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74회
이헌 조미경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모시킨다. 아이들은 자라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방황도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에 안착하면서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걷는다. 반대로 어른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도 흘린다. 삶은 이렇듯 하루하루가 전쟁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꽃길처럼 보이는 신기루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다. 어느덧 검은 머리는 희끗희끗 세치가 돋아나 세상에 큰소리치며 자신감을 뽐내던 남자들이 부모의 봉양에 자식들 짝짓는 일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부모는 항상 곁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 줄 것만 같고, 우물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던 큰 산처럼 어떤 버티고 앉아 60이 넘은 자식도 물가에 내놓은 자식 바라보던 하는 아버지의 강인한 어깨가 축 처지는 시기가 오면 비로소, 철이 드는지 자식들에게 잔소리도 늘어 간다. 연우의 아버지도 오랜 기간 고혈압과 성인병에 병치레를 자주 하더니 기어이 가족들 곁을 떠났다. 연우의 아버지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산은 캐나다에 있는 누나와 살아계신 어머니 이렇게 재산 분배를 끝내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생전 아버지는 연우에게 당부하셨다. 남에게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하며 내 것이 아닌 것에 과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연우는 아버지의 말씀보다는, 불확실성에 투자를 했다. 지금도 주식 투자를 하면서, 세계정세에 흔들리는 증권시장에서 울고 웃는 연우였다. 나이 50이 넘어 철들지 못한 아들은 어버이 가신 길에 눈물을 뿌린다.
부모는 자식의 성공에 웃는다. 연우도 그랬다.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그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아들의 입사 턱을 냈다. 그가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자식들의 취업 문제로 늘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아온 그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닌 결과 영어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그의 아들은 해외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아들의 대기업 입사는 집안의 자랑이자, 앞으로 며느리를 맞이할 때에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치매 초기 증상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머니를 돌보는 가사 도우미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당장 어머니와 살림을 합칠 수도 없고, 가까이 살면서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은 연우 몫이 되었다. 연우에게는 어머니를 아내에게 부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는 아직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어 자신 한 몸도 추스리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 퇴근 후 어머니를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연우는 매일 아침 출근 하면서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부쩍 외로움을 타시더니 몹쓸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매일 약을 챙겨 도시 도록 하는 한편 어머니를 조금 더 편하게 모실 방법에 대해 누나와 의논을 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어려웠다. 증상이 악화가 되면 결국은 남들처럼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펄쩍 뛰면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결사반대 의사를 밝힌다. 겉으로는 멀쩡 한 것 같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치매 환자와 함께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집안에 혼자 계시다 잘 못 되실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늘 연우를 따라다녔다.
요양 보호사가 케어를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를 집중 케어 하는 요양 보호사에게 연락이 온 것은 어머니의 치매가 예상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연우는 연차를 내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CT검사 결과 어머니의 뇌는 이미 상당히 많이 수축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없고 가족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진행이 되고 있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나서 마음이 서늘했다. 한때는 동네에서 최고의 멋쟁이로 손꼽히던 어머니는 이제 아들인 자식의 얼굴을 보면서 지금의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자꾸만 연우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만 기억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은 사람을 이렇게 변모시키는 모양이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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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치매는 가장 무서운 병이라지요
그래서 하루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하므로 신속히 치료가
더욱 중요 한것이지요
좋은 소설 잘 보고 갑니다.
이헌님, 책 내신 거 축하드립니다~
많이 애쓰셨지요?
이제 잠시 느긋하게
봄날들 좀 즐기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