하는 사람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나 계속 금식을 훈련하면 익숙해지는 길은 분명히 있다.
금식 만큼 빠르고, 질러 가는 길도 없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바로 끊어 버린다. 기도 응답을 바로 갖다 준다. 삶을 즉시로 바로 잡아 준다. 사탄의 권세를 일거에 끊어 버린다. 하나님의 긍휼을 곧바로 얻는 지름길이 금식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금식훈련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하루, 이틀, 사흘... 금식을 늘려 가라는 것이다. 적어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영적인 생활과 영적인 목회를 제대로 하려면 금식훈련, 기도훈련, 성령훈련은 기본적으로 몸에 배여 있어야 한다.
특별히 목사는 자기 개인의 영성, 목사의 가정과 자녀와 사모, 문제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교회의 중요한 일들, 그리고 나아 가 노회와 총회와 한국교회와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한다. 정말 교인과 머리 싸움 하지 말고,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인간적 방법 쓰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을 써야 한다.
오늘까지 나에게 주어진 성령님의 모든 은사와 권능, 기도 응답의 권세와 개인적 삶의 축복과 놀라운 사역의 들림 받음은 전적 금식(禁食)으로 인한 선물이다.
나는 진정 나로 살지 않고, 성령 하나님의 기적의 손에 붙들려 살아 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나는 내가 일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의 권세로 사역하려고 진정 애를 쓴다. 내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대로 살아 가려고, 그리하여 오늘도 100% 나를 부인하려고 힘을 다한다. 물론 실패한다. 그러나 죽어라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실패가 반복되고 영성이 추락하면 여지없이 금식으로 바로 잡는다. 주님 앞에서 나를 바로 세우고 회복하는 방법 중에 금식보다 더 나은 영성 수련의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토록 부끄럽고 못난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나 돌아 보면 다른 것은 아무 한 일이 없고, 오직 금식하며 기도한 것 밖에는 없다.
나는 과거에 성령을 받고, 은혜를 체험하고, 성령의 은사와 권능을 체험할 당시에는 5일, 일주일, 열흘, 보름, 20일, 30일, 40일, 50일 단위 주기로 죽어라 금식했다. 정말 수 없이 반복했다. 내 자랑은 진정 금식과 기도 뿐이다. 오늘까지 10여 년째 그렇게 금식을 하며 기도해 오고 있다. 지금은 장기 금식을 여건 상으로나, 건강 상으로도 할 수가 없어 5일에서 10여 일 정도의 금식을 평균적으로 한다.
나는 진정 금식에 내 인생을 걸고, 금식의 날수 하루 하루를 늘려 가는 재미로 금식을 했다. 금식의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기도의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있었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의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내 사역의 현장에 성령 하나님의 믿을 수 없는 은사와 권능, 기적들이 늘 동반 되었다.
나는 이 글을 혹시라도 끝까지 읽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면 당신 만의 기도 기록, 금식 기록에 도전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하루 몇 시간의 기도 기록, 몇날 며칠의 기도기록, 금식기록 들을 보유하라. 놀라운 기록들을 보유한 자가 되라. 그러노라면 어느 사이에 당신은 하나님 앞에 그러한 놀라운 사람이 분명 되어 있을 것이다.
금식으로 인하여 그 외에 덤으로 온 것들의 행복을 일일이 말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충만한 행복, 충만한 붙들림, 충만한 목회 사역의 풍성함이 내게 그냥 주어졌다.
나처럼 행복한 목사가 또 있을까? 나는 정말 행복하다. 너무 너무 행복하다. 내 목회에는 아무 걸림돌이 없다. 나는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현실과 문제들과 싸우지 않는다. 교회의 문제로 머리 아픈 일이 없다. 애 먹이는 교인이 하나도 없다. 나는 나의 성도들을 바라 보고 있으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럽고, 감격스러워, 예배 시간에 눈물이 흐른다. 좁은 교회당에 그득히 차 있는 성도들을 바라 보노라면 가슴이 감격에 겨워 미어 터진다. 나는 이제 가정과 가족과 경제, 질병, 문제... 등으로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나의 원수는 언제나 사탄이요 귀신이다. 나는 이제는 영적 전쟁의 실상, 영적 세계의 실상을 정확히 안다.
나는 성도들을 말로 만이 아닌, 성령의 권능으로 실제적으로 살리는 영적 사령관이다. 내가 기도하면 악한 사탄의 권세가 실제적으로 분쇄(粉碎) 된다. 부흥성회 현장에서 날마다 경험한다.
나는 50만의 <성령의군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나의 주 예수님이 총사령관이시요, 나는 부사령관이다. 나는 언제나 성령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시행하려 한다. 물론 내 연약함과 죄악이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님으로 고통하고, 몸부림 치고, 영성이 무너질 때마다 금식과 기도로 회복한다. 성령 충만함만 유지하고 있으면 언제나 승리는 저절로 주어진다.
그래서 내 개인적 생각으로, 목사는 월 3일 금식 1회 정도, 일년에 10여 일의 금식을 2-3회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영성을 지탱하는 마지노 선이 그렇다는 말이다.
