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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탓하지 마세요. 낮에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고 밤에 혼자 공부한 저도 해냈잖아요."
박진영(24·사진)씨는 2014학년도 수능에서 언어·외국어·과탐 1등급, 수학 2등급(내신 7등급)을 받아 서남대 의대에 수시 일반전형으로 합격했다. 낮에는 공사장 인부로, 밤에는 수험생으로 지낸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박씨는 고3 때 치른 2010학년도 수능에서 아주대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 등록을 포기했다. 이후 2년 동안 공부를 접고 PC방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책임졌다. 다시 책상에 앉은 이유는 홀로 그를 키워준 할머니 때문이다. 겨울에는 외풍(外風)이 드센 낡은 집 대신 근처 노인정에서 지냈던 박씨는, 그곳에서 뼈가 부러져도 돈 걱정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인들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90세가 넘은 할머니를 모셔야 하는 박씨에겐 사교육을 받을 시간도, 돈도 없었다. 그가 밝힌 비법은 'EBS'. 20여권이나 되는 EBS 수능 연계 문제집을 세 번씩 풀고, EBS 인터넷 강의를 수차례 돌려 봤다고 한다.
"2년간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인력시장에 나가 오후 5시까지 공사장에서 일했어요. 다음 날 일하려면 밤 11시에는 자야 하니까 공부할 시간은 5~6시간에 불과하죠. 학원은 꿈도 못 꾸고 EBS 교재만 봤습니다."
박씨는 'EBS 꿈 장학생'으로 선정돼 19일 장학금을 받는다. 그는 "저를 보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다른 학생들도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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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4.09.05 14:31 | 신하영 기자 shy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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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교육부가 서남대 의대에 대해 ‘모집 중단’ 조치를 취했다. 교육부는 서남대 의대의 부실한 실습교육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예 의대 정원을 회수할 방침이다. 이 경우 전국 41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중 의예과가 폐과되는 첫 사례가 된다. 그간 의대 설립을 추진해온 대학들은 반색하고 있다.
교육부는 3일 전북 남원에 위치한 서남대의 2015학년도 의예과 입학 정원(49명)의 모집을 모두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서남대는 오는 6일부터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2015학년도 수시 모집부터 의예과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다.
박대림 교육부 대학학사평가과장은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학부모들은 서남대 의예과에 원서를 제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번 모집 중단 행정처분과 함께 서남대에 의대 실습교육을 개선하라는 2차 시정 명령을 내렸다. 서남대는 향후 60일 내에 이를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의대 정원을 회수당하고 의예과는 폐과된다.
교육부가 서남대에 시정할 것을 요구한 사항 중에는 △실습 전임교원 부족 △실습교육 예산 편성 △실습교육체계 미흡 등 당장 개선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향후 서남대가 의대 정원을 모두 회수당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현재 의대 유치(신설)를 추진 중인 대학은 공주대·목포대·순천대·창원대 등이다. 의대 정원은 보건복지부에 의해 ‘총 정원’으로 규제를 받지만, 서남대 의예과 정원이 회수될 경우 이들 대학의 ‘의대 신설’ 희망은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교육부가 대학들의 신청을 받아 복지부와 협의한 뒤 이를 배정하기 때문이다. 그간 의대 설립을 추진해 왔던 대학들이 서남대 의대 폐지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박병희 순천대 기획처장은 “순천지역은 광양산업단지와 여수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는데도 의대와 부속병원이 없다”며 “순천대에 의대가 신설되면 순천·여수·광양 등 전남 동부권과 하동·남해 등 경남 서부권 120만 주민의 불편함이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남지역에서 의대 유치를 추진 중인 순천대와 목포대의 경쟁은 여·야 거물급 의원 간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순천대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1990년대부터 목포대와 함께 의대 유치 운동을 벌여왔다. 의대 정원을 배정받기 위한 양 대학 간 경쟁이 정치권의 파워게임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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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내용
박진영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후 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랐다. 당시 할머니 앞으로 나오던 노령연금 10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했었고, 노인정에 가야 하루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중 턱이 부러지며 병원을 찾게 됐는데 큰 수술비 앞에 절망하게 된다. 자신의 수술비 낼 돈도 없는데 나중엔 어떻게 할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을까 싶어 그 뒤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막노동을 하고 집에 들어와선 공부를 해 2년 만에 서남대 의대 6년 장학생으로 합격한 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진영 씨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짐을 싸서 할머니가 계신 수원으로 올라왔다. 평소엔 할머니와 수시로 전화를 하고 2주나 3주에 한 번 찾아뵙는 게 전부였다. 올해로 92살 된 할머니는 첫 학기를 마치고 집에 온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좋아하신다.
