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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 혈우성풍 (血雨腥風)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자면비차 희대목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벌써 세 번째였다. 도망치는 그림자를 쫓아 건물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깨알 같은 암기들이 쏟아져 왔다. 간신히 그 암기 세례를 피했을 때, 이미 그림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암기에 당해 쓰러진 부하만 해도 벌써 네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석 총관이 생각한 것처럼 종남파가 검보의 고수들에게 쑥대밭이 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종남파에 머물러 있는 인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희대목은 다섯 명을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상대 중에 제아무리 천하에 보기 힘든 절대고수가 있더라도 자신들이 승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남파의 떨거지들은 변변한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도망만 다녔다. 그들을 하나둘 찾아내서 제거해 버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희대목은 느긋한 심정으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무작정 도망만 다닐 줄 알았던 종ㄴ마파의 떨거지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교묘하게 누비고 다니며 예상치 못한 반격들을 가해 왔던 것이다. 덕분에 자신이 이끌고 있는 아홉 명의 부하들 중 절반 가까이가 암기에 당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상대의 전술은 무척 단순했다. 신법이 빠르고 검법이 제법 뛰어난 젊은 놈 하나가 미끼가 되어 어슬렁거리다가 종적이 발각되면 부리나케 건물의 후미진 그림자 사이로 도망친다. 그래서 그 뒤를 무심코 쫓다 보면 미리 잠복해 있던 또 다른 놈이 암기를 날리는 것이다. 이런 한심할 정도로 단순한 암습의 반복에 부하들이 네 명이나 당했다는 것은 창피막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을 보니 자신 말고 진령일수 법물수가 이끌고 있는 다른 쪽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쪽은 오히려 더욱 심각했다.도망 다니는 여자의 신법이 이쪽의 젊은 놈보다 훨씬 더 빨랏을뿐 아니라 숨어서 공격하는 늙은이 또한 암기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검법을 휘둘러 왔기 때문에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범불수 쪽의 피해는 무려 다섯명이나 되었다.
희대목은 바닥에 박혀 있는 검은색의 깨알 같은 암기들을 보며 가래침을 뱉었다.
‘이건 아마도 비천호리 동중산이란 놈의 짓일 것이다. 애꾸 주제에 겨냥이 무척이나 정확하구나.’
그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제법 멀리 떨어진, 종남파의 건물들이 한눈에 보이는 공터에 다섯 명의 인물들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이야 말로 이번 일의 수뇌들이었다.
그들 중 중앙에 서 있는 푸른색 장포의 괴인을 보자 희대목은 움찔 몸을 떨었다. 펼생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그였으나 청포 괴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청포 괴인은 가공스런 존재였다.
그가 바로 청효 나월이었다.
나월의 바로 옆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람한 체구의 중년인이 철탑처럼 우뚝 서 있었다. 중년인의 등 뒤에는 도끼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극(戟)이 매어져 있었다. 그가 그 극을 휘두르면 반경 이 장 이내에는 아무도 살아남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자자했다. 그 중년인이 바로 사패 중의 극패 유광이었다.
나월과 유광 뒤에 나란히 서 있는 세 명의 앙상하게 마른 인물들은 고루삼마(骷髏三魔)라는 마도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마도 무림의 최고 고수라 하는 우내사마 중의 일인인 유령인마(幽靈人魔) 방복(龐福)의 제자, 고루신군(骷髏神君) 막동(莫董)의 제자들로, 나월에 못지 않은 무서운 마명(魔名)을 떨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 다섯 명은 이번 사냥에 끼어들지 않고 지금까지 공터에 가만히 선 채 희대목의 부하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희대목은 기분 같아서는 그들에게 자신들을 도와 달라 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담력은 없었다.
유광은 말할 것도 없고 나월과 고루삼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자신들의 눈 밖에 벗어난 사람이라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초가보에 속해 있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그들에게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희대목은 지금 상황을 타개할 좋은 묘수가 없을까 고민했다.
벌써 한 시진이 넘는 동안 똑같은 형식의 추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숨박꼭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씅나, 문재는 이쪽에서 조금씩이나마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뒤를 쫓지 않으면 그들은 건물의 그림자 속에 숨은 채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자신들이 싱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희대목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석상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던 나월을 비롯한 다섯 명의 괴인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깨비처럼 허공을 훌훌 날아 희대목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희대목은 그들의 가공할 신법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들이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월은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종남파의 고수들이 숨어 있는 건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닿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시선이었다.
