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번째 편지 - 兼六園과 兼六人
봄이 되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점점 꽃이 좋고, 정원이 좋습니다. 도심 건물보다 교외 정원을 더 찾게 되고, 번잡스러운 사람보다는 말없이 고고한 한 그루 나무가 더 친근합니다.
지난 주말 일본 가나자와에 있는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라는 '겐로쿠엔'을 찾았습니다. 1676년 가가번(가가는 가나자와의 옛 이름)의 5대 번주가 짓기 시작하여 1822년 12대 번주 대에 완공하여 그 정원의 이름을 겐로쿠엔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정원의 아름다움은 다소 싸늘한 날씨를 잊게 할 정도로 훌륭하였습니다. 저는 정원을 다 돌아보고 겐로쿠엔이라는 명칭에 관심이 집중되어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겐로쿠엔은 한자로 兼六園으로 씁니다. '6가지를 다 가진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6가지란 중국 북송 시대(960-1127년) 때 시인 이격비(李格非, ?–1106년)가 쓴 책 낙양명원기(洛陽名園記)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낙양은 지금 뤄양시라 불리는 중국의 오래된 도시입니다. 낙양은 입지 조건이 좋아 13개 왕조가 1,586년간 도읍(수도)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화려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격비와 같은 북송 사람으로 역사서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1019-1086년)은 “고금의 흥망성쇠를 알고 싶다면, 낙양성에 한번 가보라. (若問古今興廢事,請君只看洛陽城)”는 구절이 들은 〈낙양 옛 성을 지나며 (過故洛陽城)〉라는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북송(960-1127년)시대 이전으로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당나라(618-907년)입니다. 당나라 이후 중국은 분열되어 오대십국시대(907-979년)를 70년간 거치고 송나라 시대를 맞이합니다. 송나라는 북송과 남송으로 나뉘어 있었고 북송은 한족이 세운 당나라를 계승한 국가입니다.
당시 낙양은 오대십국 시대의 전란으로 옛 영화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당나라 후손인 북송 지식인들은 당나라 시대의 냑양을 그리워하며 이에 관한 글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격비도 그런 지식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격비는 낙양의 과거 부귀영화 중 정원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낙양의 유명했던 정원 19개를 선정하여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이름이 낙양명원기(洛陽名園記)입니다.
그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인 '호원(湖園)'의 설명 부분에 그 유명한 '정원이 갖추어야 할 6가지 아름다움'을 소개한 글이 있습니다.
겐로쿠엔(兼六園)의 홈페이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6勝은 뛰어난 경관의 대명사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名勝地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이길 勝입니다. 훌륭하다는 뜻입니다.) 6승은 상반되는 경관을 조화시켜 대조의 아름다움을 연출한 것이다.”
이격비는 이 대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洛人云、園圃之勝、不能相兼者六/ 務宏大者少幽邃、人力勝者少蒼古、多水泉者艱眺望/ 兼此六者、惟湖園而已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낙양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원도 6개의 뛰어난 경관을 겸비할 수 없다.
넓은 모습(宏大, 1승)을 나타내려고 하면, 조용함과 깊이(幽邃, 2승)가 부족하고, 사람의 손길이 많은 곳(人力, 3승)에는 오래된 우거짐(蒼古, 4승)이 부족하며, 또, 눈앞에 예쁜 폭포나 연못(水泉, 5승)을 많이 만들면, 먼 곳을 바라보기(眺望, 6승) 힘들다. 그런데 이 6승을 다 가지고 있는 정원이 있으니, 호원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멈추어졌습니다. 정원에 대한 6가지 아름다움은 곧바로 우리네 인생에 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이 6가지보다 더 적합 평가가 있을까요?
첫째, 사람의 한평생에는 광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크고(大), 넓기(宏)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자는 최고의 지위에 오르고 싶어 하고, 재력가는 사업을 더 넓히려 합니다. 학자는 자신의 학문이 널리 알려져 자신이 최고의 학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러나 1승을 거둔 사람을 보면 대부분 깊지(邃, 깊을 수) 못하고 얕거나, 조용하지(幽, 그윽할 유, 幽人은 속세를 피해 조용히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못하고 요란합니다. 그래서 이격비는 광대(宏大)와 유수(幽邃)가 병립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면 광대보다 정적과 깊이의 표현인 유수가 더 품격있게 느껴집니다.
셋째,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인력(人力)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공부하고 일합니다. 바람직한 일이고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넷째, 그런데 인력(人力)에만 집중해 사는 사람은 세월의 힘을 알지 못합니다. 고색창연(古色蒼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되어 예스러운 풍치나 모습이 그윽하다’는 뜻입니다. 인생에 세월이 더해지면 그 사람 됨됨이가 그윽(蒼古)해집니다. 이 모습은 젊었을 때는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경지입니다. 인위는 줄이고 자연 맞추는 삶.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 시기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입니다.
다섯째, 정원을 만드는 사람은 갖가지 재미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정원에서는 수천(水泉), 연못과 폭포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구 등을 갖추고 싶어 합니다. 당연한 일이고 이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여섯째, 그러나 눈앞의 화려함에만 현혹되어 살면 인생을 멀리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루하루에 매몰되어 살다가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갑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 바로 조망(眺望)의 시간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 조망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 사색, 산책 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격비는 6승을 다 갖춘 정원은 낙양의 호원뿐이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700년 후인 1822년 6승을 다 갖춘 정원이 일본에서 명명됩니다. 겐로쿠엔(兼六園)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겐로쿠엔을 공부하다가 兼六園이 아닌 兼六人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여섯 가지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 가진 兼六人이야말로 가장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아닐까요?
물론 제가 틀릴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4.10. 조근호 드림
<출처 ;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