“20일에 시험 끝나서 바로 집으로 왔어요. 할머니가 몸이 약하시다 보니까 여름인데도 감기로 고생하고 계세요. 방학이니까 이제 할머니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여름 방학에는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수험생에 관한 책을 쓰게 됐어요. 이번 방학도 바쁘게 보낼 것 같아요.”
편의점, PC방, 고깃집 안 해 본 일 없어
그는 부모님과 살아본 적이 없다. 태어나고 100일쯤 됐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고모 댁에서 자랐다. 너무 어렸을 때라 고모를 엄마라 부르고 자랐으며 9살엔 새엄마 집에 가게 됐다. 그러다 중3 때 새엄마가 갑자기 ‘너를 이젠 못 깨워준다’며 쫓아냈다. 그를 맡아서 키워준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고아원에 보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쓰럽게 생각한 할머니가 나서서 키워준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됐는데 한 달에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노령연금 10만원으로 생활했습니다. 반찬은 간장이랑 밥밖에 없고 점심은 노인정에서 자주 해결했어요. 그러다 노인정이 공사한다고 문을 닫은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돈이 500원밖에 없는 거예요. 아파트 가면 불우이웃 돕는다고 쌀을 모아둔 데가 있었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쌀을 몰래 훔쳤어요. 집에 와서도 전기가 끊겨서 은행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와서 할머니께 밥을 해드린 적이 있어요. 이러다 정말 굶어 죽겠구나 싶었어요.”
아무 식당에나 가서 일을 달라고 했지만, 미성년자인 그에게 흔쾌히 일을 주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다 한 고깃집 사장님이 일을 하라고 했다. 학교가 끝난 저녁 6시가 되면 밤 12시까지 불판을 닦고 한 달에 40만원을 받았다.
“가장 상처가 됐던 게 고3이 되니 다른 학생들은 야자 끝나면 부모님이 데리러 왔거든요. 근데 전 막차를 떨켜서 항상 5km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어요. 제가 걸음이 빠른 편이라 50분이면 집에 갈 수 있었어요. 책도 사고 싶은데 책 하나 사려면 고민해야 하고 다른 친구들은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보고 많이 속상했거든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좀 미화되기 마련인데 그건 아직도 좀 속이 상하네요.”
그가 성인이 되니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마저 끊기게 됐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 공사장 인부를 떠올렸다. 기술이 없는 그는 잡부 일을 했고, 새벽 5시부터 일을 하다 계단에 걸려 턱이 부러졌다. 병원을 가니 수술비 200만원을 청구했다. 당시 그의 수중엔 50만원밖에 없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 누워 생각을 하니까 절로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할머니께 오히려 내가 짐이 되지 않을까…. 공부로 성공을 하자. 퇴원을 하면 공부를 하자. 처음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공부를 잘 못 했어요. 그러다 노인정에 자주 오시던 할머님이 계신데 3일 동안 안 나오시는 거예요. 찾아가 보니 어깨가 퉁퉁 부어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셔서 모시고 병원엘 갔죠. 어깨가 부러졌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프셨을 텐데 왜 병원에 안 가셨냐고 하니까 전에도 다리가 부러졌는데 수술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노인연금 10달 넘게 모아서 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너무 속이 상해서 어른들 돕는 정형외과 의사가 되자, 의대를 가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남은 체력의 30%로 밤늦도록 공부해
2011년 겨울이었다. 새벽 5시에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5시였다. 처음엔 10분 동안 자리에 앉고 싶어도 앉을 힘도 없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옆에서 응원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평생을 같은 식으로 살기 싫었다. 첫주엔 30분 공부하고, 그 다음 주엔 2시간씩, 두 달 뒤에는 6시간씩 공부할 수 있게 됐다.
