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라운드에 쓰는 글자 <승>, FC 서울 이승렬 인터뷰

[Antonio Cassano]

그라운드에 쓰는 글자 <승> FC 서울 이승렬 인터뷰 김덕중 기자 / 2008-08-14 사진 김수홍 K리그에서 10대 선수의 능력이 실력에 비해 낮게 평가된다는 의견에 공감하나. 공감한다. 고등학교를 마친 선수들이 더 많이 프로에 진출해 살아남아야 한다. 큰 무대에 빨리 적응하고 기회가 되면 더 큰 리그로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야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나. 시스템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유럽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에서 기량을 닦아 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나이는 어려도 ‘우리 선수’라는 믿음이 있다. 한국 선수들은 학원 축구에서 큰 선수들이라 프로팀의 믿음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성격은 어떤 편인가. A형이라 그런지 내성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나서야 할 때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고교 때는 최전방 공격수였다. 올 시즌 개막 전에 열린 LA 갤럭시와의 친선경기에서도 공격수로 나섰다. 조금 쑥스러운데 많이 뛰는 편이다. 활동량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렇다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건 아니다. 웨인 루니나 훌리우 밥티스타처럼 힘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부드럽게 플레이를 하면서 간간히 기술 축구를 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나 리오넬 메시처럼 기술이 뛰어나지는 않다. 말하다 보니 어중간한 것 같다. 최근에는 왼쪽 미드필더로 많이 뛴다. 서울에는 좋은 선수가 많다. 그만큼 포지션 경쟁이 치열하다. 포지션과 전술 이해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고교 때부터 여러 위치에서 뛰어 봤다. 올 시즌 19경기를 뛰었는데 이렇게 많이 출전할 걸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귀네슈 감독님이 외국인 지도자이다 보니 혜택을 조금은 본 것 같다. 그렇지만 서울은 이장수 전 감독님이나 조광래 전 감독님이 있을 때부터 어린 선수들을 많이 뽑았고 요긴하게 활용했다. 물론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프로 새내기에게 이 정도로 많은 기회를 주지는 않았지만(웃음). 최근 정조국 선수가 서울 벤치를 향해 항의하는 듯한 포즈를 취해 화제가 됐는데 이승렬 선수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정)조국이 형은 출전 기회가 적다고 감독에게 불만을 품을 사람이 아니다. 조국이 형도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만약 그 장면이 정말 항명이었다면 조국이 형은 그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국이 형은 그 다음 경기에 출전했고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고 있다. 조국이 형은 언제나 웃고 후배들을 잘 챙긴다. 내게도 공격수로서 필요한 움직임 등을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서울 선수단의 분위기 메이커다. 만약 다른 팀에 갔다면 어땠을까. 드래프트로 서울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좋은 선수가 많아서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그렇지만 선수 처지에서는 어느 팀에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운동을 해 하루 빨리 팀 색깔에 맞춰야 한다. 서울에서 살아남으면 다른 팀에 가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 없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데이비드 베컴의 LA 갤럭시전이 데뷔전이었다. 어떤 느낌이었나. 경기에 들어가기 전 라커룸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선발 명단에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먼저 내 플레이를 감독님께 제대로 보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충분히 했고 패스, 드리블 등의 형태도 구체적으로 생각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려고 하니 긴장 됐다. 그러나 경기를 하면서는 긴장 속에서 즐거움을 찾게 됐고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팬들의 탄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껏 해 보지 못했던 축구를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이대로만 하면 서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고 하던데. 주심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불기 전에 선수들끼리 동그랗게 모여 파이팅을 다짐한다. 보통은 ‘하나, 둘, 셋’ 정도를 외치고 각자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나는 그에 앞서 한 가지 행동을 더 한다. 선발로 나갔을 때는 그라운드에 앉아 손가락으로 조그맣게 글자를 적는다. 내 이름의 가운데 글자인 ‘승’자를 쓴다. 물론 승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교체로 경기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경기에 투입되기 직전 벤치 바닥에 손가락으로 ‘승’이라고 쓴다. 1989년생 가운데 좋은 선수가 많다. 그런 것 같다. 지금 K리그에서 뛰고 있는 동기들뿐만 아니라 대학을 선택한 친구 가운데에도 우수한 선수가 많다. 머지않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선수가 있나.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팀에서 성장한 유지노와 같은 팀에 있는 (기)성용이와 (문)기한이도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얼마 전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제주 유나이티드의 (구)자철이 형도 생일이 빠른 1989년생이다. 전북 현대의 (서)정진이와 일본에서 활약하는 (조)영철이 등 뛰어난 선수가 많다. 이 가운데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나. (조)영철이다. 청소년대표팀에서도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어 앞으로 계속 경쟁을 해야 할 것 같다. 같은 학교를 나오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난 영철이를 통해 J리그 정보를 얻고 그 친구는 나를 통해 K리그 소식을 듣는다. 최근에는 일본축구에서 외국인선수를 보는 시각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조금은 놀랐다. 