오호라. 목사여! 그대는 가장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그렇게 인간적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종 목사여! 그대는 장로를 영적으로 사로 잡고, 그를 붙들고 역사하는 세상의 영, 권위를 무너뜨리는 영, 악한 영을 물리쳐야 하건만 어찌하여 장로와 맨날 머리 싸움만 하는 그런 하위(下位) 목회를 하고 있단 말인가? 왜 오직 기도와 성령과 영권으로 장로를 압도하지 못한단 말인가?
안타까운 목사여! 그대는 영적 권위와 성령의 권세로 성도의 모든 문제 속에 숨어 역사하는 악한 영, 더러운 영, 음란한 영, 저주의 영, 가난의 영, 질병의 영, 문제의 영, 파멸의 영들을 제거해 주어야 할 영적 파수군이어늘, 어찌하여 그렇게 인간적이며, 이성적이며, 영적으로 무기력한, 정말 말 뿐인, 머리만 굴리는, 인간적인 목회를 하는, 육적인 하나님의 종이란 말이냐?
진정 하나님의 종인 당신의 귀에는 성령 하나님의 탄식소리가 그렇게도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목사님! 용서해 주세요.)
금식이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은 이미 기본 상식이다. 한 열흘 금식을 해 버리면 몸 안의 모든 노폐물들이 자동적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그러나 금식한다고 살이 빠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 굶어 다이어트를 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반드시 버리시기 바란다. 나는 처음 41일 장기금식 때에 17킬로 정도 살이 빠졌었다. 두 번째 41일 금식기도 때에는 15킬로가 빠졌었다. 그러나 다시 살이 쪘고, 덤으로 배가 나왔다. 금식하면 살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복부에 지방질이 더욱 더 늘어 나게 된다.
금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내가 제안하는 쉬운(?) 금식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1.절대 욕심 부리지 말고, 한 끼, 하루를 시작으로 이틀, 사흘... 하나 하나 늘려 가라.
그리고 가장 중차대한 기도 제목 하나 둘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하여 해결함을 받으라.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법을 배우라.
2.삶의 문제, 죄악의 끊음, 고통스러운 문제, 사람의 고통, 사역의 핵심, 경제문제, 질병, 가정사, 자녀... 모든 문제들을 두고 금식의 기회로 삼으라. 금식은 가장 해결이 빠른 길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금식하며 기도하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와 기도 응답을 맛볼 수 있다.
목사의 금식과 기도의 제일 제목은 언제나 자신의 영성이다. 목사는 항상 성령 충만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성령 충만할 수 없기에, 반드시 식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느 수준 이하로 내려 가기 이전에 반드시 금식으로 회복해야 한다.
목사는 영적 지수가 하나님을 100이라 할 때에, 평균적으로 80선을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 성령 충만함이란 그 영적 지수가 90 이상을 치고 올라 간 상태를 계속 유지함을 말한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성령 충만함은 3개월 이상은 잘 지속되지 않는다. 영적 지수가 70 이하로 내려 가면 즉시로 금식하며 재충전해야 한다. 재충전의 방법 중에 가장 이상적인 것이 금식이다.
금식은 모든“아닌 것”들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단호한 응징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전격적으로 돌아 섬이다. 사탄과 그의 권세를 정면으로 박살 냄이다. 선전포고요, 승리의 깃발을 드높임이다. 금식하며 하루, 이틀, 사흘... 몸부림 치는 사이에 어느 듯 나는 벌써 승리자, 권능자,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3.금식할 때에 따뜻한 물을 가능한 한 많이 마셔라. 뜨거운 물이 좋다.
하루에 20잔 이상을 마셔라. 허기가 질 때마다 뜨거운 물로 배를 채우라. 그러면 희한하게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허기가 물러 간다. 물론 사람의 체질마다 편차(偏差)가 있기 마련이니,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 몸에 맞게 할 일이다.
4.적당한 소금기가 든 된장 국물을 뜨겁게 끓인 채로 하루에 2-3잔 정도로 마셔라. 몸에 소금기를 보충해 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금식하는 자의 하루 식사이다. 어떤 이는 된장 국물 2-3잔 먹는 것은 이미 금식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은 율법주의자로 본다. 그까짓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영성훈련에 가장 적당하도록 몸 상태를 유지하라. 금식하기 위하여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가며, 영성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금식하는 것이다.
이 2-3잔의 된장 국물이 얼마나 사람의 몸에 힘을 주는지 모른다. 간장 국물이나 동치미 국물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만일 소금기를 보충하지 않고 금식을 30일, 40일 무식하게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겨우 기도하고 살아 남아도 뼈가 상하고, 근육이 이완(弛緩) 되며, 병신이 되고, 평생의 고치지 못할 지병(持病)을 갖게 되고, 수명은 단축 된다.
그리고 10일 이상 금식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껌을 씹어 주라. 오래 씹지 말고 20여 분 정도 치아가 시원해질 정도까지만 씹어 주라. 그래야 치아가 상하지 않는다.
5.보름 이상 장기 금식자는 반드시 3-4일 금식 후에, 장을 비우는 관장(灌腸)을 해야 한다.
보름이나 20일 이상의 장기 금식자는 금식에 대한 전문적인 건강학적 지식이 없으면 시도하지 말라.
6.가장 중요한 것, 금식 이후에 음식을 먹을 때에는 금식한 날 수 만큼 죽을 먹어야 한다.