“EBS 기초강의,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했어요. 수학 기출문제집 2권이 있는데 4000문제가 넘었거든요. 3번씩 풀어서 1만2000번을 풀었어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이걸 풀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제 인생이 판가름날 거라며 이 악물고 공부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는 낮에 공사장에서 일할 때도 전날 풀었던 수학문제를 생각하고 쉬는 시간엔 영어단어를 외웠다.
“저는 그렇게라도 공부해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 악물고 공부했어요. 다른 학생들은 유복한 부모 밑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강의를 듣지만 전 공부 시간도 부족하고 남들이랑 같은 상황도 아니거든요. 체력의 70%를 다 쏟아 버리고 남은 30%로 공부하는데 그게 정말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막노동을 할수록 그 일을 정말 하기 싫었어요.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며칠 하면 모르겠는데 그게 제 생업이 될까 하면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거든요. 막노동이 오히려 자극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서남대 의대 6년 장학생으로 합격
2013년, 그는 의대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서남대 의대 6년 장학생이었다. 2년 전만 해도 의대는커녕 대학도 못 갈 형편이었는데 그는 모든 성취가 꿈만 같다고 말한다. 또한 합격보다는 자신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가장 먼저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장하다고 기특하다고 좋아하셨어요. 붙은 건 둘째 치고 저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솔직히 저 같은 사람이 없었거든요. 합격 수기 보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간 사람은 있지만, 부모님 없이 모셔야 할 할머니만 있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전 늘 자신감이 없었어요.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까 하루에 몇 번씩 생각했는데….”
그는 지나온 모든 경험이 귀한 재산이라고 말한다. 겨울에 추워서 할머니랑 노인정에서 살았던 일, 밥과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웠던 일, 훔친 쌀로 주린 배를 채웠던 일, 그 일을 계기로 벼랑 끝에 서 있을 누군가를 잡아주고 그들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지나온 날들을 떠올려봤을 때 그를 도운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고2 담임선생님은 그를 따로 불러서 책도 챙겨주고, 식사는 잘하고 있냐며 안부를 물었다. 또한 급식비와 생활비도 지원해줬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대 경영학과에 합격했음에도 등록금이 없어서 다닐 수 없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학원 선생님은 그에게 공부하라며 한 달에 60만원씩 5개월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는 그들 덕분에 (고1) 내신 9등급이었던 꼴찌가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머리가 좋았다면 25살에 1학년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껏 절 도와준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해 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돼서 행복하고 비록 지방에 있는 대학교지만 서울에 있는 어느 학교보다 좋게 느껴져요. 학교 시설도 시설이지만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6년 장학생이긴 한데 학비와 생활비는 다르니까 생활비도 벌어야겠죠. 그 일환으로 알바를 하고 있고 책을 쓰는 것도 있어요. 책이 완전히 무수익이 아니라 인세를 받게 돼서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번 방학에는 책을 쓸 거예요.”
그는 현재 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고 전화번호도 모른다. 친엄마는 그가 태어난 지 100일 되던 날 이혼해 고향으로 가서 얼굴조차 모른다.
“친엄마는 아마 잘 살고 계실 거예요. 항상 그 생각은 해요. 나중에 한 번쯤은 꼭 뵙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제가 이룬 게 아무것도 없고 당당한 것도 없어서 나중에 꼭 만나 뵙고 싶어요.”