"하루살이 같은 것들 때문에 너무 시간을 지체하는군."
나월의 얄팍한 입술이 살짝 열리자 마치 변성기의 아이들처럼 새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음성을 듣자 희대목은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벌써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할 법도 하건만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좋은 방도라도 있으십니까?"
"놈들은 모두 네 명이다. 그중 두 연놈은 신경 쓸 것 없는 존재들이고, 다만 검을 사용하는 늙고 젊은 놈만이 그런대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두 놈만 없애 버린다면 나머지 두 연놈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희대목은 나월이 이미 상대에 개해 소상하게 파악해 놓은 듯하자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희대목은 나월이 해결책을 내놓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과연 나월은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불을 질러라."
"예?"
"저놈들은 건물을 이용해 숨어 있다. 그러니 모든 건물들을 태워 버리면 저놈들이 숨을 곳도 없어지지 않겠느냐?"
희대목은 눈을 크게 뜨고 손뼉을 탁 쳤다.
"그러면 되겠군요.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생가해 보면 너무도 단순한 방법이었다. 건물들만 없으면 겨우 네 명의 고수들에게 그런 피해를 입을 리도 없고 진즉에 모든상황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들을 쫓아다니기에 바빠서 미처 건물을 없앤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희대목은 즉시 부하들을 시켜 횃불을 준비하게 했다. 범불수도 이미 말을 들었는지 횃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범불수로서는 부하들이 네 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몇 배나 더 속을 끓였을 것이 분명했다.
횃불이 준비되자 희대목의 얼굴에는 절로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자신이 신호를 내리기만 하면 수백 년간 강호에서 명문 정파로 이름을 날렸던 종남파의 본산이 잿더미로 변해 버릴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영광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다.
"흐흐...... 그럼 이제...... "
희댜목이 막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지금까지 종남파의 고수들이 숨어 있던 건물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멈춰라! 이 나쁜 놈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희대목은 그들이 바로 자신을 애태우게 했던 이인조(二人組)임을 알고는 득의만면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이제 꼬리를 드러내는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희대목이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일제히 횃불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건물에서 뛰어나왓던 전흠과 동중산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횃불을 막고 불을 끄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희대목과 여섯 며의 부하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반대쪽에서도 이미 건물에서 뛰쳐나온 전풍개와 방취아를 사이에 두고 범불수와 네 명의 수하들이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범불수는 방취아를 맡았고, 독응 위지독을 포함한 네 명의 수하들은 전풍개를 에워쌌다. 범불수는 우선 방취아를 신속히 제거하고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전풍개에게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하나 그는 이내 참혹한 상황에 내몰렸다. 전풍개의 무공이 실로 놀라워서 눈 깜빡할 사이에 위지독을 제외한 세 명의 수하들이 모조리 쓰러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방취아 또한 영악스럽기 그지없는 몸놀림으로 피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서 단시간 안에는 쓰러뜨릴 방도가 없었다.
"이런 제길...... "
범불수가 욕설을 내뱉는 사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위지독마저 시체로 만들어 버린 전풍개가 무시무시한 검광을 뿌리며 범불수에게 달려들었다. 범불수는 기겁을 하고 놀라 뒤로 몸을 빼려 했으나 방취아가 교묘하게 퇴로를 막고 있어서 피하기도 ㅅ월치 않았다.
파앗!
그의 오른쪽 오깨가 쭈욱 찢기며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몇 수 지나지도 않았는데 전풍개의 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범불수는 비록 팔리 잘라지는 참변은 면했으나 모골이 송연해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꽝!
무서운 기세로 범불수를 향해 다가들던 전풍개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으음!"
그와 함께 전풍개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풍개 같은 고수가 신음성을 낼 정도면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날아왔는지 전풍개의 앞에는 우람한 체구의 유광이 허공에 몸을 둥둥 띄운 채 우뚝 서 있었다. 유광은 등에 매달고 있는 극을 꺼내지도 않고 한 쌍의 육장(肉掌)만으로 전풍개를 격퇴시킨 것이다.