절대로 하루, 이틀 금식도 함부로 음식을 먹지 말라. 10일을 금식했으면 10일 간 죽을 먹어야 한다. 금식하면 위가 완전히 고쳐지고, 온 몸이 건강해지지만, 금식을 잘못 풀면 건강에 치명적인 손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 금식을 성공적으로 끝내고도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하여 죽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불구가 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금식기도의 경험
“殉命 배종부 목사의 기도의 경험”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사58:1-12)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생략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 중에 저는“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성령의 기름부으심”이란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내 마음에 불같이 일어 나는 거역할 수 없는 감동과 감화, 열정, 충동을 말합니다.
이“성령의 기름부으심”없이 어느 누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 갈 수 있으리요?
주님 앞에 울며 불며 3년을 회개한 후에 어느 날,“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제게 임하여, 금식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이전에 금식을 자주 했지만, 정말 다급할 때에 살려 달라고 한 금식들 외에는 금식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8일 금식이 최고였고, 5일 금식 정도가 대중이었지요. 그리고 힘들어 지속하지를 못했습니다.
참! 성령님의 은혜의 때가 임하니 온 천지를 돌아 다니던 제가 강대상에 늘 꿇어 앉아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단 사실을 잊었네요. 기도하다 보니, 금식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체질로 변화되어 있었고, 기도와 금식, 성령 충만이 자연스럽게 조화된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일상적 교회 업무와 정상적 생활을 하면서 금식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게 하루, 이틀 금식한 것이 어언 23일이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양산 감림산 기도원에 제직들 6명을 뜨레스디아스에 파견한 중이라, 부모님이 양산에 계셔서 심려를 드릴까 염려하여 부모님 댁에 머무는 동안 금식을 풀었습니다.
정말 애석 했습니다. 그 때 내 생애 처음으로 금식 기록을 갱신하여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입니다. 아아! 이“자기 자랑”의 마귀는 언제나 사람을 따라 다니는 그림자 같은 것이지요.
금식은 사람의 결심으로는 절대 하지 못하고, 성령님의 붙들어 주심이 있어야 하는 것임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절대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금식하지 않고, 성령님이 금식을 하라고 하시면 바로 금식에 들어 갑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제 삶과 목회의 모든 영역을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하게 되었지요.
예를 들어, 저는 철저하게 원고를 준비하여 설교하는 스타일인데, 설교 준비를 다 했더라도 주일 아침에 성령님이 다른 감동을 주시면 영감을 메모한 것 하나만 들고 단에 올라 가 다른 설교합니다. 설교하고 나면 성령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 바로 답이 나오지요. 그 설교를 반드시 들어 들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설교에 대한 저의 모토는“원고는 철저히, 그러나 단에 올라 가서는 원고에 얽매이지 말고 쉽게, 구어체로, 가장 중요한 것은“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그냥 단순한 도구 되어”설교하는 것이지요.
저는 지난 30년 동안의 제 설교 원고가 다 컴퓨터에 들어 있습니다. 수천 편은 되지요. 설교 원고를 만들지 않는 목사님들이 계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일생을 목사로 살고 설교집 하나도 남기지 못한다면 무엇을 남기지요? 교수가 일생을 가르치고 전문서적 몇 권을 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한 것이지요?
저는 또 오로지 설교 원고에 매여 설교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설교의 초보 단계를 지나 10여 년 이상 설교하고 나면 원고에서 자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직접 말씀할 현장은 어디 있지요? 설교 원고대로 하는 것이 곧 성령님의 그 때 주시는 그 말씀은 분명히 아니잖아요?
이렇게 성령 감동을 따라 첫 장기금식을 한 후에, 도전 의식이 생겼습니다. 이후 계속 재미가 나서, 금식을 했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 좋아야 하는 것이지요. 당시 저의 목표는 훌륭한 목사님들이 했다는 40일 금식기도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전에 금식훈련이 필요한 듯 하여, 마음에 작정을 하고 먼저 31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금식기도는 큰 은혜 중에 끝났습니다.
이후 약 5여 년 동안 정말 금식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해는 일년 365일 동안 무려 150일 이상을 금식을 했습니다. 대충 11일, 21일, 31일, 41일 징검다리로 해서 수 십번의 금식을 한 듯 합니다. 잘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보름 정도의 금식이 10여 회, 20일 이상이 5회 정도, 30일 이상이 5회 정도, 그리고 41일 금식기도 2회, 51일 금식기도 1회 정도인 것 같습니다. 10일 이하의 금식은 밥 먹듯 했습니다.
마치 자랑 같이 들리네요. 그게 아니옵고, 제가 금식하다 받은 기도의 능력과 은혜를 말하려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만큼 부어 주시는 분이예요. 정말 기도의 골방을 헤매고 또 헤매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성령의 기름부으심”이란 주님의 은혜의 산물이지요. 저는 가장 큰 은혜를, 짧은 기간에 물 붓듯 부음 받은 것입니다.