그의 꿈은 정형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 감동을 준 건 주지훈 치과의사다. 버스 타고 다니면서 저소득층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이다. 그는 자신도 그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저도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어려운 분들을 더 많이 봤어요. 힘들게 사는데 주변에 병원도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요. 저도 주지훈 의사처럼 그런 활동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런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마지막 꿈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저 참 고생 많이 했죠? 지금은 힘들게 살아왔을 때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시니까 이런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안 하는 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그분들과 저를 위해서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학생이 되고 싶어요.”
“은행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생쌀을 불려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요.”
하루에 한 끼, 한 달 수입 10만원, 열네 살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가족이라고는 병상에 누운 할머니, 이러한 환경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은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올해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로 서남대 의대에 입학한 박진영씨가 그 주인공이다.
진영 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리며 학업을 병행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새로운 출발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다.
1990년 평범한 집안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고 이후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아홉 살 때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새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의 꿈만 같던 기억이다. 아버지가 불미스러운 일로 교도소에 간 후 새엄마와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삼촌과 고모가 있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 누구도 나서서 그를 돌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유일하게 진영 씨를 키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진영 씨는 자연스럽게 가장 아닌 가장이 됐다. 생활비를 보탰던 작은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할머니의 노인연금 월 10만원으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
“한 달에 10만원으로 생활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에요. 하지만 당시 노인정이 있어 점심 한 끼는 해결할 수 있었어요.”
굶는 일은 다반사였고 하루 한 끼 김치에 밥을 먹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고등학교 때 노인정이 공사로 인해 며칠 문을 열지 않았어요. 당연히 할머니와 저는 굶어야 했죠. 하필 그때 할머니가 많이 아팠어요. 먹을 건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도 요금을 못 내 끊겼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진영 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아파트 단지에 있던 불우이웃 쌀통에서 쌀을 구해 근처 은행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그 쌀을 불려서 할머니와 함께 먹었어요. 그 생쌀밥을 먹는데 ‘아,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방과후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한 달 40만원의 수입으로 밥 굶는 일은 면했다.
하지만 고3 수험생이 되자 공부와 생계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했다. 당시 기초수급자 제도조차 몰랐던 그는 결국 공부보다는 생활비를 버는 일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그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아주대학교에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다. 실패가 아니었고 더욱이 좌절이 아닌 새로운 꿈을 갖기 위해 더욱 강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 돌보는 정형외과 의사가 될 겁니다”
“당시에 기초수급제도 혜택을 받으며 대학교에 다녔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덜 열심히 살았을 거고 비뚤어진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역경이 있었기에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웠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그는 기초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비교적 보수가 많은 공사장에서 일했다. 딱히 기술이 없는 진영 씨가 공사 현장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건축자재를 옮기거나 폐자재를 정리하는 등의 잡다한 일들. 그러던 중 그는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고를 당한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넘어져 턱을 다치게 된 것. “넘어져서 턱을 다쳤는데 병원비가 200만원인 거예요. 그 당시 수중에 있던 돈을 몽땅 긁어 모아봐야 50만원이었는데, 그때 문득 느꼈어요. ‘아! 이 일을 하면서 평생 할머니를 모시고 살 수는 없겠구나’라고. 그래서 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형외과 의사의 꿈을 갖게 된 운명적인 사건을 만나게 된다. “노인정에서 매일 보던 할머니 한 분이 3일이 지나도록 안 보이는 거예요. 혼자 사셨던 할머니인데 걱정되어 댁을 찾아가 보니까 한 쪽 어깨가 정말 심각하게 퉁퉁 부어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굶고 누워만 계신 거예요. 병원비가 없어 그냥 계셨다면서요.”
119를 통해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면서 그는 “할머니들을 위해 정형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일하면서 공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영 씨는 새벽 5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공사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공부했다. 힘들어 포기하고픈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다시 잡았다.
처음 하루에 30분씩 공부하기 시작해 일주일 간격으로 공부시간을 30분씩 늘려 나갔다.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처지였기에 EBS 방송과 교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자는 강행군을 펼쳤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했던 그는 결국 올해 서남대 의대에 합격해 꿈의 첫 단추를 끼웠다.