전풍개가 채 신형을 안정시키기도 전에 이번에는 고루삼마 중의 한 사람이 뒤쪽에서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위태로우리만치 마른 몸이었으나, 일다 ㄴ움직이자 그의 몸은 무섭도록 빨랐다. 전풍개는 등 뒤에서 매서운 한풍이 몰아치자 다급하게 몸을 돌려 그를 상대하려 했으나 앞에 우뚝 서 있던 유광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자 졸지에 앞뒤로 협공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전풍개는 눈을 부릅뜨고 성라검법의 절초들을 연거푸 펼쳐 냈다. 그 검풍이 어찌나 예리했던지 유광도 맨소능로 싸우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마침내 등 뒤에 메고 있던 극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차차창!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쉬지 안혹 장내를 뒤흔들었다. 전풍개의 뒤에서 달려들던 고루삼마 중의 이마(二魔) 상패(常覇)가 그들이 격돌했을 때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전권(전권)에서 한발 물러나고 말았다. 아무리 그가 고루마공(骷髏魔功)을 익혀 웬만한 도곰(刀劍)에는 끄덕도 않는다 해도 이와 같은 절정 고수들이 뿜어내는 검기를 맨몸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극패 유광은 초가보의 사패 중에서도 도패 좌린과 함께 가장 강한 고수였다. 권패 봉월이나 검패 양전은 그들에 비하면 한 수 뒤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유광이 자신의 단병인 단천극(斷天戟)을 전력을 다해 휘두르자 그 강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광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막사아 전풍개의 검에 맞서게 되자 밖에서 보았을 때와는 바교도 할 수 없는 살벌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종남파에 언제부터 이런 늙은 괴물이 있었단 말인가?’
유광은 상대를 경시하던 마음을 접고 맹렬한 기세로 단천극을 휘둘렀다. 그의 극에 대한 조예는 능히 강호일절(江湖一絶)이라 할 만한 것이어서 삽시간에 주위를 광풍노도처럼 휩쓸어 버렸다.
하나 그에 맞서는 전풍개의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것이었다.
전풍개의 나이는 올해로 예순일곱. 임 적지 않은 노령(老齡)임에도 불구하도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숱한 고수들과 싸워 왔고,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손에서 검을 놓아 본적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종남파의 본산에서 종남파를 침입한 외적(外賊)과 싸우는 그의 심정은 착잡하고 침울한 것이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토록 모진 고생을 했음에도 종ㄴ마파는 여전히 남들의 괄시를 받고 침입을 당하는 허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매섭고 날카로운 그의 검이 오늘따라 유달리 예리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깡!
그의 장검과 유광의 단천극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두 사람은 마치 힘과 힘을 겨루는 듯 병기를 마주 댄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가 다시 격렬한 공방(攻防)을 계속했다.
한동안 팽팽하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격전은 삼십여 초가 흐르자 조금씩 전풍개의 우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광의 강력한 무공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닦아 온 전풍개의 검법을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풍개는 이미 이십 년 전에 질풍검이라는 명호로 강호에서 명성을 쌓던 뛰어난 검객이었다. 그 후로도 사공표의 칠살검법에 패한 설욕을 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하여 검법을 수련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는 이십 년 전보다도 훨씬 발전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만약 전풍개가 처음부터 결판을 낼 생각으로 전력을 기울였다면 유광은 진즉에 쓰러지고 말았을지 몰랐다. 하나 유광말고도 초가보의 고수들이 줄줄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전풍개는 몇 푼의 힘을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유광이 몰리고 있음을 깨달았는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루삼마 중의 이마 상패가 양손에 공력을 가득 끌어 올린 채 전장에 띄어들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전풍개의 검이 빛살 같은 검광을 뿌리며 유광의 가슴과 화개혈(華蓋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번에 전풍개가 펼친 것은 궁공성사(穹空星射)라는 초식인데, 빠르고 정교하기가 성라검법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초였다. 유광의 단천극은 아무래도 장병(長兵)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빠르게 날아드는 초식을 상대하기에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유광 정도의 실력자가 거리의 길고 짧음에 크게 두애받을리는 없었으나, 전풍개 같은 절세 검객과의 싸움에서는 아주 사소한 차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파앗!
유광은 재빠르게 단천극으로 가슴 부근을 보호했으나, 눈부시게 움직이는 검의 변초(變招)를 모두 막아 내지 멋하고 검기 한 가닥에 가슴 부위를 베이고 말았다. 금세 그의 가슴은 피에 흠뻑 젖어서 상반신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유광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고 오히려 사나운 기세로 전풍개에게 바짝 접근했다. 이럴 때 어설프게 거리를 확보하려고 뒤로 물러섰다가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엇던 것이다.