제 기억에 너무나 선명한 금식기도의 은혜 체험 중에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31일 금식을 할 때에 기도제목이“한국교회를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이름하여“한국교회를 위한 31일 작정 금식 금족기도”였습니다. 성전 강대상에서 자며, 31일 동안 3층에서 한 발자욱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은혜로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또 두 번째 41일 금식기도할 때, 12일 만에 시편84:5절의“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주(主)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大路)가 있는 자(者)는 복(福)이 있나이다. 그 때 하나님이“16차선의 하늘고속도로”를 제게 뚫어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늘나라에서 부두의 콘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것 같이, 하늘 트럭이 즉시로 출발하도록 부릉 부릉 항상 시동을 걸고 있는 상태의 환상이었습니다. 신속하게 하늘의 화물을 나르기 위하여 1, 2차선도 아니고, 무려 16차선의 하늘고속도로가 뚫린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정말 제게는 핍절함이 없는 기적이 연속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2-3가지의 기적이 언제나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물질, 마음, 가정, 교회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또 언젠가의 금식기도는 제 교회에 놓여진“식빵의 환상”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제 교회의 의자들에 식빵들이 착착착 놓여지더니, 사람들이 착착착 들어 와서 빽빽이 앉기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온 자리에 차고, 강대상, 복도, 1, 2, 3층, 나중에는 교회 앞 삼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교통이 온통 마비되어 버리는 환상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그 꿈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기도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폭발적 부흥을 주실 그 날을 꿈꾸고, 또 꿈꿉니다.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의 기도는 간암에 걸린 최향희를 위한 51일 금식기도입니다.
두 번의 41일 금식기도를 하고는 하도 무서워서, 마지막 3번째는“언제 이 무서운 금식기도를 하나?”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느닷없이 최향희를 붙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하여 하기 바랐던 3번째 금식기도는 엉뚱하게 남을 위하여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41일을 작정하고 기도를 끝냈는데, 병원에 갔더니 아가씨의 간암은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커서 금식을 풀지 못하고,“굶어 죽으리라”하고 계속 갔던 것이 그만 51일까지 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최고 장기금식 기록은 태백기도원(소원의 항구) 원장의 53일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남 양산 내원사의 어느 여승은 80일 이상을 했더군요. 제가 그 기도원장을 이기고 싶어 55일을 작정했는데, 하나님이 교만 그만 부리라고 하셔서 끝냈습니다.
기적은 그 후에 일어 났습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던 아가씨가 3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소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눈물 나는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금식기도로 받는 은혜와 열리는 성령의 세계는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보면 대충 이런 것입니다. 이제 이후의 이야기는“기도”,“금식”,“성령”이 함께 어우러질 것입니다.
1.기쁨, 평안, 감사, 행복, 충만의 은혜
우리가 말하는 이런 것들은 대부분 세상의 것이 채워질 때에 주어지는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가짜지요. 그런데 목사님들은 이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설교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과 세상은 것은 엄연히 다르지요.
저는 광야 끝에서 정말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하늘의 기쁨, 평안, 감사, 행복, 충만을 만끽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이 분명히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정말 부유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물질의 고통을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액수를 언제나 정확한 하나님의 시간에 딱딱 채워 주셨습니다. 제 보물 창고는 정말 하늘에 있지요. 사람이 그냥 염려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있어야 염려가 안되는 것이지요.
또 지금 사정은 지옥의 현실인데, 마음은 천국의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정말 희한한 것입니다. (요14:27)평안(平安)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世上)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현실과 조건에 상관 없는 감사의 사람이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설교하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목사님!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현실의 이성이 통제하는 세계와 성령이 지배하는 영적인 세계는 분명히 달라요. 이 모든 것들이 성령님이 부어 주시는 선물들이지요.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분명히 구별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목사님들이 이것을 체험하지 못하면 가르칠 수가 없지요.
2.기도하는 은혜
기도하는 은혜보다 더 귀한 은혜가 있을까요? 사실 그렇게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안되잖아요? 왜냐하면 성령님의“기도의 기름 부으심”,즉“기도의 영”이 임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기도의 영”이 제게 임하니, 하루에 작정한 대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열흘 5시간 작정하고 기도하고, 그것이 가능해지자 7시간으로 넘어 가고, 8시간으로 넘어 가고, 10시간으로 넘어 가고, 12시간으로...
그런데 하루 12시간을 꼬박 기도하기는 정말 힘들더군요. 그래도 계속 밀어 부쳐 14시간 기도하니, 그만 파김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기도하려고 애쓰면 하루 8시간 정도가 적당한 균형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오직 기도만 할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적어도 일년에 이런 순수한 작정기도를 한 열흘 정도씩 5-6회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금식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저는 지금도 기도하면, 10여 분이 지나면 바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깊은 기도에 몰입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사람이“기도하는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또 있을까요?
목사님들은 필히“기도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기도의 영”이 충만해야지요. 정말 목회의 다른 어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3.사람관계가 편안해지는 은혜
사람 때문에 고통 당하시는 성도님이나 목사님은 금식기도를 하세요. 반드시 해결이 됩니다.
금식기도를 하니 모든 사람관계가 다 풀리고, 평안해졌습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푸는 것이잖아요? 정말 놀라운 풀림의 역사입니다.
(사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壓制) 당(當)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아! 저처럼 교인들이 착하고, 순종 잘 하는 성도들을 모신 목사가 또 있을까요?
저는 설교에 막히는 말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합니다. 일반교회에서 했다가는 당장 쫓겨 날 온갖 소리들을 그대로 다 해도 됩니다. 하하하! 작은 교회니까요. 아니요! 제게는 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사람에게 막히지 않는“悔心(회심)의 말씀”을 원음 그대로 생생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4.열등감, 박탈감, 부정적 감정이 소멸되는 은혜
사람이 절대적 긍정의 사람, 용기의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은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성령님이 힘을 부어 주시니까요? 새롭게 하시니까요? 입술이 어눌한 제가 어찌 성령님의 이 오묘한 역사를 다 말할 수 있으리요?