진영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의대는커녕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저 자신을 통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에요.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죄인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하늘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영 씨는 마지막으로 “치과 전문 버스를 운행하며 의료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치과의사 주지훈 씨가 롤모델”이라며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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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혜택은 학교별로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9일 장학금 수혜 현황 등 주요 정보를 대학알리미를 통해 공시했다.
데일리메디가 의학과 기준 장학금 수혜 현황 자료를 집계한 결과, 대학별로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전반적으로 재학생 1인당 장학금((교내장학금+교외장학금)÷재학생 수)은 증가한 양상이었다.
재학생 1인당 장학금액은 성균관대와 울산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성균관대의 경우 2012년 955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는 2011년 1008만원보다 소폭 하락한 금액이다. 울산대는 2012년 873만원으로 집계됐으며 2011년 833만원 대비 증가했다.
동국대의 경우 2011년 243만원에서 2012년 365만원으로 뛰었으며, 인하대 역시 2011년 251만원 대비 2012년 329만원으로 1인당 장학금이 늘었다.
2012년 기준 고려대 324만원, 서울대 318만원, 가톨릭대 304만원, 경희대 291만원, 연세대 272만원, 충북대 260만원, 전북대 251만원 등으로 4년제 일반대학 학생 1인당 장학금 평균인 212만원을 훌쩍 넘었다.
또한 순천향대 195만원, 고신대 191만원, 관동대 167만원, 을지대 159만원, 충남대 158만원, 전남대 153만원 등으로 조사됐다.
반면 전체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대학도 있었다. 경영부실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서남대는 의학과 재학생들의 장학금 수혜 지표 수준 역시 저조했다.
서남대는 2011년 8만원에 머물던 재학생 1인당 장학금액이 2012년 25만원으로 증가됐으나 다른 대학과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다.
이 밖에도 강원대 68만원, 조선대 69만원, 제주대 75만원 등으로 집계됐다.
교육부는 “1조7500억원의 국가장학금 신설 등에 따라 4년제 일반대학 학생 1인당 장학금은 전년 대비 45.9%인 67만원 가량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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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에스 꿈 장학생 최우수상 상금 : 500만원
[베리타스알파=이경진 기자]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수능 기적'을 일궈낸 'EBS 꿈 장학생' 31명을 선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수혜 대상은 2014학년도 수능을 치룬 수험생으로 ▲열악한 가정 환경을 극복한 수험생 ▲자신만의 독특한 학습법으로 탁월한 학습 성취를 거둔 수험생 ▲도서산간 벽지에서 성공한 수험생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성공한 수험생 등이다.
서남대 의대에 합격한 박모씨가 최우수상에 뽑혔다. 박모씨는 생후 100일 쯤 됐을 때 부모님이 이혼해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됐다. 박씨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폐지 수집은 물론, 고깃집 아르바이트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고교 졸업 후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박씨는 턱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이때 정형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박씨는 EBS 연계교재를 반복해서 풀었고 결국 서남대 의대에 합격하게 됐다. 최우상에 뽑힌 박씨는 500만원의 장학금을 받게 됐다.