하나 그의 움직임보다는 전풍개의 반응이 더욱 빨랐다.유광이 전풍개의 코앞으로 바짝 다가들며 극의 손잡이 부근으로 미간(眉間)을 내리찍으려는 순간, 너느새전풍개가 상체를 활처럼 뒤로 뉘더니 이내 일 장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유성과도 같은 검광 세 줄기를 발출하는 것이었다.
유광의 얼굴이 철갑을 씌운 듯 딱딱하게 굳었다. 전풍개의 반응의 신속함과 변초의 날카로움은 도저히 육십 대 노인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광은 종남파에 장문인을 제외하고 이런 수준의 검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기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그만큼 더 클 수박에 없었다. 유광의 앞가슴이 세 개의 검광에 누더기처럼 변해 버리려는 순간, 뒤로 누워 있는 전풍개의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위력의 장공(掌攻)이 폭포수처럼 퍼부어졌다.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상패가 유광의 위급함을 보고 더 이사아 참지 못해 전풍개에게로 날아오며 도파장(刀巴掌)을 내갈긴 것이다.
쉬이앙!
장력이 날아드는 소리가 마치 거대한 도끼날이 날아드는 것과 같았다. 도파장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무서운 위력을 발하는 장력으로, 공력이 한 갑자(甲子)에 도잘하지 않으면 시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뛰어난 절학이었다. 그때 전풍개는 뒤로 몸을 젖힌 자세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머리 위에서 아래로 퍼부어지는 공격에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전풍개는 기적과도 같은 동작을 연출해 냈다. 그는 몸이 뒤로 젖혀진 상태에서 마치 누군가가 잡아 일으키기라도 한 듯 위로 곧장 일어나며 숨어 있던 왼손을 앞으로 쭈욱 내뻗었던 것이다.
꽝!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폭음과 함께 허공에서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리던 상패의 신형이 튕겨지듯 솟구쳐 올라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전풍개 또한 안색이 창백해진 채 바닥에 거의 등이 닿을 정도로 휘청거렸으나 한 차례 선회하며 미끄러지듯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에 전풍개가 펼친 것은 대천장으로, 빠르고 강맹한 면에서는 종남파의 장공(掌功) 중 최고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상패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든 덕분에 유광은 위급한 상황을 면했고, 상패 또한 큰 부상은 아닌지 바닥에 나뒹굴었던 몸을 번개 같이 일으켜 세웠다. 하나 두 사람의 얼굴은 한 점의 웃음기도 없이 무겁게 다라앉아 있었다. 어느새 전풍개가 재차 자신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 무시무시한 안광을 번뜩인 채로 시퍼런 검기를 줄줄이 뿜으면서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모습은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전풍개는 예전에도 일단 손을 쓰면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쉬지않고 몰아치는 성격이었다. 맹목적일 정도로 공격일변도인 과격한 성정(性情)은 나이를 먹어서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는지, 지금도 그는 상패와의 격돌로 적지 않은 충격을 입었으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향해 무섭게 덤벼들고 있었다.
파파파팟!
그의 검에서 번갯불 같은 섬광이 연이어 뿜어 나오자 유광과 상패는 서로 눈을 마주 보더니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맞서 갔다. 이런 상대에게 한 치의 약세라도 보였다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접이었다.
그들의 격전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험해졌다. 세 사람 모두 수비는 아예 생각도 않는지 가공할 살수(殺手)들을 거푸 펼쳐 냈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하반신까지 시뻘겋게 물들였으나 유광은 전혀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악귀(惡鬼)처럼 미친 듯이 단천극을 휘두르고 있었고, 상패 또한 고루삼마라는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허깨비처럼 허공을 누비면서 바쩍 마른 양손으로 전풍개의 머리와 목덜미 등 치명적인 부위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가 펼치고 잇는 것은 고루부영신법(骷髏浮影身法)과 고루십팔산수(骷髏十八散手)로, 특히 그의양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허공이 갈라지는 듯한 강력한 강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전풍개의 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납고 더욱 맹렬해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이십 년 동안 억눌러 왔던 자신의 모든 분노와 원한을 분출이라도 하듯 그는 신들린 듯한 동작으로 미친 듯이 절초들을 거푸 펼쳐 내고 닜었다. 그것은 가히 거대한 은하수(銀河水)가 하늘에서 거꾸로 퍼부어지는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 종ㄴ마파 사상 성라검법을 이 정도까지 터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광은 이미 가슴뿐 아니라 어깨와 옆구리에 다시 이검(二劍)을 맞고 움직임이 현격하게 느려졌으며, 상패 또한 가슴팍이 너덜너덜해지고 양쪽 옷 소맷자락이 모두 잘려 두 팔이 팔뚝부터 송두리째 드러난 채로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잇었다. 그들이 그 이상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한쪽에서 이들의 격전을 구경만 하고 있던 청효나월이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전풍개의 등 뒤로 다가서며 오른쪽 손을 새차게 떨쳐 내는 것이었다.