교회 초창기의 우리 교인들은 일거수 일투족 저의 분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게슈타포처럼 저의 추적을 받았습니다. 저들의 작은 허물과 불충성도 일일이 지적 받았습니다.
그렇게나 부정적이고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던 제가 이제는 절대 긍정의 사람, 밝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포용하게 되고, 저 또한 사람들의 판단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5.내가 세운 꿈과 비전, 목표가 아닌, 성령님이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사명의 길을 가는 은혜
저는 제 2의 인생을 살며, 이전의 제가 가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걸어 간 것 같은 전혀 반대의 길을...
성령님을 따라 가는 이 길은 아무 걱정, 근심, 염려가 없어요. 목회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냥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 되요. 그러면 그 분이 다 해요. 교회 부흥! 그것을 왜 내가 신경을 써요? 저는 이제서야 교회 부흥이 목사의 목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 목사 교회 장로들이 위임을 해 주는 조건으로 앞으로 3년 안에 교회를 배로 부흥시키지 못하면 나가라는 각서를 받고 위임식을 해 주었다는 얘기를 들고 와서는, 이를 갈면서 울었습니다.
저는 외치고 싶어요. 왜 그런 불행한 목회를 해요? 그런 마귀 장로를 데리고 어떻게 목회를 해요? 목사님 교회에는 그런 장로가 없어요? 있잖아요? 그런데 왜 있는지 아세요? 목사님이 기도 안하고, 성령의 종이 아니니 그런 마귀가 설치지요! 회개할 분은 바로 기도하지 않는 목사님이세요.
우리 성령님은 희한하셔서 꼭 내게 필요한 영역의 연단과 시련, 훈련으로 나를 인도해 가시지요. 사람의 고통, 물질의 고통, 질병의 고통, 목회의 고통, 사람 없는 고통, 개척교회의 고통, 큰 교회의 고통... 다 그에게 꼭 필요한 오직 그 만의 연단의 과정이지요. 그걸 깨달으면 비로소 기도의 무릎을 모으게 되지요.
영적으로 사람과 사물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야 기도하게 되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성령님 그 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고 매이지 않는 삶이 있는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6.온전한 자유와 해방과 두려움이 없는 은혜
아아! 저는 외치고 싶어요. 왜 이 성령님을 모르느냐고? 왜 이 성령님을 제쳐 두고 당신이 목회하고, 살아 가려고 그렇게 힘들게 몸부림 치느냐고?
이런 놀라운 세계, 만남, 누림, 영적 해방과 자유, 연애(?) 보다도 더 좋은 그 분과의 관계가 있는데...
성도님! 세상의 부귀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목사님! 목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교회 키워서 뭐하려고 하세요?
부유함, 명예, 대접을 누리려고? 장로들의 압박 때문에?
진정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를 키우려 하세요? 교회 키우면 천국 간대요? 절대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성도님, 목사님! 속지 마세요. 세상의 부귀영화나 성공적인 목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성도님, 목사님 당신이 행복해지는 게 중요하지요.
목사님이 불행하다면 그런 목회를 왜 해요? 먹고 살려고? 아니잖아요? 목사님이 불행한데, 어떻게 교인이 행복해요?
성령님 안에 그 행복이 고스란히 있는데, 왜 세상 행복을 찾으면서 사람들에게 엉터리 설교를 해요? 왜 세상적 가치관을 가르치면서 복음이라고 해요? 계시록의 음녀의 물이 바로 변질된 복음이잖아요?
목사님이 성령도 못 받고, 복음을 영적으로 이해도 못하면서 무슨 설교를 해요? 전혀 영적이지 못한 설교를, 세상적 소리를, 윤리 도덕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그런 세상적 복음은 절대로 성도들에게 영적 생명을 일으키지 못해요.
성령님 안에는 무한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이 넘쳐요. 그것을 말하다 보니...
7.원대한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의 은혜
성령님은 크신 분이라 절대 비전을 작게 주시지 않아요. 그래서 진짜 성령의 비전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해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난하니까요.
제가 받은 성령의 비전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었더니, 그들 중에 어떤 분은 비꼬며 냉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가슴이 아파요? 그러나 그 비전을 가슴에 품고 가는 자는 행복해요. 하나님의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져요.
8.무한정 쏟아지는 말씀의 은혜
설교할 때에 내가 말씀하는데, 내 입에서 그 분의 말씀이 막 줄줄이 튀어 나오지요. 설교에 막히는 법이 없지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쳐 나면 성도들이 설교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지요. 내가 하는 말씀에 내가 은혜를 받고, 내가 눈물이 나고, 격동이 되고, 그래서 울면서 설교하고, 터져 나오는 설교를 하게 되지요. 그 때에 성도에게서“회심의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런 설교는 그냥 잘 한다는 설교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말씀, 성령의 그 말씀이 되지요.