| ▲ 18일 교육부와 EBS는 어려운 주변 환경을 노력으로 극복한 31명의 'EBS 꿈 장학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우수상에는 서남대 의대에 합격한 박모씨가 선정돼 500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우수상에 뽑힌 30명에게는 각 200만원이 지급된다. /사진=교육부 제공 | ||
반면 우수상에는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노모씨가 뽑혔다. 노씨는 영어교사의 꿈을 키우며 EBSi 수능강의와 점자교재를 가지고 수능 공부를 했고 서울대 영어교육과에 합격하게 됐다. 노모씨 외에도 ▲중학교 졸업 후 7년간 막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24세 나이로 고등학교에 진학해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이모씨 ▲아버지의 정신질환을 고치기 위해 뇌과학자의 꿈을 안고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합격한 강모씨 등 30명이 우수상에 선정돼 각 200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신용섭 EBS 사장은 "이번에 선정된 장학생들을 보며 꿈에 대한 열정과 의지에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도 사교육 없이도 젊은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저소득층 가정 학생들을 위해 EBS 수능교재를 무상 공급할 예정이다. 또 시각장애인을 위한 EBS 교재 점역 사업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능강의 자막 서비스 등도 확대 지원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EBS 꿈 장학생'은 교육부와 EBS가 공동진행하는 장학금 사업이다. 지난해까지는 '열공 장학생'으로 지급됐다가 올해부터 'EBS 꿈 장학생'으로 명칭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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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서남의대 폐지 방침을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도로 제자리다. 1년 만인 지난 6월 중순, 다시 찾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서남대 남원캠퍼스는 여전히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했다. 본관 앞에 쳐진 천막과 플래카드만 이곳이 겪고 있는 ‘진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캠퍼스는 조용했지만 학생들 사이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이들의 관심은 시험문제보다 서남학원과 교육부간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 집중되는 듯했다. 서남학원이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감사 결과 처분 취소 소송 결과에 의대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6월 26일)인 서울행정법원은 서남학원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남의대생들은 “이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는 것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학생들은 울먹이기도 했다.
의대가 있는 서남대 남원캠퍼스의 ‘현실’을 본 뒤이기에 학생들의 이같은 반응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도 없는 캠퍼스에서 의사 꿈꾸는 학생들

의대가 있는 서남대 남원캠퍼스에서 대학 캠퍼스의 활기를 찾을 수 없는 건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학생회관이라는 건물은 여전히 공사 중인 채로 방치돼 있었고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각오는 하고 들어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의사를 꿈꾸는 의대생들이지만 교과서 외에 의학서적을 찾아서 볼 곳도 없다. 의대이면 으레 있는 도서관도 없어서(건물이 기울어 준공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쇄된 상태) 강의실 등에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의학도서관이 있다고 했지만 이곳을 이용해 본 학생들은 없었으며 열람실도 부족해 본과생들 위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서남의대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서관은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남원시립도서관인 셈이다.
한 학생은 “보통 학교 도서관을 통해 들어가면 논문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도서관이 없어서 그런 것도 없다”며 “도서관이 없으니까 강의실이나 자기 방에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의학서적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일반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찾기 힘든 게 의학 서적인데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이 남원시립도서관일 정도”라며 “차라리 주말마다 (다른 대도시에 있는) 집에 가서 그 인근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했다.
한 학기에 1인당 몇십만원씩 갹출해 강의자료 복사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여전했다. 재학생 A씨는 “교수님이 강의 자료를 파일로 주면 프린트를 해서 학교 밖에 있는 문구점까지 가서 복사를 해 온다”며 “학교 내에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 한 대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인 교수들이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초·중·고등학교에도 있는 양호실조차 없다. A씨는 “기숙사에 있는 구급약이 전부다. 학교 내에 양호실이 없어서 아프면 무조건 학교 밖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말도 서남의대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대학 내 자체 인터넷망은 고사하고 기숙사에도 랜선이 깔려 있지 않아 사비로 설치해야 한다. 재학생 B씨는 “팀 과제를 하기 위해 모일 장소도 강의실 말고는 없고 모인다고 해도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서 휴대폰 테더링이나 핫스팟(휴대폰을 모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며 “기숙사 랜선 설치도 학생들이 직접 사람을 불러서 개별적으로 설치했다. 물론 사비를 털어서 설치했다”고 말했다.
병원 매트리스 재사용하는 기숙사
학생들이 의대 건물 외에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인 기숙사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공동 샤워장과 세면대에는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으며 화장실도 청소를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복도 곳곳에는 정체 모를 얼룩이 남아 있었고, 금이 가 있는 방도 많았다.
