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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왼쪽)과 서정진은 올 시즌 10대 선수 가운데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사진 김수홍,김동하) |
10대 후반 혜성처럼 나타나 주가를 올리고 20대 초반 축구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다. 유럽 축구에선 흔히 있는 일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그런데 K리그는 다르다. 어찌된 일인지 K리그에서는 10대 스타플레이어를 찾기 쉽지 않다. K리그 26년 역사를 꼼꼼히 살펴봐도 그렇다. K리그에서는 10대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수 없는 것인가. FC 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가 열린 7월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전북의 베스트11에 서정진(19)의 이름이 올랐다. 올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서정진은 K리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10대 선수다.
프로 무대 적응이 쉽지 않지만 전북
최강희(49) 감독의 믿음이 깊다. 서정진에게 서울전은 올 시즌 19번째 경기다.
3-4-3 전형의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서정진은 서울의 출전 선수들을 보고 적지 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동갑내기 이승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서울에 입단한 이승렬은 세뇰 귀네슈(46)감독의 믿음을 이끌어냈고 서정진과 함께 K리그 10대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둘은 고등학교 때 악연으로 만났다. 서정진이 나온 서울 보인정보산업고는 지난해 4월 열린 제43회 춘계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전 준결승전에서 이승렬이 이끈 경기 신갈고에게 연장 접전 끝에 0-2로 졌다. 신갈고는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이승렬이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서정진은 서울전을 통해 내심 설욕을 노렸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서울의 선발 명단에는 10대 선수로는 유일하게 기성용(19)이 이름을 올렸다.
1989년생인 이들은 서로를 잘 안다. 같은 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어도 소문을 통해 “어느 학교에 누가 잘 한다더라”라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
서정진, 이승렬,
기성용을 비롯해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이범영(부산 아이파크), 유지노(전남 드래곤즈), 문기한(서울) 등 1989년에 태어난 10대 선수들이 올 시즌 K리그에서 뛰고 있다.
K리그의 치열한 경기 내용을 고려하면 설욕하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김현수(35)와 함께 전북의 중원에 포진한 서정진은 서울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기인 드리블이나 침투 패스를 할 여유도 없었다. 서정진은 후반 33분 정경호(28)와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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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K리그에서 몇 안 되는 10대 스타였다. 19살인 1998년 시즌 11골 2도움을 올리며 신인왕이 됐다.(사진 이용석) |
서정진은 “(정)경호 형의 포지션을 봤을 때 측면에서 뛰는 (김)형범이 형과 교체될 줄 알았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내 등번호인 26번을 든 대기심을 보고 맥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승렬은 후반 20분 기성용 대신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승렬은 4-4-2 포메이션을 쓰는 서울의 왼쪽 미드필더로 투입됐다. 비교적 큰 키에도 부드러운 움직임이 강점으로 꼽히는 이승렬은 순간적인 방향 전환으로 전북 수비진을 흔들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던 이승렬은 최근 들어 왼쪽 미드필더로 뛰는 일이 잦다.
이승렬은 “
귀네슈 감독이 애초 기대했던 수준 이상으로 출전 기회를 주고 있다. 포지션 변동은 팀 사정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2-2로 비겼다. 서울은 이청용(20)이 두 골을 터뜨렸고 전북은 조재진(27)과 최태욱(27)이 한 골씩 넣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있던 두 팀 선수들 대부분이 그대로 주저앉을 만큼 치열한 한 판이었다.
귀네슈 감독과 최감독은 “어린 나이에도 주눅들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성장 가능성이 많다”며 각각 이승렬과 서정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런데 당사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나와 구단 버스에 오르는 이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K리그에는 10대 스타가 없다올 시즌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록된 K리그 선수 가운데 10대 선수는 17명이다. 이 가운데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는 서정진, 이승렬, 기성용,
구자철, 이범영 등 5명 정도다. 그 가운데 서정진과 이승렬의 활약이 단연 두드러진다.
8월 1일 현재 서정진은 19경기에서 1골 2도움을 올리고 있고 이승렬은 19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선발로는 8경기씩 뛰었다.
특히 이승렬은 7월 2일 열린 라이벌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1-0 결승골을 터뜨려 주목을 끌었다.
각급 대표팀에서 뛴 기성용과 구자철은 소속팀에서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범영은 최근 들어 부산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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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2.0) |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서정진과 이승렬을 경기에 내보내는 최감독과 귀네슈 감독의 선수 기용 방식은 K리그의 관례로 볼 때 파격적이다.
K리그 26년 역사 속에 10대의 나이로 주전급 선수로 활약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선수가 대학을 마치고 프로에 데뷔한 1990년대 이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졸 선수가 부쩍 늘어난 2000년대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고졸 선수도 K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든 최문식(37)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팀 감독을 비롯해 이동국(29), 조성환(26,포항), 정조국(24,서울) 등 10대의 나이에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역대 K리그 신인왕 가운데서도 10대 선수는 2003년 시즌 정조국과 1998년 시즌 이동국 두 명밖에 없다. 지난 시즌에는 이현승(20, 전북)과 이청용이 주전에 가까운 활약을 했다.
설기현(29,풀럼), 이영표(31,토트넘 핫스퍼)의 에이전트인 ㈜지쎈의 김동국 대표는 “경험의 중요성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K리그가 보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10대 선수들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23살이 되면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화 돼 있다. 10대 후반이 되면 선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파악이 끝나 있어야 하는데 K리그 지도자들은 실력 여부를 떠나 어린 선수는 일단 벤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프로보다는 대학을 선택하는 고졸 선수들이 늘고 있다.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구단도 선수들에게 대학에서 경험을 쌓도록 권유하고 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은 최근 들어 뜸하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식들이 축구선수로 실패했을 때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올 시즌 K리그에서 10대 돌풍을 이끌고 있는 서정진과 이승렬은 특별한 경우다.