성령님이 바로 대고 말씀하는 그런 설교! 아아! 이런 진짜 성령설교는 성령이 덮지 않은 목사님과 교회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지요. 저는 설교를 꼭 녹음하는데, 간혹 쏟아지는 그 성령님의 원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9.영적 사건이 일어 나는 은혜
내 생애에, 교회에 영적 사건이 일어 납니다. 소위 말하는 기적이지요.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기적이 하루에 2-3가지는 반드시 일어 나지요. 그 놀라운 경이의 세계는 그야말로 생생히 살아 있는 영적인 세계이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역사하는 분임을 알게 되지요.
10.성령의 은사와 권능이 열리는 은혜
저는 고전12장의 9가지 은사 외에 갖가지 은사가 쏟아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사 하나 하나는 받지 않는 자는 알지 못합니다.
“방언”을 못하는 사람이 방언에 대하여 무엇을 설교하며,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겠어요? 기껏 책들을 보고 인용하는 정도지요. 중요한 것은 책은 이론이고, 능력과 은사는 실제예요.“신유”에 대하여 설교할 수는 있지만, 신유가 나타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그 신유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성령의 은사는 하나가 터지면 줄줄이 터지지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이든“방언”받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저와 함께 앉아 10분만 기도하면 방언이 터져요. 이렇게 받기 쉬운 방언을 받으려 하지는 않고 온갖 신학적 이론은 다 갖다 대고, 비방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고... 정말 악한 자세 아니예요?
우리 속된 말로“모르면 가만히 있어!”하잖아요. 반드시 은사들을 받아야 해요. 성령의 권능을 소유해야 해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은사, 권능이 더 소중해요. 은사를 사모하지 않고 은사에 무지몽매한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따지고 보면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은사로 섬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은사들은 배척하니 참 어불성설이지요.
11.깨달음의 은혜
성령님은 늘 깨닫게 하시지요. 돌아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무엇보다 부족함을 보게 하시고...
깨닫는 은혜보다 귀한 은혜가 또 있을까요?
사람이 자기 주제와 교만함을 깨닫지 못하면 정말 문제 덩어리의 인생이 되고, 남을 해치고 다치게 하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주님의 뜻을 따라 한다고 하니,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장로들과 무엇이 다를 게 있어요?
(시49:20)존귀(尊貴)에 처(處)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滅亡)하는 짐승 같도다.
12.성도를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도와 주는 은혜
설교만 하고 성도들 방치하는 목사님도 있고, 세상적인 입발림으로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어 주며 속이고 넘어 가는 목사도 있고, 인간적 수단과 정으로 현혹하는 목사도 있고,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수단을 부리는 목사도 있고, 머리가 좋아 이리 저리 굴리는 목사도 있고, 협박하고 위협하는 목사도 있고, 여성도들을 자상한 남성적 이미지로 유혹하며 속이는 목사도 있고, 목사는 언제나 만사에 선생이어야 하는 목사도 있고...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목사는 4종류가 있데요. 강도목사, 거지목사, 사기목사, 진짜목사! 누가 천국 가는지는 아시지요?
성령의 목사, 은사와 권능의 목사, 진정 주님의 정신과 얼이 있는 목사 만이 성도를 살리고 도울 것입니다.
13.사람들의 영을 분별해 주고, 깨끗하게 해 주는 은혜
사람의 영의 정체를 모르면 그의 신앙과 삶은 언제까지나 답보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한계와 약점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성령을 부어 주셨는데, 어리석은 자는 그 성령님을 구하지도 않고 언제나 자기가 주인되어 그 분을 무시하며 평생을 살아 가지요. 참으로 무지몽매하고 안타깝고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영분별의 은사를 받아 사람의 영의 정체를 알고, 바로 지도해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14.귀신을 쫓아 주는 은혜
찰스 크레프트의 <사악한 영을 대적하라>는 책을 보면,“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1/3 정도가 귀신이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말을 인용하는 저를 이상하게 보세요?
못된 교인들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 속에는 귀신이 몇 마리나 들었나 하고 스스로 물어 본 적이 없으세요? 그의 머리에 손 얹고 뭐라고 한번 기도해 보셨나요? 무엇이 보였나요? 목사의 눈에 귀신이 보이고, 귀신을 알아야 내쫓지요.
저는 기도하다가 계시의 은사로 환상, 영분별, 지식의 말씀, 투시, 영안이 열렸습니다. 일례를 들면 아파서 기도 받으러 온 사람의 몸을 두고 기도하며 보면, 몸 속의 실핏줄까지 다 보이는 경우가 30% 정도 됩니다. 성령님이 모든 것을 투시로만 보여 주시지는 않으니까요.
환상, 투시, 영안, 지식의 말씀, 방언 통역, 예언의 말씀, 영 분별... 등의 계시의 은사들을 종합하여 악한 영과 사람을 분별하고 실제적으로 그 영혼을 살리며, 병을 고치며, 삶의 범사를 도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15.성도들을 영적으로 세우는 은혜
성령의 목사가 아니면 성도들을 영적으로 절대로 절대로 세울 수 없지요. 사람은 자기가 알고 경험한 것만 남에게 가르칠 수 있어요.
성령 받지 못하고, 영적 세계를 모르는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영적인 세계를 가르칠 수가 없어요. 기껏 해야 혼적 설교, 이성적, 상식적, 합리적, 현실적 범주 안에 머무는 설교 밖에는 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또한 현대인의 생리에 맞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설교는 성도의 영혼을 살리지 못해요.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의 기독교는 신령과 진정의 종교예요. 다시 말해 영적인 종교이며, 성령의 종교라는 말씀입니다.“성령”을 받지 못하고,“성령”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성령의 종교”를 말합니까?