그나마 최근에 일부 샤워기를 교체(학생들은 그마저도 중고인지 모양이 제각각이라고 했다)해 주고 세탁기도 4대 정도 새로 들어왔다. 곳곳에 녹이 슬어 있는 세탁실 안에 놓인 ‘신상 세탁기’가 오히려 생소해 보일 정도였다.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신상’은 세탁기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숙사 정원이 모두 차지 않아 학생들은 대부분 2인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4인실과 2인실의 차이는 사용하는 인원수뿐이었다.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는 4인실을 2명이 사용하면 2인실이고 4명이 사용하면 4인실인 것이다. 하지만 비용은 2인실이 4인실보다 비싸다고 했다.
C씨는 “남자 기숙사의 경우 샤워실 옆에 있는 방은 물이 샌다”며 “화장실 냄새가 심해서 오죽하면 기숙사생 한 명이 나프탈렌을 직접 사와서 변기에 넣기도 했다.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면서 퇴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는 기대도 안 한다”며 “올해는 그마나 화장실 휴지를 학교에서 주고 있지만 작년까지는 휴지도 개별적으로 사서 사용했다”고 했다. D씨는 “기숙사 창문이 잘 안 닫혀서 벌레가 쌓인다. 벽 가득 벌레가 뒤덮은 적도 있었다”며 “그래서 신문지랑 휴지로 창틀을 다 막고 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도에 있는 카펫이 너무 더러워서 청소 좀 해달라고 학교 측에 건의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더라”며 “재정이 마련되면 실행하겠다는 식의 답만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기숙사 침대 매트리스 일부가 교체됐다. 그런데 학생들은 얼마 후 경악했다. 교체된 매트리스의 출처가 서남대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다.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서남대병원에서 사용하지 않는 ‘중고’ 매트리스를 기숙사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E씨는 “침대 매트리스를 바꾼 학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한 교수님이 서남대병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면서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까지 하더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런 기숙사를 이용하는 데 한 학기에 100만원 정도(2인실 기준) 지불하고 있었다.
서남대 남원캠퍼스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기숙사 식당이 유일했지만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날 정해진 식단에 따라 백반 위주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 외 매점이 하나 있는 정도. E씨는 “다른 학교 식당에서는 한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해진 한 종류가 고등학교 급식처럼 나온다”며 “기숙사생은 아침과 저녁이 제공되고 점심은 2,500원만 내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의대 정년퇴임한 교수들이 더 낫다”

“복지가 뭐냐”고 되물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만 받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서남의대 교육 환경은 교육부가 폐지 방침을 밝혔던 1년 전보다 더 열악해져 있었다. 교수들과 재단의 싸움, 재단과 교육부의 싸움 속에 학생들의 교육권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모습이었다.
올해 초 201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이 끝난 후 학생들은 캠퍼스에 붙은 대자보 하나로 ‘학점 불인정’이라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재임용되지 않은 교수님들 강의의 학점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재임용되지 않은 교수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이 명단에는 의대 교수 8명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 6명이 포함돼 있었다. 서남학원이 지난 1월 이사회를 열고 재임용 심사대상자 82명 중 57명의 재임용을 거부했으며 그 명단이 뒤늦게 학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학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서남대와 교육부 등을 찾아다니며 진상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서남대와 교육부 측은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들 중 다수를 시간강사로 임용해 1학기 강의를 맡겼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 수준도 문제다. 학생들은 “우리가 듣기에도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 강의가 종종 있다”고 불만족스러워했다. ‘한옥의 이해’, ‘자동차의 이해’, ‘일본문화의 이해’ 등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과목을 한꺼번에 개설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강사도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다른 의대에서 정년퇴임한 후 서남의대로 온, 나이 지긋한 교수들을 더 선호했다.
A씨는 “전남의대 등 다른 의대에서 정년을 마치고 온 교수님들이 제일 훌륭하고 잘 가르치는 것 같다”며 “그 교수님들은 진짜 교수 같다. 그런 교수님들이라도 와서 가르쳐 주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기 초 강의를 시작할 때 강의계획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다른 의대에서 정년퇴임하고 온 교수님들 뿐”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체험하고 있는 교육 수준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알리미’에 공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의대를 설립한 7개 대학 중 서남대만 유일하게 2013년도 교내·외 연구비가 한 푼도 없었으며, 발표된 SCI급 논문도 0건이었다. 또한 전임교원 수는 28명에 불과하며 의대의 경우 1인당 장학금이 11만4,500원으로 493만4,500원인 성균관의대의 40분의 1도 안됐다.
