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
- 송영탁
소란스러운 것들은 늘 앞질러 간다
수척해진 변방 어디쯤 다녀온 사람은 안다. 마감할 곳을 찾는 즘생은 서두르
지 않는다. 뒤처진 잎사귀들은 가지 끝에 목을 달고 바람옷을 벗은 나무들이 선
산을 향해 걷고 있다.
오래된 시인은 백골이다
제 무게를 못 이긴 동백이 먼저 닫혔다. 좁은 길일수록 산문적이다. 커다란 사슬
을 푸는 거미 한 마리도 보았겠다. 어쩌면 고요는 너무 명백해서 말이 없는 것일 수
도 있다. 하나의 길을 놓고 여러 갈래를 만드는 일은 성가시다. 평생 성가신 일만 하
다 가는 게 산행이다.
생각 많은 표정이 거미줄에 걸렸다
보이지 않던 것도 그물에 걸리고 나서야 사태가 또렷해진다. 산밑에 둔 얼굴 한 채 허
공에 두고 와야겠다. 바람의 자락을 손에 쥐고 무서운 저항을 민다. 걸음의 후미가 벗겨
지도록 아린 살결을 방치한다.
산문 가는 길이 운문처럼 행을 바꾼다
ㅡ웹진 《시산맥》(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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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생명체는 없다고 고사목과 석탄 석유 그리고 무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생명들이 무리를 이루고 앞선 쪽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피는 꽃이 주목받고, 철새 떼 선두에 늘 우두머리가 섭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나아가고 멈출 곳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주장은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이 여러 갈래라는 참뜻을 버렸습니다
뜻과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무엇이든 용서될 수 있다는 궤변용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쓸모없는 노작을 일삼는 이들이 시인 작가들이지 싶은데요
문학의 그물에 걸린 정치의 결과물이 가끔은 그 거미줄 마저 찢어버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얼마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인간시장' 작가께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어떤 풍경도 눈에 담지 못했는데 동행의 일깨움 한마디에
꼭대기를 기어코 올라 히말라야 풍경을 한참 눈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물에 걸려 실체가 드러나듯이 전파 속에 무수한 얼굴이 들락거립니다
아무리 행을 바꾸어 썼다고 해도 산문은 산문이고 시가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