16.교회를 그야말로 신령하게 만드는 은혜
교회가 왜 신령합니까? 말로만 신령합니까? 실제로 신령해야 신령하지 않나요?
성령님이 운행하시고 나타나시고 역사해야 신령한 교회지요? 사람이 설치고 인본주의적인 말들이 난무하는 교회가 어찌 신령합니까?
그건 신령한 교회가 아니라 세속적인, 가장 세상적인 교회이지요. 계시록이 말하는 타락한 음녀의 교회지요.
17.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완성하는 은혜
우리 기독교 신앙과 복음, 교회, 모든 역사는 다 성령 안에서 되어지는 역사입니다. 처음부터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진행하고, 성령으로 결론지어져야 진정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따라, 기도해 보세요.
기도는 양입니다. 질이 아닙니다. 양 이전에 절대 질을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기도 무릎을 오래 모으는 만큼, 성령님이 나타 나시고, 일하십니다. 기도하려고 하다가 3시간을 엎드려 잠만 자다 일어 나도 3시간 기도한 것입니다. 저녁에 기도하며 잠들고, 새벽에 기도하다 깨면 밤새 내내 기도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기도훈련 덕에 수면기도를 참 많이 하고, 꿈을 통해 성령님의 계시를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든“기도한다”는 사실! 이게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말을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자리에 머물러 있는 긴 시간을 보십니다. 신음을 보십니다. 금식을 오래 하면 기도가 안됩니다. 정신이 가물 가물하는데, 무슨 기도입니까? 그냥 심신이 다 고갈된 채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냥 모든 것을 선물로 부어 주십니다. 우리의 말의 기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세와 정신을 보시는 것이지요.
영적 세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하는 판단, 지성, 이성의 세계 저 너머에 있습니다. 성령님을 만나고, 깊은 영계에 들어 가 본 사람 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라면 반드시 그러한 세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기도와 아울러“금식하는 분”들이 아실 것이 있습니다.
장기금식을 오래 하면 뼈가 상합니다. 저는 무릎과 허리, 그리고 이빨이 약해졌습니다. 특히 무릎의 고통이 심합니다.
건강학적인 처방을 꼭 겸하십시오. 가능하면 보름 이상은 금식하지 마시고, 대신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언제나 먼저 간 경험자의 말은 도움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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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금식에 대하여 설교한 것 몇 편이다.
읽으며 은혜 받고, 금식에 도전하시기 바란다.
금식보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영성훈련의 방법은 다시 없기 때문이다.
흉악의 결박을 끊으라
이사야58:6절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1.금식은 원수된 관계를 끊는다.
사노라면 원수 될 수가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당할지언정 악을 행하지 말라.
악으로 갚지도 말라.
2.금식은 가슴에 한이 되어 용서 못하는 일을 끊는다.
사람에게 원망을 깊이 심지 말라.
남에게 모질게 하지 말라.
학대하지 말라.
단점과 허물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지적해 주어, 상처를 입게 하지 말라.
3.금식은 나에게 심각하게 危害(위해)를 준 사람에 대한 미움, 원망, 저주... 등을 끊어 버린다.
아랫 사람에게, 혹은 일과 연관된 사람의 단점을 혹독하게 평가, 판단, 지적하지 말라. 정말 너그럽게 끌어 안아야 한다. 어른이 되고, 큰 사람이 될수록 더욱 더 그리하라.
4.금식은 배신한 남녀 관계의 쓴뿌리는 끊어 버린다.
불륜의 남녀의 사랑은 쓰디 쓴 열매를 맺는다.
배신할 대인관계, 떳떳치 못한 대인관계는 아예 맺지를 말라.
5.금식은 경제적 손실을 준 관계의 저주를 끊어 버린다.
사노라면 어쩔 수 없이 부도 나고, 빚질 수 있다.
그러나 고의로, 사기로, 사람을 이용하기 위하여 돈을 연결 시키지 말라.
6.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지 못했던 대인관계를 청산해 버린다.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이익의 도구로 쓰지 말라.
7.금식은 가난, 질병, 고립, 불통을 초래한 유전적, 환경적, 가정적, 사회적 유행과 악습, 불신의 삶의 형태...들을 끊어 버린다.
세속에 물든 삶, 악습에 젖은 삶, 악한 직업과 동료 관계 등을 청산하라.
나의 기뻐하는 금식
이사야 58:1-12절
(사58:1-12)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금식은 회개를 선포할 때에 한다. 주의 종은 회개의 음성을 나팔 같이 날려야 한다.(1절)
(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百姓)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罪)를 고(告)하라.
2.금식은 금식답게 하여야 한다.
진실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며(2-3절),
(2)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 함이 마치 의를 행(行)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規例)를 폐(廢)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義)로운 판단(判斷)을 내게 구(求)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 하며 (3)이르기를, 우리가 금식(禁食)하되 주(主)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主)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외식이나(3절),
(3)이르기를, 우리가 금식(禁食)하되 주(主)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主)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오락을 행하거나(3절),
보라. 너희가 금식(禁食)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다투거나(4절),
(4)보라. 너희가 금식(禁食)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惡)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폭력을 행하거나(4절),
(4)보라. 너희가 금식(禁食)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惡)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재와 베를 펴는(5절) 등의 외형적인 행동이 금식의 진정한 모습이 절대 아니다.