서정진은 “동기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특이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어차피 프로선수가 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K리그에 데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승렬은 “부모님이 처음에는 대학 진학을 권했다. 1, 2학년 정도 마치고 프로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 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서울에 입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리그의 성적 지상주의터키 2부 리그로 떠난 최윤겸(46) 전 대전 시티즌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김)창수는 2006년 시즌 울산 현대에서 데려왔다. 선수층이 두꺼운 울산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리블과 공격 가담 능력이 수준급이었다. (김)창수를 처음 보자마자 대전의 즉시 전력감이라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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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가운데)은 LA 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서 귀네슈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 경기는 이승렬의 프로 데뷔전이었다.(사진 선원익) |
그런데 김창수(23,부산)는 대전 유니폼을 입은 첫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06년 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10경기에 나섰고 이 가운데 5경기가 교체 출전이었다.
김창수는 해를 넘기며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잡았다. 지난 시즌 23경기에서 1골 3도움을 올렸고 올림픽대표팀에도 뽑히며 인생 역전을 이뤘다.
최 전 감독은 “(김창수를) 당장 경기에 내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창수가 주로 뛰던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에 나이든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기존 라인업을 하루 아침에 뒤엎었다가는 선수단 분위기가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K리그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창수에게 조금씩 출전 기회를 늘리는 쪽으로 해 보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리그도 선수단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선수 기용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그러나 그 정도가 K리그만큼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실력이 있는 어린 선수라면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선수인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23), 웨인 루니(23, 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오넬 메시(21, FC 바르셀로나) 등은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팀 내에서 입지를 굳혔다.
포르투갈 수페르리가의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호나우두는 19살에 맨유 유니폼을 입었고 이적 첫 시즌인 2003-04시즌 리그 14경기에서 4골 4도움을 기록했다.
호나우두는 맨유에 입단하기 전인 2002-03시즌에는 포르투갈리그에서 25경기를 뛰었다.
루니는 19살인 2003-04시즌 에버튼 소속으로 리그 26경기에서 9골 3도움을 올렸다. 메시도 19살이던 2006-07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리그 23경기를 뛰며 14골 2도움의 인상적인 성적표를 남겼다.
리그 분위기의 차이도 있겠지만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더 많다. 시스템 문제를 거론하는 이들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이 K리그에 하루 빨리 정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수 육성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어린 선수들의 경쟁력이 확보되고 팀마다 클럽이 육성한 선수에 대해 ‘우리 선수’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프로보다는 대학에 진학하는 선수들이 늘면서 U리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서정진, 이승렬처럼 어려서 빼어난 재능을 드러낸 선수들이 아니라면 매주 경기가 열리는 U리그를 통해 예비 프로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승리 지상주의 풍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K리그에서 10대 스타는 나올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 축구 관계자는 “고졸 신인을 곧바로 경기에 내보내기는 부담스럽다. 이들은 학원 축구에서 자란 아마추어 선수다. 기존 프로 선수들과 기량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공감을 하고 있지만 경기에서 질까 봐 과감한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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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의 전성기그러나 전북 최감독과 서울 귀네슈 감독은 서정진과 이승렬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꾸준히 출전 기회를 주고 있다.
두 감독은 지난해에도 19살이던 이현승과 이청용에게 두터운 믿음을 보냈다. 이현승은 지난해 컵대회를 포함해 28경기에 나서 1골 6도움을 올렸고 이청용은 23경기에서 3골 6도움을 기록했다.
이들은 지난해 연맹에 등록된 15명의 10대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최감독과 귀네슈 감독은 서정진과 이승렬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귀네슈 감독은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지난 시즌부터 어린 선수들을 과감히 선발로 내보내는 등 파격적인 선수 기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정조국의 항명 세리머니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서울 관계자는 “조광래 전 감독 시절부터 어린 선수들을 영입했고 체계적으로 키웠다. 귀네슈 감독도 젊은 팀 색깔을 잘 이어가고 있다. 선수 육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놀라울 정도다. 이승렬이 본보기다. 교체 출전이 많기는 하지만 이승렬은 올 시즌 아디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전북 최감독은 “10대 선수를 키우려고 무리를 해 경기에 내보냈다기 보다는 (이)현승이와 (서)정진이가 가진 재능을 묵히기가 아쉽다는 생각에 가능하면 기회를 주려고 했다. 정진이는 공을 희한하게 찬다. 머지않아 큰 일을 낼 선수인 것은 분명하다. 어린 나이에 K리그에 적응하면 그만큼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해외 진출에도 유리한 점이 많다. 이런 흐름 속에 K리그의 경쟁력이 붙고 대외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의 전성기를 20대 중후반으로 본다. 26, 27살은 돼야 경험이 쌓여 축구를 보는 눈이 뜨인다는 것이다.
유럽 축구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20대 초반에도 전성기가 올 수 있다고 믿는다.
2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 기량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고 30대가 되면 축구 선수로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의견에 대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승렬은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 국내 선수들의 전성기는 꽤 늦은 편이다. 프로 데뷔가 늦기 때문에 리그에 적응하는 시기가 뒤로 밀린다. 그만큼 전성기도 늦춰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이 아닌 프로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SPORTS2.0 제 115호(발행일 8월 4일) 기사
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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