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프로필 사진에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나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심이라"라는 말을 올려 두었다고 했는데 어떤 분들은 나와 함께 이 말을 좋아해 주고 그리고 당신들의 삶에도 적용을 한다는 말을 간헐적으로 듣는다.
어제도 어느 분이 이 말씀을 당신의 삶에 적용하는데 이번에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에 대해 여러 가지 섭섭한 것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섭섭한 일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함을 깨닫게 하심" 이라는 말에 적용(?) 했다는 말을 나에게 알려 주셨다.
나를 참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분 같다. 그래서 섭섭한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왜 한국에 나오면 내가 당신을 만나자고 해 주지 않는지.. 그것도 섭섭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사역할 때 어떠한 사람을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상담으로 인해.. 어려운 일로 인해 나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말을 먼저 안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딱히 나에게 섭섭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 외에도 섭섭한 일들을 많이 나열하였는데..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분의 길게 보낸 글을 읽고 난 다음 새벽 기도를 하러 집을 나섰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 일을 허락하심은 "하나님이 나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심"이라는 것을 나 역시 적용해 볼 때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느을 나의 "주된 관심"은 내게 주어진 "상황 그 자체" 보다는 그 상황에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주님이 기뻐하시는지.. 그것이 나의 관심이다.
"주님의 일"보다 나는 "주님"이 더 큰 나의 관심이라고 하겠다. 주님의 손에 나를 위해 무엇이 들렸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님의 얼굴을 살피기를 원한다. 내 사랑하는 주님 오늘 마음이 혹시 불편하시지는 않으신지..
나는 하나님이 나의 속상한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어렵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꿋꿋하게 모든 일을 잘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도 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을 때로는 안쓰럽게 한다는 것을..
나도 화낼 수 있고 나도 울 수 있다. 나도 볼멘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을 어렵게 할까 봐..
마음을 고쳐서 생각해 보려고 힘을 쓴다.
어제는 아침에 내가 섭섭하다는 글 외에도 다른 무거운 글들을 만났다. 새벽 기도 나서는 발걸음이 참 무거울 수 밖에 없었으나...
나는 모든 사람들이 물어오는 질문에 답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문제의 해결책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로 인하여 1도 섭섭함이 없이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의 자리에 내가 있지도 않다.
그러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깨달음의 열매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주님을 이전보다 더 사랑해요!" 이것이 아닐까?
그러면 나는 누가 나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다고 말해 주어도 나의 가장 완전한 대답은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을 내가 다 해 줄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답변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바로 이런 생각을 주님이 나에게 주신것라서 참 감사했다.
"유니스야! 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나 너는 나를 더 사랑할 수는 있단다! 너에게 있는 모든 문제의 답은 딱 한 가지야! "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그것이 너의 평생에 모든 문제의 정답이란다. 우리 유니스 오늘 나를 더 사랑하니?"
우리 주님이 주신 "정답" 이었다!
지난번 극동방송에 나갔었다. 방송 PD님이 나에게 물어온 질문 중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어떤 것일까요? 였다. 그래서 내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하는 말 이것일세! 내 구주 예수를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찬송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 찬송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고 연이어 질문하시기에 "가사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에요"라고 답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다. 나 장례식에 이 찬송 꼭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
우리말 성경 역대상 10장
11. 길르앗 야베스에 사는 사람 모두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한 짓에 대해 낱낱이 들었습니다.
12. 그중 용감한 군사들이 모두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왔습니다. 그러고는 야베스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그 뼈들을 묻고 7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 버림받고 저주 받은 인생의 주인공이 된 사울 왕! 그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다. 그가 왕으로 선택 받았을 때 그의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러했던 그는 변했다.
그의 변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일이 있었다면 바로 다윗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윗과 자신을 비교했고 백성들이 노래를 할 때 다윗이 죽인 적군은 만만인데 사울이 죽인 적군은 천천이라는 그 "숫자"에 사울은 노예가 되었고 그 숫자로 인한 비교는 시기와 질투의 정점을 찍게 되었고 그러한 사울의 변화는 결국 적군들 앞에서 자결을 선택하게 만들은 것이다.
이렇게 처음엔 잘 시작하였다가 끝이 비참한 리더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가?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 이라는 잠언 말씀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렇게 처참한 말로를 맞이한 사울의 자살한 시체를 적진에 들어가서 찾아와서 장사를 지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야베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울이 젊었을 때... 아직 겸손한 리더였을 때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 준 선한 일을 기억하였던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삶이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던지 간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준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야베스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선한 일을 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선한 일을 행해 준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 역시 끝까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우리의 당한 현실이 암만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내가 받은 선한 섬김들에 대한 기억을 절대로 잊지 않게 해 주시고 받지 못한 것 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하여 더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은 "기술학교"를 시작하고 운영하기 원하는 어느 선교사님을 만나서 저희 기술학교를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한 인포를 나눠 주는 시간을 갖기로 한 날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 그 선교사님의 필요한 모든 것을 잘 설명해 드릴 수 있도록 저희들의 교제에 함께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시편 103편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작정서 점수: 100점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3. 9.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지금 밖에 갑자기 비가 막 내리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들리시는지요?
우리 아프리카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케냐. 제가 있는 땅 리모르 이쪽은 밤에 이렇게 비가 막 내리고 아침이 되면 비가 멈추어서 또 쨍쨍 햇볕이 납니다. 요즘은 한참 더울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갑자기 비가 막 내리는 시간이네요. "성령의 단비!" 그대에게 함께하시기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근데 방금 출석 불렀나요? 다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출.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어떤 분은 세 번 대답을 한꺼번에 하시는 분도 있다고 그러시는데 저는 그 모든 분들 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가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은혜!" 은혜 받았다. 은혜를 입었다.
은혜 가운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되는 것 있다 한다면 "구원의 은혜"가 아닌가 합니다.
"구원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그런데 이 기뻐하다 이게 영어로는 rejoice 가 되는데요.
기뻐하는 것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저희들의 마음의 태도라고 할까요? 이것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기억, 그 감사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그대가 겪고 있는 일들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감당하기 참 힘들구나. 내가 왜 이런 것을 겪어야 하는 거지? 하나님은 왜 이런 것을 나에게 허락하셨을까? 그렇게 마음에 섭섭한 마음이 든다 할지라도