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탄생 축하(Celebrating the Birth)’, 1664년, 87.7×107cm, 월레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 소장.
아이의 탄생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얀 스테인이 그린 ‘탄생 축하(1664년·사진)’는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이와 엄마에 초점을 두기 마련인데, 스테인은 아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왜일까?
스테인은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으로 일상생활을 묘사한 장르화로 유명하다. 언뜻 보기에 ‘탄생 축하’는 갓난아기를 자랑스럽게 안은 아버지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의 아내는 아직 몸을 회복하지 못한 터라, 화면 왼쪽 뒤 침대에 누워 죽을 받아먹고 있다. 아이를 낳은 방에 남편 외의 남자가 들어오는 건 금기시됐기에 집 안에는 여성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가족과 친척, 조산사일 것이다.
오른쪽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고 있고, 침대 끝에 앉은 여자는 과음으로 취한 듯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이 아빠는 축하와 환호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자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니 왠지 조롱당하고 있는 것 같다. 화면 오른쪽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말라비틀어진 소시지를 들고 화면 밖 관객을 바라본다. 이는 발기부전을 암시한다. 바닥에는 깨진 달걀 껍질이 흩어져 있는데, 당시 ‘달걀 깨기’는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압권은 아이 뒤를 지나 방을 빠져나가는 젊은 남자다. 남편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인 그는 두 손가락을 아이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의 얼굴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아이 친부에 관한 진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여자의 남편만 모르는 듯하다.
누구의 자식이든 어떠랴. 모든 탄생은 축복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스테인은 여러 상징과 암시를 통해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결혼과 가족, 부부간의 신뢰와 정절, 축하의 의미, 진실과 거짓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1670년, 캔버스에 유채, 73×62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류트를 연주하는 자화상’.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은 라이덴(Leiden)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가족은 양조 사업을 운영했으며 2대에 걸쳐 레드 할버트를 운영했다.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농민이나 중산층의 꾸밈없는 생활 정경을 위트와 해학으로 그린 그의 작품은 떠들썩한 웃음이 있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자각과 도덕적 비평의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정물화, 초상화, 역사화, 종교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800여 점을 만들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농민을 묘사한 장르화이다. 술에 취한 사람, 결혼식, 소풍, 심술궂게 굴어서 우는 아이들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또한 종종 교훈적인 우화와 속담에 근거를 두었다. 부업으로 선술집을 경영하고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주요 작품에는 《구주희를 즐기는 사람들 Skittle Players》(1660~1663), 《사치를 조심하라 In Luxury, Look Out》(1663), 《방종의 결과 The Effects of Intemperance》(1663~1665), 《유쾌한 가족 The Merry Family》(1668), 《성 니콜라우스 축제 The Feast of Saint Nicholas》(1665~1668), 《술잔치와 댄스파티를 하는 마을 결혼식 A Village Wedding Feast with Revellers and a Dancing Party》(1671) 등이 있다.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사치를 경계하라(Beware of Luxury),
1663년, 105×145.5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얀 스테인(Jan Steen)은 상당히 해학적인 풍속화를 많이 그린 사람이다. 그는 여관을 운영해 먹고 살았는데, 여러 부류의 사람이 드나드는 여관에서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보며 작업의 힌트를 많이 얻은 것 같다.
사치를 조심하라는 일이 잘 풀릴수록, 상황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권면을 담은 그림이다. 매우 번잡해 보이는 실내에서 한 여인이 앉아 졸고 있다. 왼쪽의 값비싼 모피 반코트를 입은 여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졸고 있는 사이, 집 안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란스럽기가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여인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테이블 위의 음식은 개가 먹어치우고 있고, 테이블 앞의 아기는 숟가락은 들고 있으나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값비싼 목걸이를 가지고 논다.
뒤쪽의 아이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어른 흉내를 낸다. 그 아이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화면 중앙에서 하녀와 시시덕거리며 수작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다른 등장인물들과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 음식물, 그리고 그것을 먹는 돼지까지 모두 뒤죽박죽이 된 이 집안의 형편을 생생히 드러내는 존재들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주제와 관련해 당시 네덜란드의 속담을 원용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놓인 석판에 그 속담을 써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풍족할 때 조심하라. 그리고 회초리를 두려워하라.”
사람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때보다 성취하고 난 다음 오히려 패가망신할 수 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 하지 않는가. 또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다. 좋은 일이 있을수록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집은 바로 그 교훈을 잊고 있기에 이처럼 스스로 허물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금언을 해학적인 붓으로 묘사했다.
그 해학은 천장에 매달린 바구니에 칼과 목발이 얹혀 있는 모습에서 더욱 빛난다. 칼과 목발은 바로 징벌의 상징이다. 집안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계속 졸고 있으면 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해학과 유머는 사실 일정한 도덕적 입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만큼 장르화는 도덕적 주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발달해왔다. 특히 근대 들어 부르주아 시민 사회가 성장하면서 장르화는 시민의 근면한 생활이나 노동 윤리 등 합리적인 생활 태도를 강조하고 허례허식과 부도덕한 삶을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적·시민적 윤리의 확산을 도왔다.
이런 경우에도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표현 방식이 여전히 유효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같은 측면에서 벗어나 냉정한 현실 고발, 또는 시사 고발적인 접근으로 사회에 만연한 악을 질타하기도 했다.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방종의 결과(The Effects of Intemperance)’,
1663~1665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유쾌한 가족(The Merry Family’, 1668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성 니콜라우스 축제(The Feast of Saint Nicholas),
1665~1668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술잔치와 댄스파티를 하는 마을 결혼식
(A Village Wedding Feast with Revellers and a Dancing Party)’, 1671년.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목욕을 끝낸 바세바(Bathsheba After Bath)’,
1670-75년, 45x58cm,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 소장.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방종한 집안’.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 ‘술 취한 커플(The Drunken Couple)’, 1655-65년.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11월 28일(목), Daum, Naver 지식백과/ 글: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