촤르르......!
그의 손에는 언제 뽑아 들었는지 쇠사슬이 달린 기형의 낫이 쥐어져 있었다. 그 낫이 전풍개의 목덜미를 향해 미끄러지듯 허공을 움직이는 광경은 마치 거미가 거미줄애 매달린 먹이를 노리고 거미줄 위를 달려가는 것 같았다.
전풍개는 비틀거리고 있는 유광의 머리통을 베어 버리려다, 등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 슬쩍 몸을 돌리며 성낙적막(星落寂寞)의 검초를 뿌려 댔다. 성낙적막은 지금처럼 몸을 회전하면서 전개할 때 가장 효과적인 초식이었다.
하나 나월이 던진 낫은 검광과 부딪치기 전에 깅한 회전을 일으키며 처음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날아들었다. 전풍개의 강호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설마 자신의 등 뒤에서 날아든 병기가 쇠사슬이 달려 각도 조절이 자유로운 낫일 거라고는 전혀 에상할 수 없없다. 전풍개가 자신의 장검에 아무것도 부딪히지 안하았음을 알고 경각심을 일으켰을 때 낫은 이미 그의 옆구리를 갈라 오고 있었다.
전풍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력을 다해 허리를 비트는 것뿐이었다.
파악!
선혈을 뿌리며 전풍개의 몸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비록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참변을 면했으나, 전풍개는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나월의 병기는 수라삭(修羅削)이라는 것으로, 마도의 십팔대기문병기 중 하나였다. 이것은 비단 수발(收發)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쇠사슬을 이용해 움직이는 범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막기가 무척 힘들었다.
지금도 전풍개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 수라삭은 다시 허공에서 기이한 선회를 일으키며 전풍개의 목덜미를 휘감아 왔다. 수라삭이 움직이는 궤적은 여타 병장기와는 완전히 판이해서 빤히 눈으로 보고도 어디를 노리고 들어오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전풍개는 순전히 본증적인 직감으로 장검을 자신의 목 앞에 수직으로 세웠다.
깡!
장검을 쥔 손아귀가 부르르 떨리며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전풍개는 수라삭의 살인적인 공격을 막아 내긴 했으나 다급한 숨을 몰아쉬지 않을 수 없었다. 엉겹결에 막아 내느라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검을놓칠 뻔했던 것이다.
뒤이어 지금까지 수세에 몰려 있던 유광과 상패의 매서운 공격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그때는 이미 나월이 수라삭을 거둬서 전풍개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유광과 상패의 공격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전풍개의 신경은 온통 수라삭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날아들어 오느냐 하는 것에 쏠려 있었다. 그만큼 나월의 수라삭은 무시무시한 위력이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전풍개기 세 며의 절정 고수들에게 에워싸인 채 공격당하고 있는 모습은 무언지 모르게 비감(悲感)이 어린 것이었다.
다른 쪽에서 희대목 등과 격전을 벌이고 있던 전흠이 이 광경을 보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려 했으나, 때마침 고루삼마의 다른 두 사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도저히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전흠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희대목과 고루삼마의 합공을 쉽사리 뚫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틈틈이 동중산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만 했다.
하나 고루삼마는 고루삼마대로 전흠의 뛰어난 검술에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막 약관(弱冠)을 벗어난 듯한 전흠이 자신들의 합공에도 약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여유마저 보이자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중산은 기묘한 신법과 암기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를 주로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낭아봉을 든 비쩍 마른 장한이었는데, 장한의 낭아보잉 움직일 때마다 동중산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급한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전흠이 때때로 검을 날려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낭아봉에 의해 피 곤죽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장내에서 그나마 전세를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부상당한 범불수와 싸우고 있는 방취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간신히 범불수와 밪서고 있을 뿐, 그를 물리치고 전풍개를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범불수가 오른쪽 어깨를 다쳐서 자신의 장기인 진악신장(震嶽神掌)을 시전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녀의 신법이 뛰어나다 해도 진령 일대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그이 장공(掌功)을 감당해 내진 못했을 것이다.