“다녀봐서 안다. 서남의대는 정상화 될 수 없다”

교육부의 폐지 방침 발표 후에도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지난 6월 26일 교육부 감사 결과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서남학원이 일부 승소했다는 소식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남의대생 100여명은 의대를 폐지해 달라는 탄원서까지 제출하기도 했다. 학점 및 학위 취소 위기에 놓인 졸업생들에게는 구제의 길이 열렸지만 재학생들은 다시 부실교육 안에 갇히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1심 재판 결과를 들은 한 학생은 “우리가 이 학교를 다녀봐서 안다. 교수님들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학교는 정상화될 수 없다. 다녀봐서 잘 아는 우리가 정상화될 수 없다고 하는데 계속 이 곳에서 공부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학생은 “교육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주변 시설은 상관없다. 제대로 된 교수들로부터 제대로 된 수업을 받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대가 폐지되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수 있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전학 간 의대에서 ‘너희들은 부실교육을 받았으니 1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그래도 감수하겠다. 이 상태로 여기서 계속 교육을 받을 바에는 1년을 꿇더라도 다른 학교로 가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당장 의대 폐지가 어렵다면 조만간 진행될 2015학년도 수시 모집이라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는 “교육부가 이번에는 신입생을 받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렸으면 한다. 학생들이 계속 들어올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년 전 만난 서남의대생들은 폐지도 아니고 정상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지만 1년 뒤인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남의대생들은 여전히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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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남대 의대에서 2014년도 입학한 저 학생에게 자신있게 6년 장학금이란 미끼를 던져준 이유가 있었군요. 기껐해야 일년 남짓 주고 끌날것 알고 있었으니까 생색 내기용이였을 것이고,원래부터 장학금 주기를 젤 싫어하는 대학이 왠일로 6년 장학금을 줬는지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의예과 폐지는 거의 확정이고, 순천이나 광양쪽 ...순천이겠죠. 그쪽으로 의예과 정원이 넘어갈 것 같으며, 서남대에서 받은 장학혜택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고, 이비에스 꿈장학금은 최우수상이 500, 우수상 30명이 200씩... 장학금 같지도 않은 장학금으로 큰소리치고 있네요. 장학금 제도가 실효가 있으려면, 돈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을 만큼은
지원해주는게 기본상식인데, 무슨 일반사람들 월급 주는것 처럼 주고 생색은 엄청 내는군요. 암튼 열정100도에 저 학생이 상당부분 이용당한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비에스 꿈장학생을 알리고 홍보하는 효과와, 죽어가는 서남대를 ( 의예과 포기를 댓가로 ) 살리기 위한 부분적인 쇼와 아직도 세상은 스스로 노력으로 살만 하다라는 것을 국민들 가슴에 심어주는 효과까지도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노력하면 되는데 , 나머지는 노력을 안해서 못하는 것으로 도배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같은 청년백수나 백조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내용이 될겁니다. 서남대 윗 내용에 다 나와있으니, 아실분들은 아시겠죠. 서남대 나온 의대생이
@천지합일 어떤 환경에 노출될지.....저 청년의 꿈은 원대하고 가륵하고, 진심이여서 꼭 이루어졌으면 하지만, 세상벽에 걸려 넘어질 확률도 상당히 크겠군요. 그냥 좀 더 나이먹고 의사면허 따고 , 정식으로 대학병원이든, 일반병원이든 근무하면서 열정100도에 나와도 될 정도인데...
아,,! 너무,,,씁쓸합니다,,,
저 학생,,,
졸업하기도,, 의술을 배워 의사가 되기도 정말 어려울것 같습니다,,,, 서남대 미끼용,,방송 선전용에 이용당한것 같아요,,,ㅡㅡ
잘 올려주신 내용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