너희의 오늘 금식(禁食)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上達)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禁食)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悅納)될 날이라 하겠느냐?
3.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다. (6절)
(6)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壓制) 당(當)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4.금식하는 자는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지친을 피하여 숨지 않는 삶을 동반해야 한다. (7절)
(7)또 주린 자(者)에게 네 식물(食物)을 나눠 주며, 유리(流離)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者)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骨肉)을 피(避)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금식하는 자는 하나님의 광명의 빛을 보게 되며, 치료가 급속하며, 의로워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여 기도의 응답이 임하게 된다. (8-9절)
(8)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治療)가 급속(急速)할 것이며, 네 의(義)가 네 앞에 행(行)하고, 여호와의 영광(榮光)이 네 뒤에 호위(護衛)하리니,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應答)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6.금식하며 스스로를 바로 잡아 이웃에게 의를 행하고, 인격적으로 바로 살아 가며, 가난한 자를 돌아 보면 놀라운 축복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 나게 된다.
만일(萬一) 네가 너희 중(中)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虛妄)한 말을 제(除)하여 버리고, (10)주린 자(者)에게 네 심정(心情)을 동(動)하며, 괴로워 하는 자(者)의 마음을 만족(滿足)케 하면, 네 빛이 흑암(黑暗) 중(中)에서 발(發)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恒常) 인도(引導)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靈魂)을 만족(滿足)케 하며, 네 뼈를 견고(堅固)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네게서 날 자(者)들이 오래 황폐(荒廢)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歷代)의 파괴(破壞)된 기초(基礎)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蓚補)하는 자(者)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蓚築)하여 거(居)할 곳이 되게 하는 자(者)라 하리라.
금식에 관한 성구
(삿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 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사회적, 거국적인 금식이 필요하다.
(삼상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금식은 나라와 사회를 회복한다.
(삼하1:12)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슬플 때에 그냥 울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애통하라.
(삼하12: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12: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삼하12: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 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리라.'
금식은 하나님의 응답과 은총을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왕상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악한 자의 금식도 그에게 의의 초석이 된다.
(대하20:3) 여호사밧이 두려워 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목사(제사장)은 특별히 나라와 사회와 교계와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금식할 줄 알아야 한다.
(스8:21)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스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중요한 문제를 두고 금식하며, 예비하라.
(느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영적인 문제, 개탄할 영적 현실을 두고 금식하라.
(느9:1) 그 달 이십 사 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 쓰며,
국가적인 대사, 사회적인 문제, 교회적인 문제는 전체가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교회적 금식, 가정적 금식 선포가 필요하다.
(에4: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죽음의 고통, 심각한 위기, 생명이 위태한 질병 등을 두고 금식하며 기도하라.
(에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 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중보기도의 꽃은 금식하며 기도해 주는 일이다.
(시35:13)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도다.
금식하며 중보기도 하면 가장 탁월하게 응답되고, 나에게도 축복이 넘쳐 난다.
(시69:10)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그러나 결코 그리되지 아니하며, 축복이 되어 돌아 온다.
(시109:24)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금식을 건강학적으로 지혜롭게, 금식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 금식을 잘 하면 더욱 더 건강해진다.
(렘14: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금식함으로 진정 네 삶을 바꾸고, 네 의를 회복하라. 종교적 행위로 금식하지 말라.
(렘36:6) 너는 들어 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 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금식하며 예배하고, 작정기도 하고, 말씀으로 은혜를 충전하라.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성령님이 금식을 감동하시면 금식하라. 금식의 결심은 거룩한 성령님의 위대한 감동이다.
(욜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금식은 회복과 회개의 가장 빠른 표식이다.
(욜2: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금식일을 두어 주기적으로 금식을 훈련해야 한다.
(슥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 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금식의 정신을 진정으로 바로 하라. 하나님의 은총과 응답을 받도록 금식하라.
(슥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금식 후에 기쁨의 삶과 회복의 삶이 온다.
(마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사십일의 금식도 필요하다. 인간의 극한까지 가는 금식이다.
(마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마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직 하나님께 보이기 위하여 금식하라. 가능한 한 금식할 때에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라.
(마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금식하는 나날들은 곤고한 나날들이다. 기도의 나날들이다. 주님 앞에 가장 진지한 나날들이다.
(눅2:37) 과부 된 지 팔십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금식은 경건한 삶의 바로미터이다.
(눅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종교적 행위로서의 금식은 하나님 앞에 서는 의로운 영적 삶의 기초이므로, 꼭 필요한 것이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중요한 일, 사명을 두고 반드시 금식하라.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 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목사와 장로는 금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는 일과 선교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에 반드시 금식해야 한다. 회의하지 말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가장 영적인 정신으로 주님의 일, 교회의 일을 수행하라.
당회에서 중요 결정을 하고 나거든, 목사와 장로가 함께 금식하라. 금식하고 기도하는 체질로 교회를 만들어라.
회의하지 말고, 기도하라. 한 사람 속에 기도와 금식의 사람, 회의(會議)의 동물이 함께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