종남파의 태화전 앞 공터는 네 쌍의 격전으로 고함과 비명 소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싸움은 뭐니뭐니 해도 전풍개와 나월, 유광, 상패 사이의 격전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살벌할 정도로 사납고 격렬해서 그들 주위의 오 장 이내에는 누구도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전풍개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그들 세 사람의 합공에 대항하고 잇었다.
하나 나월의 수라삭은 정말 무서웠다. 전풍개는 몇 번이나 살인적이라고 할 수밖에 넚는 수라삭의 공격을 막아 냈으나, 그때마다 조금씩 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해서 전신에 유혈이 낭자했다.
유광과 상패의 상황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비록 나월의 가세로 한숨을 돌리기는 했으나, 그 전에 워낙 호되게 당했는지라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그렇다고 방심했다가는 햇살처럼 날아드는 전풍개의 검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월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전풍개에게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서 쇠사슬을 조종하여 수라삭을 날리고 있었는데, 전풍개가 아무리 그에게 접근하려 해도 당최 약간의 틈도 주지 않았다.얼핏 보기에는 장난처럼 휘두르는 가벼운 동작에도 전풍개는 여러 차례 위급한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나월이 한없이 느긋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전풍개가 유광과 상패의 합공을 뚫고 일검을 내찌를 때마다 나월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어쨌든 상황은 점점 그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토록 성남 맹호와 같은 기세로 몰아치던 전풍개도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처음보다는 기세가 한풀 꺽인 모습이었다.
체력이란 것은 정신력이나 내공력보다도 근원적인 것이라, 일단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떨너진 체력이 보충되기 전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 아마 일대일의 대결이었다면 상황은 달랐겠으니, 이미 두 명의 절정 고수들과 싸우느라 체력을 많이 소진한 지금의 전풍개로서는 나월의 수라삭을 상대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나월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무리해서 단번에 승부를 내려 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수라삭을 날려 전풍개를 지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전풍개는 이런 상태라면 시가닝 흐를수록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상황을 바꾸려 했으나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파구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생겨났다. 전풍개가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수라삭을 피하려고 허공으로 몸믈 솟구치자 어김없이 유광과 상패가 양옆에서 바짝 다가오며 공세를 펼쳤는데, 거의 본능적으로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전풍개는 문득 멀지 않은 태진각의 지붕 위에서 세 개의 섬광이 쏘아져 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노리는 것인 줄 알고 움찔 놀랐던 전풍개는 그 섬광들의 목적지가 유광의 뒤통수임을 깨닫고 안도의 함숨과 함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던진 것이지?’
하나 더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풍개는 유광의 공격은 무시하고 상패를 향해 성라검법의 절초들인 잔성희소(殘星稀疎)와 괴성척두(魁星剔斗)를 연거푸 펼쳐 냈다. 유광은 전풍개가 자신의 단천극은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상패만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자 어리둥절한 가운데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을 반짝였다.
‘이 늙은이가 힘이 떨어지자 이판사판으로 나가는구나. 이 기회에 아예 숨통을 끊어 주겠다.’
그는 들끓는 살심(살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흉흉한 콧소리를 내며 전풍개의 관자놀이를 찔러 가는 단천극에 모든 공력을 쏟아부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무언가 싸늘한 것이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경실색했다. 하나 그때는 이미 전신의 공력을 아프오 뻗어 가던 단천극에 집중시킨 뒤라 도저히 몸을 피하거나 단천극을 되돌려 뒤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막을 기운이 없었다.
유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앞으로 돌진하던 기세를 살려 허리를 최대한 앞으로 숙이는 것뿐이었다. 섬광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다른 두개의 섬광은 그대로 그의 오른쪽 어깨와 목덜미 아레에 꽂히고 말았다.
파팍!
"크윽!"
유광의 몸이 진저리를 치듯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하나 유광은 목과 어깨에 치명적인 암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찔러 가던 단천극의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때 전풍개는 상패가 펼친 고루십팔산수의 엄밀한 수영(手影)을 뚫고 막 그의 앞가슴을 피범벅으로 만들고 있었다.
따땅!
쾅!
"으악!"
