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No. San Fran Psycho!'
(샌프란시스코? 천만에. 샌프란 사이코!)
글로벌 도시 경쟁력 취재차 북미 일대를 방문했을 때 미국 중부 텍사스 오스틴 한 식당 화장실 벽에서 마주친 낙서다. 같이 식사하던 현지인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임차인에게 그 비싼 렌트를 강요하는 사람이나, 그 미친 집값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나 매일반 사이코란 해석이 돌아왔다.
◇ 샌프란시스코 = 샌프란 사이코
샌프란시스코 집값은 정말로 미쳤다.
2017년 2분기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평범한 중산층 주택 한 채 평균 가격이 14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치면 15억 원이 넘는다.
[사진 출처: 매경DB,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 전경. 십 년 전 사진이나 지금 모습이나 똑같다] |
인근 위성도시인 산 마테오, 산타클라라 등도 평균 100만 달러 선을 이미 넘어섰다. 그나마 100만 달러 안팎 주택이 매물로 나오면, 눈 깜박할 새 누군가 낚아 채 간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에 기록한 전 고점을 뛰어넘다 못해 이젠 거의 두 배에 육박한다. 전망 좋은 해안가 주택이나 언덕배기에 집을 장만하려면 천문학적인 액수를 요구한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임대를 해서 살려면 월 소득의 50%이상을 임대료로 꼬박 물어야 하고 임대료를 못 견뎌 집을 사겠다고 은행 문을 두드리려면 최소 연봉이 29만 달러(3억 원)은 넘는다는 소득증빙을 해야 가능하다.
부동산 버블의 진앙으로 지목돼 2008년 이후 곤두박질쳤던 샌프란시스코 집값이 이처럼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급등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부동산 버블의 또 다른 신화였던 라스베가스는 여태껏 바닥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에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땅값, 건축비용, 건설사 마진 등 최소마진주택공급비용(MPPC)을 감안한 미국의 적정 주택 공급 가격은 평균 20만 달러로 샌프란시스코 집값의 적정 수준은 28만1000달러다. 하지만 벌써 이미 2013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 평균 집값은 적정 수준의 세 배, 아니 네 배가 넘어섰고, 그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 "내 뒷마당에는 안돼" 님비(NIMBY)
전형적인 서안해양성 기후로 연중 사철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는 지리적으로 환태평양 해안가에 위치한 데다 북쪽과 동쪽으로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수평적인 도시팽창(sprawl)이 힘들다. 그렇다면 수직 개발을 해야 하는데 시내 주택가들도 경사진 언덕에 층층이 위치하고 있어 대규모 개발을 막는다. 하지만 이 같은 지리적 한계는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샌프란시스코는 개발규제로 악명이 높다. 옛 철도 부지 등 도시내 쓸모 없는 땅에 디벨로퍼들이 주택을 공급하려 해도 지자체 정부와 의회에서 번번히 제동을 건다. 히피와 거지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유권자들은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을 갖고 있다. 개방적인 문화에 게이들의 도시로 슬럼가도 많지만 개발보다는 보전에 관심이 많고 환경운동단체들도 입김이 강하다. 이 같은 탓에 대규모 개발 계획은 인근 주민들의 반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적인 저항을 초래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아 개발을 진행해도 지자체에서 발목을 잡기 일쑤고 법원에서 강제 집행 판결을 내도 요지부동이다. 유권자들, 다시 말해 지역 주민들의 말없는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부족하면 다른 데다 지으면 되지 왜 하필이면 우리 동네냐. 복잡해지는 것은 싫다.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조망권을 해치고 도로도 막히고, 학교도 혼잡해진다” 고 반대한다. 님비(Not In My Back Yard. 우리집 뒷땅에는 안돼)의 전형이다. 맥킨지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일대에는 주민 1000명이 유입될 때 신규 주택 공급은 325가구씩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이나 십 년 전이나, 아니 2차 대전 이후로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도시의 풍경은 별로 변한 게 없이 갈수록 퇴락해 가는데 집값만 미친 듯이 오르는 상황이다.
◇ 샌프란시스코형: 공급이 비탄력적이면 가격 급등락
1973년부터 2010년까지 27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실질 소득은 2배로 늘었다. 하지만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연간 착공 허가, 그러니까 신규 주택 공급은 수요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신규착공 허가율이 1990년부터 연 1% 아래로 추락했고 수요 변화에 상관없이 신규 공급은 계속 늘어나지 못했다. 이는 수요 증가에 탄력적으로 반응해서 신규착공 허가율이 4%를 치솟았던 애틀란타형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애틀란타는 수요 변화에 공급이 신축적으로 반응해서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았다. 반면 수요 변화에도 공급이 경직적인 결과가 주택가격의 변동폭 확대로 나타나는 게 샌프란시스코형이다.
필자가 십 년전 2008년에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위치한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연수할 때만 해도 팰로알토시에서 방2개 욕실 1개 짜리 변두리 임대아파트를 월 1680달러에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두 배인 월 3000달러를 줘도 못 구한다. 대학교 인근에는 웬만한 방2개짜리 임대아파트 렌트가 5000, 6000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집값도 낡은 단층 짜리 양옥이 300만, 400만 달러를 넘는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실리콘 밸리 지역이라고 해도 이 같은 집값 버블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탱될 수 있을까. 지역 주민들이야 집값이 올라 돈을 벌어 좋겠지만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은 숨이 막힌다.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집 사재기 등 다주택자 투기 수요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요 변화에 공급이 신축적이지 못할 경우 단기엔 정책적 처방이 효과를 가져와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 급등락을 더 부추기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샌프란시스코 사례는 명확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