우리는 외국인선수와 말이 통하지 않아 따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외국인선수와도 가족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좋아 보였다. 영철이는 K리그에서 필요한 경기력에 대해 궁금해 한다. 힘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해 줬다. 용인축구센터(용인 FC) 1세대로 알려져 있다. 용인 FC 시스템을 소개한다면. 클럽하우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삼중, 신갈고와 연계돼 있는데 각종 대회에는 학교 소속으로 나가지만 운동은 용인 FC에서 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용인 FC가 생겼는데 그때만 해도 전국에 잔디가 깔린 축구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외국인 지도자도 있고 학년별로 감독과 코치가 있는 등 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에 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 귀네슈 감독에게 혼난 적이 있나. 귀네슈 감독님보다는 최용수 코치님에게 자주 혼이 난다. 공격수 출신인 최코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슈팅이다. 수비 뒷공간을 잘 파고들어 좋은 위치에서 슈팅 찬스를 잡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 어이없는 플레이로 기회를 날려 버리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최코치님이 자주 하는 말씀 가운데 ‘네가 날려 버린 슈팅으로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는 게 있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칭찬은 많이 듣지 못했다(웃음). 최코치님이 선수 시절 갈고 닦은 기술을 많이 가르쳐 주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동갑내기인 기성용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함께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기)성용이는 자상한 면이 있다. 간식을 갖고 오면 나보고 먼저 먹으라고 한다. 휴식 시간에 게임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숙소 생활이 재밌다. 성용이도 고등학교 때 유명했다. 성용이는 호주에서 축구를 했고 한국에 와 금호고를 졸업했는데 고교 때 경기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소문을 통해 축구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진 김수홍 7월 2일 라이벌 수원 삼성전에서 그림 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다. 기분이 어땠나. 박수 소리가 기억난다. 칭찬도 많이 들었다.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서인지 많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도 했다. 중고교 때부터 큰 경기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수원전을 통해 조금은 꿈을 이룬 것 같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골을 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수원은 K리그의 맞수인데 현장에서 느낌은 어땠는지. 이번 경기에 앞서 4월 13일 홈경기로 열린 수원전에도 뛰었다. 그때는 우리가 0－2로 졌고 경기 막판 두 팀 선수들이 충돌하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형들이 ‘수원 원정 경기 때 꼭 설욕하자’고 의지를 다졌고 7월 2일 경기를 앞두고도 ‘수원의 연승을 막아 보자’며 투지를 불태웠다. 확실히 다른 팀과 경기할 때와는 차이가 있다. 선배들이 그러면 후배들은 따라간다. 모처럼 선발 명단에도 들었기 때문에 의욕이 넘쳤다. 기회가 왔고 운 좋게 골을 넣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텐데 귀네슈 감독의 믿음을 느낀 적이 있나. 3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개막전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선수가 되든 이날 경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난 올해 K리그에 데뷔한 신인선수일 뿐이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프로에 직행한 새내기다. 개막전을 앞두고 출전 선수 명단에 내 이름이 오른 것을 알게 됐는데 나는 잘 해야 교체로 나갈 줄 알았다. 경기에 나가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내가 선발 명단에 포함된 것을 알게 됐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엄청난 부담감과 긴장이 뒤따랐다. 경기는 어땠나. 외국인공격수 데얀과 투톱을 맡았는데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활약 여부를 떠나 내게는 무척 힘든 경기였다.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부담을 느꼈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선수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경기는 1－1로 비겼고 후반 10분 교체됐다. 한 개의 슈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나를 믿어 준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왼쪽 눈 옆에 작은 상처가 있는데 언제 생긴 것인가. 축구를 하다가 생긴 상처는 아니다. 5살 때 어머니와 백화점에 갔는데 정문이 자동문이었다. 신기해서 장난을 치다가 넘어졌는데 흉터가 생겼다 축구화 깔창의 글자 이승렬(19,서울)의 축구화 깔창에는 한글로 ‘승’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축구를 배우면서부터 새겨 넣곤 했는데 축구화 깔창이 닳아 글자 색깔이 바래면 검은색 매직펜으로 다시 ‘승’자를 썼다. 이승렬은 “‘승’자를 적은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뛰면 결과가 좋았다. 골을 많이 넣었고 우리 팀이 이기는 경기도 많았다”고 말했다. ‘승’은 이승렬의 이름 가운데 글자와 승리를 뜻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축구화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도 ‘승’자를 써 보라고 했다. 이승렬은 “그냥 기분이겠지만 친구들의 말을 따르자 경기 결과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이제는 경기를 잘 치르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됐다. 앞으로도 계속 ‘승’자를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SPORTS2.0 제 115호(발행일 8월 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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