폭염과 비명 소리가 거푸 터져 나왔다. 상패는 전풍개의 장검에 가슴을 난자당한 채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유광은 결국 두 자루의 비수를 목 뒤에 꽂은 채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하나 전풍개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는 상패의 고루십팔산수에 옆구리를 가격당하고 뒤이어 유광이 사력을 다해 내찌른 단천극에 어깨를 꿰뚫리고 말았다.
전풍개는 고통을 억누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장검을 휘둘러서 자신의 어깨를 단천극으로 찌는 유자광의 오른팔을 날려 버렸으나, 그때 다시 나월의 수라삭이 날아들었다. 전풍개의 두 눈에 암담한 빛이 떠올랐다. 그로서는 이제 더 리상 몸을 움직일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태진각의 지붕에서 다시 세 개의 섬광이 날아들었다. 이번의 섬ㄴ광도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나월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왔는데, 어찌나 그 속도가 빨랐던지 지붕에서 나워의 뒤통수까지 세 가닥 백선(白線)이 그어진 것처럼 보였다.
"흥! 그럴 줄 알았다!"
나월의 입에서 냉랭한 음성이 흘러나오며 그의 신형이 번개보다도 빨리 선회했다.
따따땅!
그토록 날카로운 기세로 날아들던 세 개의 섬광이 너무도 허망하게 튕겨져 나가고 나월의 신형이 어느새 허공을 날아 태진각의 지붕 위에 도달했다. 그 신법의 빠름은 그야말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헉!"
태진각의 지붕쪽에서 누군가의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그때는 이미 나월의 수라삭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태진각의 지붕 위를 휩쓸고 있었다.
파파팍!
깨어진 기왓장 조각이 가루가 되어 휘날리며 태진각의 지붕은 삽시간에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사방으로 비산(飛散)되는 기왓장의 파편들 사이로 하나의 검은 인영이 튀어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다 수라삭의 가공할 경기에 휘말려 버렸다.
"크악!"
그 인영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두 바퀴나 맴돌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나월은 거의 사오 장이나 솟구쳐 올랐던 상태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곧장 전풍개의 머리 위쪽으로 다가가는 신기(神技)를 발휘했다. 수라삭이 괴이한 호선을 그리며 아직도 비틀거리고 서 있는 전풍개의 백발성성한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나월은 전풍개를공격하다 말고 태진각의 지붕에 숨었던 인영이 날린 세 개의 비도를 격추시키고, 이어서 허공으로 솟아올라 인영을 쓰러뜨린 후 다시 전풍개를 공격하기까지 단 한 번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 경이적인 몸놀림은 그야말로 허공을 자유자재로 선회하는 한 마리 비조(飛鳥)와도 같았다. 그것이 바로 수라삭과 함께 나월의 명성을 강호에 떨치게 한 창응류신법(蒼鷹流身法)이었다.
막 전풍개의 머리통이 수라삭에 잘리려는 순간, 갑자기 나월이 짤막한 신음을 토하며 신형을 휘청거렸다.
"음...... "
그 바람에 그가 날린 수라삭은 전풍개의 머리가 아닌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전풍개의 왼쪽 어깨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살덩이가 떨어져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한 차례 비틀거리던 나월은 갑자기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더니 대뜸 조금 전에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인영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이 여우 같은 놈!"
그의 옆구리에는 비수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이제 보니 바닥에 쓰러져 잇던 인영이 나월의 신경이 전풍개에게 집중된 틈을 노료 비수를 날려 보냈던 것이다. 나월은 그 인영이 자신의 수라삭에 당했다고만 생각하고 전혀 방비를 안 하고 있다가 꼼짝없이 비수에 격중당하고 말았다.
나월의 옆구리에 꽂힌 비수는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길이에 은은한 은색(銀色)을 띠고 있었는데, 중앙에 가느다란 혈선(혈선)이 그어져 있어 날카롭고 예리해 보였다.
나월은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있는 상태라 무시무시한 기세로 쓰러진 인영을 난도질할 듯 덮쳐 갔다. 그 인영은 언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느냐 싶게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세차게 양손을 휘둘렀다.
파파팍!
몇 가닥의 섬광이 나월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 나월은 이미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를 죽이기로 결심했는지 피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들며 수라삭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까깡!
두 개의 섬광이 수라삭에 부딪혀 박살이 나 버렸으나, 나머지 하나의 섬광은 아월의 어깨에 정확히 꽂혀 버렸다. 하나 그때 나월의 수라삭은 인영의 앞가슴을 향해 전확하게 파고들러 가고 있었다. 인영은 피할 엄두도 나지 않는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수라삭이 자신의 가슴을 베어 오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태진각의 폐허 속에서 또 다른 인영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나월을 향해 팔뚝 길이만 한 단창(短槍)을 던졌다.
"형님! 피하십시오!"
나월은 하마터면 그 단창에 그대로 머리를 관통당할 뻔했다. 그가 단창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도검(刀劍)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겪어 온 무인 특유의 본능적인 감각 때문이었다. 그는 폐허 더미 속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오는 기색을 느끼자마자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었던 것이다.
파악!
시퍼런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여파로 이마의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러나왔으나 나월은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이 처음의 인영의 가슴을 베고 지나가는 수라삭을 회수했다가 재차 휘둘렀다. 하나 그 순간, 어디선가 하나의 검이 날아와 나월의 목을 관통해 버렸다.
"끄윽!"
나월의 입에서 괴이한 신음이 흘러나오며 그의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나월은 검이 날아온 곳으로 신형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왼팔이 피투성이로 변한 전풍개가 숨을 헐떡러리며 금시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전풍개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력을 다해 수중의 장검을 나월의 목으로 집어 던졌던 것이다.
나월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그를 향해 무어라고 말하려다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에 비구가 박혀 있었고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한 데다 목에는 장검까지 꽂혀 있어서 지금까지의 격전이 얾나나 흉험한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나월이 쓰러지자 전풍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정낮고 말았다. 조금 전의 싸움은 평생을 도검 속에서 살아온 전풍개도 처음 겪어 보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바닥에 쓰러져 잇는 것은 전풍개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중 먼저 나타나서 비도를 던졌던 인영은 나월의 수라삭에 가슴이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나중에 나타났던 인영은 바로 옆에서 그를 안아 일으키고 있었다.
나월의 죽음을 기점으로 장내의 격전은 어느새 끝나 있었다. 나월이 죽자 남아 있던 초가보의 고수들이 황급히 꼬리를 물고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심지어는 고루삼마 같은 강호의 거마들도 피투성이가 된 상패를 황급히 안아 들고는 정신없이 몸을 날려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은 예상치 못했던 고수들이 곗고 나타나고 유광과 나월이 비명에 쓰러지자 상황이 이미 글렀다고 판단하고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것이다.
하나 그 인원은 불과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처음에 이십여 명이 넘는 인원으로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을 때와는 너무도 판이한 상황이었다.
범불수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던 방취아는 범불수가 물러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황급히 전풍개에게 다가갔다. 그때 어느새 달려온 전흠이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서려는 전풍개를 황급히 부축했다.
"할아버님!"
전풍개는 눈썹을 찡그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노부가 비루먹은 망아지인 줄 아느냐?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전흠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는 전풍개의 왼쪽 팔을 바라보았다.
"상처부터 먼저 치료를...... "
"이런 피육의 상처는 다친 거라고 할 수도 없다. 그보다 저자들은 누구냐?"
전풍개가 턱으로 태진각의 지붕에서 나타난 두 인영을 가리키자 전흠이 힐끔 그들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는 며칠 전에 보았던 송천기란 자 같은데, 다른 한 사람은 모르겠습니다. 혹시 실종되었다던 본 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아닐까요?"
마침 그들에게 다가오던 방취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본 파의 제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장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몸에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전흠조차도 고루삼마 중의 두 사람과 희대목을 상대하느라 몸에 몇 군데의 상처가 잇었는데, 그녀는 땀에 잔뜩 젖어 있기는 했으나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애서인지 두 인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거리고 있었다.
두 인영 중 한 사람은 전흠의 말대로 송천기가 분명했다. 송천기는 수라삭에 가슴을 베어 기식이 엄엄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그를 안고 잇는 젊은 청년의 표정이 몹시도 어두웠다. 방취아는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청년의 모습을 본 기억이 나지 않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서 정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본 파를 도와준 것에 감사드려요. 그런데 귀하가 누구인지 알 수 잇을까요?"
청년은 피투성이가 된 송천기의 가슴팍 상처를 지혈(止血)시키고는 침중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잇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어 그녀를 주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추성이라 하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첫댓글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바
욕 봤다
이제 좀 치료좀 하자 게네들 올려면 쫌.....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